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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영웅' 암스트롱, 그의 '추악한 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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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영웅' 암스트롱, 그의 '추악한 수법'

[분석] "도핑테스트 비웃는 조직적 약물복용 지금도 만연"

사상 최고의 사이클 선수이자 암을 이겨낸 인간승리로 감동을 준 랜스 암스트롱(41)의 위대한 업적이 '약물에 의한 승리'라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보고서가 지난 10일 '미국 반도핑 기구(USADA)'에 의해 발표된 이후 선수 개인 차원을 넘어, '프로선수들에 의한 기록경기'가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12일 <뉴욕타임스>는 USADA의 보고서를 근거로 작성한 기사를 통해, 선수들이 '도핑 테스트'를 피해온 상세한 수법과, 이런 수법들은 선수 개인이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 최고 기록이 약물의 힘에 의해 가능한 기록 단축이고, 이런 약물 복용이 조직적으로 만연해 있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개탄이 나올 수밖에 없다.

▲ 미국의 '사이클 영웅' 랜스 암스트롱이 지난 2005년 7월 24일 '투르 드 프랑스' 7연패를 달성한 후 미국 국기를 들고 기념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AP=연합

"도덕적 권위를 방패 삼은 부도덕한 이면"

그 와중에 암스트롱은 최근 미성년자 성폭행범으로 낙인찍힌 영국의 '국민MC' 지미 새빌처럼 '성역화된 인물의 이중적인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더 충격을 주고 있다.

암스트롱은 지난 1996년 사이클선수로서는 치명적인 고환암을 선고받았으나, 이후 오히려 초인적인 투병과 훈련으로 가장 화려한 기록을 남기면서 '인간 승리의 최고봉'으로 불려온 스포스 스타다.

특히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세계 최고 권위의 사이클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를 7년 연속 제패하면서 '사이클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암스트롱은 2005년 은퇴를 선언했다가 3년 뒤에 현역선수로 복귀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감동을 주는 명강사이자, 자선사업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다.

하지만 <가디언>은 "밝은 곳에서는 완벽하게 매력적이며 암을 이겨내 감동을 준 영웅적인 선수 암스트롱은, 국가적 영웅이자 자선사업가로서 도덕적 권위를 방패로 자신의 어두운 면을 방어해왔다"고 묘사했다.

약물로 달성한 '투르 드 프랑스' 7연패 기록도 취소

이제 USADA의 결정적인 보고서에 의해 그동안 암스토롱이 사이클선수로서 쌓은 업적은 모두 '없던 것'이 됐다. 지난 6월 USADA가 자신을 조사하기 시작하자 암스트롱은 본인의 권리를 침해당했다면서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고 이후 항소를 포기했다. USADA는 지난 8월 암스트롱이 선수 생활 동안 쌓은 모든 입상 기록을 삭제했다. 투르 드 프랑스 7회 연속 우승 기록도 취소됐으며, 사이클 경기 출전은 물론 코치 활동도 금지하는 영구제명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암스트롱의 약물복용 의혹은 오래전부터 있었는데 그동안 물증을 잡지 못한 것에서 보듯, '도핑 테스트'는 선수와 팀에 의해 조직적으로 우롱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USADA 스스로도 200여 페이지의 이번 보고서에서 "암스트롱과 그의 팀 동료들은 사이클 역사상 가장 교묘하고 전문적이며 성공적인 방법으로 금지 약물을 썼다"고 토로했다.

"도핑 테스트 자체를 무력화하는 지능범"

물증으로 제시된 26가지에 달하는 혈액검사와 금융거래 기록, 그리고 동료 선수 등 11명의 매우 구체적인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단순히 약물을 목용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도핑 테스트를 무력화하는 지능범들이었다.

<뉴욕타임스>는 "암스트롱과 팀동료들이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기 위해 쓴 수법들은 다른 많은 사이클 선수들에게도 쓰였으며, 당국은 지금도 이런 수법들을 쓰고 있는 선수들이 많은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도핑 테스트를 무력화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우선 당시에 도핑 테스트 항목에 없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1999년 암스트롱이 첫 우승한 '투르 드 프랑스' 대회 당시 암스트롱은 EPO(에리스로포이에틴)라는 혈액증폭 호르몬제를 주입했다. 신종 호르몬제로 아직 도핑테스트 항목에 EPO 자체가 없을 때였다.

이후 EPO가 도핑 테스트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지자 암스트롱과 팀 동료들은 자신들의 혈액을 주입하는 방법을 썼다. 역시 당시로는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들이 '초인'이 되는 방법

암스트롱이 속한 미국우정공사 팀 동료들은 '투르 드 프랑스' 대회 한 달 전 혈액을 뽑아 냉장보관하고 대회가 열리자 혈액을 재주입했다. 혈액을 재주입하면 혈액 총량과 적혈구 증가에 따른 일종의 증폭효과로 산소흡수력과 파워가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암스트롱의 사이클 동료인 조지 힌캐피는 "암스트롱이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혈액 투여를 받았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들은 EPO를 피하주사가 아니라 혈관주사로 조금씩 주기적으로 주입할 경우 도핑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이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EPO도 계속 주입했다. 대표적인 스태미너 강화제인 금지복용 약물 테스테스테론도 도핑 테스트가 실시되는 당일이나 많은 양을 사용하지 않으면 도핑 테스트에서 걸릴 가능성이 적다는 사실을 이용해 테스토스테론도 사용했다.

이런 수법들의 공통점은 개인이 알아낼 수 없고, 개인이 적절한 양을 주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전문가들의 협조와 팀의 조직적 관리가 요구된다.

프로선수들은 자신의 행방을 주기적으로 알리고, 불시에 도핑 테스트를 받는 규제를 받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코치들은 언제 불시 테스트가 있는지도 미리 알아내고, 도핑 테스트를 위해 검사관이 찾아올 때 자리를 비우도록 했다. 행방을 알리기만 하면 되고, 검사관이 찾아왔을 때 우연히 집에 없는 것은 규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현역 시절 암스트롱의 룸메이트였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 사이클 금메달리스트였으나 도핑 혐의로 금메달을 박탈당했던 테일러 해밀턴은 매우 구체적인 증언을 남겼다.

해밀턴은 "암스트롱은 더 뛰어난 경기력을 얻기 위해 약물에 의존했고 그 힘을 빌려 수차례 우승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해밀턴은 "1998년 암스트롱이 팀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우리들은 이미 약물을 복용하고 있었다"며 "암스트롱이 나와 룸메이트가 된 이후로는 혈액증폭제를 비롯한 각종 약물을 경기력 향상을 위해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지에 대해 은밀하게 의논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암스트롱 변호사 측은 이번 보고서가 나온 뒤에도 여전히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암스트롱은 자신이 설립한 자선재단(라이브스트롱)을 통해 암환자 돕기에 집중하겠다면서 논란 자체를 비껴가려는 입장을 밝혔다.

"대회 기간 중 이례적인 혈액 수치 변화"

그만큼 기존의 도핑 테스트는 직접적인 물증을 제시하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USADA가 제시한 증언과 테스트 결과에 대해 "보다 결정적인 증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던 국제사이클연맹(UCI)은 이번 보고서가 나오자 "검토 후 입장을 다시 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에는 USADA가 호주 스포츠연구소의 생리학 소장 크리스토 고어에게 의뢰한 분석 결과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부터 올해 4월까지 암스트롱의 혈액 샘플 38개를 분석한 고어의 평가는 직접적이지는 않아도 의학적 설득력을 가진 강력한 물증이 되고 있다.

이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09년과 2010년 투르 드 프랑스 대회 동안 채취한 암스트롱의 혈액샘플을 다른 기간과 비교했을 때 "혈액 구성 수치들이 자연적으로 이런 변화를 보일 확률은 1백만 분의 1 미만"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분석은 일반적인 도핑 테스트 방법에 속하지 않는다. 이런 방법이 아니고는 현재의 도핑 테스트는 언제나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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