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묘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마음의 논리란 모순되는 말이다." 프랑스 작가 레스피나스(Julie de Lespinasse)의 말이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합리성의 영역이 아니라는 말이다. 따라서 지금 여론조사를 통해 야권 후보를 단일화할 경우 어떤 후보 지지층이 얼마나 이탈하는지를 가늠하는 것은 말 그대로 추론의 참고자료일 뿐 분석의 텍스트가 아니다. 단일화의 경우 덧셈과 뺄셈의 기계적 효과뿐만 아니라 그 외에 추가로 발생하는 심리적 효과까지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2002년 대선의 경우처럼 여론조사 역시 단일화를 가정했을 때와 실제로 단일화가 됐을 때 다르게 나오는 것도 이런 사정 때문이다.
단일화가 무서운 것은 기계적 효과가 아니라 심리적 효과 때문이다. 단일화로 인해 유권자, 특히 정권재창출보다는 정권교체를 열망하는 유권자들의 마음에 이길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그 때문에 투표동기가 커지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도도한 물결로 형성되면 그야말로 20~30대의 투표행동주의(vote activism)가 사회적 운동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이게 바로 단일화의 숨은 힘이다.
어떤 것이든 대조했을 때 선명하게 대비되면 그 효과가 크다. 야권이 단일화로 새로운 변화를 상징할 때, 만약 여당 후보는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면 그 효과가 훨씬 커질 것이란 얘기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가 취하고 있는 모습이 딱 그런 예다. 정수장학회 부담을 털어내지 못하고, 과거의 문제인 참여정부 시절 NLL 문제에 집착하고 있다. 의욕적으로 내건 경제민주화나 복지는 뒷전이다. 박 후보에게 낡은 보수의 아우라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 대선이 '미래 대 과거'의 대결로 가면 박 후보가 이기기 어렵다.
지금 박근혜 후보에게 가능한 옵션(option)은 두 개다. 하나는 '이회창 모델'이다.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욕심내지 않고 그냥 보수를 결집시키는 전략이다. 흔히 집토끼만 잘 지키면 된다는 전략이다. 이 경우 박 후보의 지지율이 40% 가량이기 때문에 부득불 투표율을 높이지 않아야 한다. 40%의 지지율은 쉽게 말해 100명 중 40명, 즉 40/100이라는 말이다. 보수전략은 분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분모를 줄이는 전략이다. 40명의 80%가 투표한다고 하면 32명이다. 100명 중 64명이 투표한다고 하면 32/64=50%가 된다. 결국 투표율을 64% 이하로 막으면 자력으로 50%를 넘어서게 된다는 결론이다.
현재 야권 후보 지지층의 합은 약 50% 정도 된다. 100명 중 50명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50명 중에서 몇 명이 투표장에 나가야 32명보다 많아질까. 66%가 투표해야 33명이 된다. 결국 전체 투표율이 얼추 65%면 박 후보가 진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난 18대 대선의 경우 승패가 분명했는데도 투표율이 63%였던 것에 비춰보면, 이번 대선의 투표율이 이보다 높아질 것은 분명하다. 물론 총선에서의 투표율이 54.3%이니 '높아져 봐야 얼마나 높아지겠느냐'고 자신감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굉장히 위험한 전략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다른 하나는 '이명박 모델'이다. 지금이야 극도의 비토(veto) 정서에 시달리지만 이명박 대통령도 후보 시절만 놓고 보면 역대 보수 후보 중에서는 최강이었다. 보수 표에다 중도까지 끌어안는 넓은 선거연합을 편성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당시 구도가 워낙 좋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수성향의 이회창 후보가 얻은 356만 표를 감안하면, 이명박 후보가 530만 표 차이로 승리한 것은 그의 중도전략이 먹혔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취임 직후 자초한 촛불항쟁 때문에 보수의 품 안으로 뛰어들어 선거 때의 중도 스탠스를 고스란히 잃어버렸다. 그 결과 그는 숱한 선거에서 패배하는 등 만성적 위기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박근혜 후보는 대통령이 되기도 전에 정수장학회 등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다시 강경보수의 품에 안기는 선택을 하고 있다. 박 후보는 그 동안 취해왔던 개혁적 보수를 포기하고 낡은 보수의 모습으로 회귀한 것이다.
▲지난달 8일 재향군인회 창설 60주년 행사에 참석했을 당시의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 ⓒ프레시안(최형락) |
원래 박 후보는 지난 대선에서의 당내 경선 패배 이후 중도전략을 모색해왔다. '원칙이 바로 선 자본주의'를 주창하고, 복지를 내걸었다. 총선에 임박해서는 경제민주화까지 표방했다. 5년 전 '줄푸세'를 주장했던 것에 비하면 그야말로 표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과감한 '터닝'이었다. 지난 총선에서 그가 보여준 혁신의 노력은 그동안 추구했던 개혁적 보수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기에 승리의 동력이 될 수 있었다. 요컨대 '이명박 모델'을 따랐기에 승리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 박 후보가 과거사 논란에 휩싸이면서,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보수 결집의 '이회창 모델'을 따르고 있다. 이 노선은 사실 2007년 당내 경선에서 이미 패배한 바 있다. 이 모델을 다시 추구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이 대목에서 샤츠슈나이더의 통찰이 다시 떠오른다. "모든 패배한 정당·대의·이익은, 기존의 노선을 따라 계속 싸울 것인지 아니면 낡은 싸움을 포기하고 새로운 연합을 형성하고자 할 것인지 결정해야만 하다. 여기서 가장 우려스러운 사태는 기존의 싸움을 계속하려는 완고한 소수파들이 어리석게도 낡은 갈등구도를 동결시켜 영원히 고립된 소수파로 남게 되는 경우이다."
박 후보가 이기려면 중도전략을 취하는 것이 옳다. 지지율 셈법에서도 그렇고, 경험적 사실을 봐도 그렇다. 선거를 좀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이다. 그런데도 박 후보가 실패한 전략인 '이회창 모델'에 빠진 이유는 후보 자신이 스스로의 힘으로 구각을 깨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각의 온존을 전제로 참모들이 전략을 짜다 보니, 결국 남은 것은 보수전략 뿐이다. 따라서 보수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주변의 유혹에 박 후보가 빠진 게 아니라 그가 자발적으로 '완고한 소수파'를 선택한 것이다.
진보든 보수든 진화는 숙명이다. 정치세력은 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 선거라는 것이 바로 진화를 강제하는 정치적 기제다. 지금의 야권이 진화를 못해 위기를 자초했고 총선에 패배했다면, 그들은 이제 안철수 후보의 등장으로 진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위기 속에서 진화했던 보수의 박근혜 후보가 총선 승리 뒤에 도리어 퇴화를 선택한다면 아무리 견고한 지지층을 갖고 있더라도 승리하긴 힘들다. 쇄신, 혁신, 변화의 경쟁에서 뒤처지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기긴 어렵다.
흔히 3자 구도 때문에 박 후보가 손해를 보는 것으로 평가한다.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박 후보가 3자 구도로 인해 득을 보는 것도 없지 않다. 야권 내 두 후보 간의 경쟁, 즉 야야 대결 때문에 여야 대결이 온전하게 부각되지 못했다. 그 결과 1:1 대결에서라면 쉽게 노출되었을 약점들도 상당 부분 묻히게 됐다. 이제 단일화로 인해 명실공히 1:1 대결구도가 정착되면 이런 어부지리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최근 박 후보와 김종인 위원장 간의 갈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만약 박 후보가 대담하게 '김종인 아젠다' 즉 경제민주화를 버린다면 그것은 박 후보가 과거 프레임에 안착했다는 것을 뜻한다. 결국 큰 흐름을 놓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용병지도 공심위상(用兵之道 攻心爲上 : 인심을 공략하는 게 가장 나은 작전)이라고 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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