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캐머론 총리가 이르면 올해 크리스마스 전후로 EU 탈퇴 여부를 직설적으로 묻는 국민투표 일정을 발표할 것이라는 현지 언론들의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23일 외교정책포럼 참석차 독일 베를린을 방문한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교장관은 공개적으로 EU에 대한 환멸감을 토로했다.
헤이그 장관은 "현재 영국 국민의 EU에 대한 환멸감이 사상 최고조에 달했다"면서 "EU가 회원국들의 의사결정부터 유럽 차원의 정책결정부터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헤이그 장관은 "EU에 지나치게 힘이 몰리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회원국들의 의회에 더 큰 권한을 돌려주지 않으면, EU는 '민주적으로 불안정'한 공동체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지난 19일 '은행동맹''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EU정상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강한 거부의 몸짓을 보이고 있다. ⓒAP=연합 |
헤이그 장관은 "이런 문제점들은 영국이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것이겠지만, 영국만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면서 "EU의 미래는 중앙집권적인 체제로 가는 게 아니라, 주변부에 있는 회원국들도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유연한 통합이 되는 것에 있다"고 주장했다.
헤이그 장관의 이런 발언은 최근 여론의 동향을 반영한 것이다. 영국이 EU에서 탈퇴하길 원한다는 응답은 지난 1년 새 꾸준히 늘어 51%를 기록했다. 지난해 41%에 비해 10% 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영국 집권 보수당 100여명의 의원들도 지난 5월 캐머런 총리에게 EU 탈퇴를 위한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등 정치권의 논란도 커지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의 압박과 여론이 고조되자 캐머론 총리는 "2015년 차기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EU와의 관계를 재설정하는 국민투표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국민투표를 촉구한 100명의 보수당 의원 중 한 명이 존 배런 의원은 "총리가 마침내 주목할 만한 발언을 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캐머론 총리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면서 "하지만 EU와 새로운 관계설정을 해야 하고, 그것에 대해 국민의 동의를 다시 얻어야 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영국, 유로존 중심으로 변하는 EU에 강한 반발
국민투표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보는 배경에 대해 캐머런 총리는 "유럽이 변해도 매우 빠르게 변하고 있다"면서 "특히 단일 통화를 쓰는 유로존은 단일한 경제정책을 채택하는 방향으로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캐머론 총리는 "영국은 유로존에 가입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변화는 결국 EU와 영국의 관계는 다시 설정해야 할 시기가 온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최근 <파이낸셜타임>는 지난주 EU정상회의에서 합의된 '은행동맹'이 EU를 분열시킬 역사적 사건이라는 진단을 했다. 은행동맹은 유로존 역내에 있는 모든 은행들을 감독하는 단일 기구를 유럽중앙은행(ECB)에 설치하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유로존이라는 통화동맹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회원국들이 더 많은 주권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고, 특히 금융과 관련된 것이기에 영국은 더욱 받아들일 수 없는 정책이다.
영국은 금융산업이 발달한 세계금융의 중심지로서 유로존에 가입할 경우 파운드화를 기초로 한 자국의 금융산업이 위축될 것으로 우려해 EU는 가입했어도 유로존은 가입하지 않은 상태다. 하지만 유로존 위기로 인해 EU회원국이면서 유로존 가입은 하지 않은 상태로 있다가는 '들러리 회원국'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영국의 처지가 잘 보여주고 있다.
이미 캐머런 총리는 "영국은 은행동맹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은행동맹이 구축되면 금융산업 비중이 높은 영국은 독자성을 잃고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은행동맹'과 2014~2020년까지 EU 예산 증액 등에 거부 입장을 밝힌 영국이 언제까지 EU에 남아있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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