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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아버지 욕한다고 심순애 마음이 돌아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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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일 아버지 욕한다고 심순애 마음이 돌아서나?"

[이철희 칼럼] 고리타분 민주당, 핵심을 놓치고 있다

다급해서일까. 박근혜 새누리당 의원이 김종인 전 의원을 다시 전면에 내세웠다. 경선 룰을 둘러싼 당내 갈등에서 보여준 불통의 모습 때문에 지지율이 빠진 박 의원이 꺼낸 카드가 김종인 전 의원,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경선 캠프에 포진시킨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의도는 한 가지다. 작년 연말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처럼 '소란을 통한 홍보(noise marketing)'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효과가 있을까?

합리적 선택이론에서 거의 태두처럼 떠받드는 학자가 앤서니 다운스(Anthony Downs)다. 그는 기념비적 서적 <민주주의의 경제적 이론>(An economic theory of democracy)에서, 정책이나 이념에서 차별성이 없으면 인간적 매력이나 능력 등의 요인이 중요한 잣대로 작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매우 통찰력 있는 지적이다. 이렇게 비유해 볼 수 있다. 이수일이 심순애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와 경쟁하려는 김중배로선 다이아몬드로 유혹하는 수밖에 없다. 요컨대 캐릭터에서 달리면 정책으로 가야 한다는 논리다.

박 의원이 김종인 전 의원을 앞장세워 얻고자 하는 효과는 경제민주화 아젠다(의제)를 선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실상은 물타기, 즉 무력화시키는 것이다. 똑같이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면 이 아젠다를 둘러싼 전선 형성은 어렵다. 누가 더 잘할 것인지를 두고 경쟁할 수는 있다. 그러나 찬반 구도가 아닌 우열 구도로 선명한 전선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결국 정책적 이념적 차별화 전선의 형성을 차단함으로써 박 의원이 누리는 캐릭터 우위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정책경쟁이 아니라 인물경쟁으로 승부한다는 전략이다.

박 의원의 전략이 먹히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꼭 필요하다. 경쟁자, 즉 민주당이나 야권의 후보들이 소심하거나 무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권이 김종인 전 의원이 들고 나온 경제민주화 아젠다에 적극 개입해 이를 쟁점화시키는 능력을 발휘한다면 역으로 박 의원 쪽이 당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보수 우위의 정치 지형상 시장보수나 반공보수가 경제민주화의 실질적 진전에 제동을 걸 것이기 때문이다. 우열 경쟁을 하다 보면 어느 지점, 예컨대 재벌개혁 등에서 찬반 구도로 전선이 바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이 더 저돌적이고 집요하게 또 기민하게 이 어젠더를 물고 늘어져야 한다.

서울대 폐지론으로 알려진 국립대 연합체제 구축방안도 민주당이 하기에 따라서 아젠다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이슈다. 하지만 민주당은 보수언론에 의해 서울대 폐지, 하향평준화 등으로 비판되자 곧바로 꼬리를 내렸다. 며칠 뒤 서울대 폐지가 아니라 확대 구상을 내놨지만 이미 열기는 식은 뒤였다. 이는 정책을 완결성이나 합리주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데에서 비롯된 전략적 실책이다. 어떤 아젠다든 공론장에서 쟁점화되는 '정치화(politicization)'의 과정을 겪으면서 구체적인 정책으로 디자인되기 마련이다.

민생의 차원에서 다룬다면 국립대 문제도 얼마든지 사회경제적 이슈가 될 수 있다. 사교육이나 대학등록금 등 교육 문제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나. 부자들이 자신들과 가난한 사람 사이에 벽을 쌓기 위해 가장 효율적인 것이 교육 사다리를 없애는 것 아니던가. 따라서 보수가 예민하게 반응하면 할수록 야권은 공세적으로 대응하면서 쟁점화하고, 아젠다를 선도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맥없이 굴복하다니, 딱하기 짝이 없다. 이래선 정책을 통한 이슈, 특히 전선을 굵고 선명하게 형성할 사회경제적 구분 이슈(wedge issue)를 만들어낼 수 없다.

뒤쳐진 후보·진영에서 합리적으로 대응하면 남는 건 '예쁘게' 지는 것뿐이다. 정책을 합리의 영역에서만 다루려는 자세는 옳지 않다. 정책을 포함해 정치를 합리의 영역에 가두는 것부터가 보수의 핵심 프레임이다. 틈만 나면 재정 운운하면서 포퓰리즘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설사 흠결이나 약점이 있더라도 가치나 방향 등 대강(大綱)이 맞으면 주저 없이 밀고 가야 한다. 화력 등 힘에서 밀리는 쪽에선 일점 돌파를 해야 하는데, 일점을 선택할 때엔 논리가 필요하지만 돌파는 결기로 해야 한다.

민주당이 보기 드물게 정책적 리더십을 발휘한 것이 3+1 무상복지 시리즈다. 이 성공도 논리에서 앞섰기 때문이 아니다. 시대흐름을 탔기 때문이다. 2002년의 행정수도 이전 정책도 마찬가지다. 나름의 가치와 근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절대적 선은 아니었다. 그것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반대 이유도 충분했다. 그럼에도 그 정책들은 대중적 소구력을 발휘했다. 이런 점에서 정책은 대중적 열망에 부합하는 방향(direction)을 기준으로 판별·수용된다는 라비노위츠·맥도널드(Rabinowitz & Macdonald, 1989)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프레시안 자료사진

민주당의 새 지도부가 출범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도대체 제대로 된 정책전선 하나 못 만들고 있다. 이래선 누가 야권 단일후보로 뽑히더라도 이길 수 없다. 비박 주자 3인이 경선 보이콧까지 외치면서 아우성쳐도 김종인 전 의원의 한 마디에 묻혀버리는 미디어 환경이다. 이런 판에 야권의 경선을 일정이나 절차 따위의 룰 문제 또는 누가 나을까 하는 사람 문제로 차원을 낮춰버리면 정책이나 노선을 둘러싼 대여 대립 전선은 형성할 수 없다.

민주당이 지금 취하고 있는 모습은 철저하게 '반대'(anti) 스탠스다. 민주 대 반민주, 부패 대 반부패, 박근혜 대 반박근혜 따위다. '그것'에 반대한다는 건 있는데, 민주당의 '그것'은 없다. 새누리당의 민주주의가 부자 민주주의, 불평등 민주주의라면 민주당의 그것은 서민 민주주의, 평등 민주주의라는 식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어떻게 해서든 이 대안을 중심으로 쟁점을 만들어야 한다.

민주당 지도부의 행태는 한 마디로 고리타분하다. 한일 군사보호정보협정과 관련해 민주당은 총리 사퇴를 요구했다. 정부가 워낙 잘못한 일이라 이렇게 대응하는 것이 틀린 건 아니다. 그런데 문제는 으레 하던 그대로의 이런 요구나 대응 뿐이라는 사실이다. 국립대 문제나 경제민주화 이슈를 중심에 놓고 주 쟁점으로 삼아야지, 이런 것들에 무게 중심을 둘 때가 아니다. 이러면 전선이 흩어진다. 나아가 정부·여당이 뭔가를 하고, 그에 대해 민주당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반대 전략(anti strategy)으로는 절대로 집권할 수 없다. 이수일, 아니 그의 아버지가 얼마나 못난 인간인지를 설명해서 심순애의 마음을 돌리기보다는 김중배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지, 뭘 해줄 것인지를 가지고 해야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민주당이 하려는 일을 놓고 여야 간에 쟁점이 형성되었던 적은 극히 드물었다. 이번에 '본의 아니게' 민주당이 꺼내놓은 것을 놓고 쟁점이 형성되려 했는데, 민주당이 겁을 먹고 뒷걸음치고 말았다. 새누리당이 환영할 정도로 완전무결한 정책을 꺼내 놓을 게 아니라면 왜 피하는지 도대체 모르겠다. 오마바가 왜 동성결혼 문제를 이슈화하는지를 생각해 보면 좋겠다.

싸움이 벌어지면 양 진영이 결속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싸움을 두려워해선 안 된다. 또 하나 민주당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어떤 싸움을 벌일 것인지 하는 문제다. 정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유권자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리나 부패 같은 '냄비 이슈'를 놓고 싸우면 처음에는 흥미를 갖다가도 금방 시들해진다. 게다가 나쁜 일방이 뒤로 빠지고 새로운 사람이 당사자로 나섰는데도 다른 일방이 계속 핏대를 세우면 모양만 우스워진다. 따라서 이런 싸움에서라면 박근혜 의원이 얼마든지 피해 나갈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이 피하기 어려운 것이 양극화, 경제민주화, 복지, 노동 등 '온돌 이슈'다. 박근혜가 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 '내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줄 때에만, 즉 양자의 차이를 보여주는 사회경제적 이슈를 핵심 쟁점으로 만들어낼 때에만 비로소 서민 대중이 투표장에 나올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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