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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잃은 진보정치, 고(故) 이해삼을 떠나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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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잃은 진보정치, 고(故) 이해삼을 떠나보내며

[시민정치시평] 진보정치의 진정성 있는 반성과 성찰 있어야

갑작스럽게 이해삼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이 우리 곁을 떠났다. 만 50세를 못 채우고 그는 그렇게 이 세상과 하직했다. 그는 서울 성수지역에서 제화노조를 만들었고 그 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그곳을 묵묵히 지켰다. 그의 동료 제화노동자들은 그가 "구두장이들의 소박한 공동체 꿈을 꾼 동지"였다며 그를 기렸다. 그들은 이해삼이 단지 제화노동자들의 권익을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해서, 진보정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자신의 건강과 안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헌신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의 죽음 앞에 많은 사람들이 마음 아파했다. 이별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도 없이 그를 보내야 했기에 더욱 아파하고 있다.

30년 동안 때로는 가까이서, 때로는 멀리서 보아온 내게 이해삼은 후배이지만 많은 가르침을 준 소중한 친구였다. 그는 늘 진지했고 열정적이었고 힘든 진보정치의 길을 고집했다. 그는 자신을 내세우지 아니했다. 묵묵히 지킨 노동현장에서나 진보정치의 중심으로 여긴 민주노동당의 비정규직대책위원장을 맡았을 때나 그의 겸허함은 한결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노동현장의 열망을 담은 진보정치가 힘 있게 비상(飛翔)하는 그날을 꿈꾸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한국의 진보정치권은 어떠한가? 흔히 시간과 권력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하는데, 과거 군사독재 시기 그 견결했던 혁명의 열정을 오늘날까지 간직하고 있는 진보정치권 인사가 과연 몇 명이나 있는가?

정통야당의 진보화를 꿈꾸며 뛰어든 이른바 '386세대'의 존재감은 사라진지 오래다. 민주화 투쟁의 적통임을 자부하는 제1야당 내에서, 누가 붙인 이름인지는 모르나 '친노', '비노'의 대립은 국민들에게 '노'(NO)일뿐이다. 그래서 진보임을 자임하는 일부 정치인들은 정통야당의 구태가 싫어 기성 정치의 때가 묻지 않았으면서 지식과 재력을 겸비한 한 저명인사의 '새정치'에 많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결국 그의 '새정치'는 골리앗과 같은 거대 자본과 싸움하다 아웃된 의원의 지역구에 출마해 제도권 정치 입문에 성공하는 것으로 그 막을 열었다.

그렇다면 제1야당과도 '새정치'와도 선을 긋는 '진짜' 진보정치권임을 자임하는 진영은 어떠한가? 단적으로 이들 진영은 당명조차 제대로 알기 힘들 정도로 분열과 통합을 반복하고 있다. 이해삼은 그 소용돌이 속에서 많이 걱정하고 아파하면서 결국 자신이 애정을 갖고 몸담았던 정당을 나와야 했다. 누군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고 했는데 한국의 진보정치는 그 지점에 와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반성과 성찰이란 용어가 진보정치권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고로 반성은 나와의 은밀한 대화인데 몇몇 분들의 반성은 남을 의식해 요란하고 때로는 현란하다. 자신이 제도정치권에 남지 않을 경우 진보정치가 곧 망할 것 같이 생각하는 그런 진보정치인들은 또 어떠한가? 과연 이분들에게 원칙적이나 독선적이지 않고, 유능하나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그런 인물들에 대한 배려와 양보를 기대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란 정치시장에서 정치엘리트와 유권자 간의 거래가 이루어지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상품화하려는 노력을 할 수밖에 없음을 잘 안다. 그 상품화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런데 어떤 때는 상품화 자체가 목적인 것처럼 여기는 진보정치인들을 보게 된다. 이분들이 '수단으로서의 권력'과 '목적으로서의 권력'이 어렵지 않게 뒤바뀔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 지적·실천적 긴장의 끈이 끊어진 것은 아닌지, 진보정치권조차도 권력 앞에 정직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흔히 재화는 사람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수단으로 탄생했는데도 어느 순간부터 사람이 재화의 노예가 된 꼴이 되었다고 한다. 진보정치권 인사들에게까지 권력이 재화처럼 목적 그 자체가 된 것은 아닌가?

진보정치권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는 이 시대를 뒤로 하고 이해삼은 우리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떠났다.

이해삼은 "사람은 천사도 악마도 아니다"라고 했다. 그의 이 말은 사람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영성적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왜 그가 그런 말을 했을까를 진보정치권은 보다 진지하게 보다 깊게 생각했으면 한다.

노동현장과 진보정치의 가교가 되고자 했던 그의 정신과 가치를 기리며 이 땅의 진보정치가 진정성을 회복하고 다시 연대해 힘 있게 나아가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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