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반도의 봄은 아직 멀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미 양국이 연이은 군사훈련에 나서고 북한이 또다시 반발하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소마스크'를 낀 신세로 전락한 개성공단은 소생할 가능성이 더욱 희박해지고 있고, 한미 정상회담을 거쳐 대화 국면이 열릴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도 커다란 물음표가 생겼다.
맥스 선더-대잠 훈련-항모타격훈련
한미 양국은 5월 들어 세 가지 군사훈련을 이미 실시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미국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도 예고돼 있다.(☞ 관련 기사 : 미국 '탄도미사일 실험' 예고…다시 고조되는 긴장) 하나는 6일부터 시작된 한미 연합 대잠수함 훈련이다. 10일까지 실시되는 이 훈련은 서해 일대에서 "적 잠수함을 탐지, 추적, 타격"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로스앤젤레스(LA)급 핵추진 잠수함인 브리머톤(6천900t)과 이지스 구축함 2척, 대잠초계기(P-3C) 등이, 한국에서는 4500t급 구축함 등 수상함 6척과 214급 잠수함(1800t급), 대잠초계기(P-3C), 링스헬기 등이 참가하고 있다고 <연합뉴스>는 전했다. 이에 앞선 3일부터는 대규모 연합 공군훈련인 '맥스 선더'가 2주 일정으로 실시되고 있다.
▲ 지난 2008년 키리졸브 및 독수리훈련 차 부산항에 입항한 미 핵항모 니미츠호. 니미츠호는 길이 332.9m, 폭 76.8m, 만재 배수량 9만1487t의 규모로 최대속도가 30노트이며, 3000여명의 승조원과 70여기의 전투기를 탑재하고 있다. 6개월간 공해상에서 작전수행이 가능하다. ⓒ뉴시스 |
10일 전후로 동해와 남해에서 시작될 예정인 '항모타격훈련'도 주목을 끌고 있다. 이 훈련이 주목되는 이유는 미국의 핵추진 항공모함 '니미츠호'(9만7000t급)가 훈련 참가를 위해 4월 19일 샌디에이고를 출항, 부산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만약 미 항모전단이 한반도 인근 수역에 출현하게 되면 한반도 긴장의 파고도 다시 높아질 공산이 크다.
발끈하고 나선 북한
실제로 북한은 또다시 이러한 군사훈련에 발끈하고 나섰다.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5일 <조선중앙통신>과의 문답에서 개성공단 문제 해결과 전시 상황 해소를 위해서는 "우리에 대한 적대행위와 군사적 도발을 중지하는 조치부터 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키 리졸브' '독수리' 합동전쟁연습의 화약내가 채 가시기도 전에 5월 10일경에는 새로운 해상합동훈련을 구실로 핵탄을 적재한 '니미츠'호 항공모함 타격집단이 부산항에 들이닥치게 된다고 하며, 8월 강행될 보다 확대된 '을지 프리덤 가디언' 연습도 벌써 본격적인 준비단계에 진입하였다"며 군사훈련을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군사훈련이 계속되는 한, 개성공단 정상화는 물론이고 한반도의 전시 상태도 해소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또한 7일에는 북한 서남전선사령부가 '보도문'을 내고는 서해에서 실시 중인 한미 연합 대잠훈련을 맹비난하면서 "적들의 도발적인 포사격으로 우리측 영해에 단 한발의 포탄이라도 떨어지는 경우 즉시적인 반타격전에 진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더구나 한미 양국이 북한의 반타격전에 대응하고 나설 경우 "서해 5개섬부터 불바다로 타번지게 만들 것"이라고 위협했다.
정상과 비정상의 사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과 관련해 양국 정부는 "통상적이고 연례적이며 방어적인 훈련"이라는 점을 강조해왔다. 그런데 북한은 이러한 상황을 이제는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미 훈련이 실시될 때마다 북한은 초긴장 상태에 빠져들곤 하는데, 한국과 미국 역시 마찬가지 경험을 해보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반도 현상유지(status quo)를 둘러싼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근본적인 시각 차이가 내포되어 있다. 한미 양국은 한반도의 현 상태, 즉 정전체제를 정상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반면 이를 비정상적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북한은 극단적인 수사를 동원해 한미 양국도 정전체제가 비정상적인 상황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겠다는 욕심을 부리고 있다. 북한이 말하는 "핵 억제력"은 이를 위한 유력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러한 악순환이 확대 재생산될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외교적 해법이 마련되지 않는 한, 북한은 핵과 미사일 능력을 계속 강화할 것이고 '핵의 위력'에 의지해 위기 지수도 높이려고 할 것이다. 한미 양국도 대북 억제력을 강화한다며 합동군사훈련의 수위를 높이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악순환을 극복하지 못하면 한반도 위기는 상시화·구조화될 공산이 크다. 당연히 한국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노태우 정부로부터 배우자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군사훈련은 안보를 튼튼히 하고자 하는 취지를 담고 있다. 안보는 목적이고 군사훈련은 수단이다. 그런데 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동원한 수단이 그 목적인 안보 강화보다는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면, 군사훈련을 재검토해야 할 필요성은 커진다.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고 그 상대인 북한은 '핵의 위력'을 믿고 게임의 법칙을 바꾸려고 한다. 한미 양국이 '통상적'이라는 관성을 넘어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 1991년 노태우 정부와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결단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989년부터 시작된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당시 최대 쟁점은 대북 모의 핵공격이 포함된 '팀스피릿' 훈련 문제였다. 북한은 영구 중단이 어렵다면, 대화와 협상 분위기 조성 차원에서 일단 2∼3년간이라도 중단해달라고 요구했다. 한미 양국은 고심 끝에 중단 방침을 정하고 이를 북한에 전달했다. 이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과 남북기본합의서가 채택될 수 있었던 결정적 배경이었다.
이듬해 1월 7일 노태우 정부는 팀스피릿 중지 방침을 공식 발표했고, 북한도 같은 날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협정에 가입해 핵사찰을 받겠다고 선언했다. 한미 양국이 합동군사훈련 중단이라는 선제적 조치를 통해 북한의 획기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팀스피릿 훈련 중단으로 흥(興)한 남북관계는 이 훈련의 재개로 망(亡)하고 말았다. 대선을 앞두고 여당의 대선 후보진영이 남북관계를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이다. 안기부는 1992년 10월 6일 대규모 간첩단을 적발했다고 발표했고, 이틀 후인 10월 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에서 한국 측의 요청으로 팀스피릿 훈련 재개 방침을 발표했다. 대선을 불과 2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북한은 간청에 가까운 호소를 했지만, 한미 양국은 이를 일축하고 훈련 강행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분개한 북한은 1993년 3월 팀스피릿 훈련 재개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결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전쟁위기였던 1993∼1994년 위기는 이렇듯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관계가 선순환에서 악순환으로 돌변하면서 발생한 것이고 그 중심에는 바로 '팀스피릿'이 있었다. 이를 두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도날드 그레그는 이 훈련의 재개야말로 한반도 정책의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역지사지의 태도로 분위기 반전시켜야
올해로 60주년을 맞이한 정전체제의 모순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정상과 비정상, 현상유지와 현상변경을 둘러싼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 있다. 한미 군사훈련을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핵 문제가 자라날 수 있는 토양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만능의 보검"을 손에 넣었다고 여긴 북한은 '핵의 위력'에 의지해 정전체제를 뒤흔들려고 한다.
'불바다'를 입에 달고 있을 정도로 북한의 언사는 여전히 거북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수위가 낮아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또한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대에서 철수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개성공단과 관련해서도 완전 폐쇄라는 극단적 행동을 자제하고 있다. 아직은 희미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킬 수 있는 여지는 분명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한미 양국도 군사 훈련의 축소와 중단을 통해 반전을 꾀해야 한다. 최소한 핵항모의 한반도 투입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 군사 훈련을 재검토한다고 해서 한미동맹의 대북 억제력에 큰 차질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세계 최강이라고 일컬어지는 한미동맹에 이 정도의 여유는 충분히 있다.
때로는 군사훈련을 자제하는 것이 북한을 다루는 데 효과적이고 안보에도 도움이 된다. 20여 년 전 노태우-부시의 선제적 결단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오바마 대통령이 본받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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