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유럽 관료들이 스페인의 부실 은행들을 돕기 위해 스페인에 구제금융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구제금융 방식을 꺼리는 스페인 정부가 수용할 수 있도록 조건을 대폭 완화하기로 양보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스페인의 금융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 돈을 주는 쪽에서 제발 받아달라고 사정을 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현재 국제금융시장 일각에서는 스페인 정부로부터 190억 유로의 공적자금 투입을 약속받은 대형은행 방키아를 '2012년 리먼브라더스'로 보고 있다. 방키아의 파산을 막지 못하면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를 촉발한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같은 충격을 줄 진원지가 된다는 것이다.
▲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6일(현지시각) 금리를 동결하면서 유럽 지도자들이 행동에 나설 것을 압박했다. ⓒAP=연합 |
문제는 스페인 정부가 시장에서는 몇 조원 정도는 국채를 발행해 조달할 수는 있지만, 몇십 조원 이상의 자금 조달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공식 시인한 상태라는 점이다. 그런데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말 정권교체에 성공한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올해 초 EU와 긴축안에 합의했기 때문에, 또다시 구제금융을 받으면 요구받을 추가 긴축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이때문에 라호이 총리는 한사코 구제금융은 받지 않겠다면서, EU에서 마련한 구제기금에서 방키아 등 자국의 부실은행들에 대한 직접 지원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EU조약에는 구제기금을 직접 은행에 지원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EU는 스페인 은행권에 직접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은 배제하고, 일단 추가 긴축을 요구하거나 엄밀한 감시를 않겠다는 조건으로 스페인 정부 산하 은행 구제기금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종의 간접 구제금융 방식으로 의견을 모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스페인 우려에 독일 은행 7개 무더기 강등
하지만 이런 방식은 스페인의 부실 은행의 파산을 연기하는 시간벌기는 될 수 있어도 부동산 거품 붕괴까지 동반한 스페인의 경제위기를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스페인은 은행권 부실채권만 우리 돈으로 20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의 부실은 스페인뿐이 아니다. 5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가 독일의 주요은행만 7개를 포함해 오스트리아, 그리스의 은행 등 10개의 신용등급을 무더기로 강등한 것도 충격적이다. 무디스는 이번 강등 조치의 배경에 대해 스페인과 그리스 등 유로존 위기에 동유럽 위기 등 유럽 전역으로 재정위기가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독일 제2위 은행인 코메르츠방크 등 유럽에서 그나마 경제여건이 좋다는 독일의 은행들까지 강등된 것은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이 커지면서 스페인 국채를 대량으로 보유한 이 은행들로 피해가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ECB 총재 발언에 유럽 증시 급등했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6일 유럽 주요 증시는 2% 넘게 모처럼 급등했다. 하지만 이날 유럽중앙은행(ECB)의 발표에 따른 반짝 상승일 가능성이 높다. ECB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금리 수준인 현행 1.0%로 6개월째 동결했다. 하지만 이것 때문에 유럽 증시가 오른 건 아니다.
시장에서는 금리 인하를 원했기 때문에, 금리 동결 소식에는 실망하는 분위기로 하락했다가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기자회견을 하면서 반등했다. 드라기 총재가 유로존 위기에 대한 확고한 상황 인식과 이에 대한 대처 의지를 밝힌 것에 시장이 화답했다는 것이다.
드라기 총재는 "ECB가 모든 방면에 걸쳐 면밀히 상황전개를 주시하고 있으며 행동할 준비가 돼있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이 추가 금리 인하나 저금리 장기대출 프로그램 연장 등 금융 시장 부양 의지를 보인 것이라고 해석된 것이다.
하지만 ECB의 입장은 오히려 유럽 정치권에 짐을 떠넘긴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일부 회원국들의 압박에도 ECB가 6개월째 금리를 동결한 것이 이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현재 ECB의 입장은 유로존 위기는 정치적 결단의 문제이지, 중앙은행이 돈을 풀거나 재정위기에 몰린 정부의 국채 매입을 지원하는 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드라기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유럽 지도자들이 행동하지 않는데, 통화정책으로 공백을 메우려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통화정책에만 기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시각을 드러냈다.
따라서 ECB가 어떤 행동을 한다면, 그것은 유럽 지도자들이 정치적 합의에서 진전을 보이면, ECB가 이에 보조를 맞추는 식으로 나가겠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오는 17일 예정된 그리스의 2차총선, 그리고 이달말 EU정상회의 같은 유로존의 주요 이벤트를 지켜본 뒤 ECB가 행동에 나설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스페인 사태 끌면, 이탈리아 위기 본격화"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말이 나올 만큼 상황은 심각해지고 있다. 세계 최대 정치리스크 평가업체인 유라시아그룹의 유럽담담 분석가 무즈타바 라먼은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스페인 사태가 지속될수록 이탈리아의 위기도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그리스보다 경제규모가 5배가 큰 스페인이 구제금융으로 가고 있는 상황이라면, 스페인보다 더 큰 이탈리아도 빠져나갈 길이 없다는 우려가 더 커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리스 위기는 국제사회가 어떡해서든 수습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 때문에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함께 휩쓸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스페인의 위기에 국제사회가 속수무책인 상황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이탈리아의 위기도 다시 본격화될 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경고다. 라먼은 지난달말 "현재의 유로존 위기는 ECB만이 구할 수 있다"고 주장해 주목을 받은 분석가다.
사실 그리스의 경제규모가 적다고 하지만, 그리스에 대해 '방화벽'이 믿을 만한 것인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뉴욕타임스>는 아예 그리스가 7월 중에 파산할 가능성이 있다는 보도까지 했다. 그리스의 2차 총선 이후에 국가 위기를 헤쳐나갈 뚜렷한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등 상황이 나아지기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최악의 경우 공무원의 봉급과 연금은 물론 연료와 식량, 의약품 등 수입품 대금의 지급을 잠정 중단해야 하는 사태가 7월 중에 올 수 있다"면서 "그리스에서 정부가 세금을 걷는 것 자체가 힘들어 지고 있어 국고가 곧 바닥이 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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