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이 지난 2010년 영화 <내가 본 나라> 제4부를 제작 완성했다며 공개한 예고 동영상에 담은 핵실험 장면. 이 장면이 실제인지 연출된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조선중앙TV=연합뉴스 |
1. 북한의 의도
그렇다면 북한은 왜 이와 같이 전례 없는 위기공세를 전개하고 있는가? 북한의 위기공세의 의도를 단순화하자면 결국 외교동기론과 정치동기론으로 대별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외교동기론에 입각할 때 북한의 위기공세는 대외상황이 중대하게 악화될 때 현상 복원 또는 협상의 진전을 위해 대미, 대남대결노선 또는 중국 등 대(對)동맹국 압박전략을 (병행) 추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정치동기론에 입각할 때 위기공세는 국내상황이 정권의 생존 내지 정당화를 위협하거나 경제난, 권력투쟁 및 지배체제 강화, 정권의 위신 제고 등을 위해 취하는 대외전략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북한은 역사적으로 대미, 대남 대결노선을 통해 정치적 정통성과 내부 결속을 기해왔기 때문에 정치동기론은 일정한 설명력을 지닌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위기공세가 국내정치적 문제의 해결 또는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 비교적 확실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핵심 동기이자 목표였느냐는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위기공세에 국내정치적 동기가 작용했고, 이를 뒷받침할 몇몇 정황증거가 포착된다고해서 그것이 곧 핵심 요인이었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북한이 선군정치의 주요 명분이나 경제난의 원인을 외부 환경에 돌리고 있는 것에서도 이 점을 엿볼 수 있다. 사실 선군정치나 경제난도 북한 대외정책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안'은 이미 '밖'이 작용한 '안'인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위기공세에 외교적 동기와 정치적 동기의 연계 또는 병존, 그리고 동시작용을 감안하더라도 주요 요인은 역시 외교적 동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최근 북한의 전방위적인 일련의 위기공세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북한이 차제에 한반도 안보지형을 새로 짜보겠다는 전략적 고려가 근저에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이를 위한 북미협상 재개와 한국으로부터의 대규모 지원 확보도 기대했을 것이다. 김정은 출범 1년을 맞는 올해는 북한정권 수립 65주년이자 정전협정 체결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때문에 정전협정을 폐기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여 김정은 체제의 안전을 담보해 놓겠다는 강한 의지가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제 더 이상 미국 등 외부세계로부터 안보와 경제지원을 받고 그 대가로 핵을 포기하는 방식의 비핵화 회담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핵문제 해결을 전반적인 핵군축 및 한반도평화 협상 차원에서 논의하고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은 이미 2013년 1월 담화를 발표하여 "앞으로 조선반도 비핵화를 논의하는 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말하자면 비핵화 회담은 평화협정이 이뤄져야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북한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핵보유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는 핵무력·경제 병진 노선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이에 앞서 3월 31일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핵무력을 양과 질 면에서 확대 강화할 것이라는 과업을 제시했다. 요컨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 걸쳐 새판을 짜겠다는 것이 북한의 기본적인 의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의 전례 없는 초강수의 위기공세 이면에는 군부의 신뢰 및 대내적 통제력의 확보와 같은 김정은 체제의 안정과 강화를 노린 국내정치적 동기도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북한의 의도가 대외전략이 아니라 국내정치에 무게를 두고 있었더라면, 장거리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국내정치적 목적을 위해 강도 높은 위기공세를 잇달아 전개해야만 했던 사정을 발견하거나 설명하기 어렵다. 북한으로서는 초대형 시위에도 무반응인 채 오히려 대응 태세와 압박을 강화하는 한미에 대해 만약 가만히 있는다면, 그것 자체가 북한의 위신에 큰 손상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한 국내정치적으로도 타격을 입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북한이 연이어 취한 위기공세의 핵심 동기는 대외협상전략 차원에서 전술한 바와 같은 목적 달성과 북한의 트레이드마크인 '벼랑끝 전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고 할 수 있다.
2. 문제의 구조와 전망
기본적으로 북한의 입장에서는 체제안전 보장과 북미국교정상화 등과 같은 미국으로부터의 '인정 획득'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않는 한, 앞으로도 미사일 발사, 핵 실험, 각종 위협적 언술과 무력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주목할 것은 북한이 2012년 12월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 최근까지 벌써 몇 달 동안 한반도의 긴장과 위기를 단계적으로 고조시켜 왔다는 점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체제의 안전과 발전을 보장하도록 미국과 남한의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코자 한 북한의 시도가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의미이다.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와 3차 핵실험과 같은 위기공세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북한이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북한은 더욱 다양한 협박과 도발행동으로 '노이즈마케팅'을 폈다.
물론 이와 같은 위기공세의 단계적 고조와 지속은 대내적으로나 대외적으로 북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국내적으로 재정 및 물자 충당 부담과 국제사회의 제재 강화와 국제 신인도 추락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북한으로서도 한미의 군사훈련이 종료되고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방문 결과가 나오는 5월 중순 경을 시점으로 출구를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 출구 모색 시점이 한국전 종전 60년이 되는 7월 말 이후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시점이든 회담재개 또는 경제지원 등과 같이 북한이 일정하게 손에 쥘 것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위기국면의 진정이 도래한다고 하더라도 추후 '협상-갈등-교착-위기공세'의 지루한 사이클을 또다시 반복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만약 현시점에서 출구마저 모색하지 못하고 북한의 핵보유국 인정 및 핵군축·한반도평화 협상 주장 대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제재조치 이행이 격돌한다면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다시 최고조를 향해 치달을 수 있다. 특히 북한이 강한 국제적 압박상황에 처하거나 지금까지의 협상패턴을 피로하고 지루하다고 느껴 협상의 틀을 크게 바꾸고자 시도할 경우는 상황은 더욱 심각하게 전개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북한은 지금까지의 위기공세에 비해 훨씬 격렬하고 한반도에 대규모 무력충돌을 가져올 수도 있는 행동을 감행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미국 등 국제사회의 북핵 해법과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의 핵심은 북한을 그와 같은 상황으로 몰지 않는 데 있다.
북한의 위기공세의 기저에 자리 잡고 있는 근원 요소를 제거하고 한반도와 동북아가 평화와 안정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미관계의 개선이 핵심이다. 북미관계의 개선이 없거나 병행되지 않고서는 북한의 위기공세를 막을만한 마땅한 정책 대안을 상정하기 어렵다. 또한 북미관계 악화와 남북관계 경색 구도 속에서는 한미관계 강화만으로는 한반도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더불어 북미관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이 정상국가화될 수 있도록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생존 보장을 미국 등 국제사회가 제공하지 않고서는 문제해결이 난망하다. 그러나 미국이 북미관계 개선에 대해 현실주의적 접근 외에 얼마나 절실한 문제해결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불명하다.
북한이 감행하는 위기공세의 표적(targets)과 청중(audiences)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예컨대 지난 4월 26일 한국 정부가 취한 개성공단 체류 남측 인원 전원 철수조치의 표적과 청중은 모두 북한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취한 개성공단 운영 잠정 중단의 표적은 남한이었지만, 그 주요 청중은 역시 미국이다. 북한이 염두에 두고 있는 위기공세의 청중이 다르다는 것은 공세의 목적(aims)이 다르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으로부터의 일정한 신호가 없는 상태에서 북한이 일방적으로 개성공단에서의 상황을 남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풀어가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 위기공세의 표적은 다양할 수 있지만 미국은 대부분 주요 청중으로 고려된다.
사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북미관계의 종속변수 내지 매개변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위기공세든 평화공세든 그 표적은 남한일 수 있지만 주요 청중은 어디까지나 미국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볼 때 한반도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 상황을 잠정적으로나 항구적으로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한미협력 강화와 남북접촉으로 북미관계 개선을 위해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 지점에서 한국의 역할은 하나의 독립변수가 될 수 있다. 그리하여 남북관계-북미관계-한미관계의 선순환 구도를 한국이 창의적으로 만들어내야 할 것이다. 이 선순환 구도가 중국 포위구도가 아니라 중국의 동참을 끌어낼 수 있는 동기와 유인을 지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구도를 만들어가는 한편, 향후 있을 수 있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3. 대응방안
현재 북한의 위기공세와 도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군사적 대응의지는 강력하다. 그런데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사건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한반도의 위기가 최고정책결정자들의 정책적 판단이나 결정에서만이 아니라 하위 수준의 돌출행동이나 과잉 대응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발생하고 격화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남북한의 긴장과 대립이 고조되는 상황에서의 하위 수준에서의 우발적 행동, 실수, 그리고 착오가 의도하지 않는 충돌로 비화되는 사태를 방지토록 해야 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여 정책결정 수준에서의 위기관리 방향과 대책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한국은 북한의 도발이 있을 경우에는 '선조치 후보고'를 윈칙으로 하며, 북한의 도발 양상에 따라 도발 원점은 물론이고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타격한다는 방침을 천명해 놓고 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은 북이 도발할 때 '정치적 고려' 없이 초전에 강력하게 대응하겠다는 결의로 어떠한 형태의 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북한의 도발을 억지하기 위해서 이와 같은 군통수권자의 확고한 의지가 중요하고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대응 및 억지전략'과 동시에 북한과 한·미의 '결기'가 부딪혀 위기상황이 더 이상 확대 또는 심각한 사태로 치닫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상황별·단계별 '출구전략'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해 대응 방침과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도발할 경우에 대비한 적절하고 통제가능한 보복과 우발적·비의도적 충돌 등 위기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구체적인 출구전략이 있어야 한다. 누가 뭐래도 위기 고조와 또 그 위기 폭발의 일차적이고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결국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기반 조성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북핵문제해결, 남북관계 진전, 한반도평화협정이라는 세 차원을 선후 관계설정 또는 분리 추진하기보다는, 세 바퀴를 동시에 구동시켜 해결을 모색하는 일종의 '삼륜전략'이 필요하다.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소장 이수훈)가 발행하는 <한반도포커스> 2013년 5·6월호(제23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번 호의 전체 주제는 '김정은 체제 공식 출범 1년 : 평가와 과제'입니다. * 원제 : 북한의 위기공세와 남북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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