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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가 선거 뒤 '야권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이철희 칼럼] 문재인의 '국민정당', '安心연대'가 답이다

진보 대 보수, 이것이 이번 대선의 프레임(frame)일까. 아니다. 이번 대선은 이념으로서의 진보 대 보수, 또는 좌파 대 우파의 대결이 아니다. 단언컨대, 지금 야권의 문재인 후보가 내세우는 정체성은 진보가 아니다. 물론 진보성을 담고 있으나 부분일 뿐이다.

이번 선거가 진보 대 보수의 대결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우선 대북정책에서 평화노선 대 대결노선 구도로 선명하게 대립해야 한다. 또 복지에서도 선명한 쟁점이 형성되어야 한다. 경제민주화도 양쪽의 차이를 드러내는 아젠다로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야권의 문재인 후보는 보수가 즐겨 말하는 성장과 일자리를 강조한다. 따라서 진보 대 보수라고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번 대선은 '보수 대 반보수'의 대결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보수정권의 실패로 인해 중도와 보수가 연대하는 형태로 정권교체 흐름이 대세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이후 줄기차게 중도를 일부 포용하는 개혁적 보수로의 변신을 꾀하던 박 후보가 과거사 '트랩'(덫)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다시 전통 보수로 회귀했다. 그것의 표현이 보수대연합이다.

또 하나, 통합진보당의 내분 사태도 민주당이 진보화의 길을 멈추는 데 기여했다. 실상과 상관없이 진보가 종북좌파로 인식되면서 민주당으로선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민주통합당의 등장과 함께 선출된 지도부의 정체성이 진보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던 것도 민주당이 진보화에서 벗어나는 하나의 요인이었다. 한명숙-이해찬 대표로 이어지는 지도부나 당의 대선 후보 선출에 나선 후보들의 면면도 진보적 상징성은 별로 없었다.

민주당이 진보화 드라이브를 멈춘 것의 핵심 동력은 '안철수 현상' 때문이다. 안철수는 아무리 양보해서 생각해도 진보라는 말이 어색하게 들리는 인물이다. 비록 그가 자신의 책에서 밝힌 생각들이 야권의 그것과 비슷하다고 할지라도 살아온 길이나 정체성에서 진보라고 말하긴 어렵다. 진보 정체성이 아니라 새로움과 다름의 정체성으로 대중적 열망을 끌어 모으고 있으니 과연 좌클릭만이 답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작년 9월 안철수 현상의 등장 이후 민주당이 진보화의 속도를 늦추고 총선에서는 내용적으로 다시 우클릭했다.

새누리당의 박근혜 후보는 연일 민생과 이념을 대비시키면서 자신은 민생, 민주당은 이념으로 규정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민생과 거리가 먼 북방한계선(NLL) 논란을 쟁점화 해서 공세를 펼친 새누리당이야말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새누리당의 지도부는 시장보수를 파트너로 하는 반공보수이지 민생을 살리기 위해 경제민주화도 해야 한다고 하는 개혁적 보수가 아니다. 따라서 이념적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건 오히려 보수다. 그런 보수를 수용할 수 없는 사람들이 연대해서 보수정권을 바꾸자고 하는 게 지금의 흐름이다.

후보는 집단적 정체성을 상징한다. 박근혜라는 후보 정체성 속에는 이명박도 있고, 이회창도 있고, 이인제도 있다. 이름 짓자면 '이-박 담합'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를 외치던 개혁적 보수의 박 후보가 아무런 설명 없이 다시 반공과 성장을 앞세우는 수구보수의 대표적 인사들과 다시 손잡았기 때문이다. 또 박 후보가 입만 열면 자랑하는 세종시 건설을 반대했던 이회창 전 총재, 경선 결과에 불복하고 새누리당에서 뛰쳐나간 이인제 전 대표, 자신들은 시종일관 대립했다고 강변하는 이명박 대통령 등이 모두 박근혜라는 후보 정체성에 들어앉아 있다. 이러니 담합 아닌가.
▲이철희 "이번 대선은 보수 대 반보수의 대결이다" ⓒ연합뉴스

지금 야권의 선거주체는 민주당이 아니다. 새정치국민연대다. 이 국민연대는 문 후보가 '못난 민주당'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대안이다. 낡은 민주당을 새롭게 건설하고, 확대·발전시키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미부여도 가능하다. 민주당이 범진보 또는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들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안철수 전 후보가 새정치국민연대에 대해 좀 더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문재인 후보가 승리한다면 그 정치적 기반은 민주당을 포함되는 '안-심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안심은 안철수의 안(安)과 심상정의 심(沈)이다. 새정치를 갈망하는 중도·무당파의 안철수 세력과, 노동을 중시하는 합리적 진보세력이 민주당과 합쳐져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합리적 진보세력의 대선후보가 심상정이니 안심연대라고 해도 과히 어색한 표현은 아니다.

안심연대는 하나의 정당으로 구현되어야 한다. 안 전 후보가 당을 만들고, 심 전 후보 세력이 당으로서 계속 존재하고, 이들이 당 대 당으로 민주당과 연대하는 3당 연대는 매우 불안정하다. 이렇게 되면 새정부의 성격도 3당 연정이 될 터인데, 이는 매우 취약한 형태다. 연정 경험이 부족한데다 앞으로 있을 지방선거와 총선에서 공천 문제를 둘러싸고 갈등하다 깨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따라서 현실적 대안은 이들 3세력이 포함되는 가운데 개혁적 보수가 참여하는 국민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기든 지든 야권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반공과 시장만능을 두 축으로 하는 강경보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정치기제, 즉 정당을 건설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보수를 충분히 담아내는 큰 그릇이라면 민주당은 진보를 포괄하기에 작은 그릇이다. 이런 비대칭이 개선되지 않으면 지금의 야권은 앞으로도 계속 후보 단일화에 매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부에서 결선투표제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당제가 더 낫다는 전제에서 다당제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방책으로 결선투표제를 거론하는 것이다. 다당제-결선투표제도 좋은 방안이다. 결선투표제가 헌법 개정 없이 선거법 개정으로 가능하다면 이 방안이 더 좋을 수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이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보수도 분열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 위헌소송을 청구하는 등 격렬하게 반대할 것이다. 원내 과반의석을 가진 이들의 반대를 뚫고 과연 결선투표제를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통합적 국민정당을 건설하는 것은 정치세력이 협의하고 결단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누리당이 반대하든 말든 상관없이 추진할 수 있다. 물론 여러 정치세력 간의 합의를 만들어내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보아온 야권의 행태나 이합집산을 볼 때 어쩌면 결선투표제 도입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빈대 세 마리를 끌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기보다 정치인 3명을 데리고 가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생각해도 쉽지 않은 일인 건 분명하다.

통합적 국민정당 건설이란 정치적 해법이든 결선투표제 도입이란 제도적 해법이든 둘 중에 하나는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지금 이대로 간다면 산적한 개혁현안을 관철시키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금방 위기에 처할 것이다. 뉴딜개혁이나 성공한 복지국가의 경험은 안정적 다수의 지지기반(stable majority coalitions) 없이 어떤 정책도 온전하게 관철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민주정부 10년의 경험이 교훈으로 던지는 바도 마찬가지다.

선거가 한창이고, 안철수 전 후보의 가세로 야권도 이제 해 볼 만해졌다. 이런 판에 '선거 이후'(post election)를 거론하니 생뚱맞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선거승리가 개혁성공을 기계적으로 담보하지 않는다. 사전 검토와 충분한 준비가 중요하다. 우선 선거에서 이겨놓고 보자는 생각은 짧기보다 위험하다. 한 번의 선거가 전투라면 지기기반을 확대·발전시키는 것은 전쟁이다. 전투에서 이기고 전쟁에서 진 항우의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사실 지금도 늦었다. 선거와 그 이후를 포괄하는 큰 그림을 '조용하게' 논의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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