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제를 맡은 김승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은 "민주노총, 전농 등 대중조직의 입장에서 보면 진보진영 내 좌우세력의 연합이 (구) 민노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근거"였다며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2008년 이후에는 배타적 지지 근거가 사라졌는데도 조직 내 다수의 논리로 유효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고 지적했다.
김 부소장은 울산, 창원 등 '노동벨트'에서의 참패 원인으로 진보정당의 분열과 반목, 그리고 "민노당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결정하고 통합진보당을 창당하는 순간, 민주노총은 진보정치의 주변부로 밀려났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노동중심성의 약화가 아니라 사실은 노동의 분열이 참패의 원인"이라며 4.11 총선의 교훈을 들어 "야권연대라는 전술적 유연함이 진보진영 내부로 확장되면 다시 과거와 같은 통합된 진보정치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며, 민주노총 내부의 조직적 분열도 극복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부소장은 한편으로 민주노총 자체의 문제를 제기하며 "민주노총 조합원의 2%가 정당에 참여하는 구조는 당과 민주노총의 관계가 대중적이기보다는 활동가와 간부를 매개로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이유로 정당의 분열이 민주노총 내부의 분열을 야기했다. 민노당이 정파연합의 산물인 것처럼, 민노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도 민주노총 내 정파연합의 산물"이라며 이같은 상층부 위주의 구조는 패배의 원인인 '분열'과 무관치 않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세력으로만 접근할 경우 10%에 머무는 대공장 정규직 조합원이라는 범주에 갇힐 가능성이 존재한다"며 "가치 측면에서 노동중심성은, 노동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대표되는 소위 99%의 요구를 중심에 둔다는 의미"라는 지적도 내놓았다. 그는 "조직된 노동의 지분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미조직, 비정규직 등 기층민중의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새로나기 연속토론회에서 박원석 새로나기특위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통합진보당, 노동자 중심 기풍 만들어야"
김 부소장의 발제에 이어 토론이 이어졌다. 통합진보당 내에서 '노동'이 실종됐다는 날카로운 비판이 제기됐다. 한 패널은 "13명의 국회의원 중 환노위에 1순위로 가겠다는 분이 아무도 없다"며 "있을 수 없는 해프닝이다. 노동 관련 우경화된 모습이 목도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호규 전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당이) 선거 공학적으로 접근하거나 탈정치적, 중립적 태도를 취하는 것이 아니라 계급적 입장과 가치를 중심에 두어야 한다"며 비교적 강경한 입장을 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노동자들이 이름만 당원이 아니라 당의 주체적이고 책임있는 구성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조직의 체계를 구성하고 당의 문화와 기풍을 만들어야 한다"며 "전제 조건으로 당원 숫자에서 노동자 당원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부위원장은 "노동 중심성이라는 말이 조합주의적 이해관계를 정당화시키거나 조합 상층 인사들의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것으로 왜곡된 것"이라며 "(이는) 평범한 노동자 당원들을 정치의 구경꾼, 노조 출신 인사를 지지하는 박수부대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했다. '노동 중심성' 원칙 자체보다는 그 원칙이 왜곡된 상황이 문제라는 인식이다.
이상호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와는 조금 다른 입장에서 "(당의) 민주노총 중심성을 단호히 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위원은 "당과 노조의 '양 날개론'을 얘기했지만 그 날개들은 다 부러졌다"면서 "2004년 의회진출 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는 조합원이 당내 다수가 되어 민주노총의 요구를 실현하는 정당으로 진보정당의 역할이 축소됐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노동조합이 노사관계, 노정관계에서 풀기 힘든 문제를 '대리기구'인 진보정당을 통해 해결하려는 도구주의적 발상에 머물렀다"며 진보정당이 노동조합의 '고충처리기관'이 돼버렸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 위원은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의석을 얻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후보가 되기 위해 새누리당과 똑같은 작태를 보였다"며 "'울산연합의 오만함이 패배를 불렀다'는 말과 '창원은 민주노조운동 내 평등파와 자주파 싸움으로 인해 말아먹었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도 혁신 필요…통합진보당과 공범자"
통합진보당 뿐 아니라 민주노총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진보정치에서 노동중심성 복원은 조직노동, 즉 민주노총이 혁신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며 "민주노총과 통합진보당은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서 거의 공범 수준의 잘못을 해 왔다"고 매섭게 비판했다.
나아가 이 소장은 "비정규직 노동자들, 특히 기륭전자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등 투쟁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통합진보당을 많이 탈당했다. 마음이 떠났다"며 "통합진보당이나 진보신당을 수리해서 쓸 수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중심의 대중정당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은 실질적인 재창당 수준으로 가야 노동정치의 복원이 가능하지, 추상적 담론 수준에서 비정규 노동과 연동한 진보정치의 역할을 말하는 것은 구두선으로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였던 조성주 전 청년유니온 팀장은 "조직(노동) 차원의 노동정치 재구성·복원보다는 미조직 차원에서 노동 가치의 확장을 얘기해보고 싶다"며 "당에서 노동 중심성이라는 단어는 상당히 오염돼 있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통합진보당의 경우 당내 정파 등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가치 확장을 막아선 비겁한 모습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라며 "청년유니온도 당초 당 노동위원회에 제출된 기획이지만 거부당했다. 민노당 시절부터 당의 책임있는 인사가 청년유니온과 만난 적이 단 한번도 없다"고 비판했다.
▲'통합진보당과 노동정치'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진보정치의 노동 중심성 회복에 대한 열띤 논의가 이어졌다. ⓒ뉴시스 |
'노동 중심 신 진보정당'에 반론도…"통진당이 유일 대안"
반면 양성윤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현재 통합진보당 사태로 빚어진 진보정치의 위기에 대한 책임이 민주노총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양 부위원장은 "민주노총이 자유로울 수 없고,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면서도 "민노당 분당, 통합, 현 사태에 이르는 과정 속에 민주노총은 없었다"고 말했다.
양 부위원장은 "노동 중심성에 기초한 진정한 진보정당이 현재 통합진보당은 아니다"라면서 앞서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조건부 철회한 점을 상기시켰다. 그는 민주노총의 '제2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을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다.
노항래 전 통합진보당 정책위의장은 앞서 제기된 문제의식들에 공감하며 이를 '뼈에 새겨야' 한다면서도, 이남신 소장의 '새로운 노동중심 정당' 주장에 대해서는 "통합진보당 외에 다른 어떤 대안이 또 있는가? 위기를 털고 한국정치 혁신의 주체로서 통합진보당을 세워내는 것이 진보정치의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반박했다.
노 전 의장은 당과 노조의 '독립성'을 강조하며 "정당에 대해 노동조합의 의회 내 파견부대로 보는 인식이나 행태가 잔존한다. (이는) 정당의 독립적 활동상 등을 형성하는데 제약요소가 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또 노 전 의장은 "민노당, 진보신당, 통합진보당의 노동정책은 각각의 당이 표방하는 전체 정책패키지에서 비중이나 중요도가 결코 작지 않다"며 "과대대표됨으로써 다른 정책과제를 가리고, 여타 사회집단과의 관계를 제한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고도 했다. 그는 "지나치게 노동조합, 조직노동자 중심의 노동정책에 비중이 주어지거나, 노동조합의 정책을 단순히 대변하는데 그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타적 지지, 옳은가?"
한편 노 전 의장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에 대해 "진보정당 창당의 동력이었던 과거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이후 대중운동의 단결을 제약하고 정당의 독립적 발전의 장애로 작용하기도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는 배타적 지지가 "조합원 속의 다양한 정치적 견해에 대한 폭력적 해소" 또는 "비민주적 방침의 강제"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며 "진보정당 간 합리적이고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상호 위원도 "노동조합의 요구와 진보정당의 요구가 반드시 일치할 수는 없다"면서 "기존의 배타적 지지는 철회돼야 하며, 당과 노조의 관계는 서로의 성찰과 혁신과정을 거치면서 새로운 지향과 내용으로 재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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