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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노회찬·유시민, 통합진보당 나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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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정·노회찬·유시민, 통합진보당 나와라

[이철희 칼럼] "주인 없는 민주당, 안채를 노려라"

얼마 전에 노회찬 의원이 언론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말을 했다. "제대로 쇄신하지 못하면 진보정당 쪽 사람들도 민주당 안의 '왼쪽 방'을 쓰게 될까봐 걱정하는 거다." 통합진보당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싶다. 그런데 노 의원의 이 말은 진보의 재구성과 관련해서도 그 함의하는 바가 적지 않다.

통합진보당 구 당권파는 지독하게 버티고 있다.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의원직 사퇴는 이미 물 건너갔고, 당의 제명에 대해서도 완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6월 말로 예정된 당 대표 선출에서 다시 당권을 잡기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다. '조짐'은 '나중 일이 벌어지는 양상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그 이전 단계의 움직임이나 변화'를 말한다. 그 조짐에 비춰 볼 때 통합진보당의 쇄신, 노 의원이 언급한 수준의 쇄신은 힘들어 보인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생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통합진보당에 몸담고 있으나 '종북노선'이나 비민주적 행태에 동의하지 않는 인사나 정파들이 털고 나와 민주당에 들어가서 '왼쪽 방'을 쓰는 걸 생각해 볼 때다. 뭔가 변절의 뉘앙스나 굴욕의 아우라가 없지 않아 깔끔한 느낌은 아니지만 서생적 문제의식을 상인적 현실감각으로 푸는 것이 거의 유일한 해답이지 않나 싶다.

사실 통합진보당은 이미 진보정당의 성격보다 대중정당으로서의 그것이 더 강하다. 대중적 진보정당을 내걸었지만 지난 총선에서 보인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진보적 대중정당'이라 할 수 있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진보 아젠다를 총선의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통합진보당 후보들이 노동자 벨트에서 패배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통합진보당은 노동과도 불편한 관계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성을 약화시키고 대중성을 강화시키는 노선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우선 민주노동당이 국민참여당을 통합의 파트너로 인정한 것부터가 진보성보다는 대중성의 강화를 선택할 결과다. 국참당은 민주당과 노선이나 인물에서 별반 차이가 없는 정당이었다. 시니컬하게 보면 국참당은 유시민 전 의원을 따르는 친노 세력의 분파에 불과하다. 즉 '노무현 노선'을 따르고 있다는 말인데, 노무현 노선이 진보는 아니다. 민노당이 참여정부 시절 그렇게 비판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과 그 노선 아니었던가.

진보신당을 만들어 분당을 감행한 그룹이 다시 통합에 합류한 것도 따지고 보면 '우클릭'이다. 이는 진보성을 고수하면서 독자 살림을 차렸지만 갈수록 왜소해지는 결과를 얻은 것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 선택한 것이다. 그 성찰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진보성에서 대중성으로의 '터닝'(전환)에 다름 아니다. 진보신당 그룹이 통합진보당에 들어가서 민노당 그룹이 지향한 대중성을 적절히 견제하고, 당을 진보성 강화로 이끌지 못한 것이 그 증거다.

결국 통합진보당의 출범은 진보를 표면적으로 내걸었지만 내용적으로는 대중성 프레임에 동의하는 정파들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랬기에 총선에서 어떤 진보적 아젠다를 던질 것인지에 대한 고민보다 오직 교섭단체를 만들 의석을 확보하겠다는 것에만 집중했다. 정파들끼리 더 많은 파이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한 측면이 더 두드러졌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사라지고 '누가 얼마나 얻을 것인가'에 몰두한 결과 생겨난 것이 부정선거 논란이다.

애당초 정파의 관점에서 정당을 외피로 생각하고, 대중성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대중을 활용 대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기득권을 갖고 버티는 정당은 고사시키는 것이 낫다. 대중성을 내걸었으나 대중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로 더 이상 대중정당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졌다. 이런 판에 진보정당이 필요하다는 원론 때문에 지금의 통합진보당을 사수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지역구-단순다수제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진보가 독자정당이 아니라 주류정당의 정파로 존재하는 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통합진보당 심상정, 유시민, 조준호(오른쪽부터) 전 공동대표. ⓒ프레시안(최형락)

영국의 노동당이 1900년 창당한 후 자유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세를 키우고, 전쟁이란 계기를 통해 유력정당으로 성장해 마침내 1945년 총선에서 단독 집권한 경험을 맹신해서는 안 된다. 노동당이 자유당을 제쳤듯이 통합진보당이 민주당을 능가해 양대 정당의 하나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 막연한 기대다. 노동의 힘을 제도적으로 키워 사회적 역관계를 조정하고, 선거 시스템을 비례대표제로 바꾸지 않는 이상 이런 기대가 현실화되기엔 너무 장벽이 많고 높다.

독자정당으로 있으면서 주류정당과의 연대를 통해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거의 착각에 가깝다. 선거제도를 바꾸려면 민주당뿐만 아니라 새누리당도 유인이 있어야 한다. 실익도 없고, 그걸 강제하는 사회적 압박도 없는데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 선거제도를 비례대표제로 바꿀 가능성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당구도로는 답답한 현실을 개선할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는 게 냉정한 평가다.

이런 점에서 민주당 내의 진보블록을 강화해 민주당을 진보적 대중정당을 만드는 것도 유력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은 주인이 없고, 지향하는 정당모델도 없다. 기간 당원 몇 만 명이 결집하면 얼마든지 당직이나 공직 선출 과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민주당은 허약하다. 이번 당대표 선출에서도 모바일 투표에 의해 성패가 결정되지 않았나.

민주당을 혁신해 보수의 새누리당과 선명하게 차별되는 진보적 대중정당으로 만들어 집권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다. 그 다음 국가의 힘을 통해 사회변화를 도모하고, 그렇게 확보된 대중적 동력으로 선거제도를 바꾸는 것이 현실적인 경로다. 선거제도를 바꾸고, 진보정당의 독자적 존립을 뒷받침할 사회적 인프라의 구축하는 등이 선행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을 뛰어넘는 유력정당으로 성장하는 건 불가능하다.

이번 총선에서 보듯 양대 정당화의 흐름은 강해지고 있다. 총선 결과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차지한 의석이 전체 300석 중 279석이었다. 18대 총선의 경우 양당이 차지한 의석이 전체 299석 중 234석이었다. 앞으로도 민주당이 진보성향을 강화하면 할수록, 그럼으로써 민주당과 새누리당 간의 대치전선이 예각화되면 될수록 통합진보당의 입지는 계속 줄어들 것이다.

통합진보당이 대중적 진보정당으로 기능하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 내 쇄신파가 다시 별도 정당을 건설하는 것도 무의미하다. 이는 이미 2008년의 경험이 충분히 설명하는 바다. 따라서 남은 방법은 야권의 제2차 통합이다. 통합진보당 쇄신파, 민주통합당 출범시 참여하지 않은 세력, 예컨대 녹색당이나 청년당 또는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제2차 통합을 이뤄내는 것이다.

이것은 작년 연말의 통합처럼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이 과정에 개입할 필요도 없다. 예정된 정치일정에 차질을 빚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 일정은 8월 즈음 시작하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경선에 노회찬이나 심삼성, 유시민 등이 참여하는 것도 역동성 있는 경선, 정책을 놓고 경쟁하는 경선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과정에 안철수 원장 그룹이 참여한다면 더 좋은 일이다. 이렇게 되면 '왼쪽 방'이 아니라 안채를 차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철수의 책 <경영의 원칙>을 보면 스톡데일 패러독스(stockdale paradox)를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스톡데일은 베트남 전쟁 때 포로로 잡힌 미국 장성이다. 전쟁이 끝나고 포로들을 교환할 때 생각보다 많은 미군 포로들이 생존해 있었다. 스톡데일이 미군 포로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고, 베트남군과 협의를 잘해서 전쟁 끝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을 살아남게 했다고 한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낙관주의자들은 다 죽고 현실주의자들만 살아남았다."

그 이유는 이렇다. 낙관주자들은 전쟁이 빨리 끝날 것이라고 믿고, 이번 크리스마스에 나가겠지, 부활절이 되면 나가겠지 하고 기대하다가 여러 해 지나도 안 되니 실망해서 죽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들은 낙관주의자처럼 전쟁이 끝날 것이란 소망을 가졌지만 현실을 냉정하게 보고 실망하지 않았기에 살아남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진보에 대한 믿음과 더불어 현실에 대한 냉철한 인식이다. 대선 승리와 진보의 재구성, 모두 현실주의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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