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009년 4월 5일 중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자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규탄 의장성명에 찬성표를 던졌다. 이에 반발해 북한이 2차 핵실험을 강행하자 중국은 실질적인 대북 제재를 담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도 찬성했다. '이번에는 중국의 대북정책이 정말로 바뀌고 있다'는 기대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그러나 중국은 오히려 대북 관계 복원에 박차를 가했다. 2009년 7월 15일 중국 공산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외교정책에 관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외사영도소조 회의를 개최해 전쟁 방지, 한반도 안정 유지, 한반도 비핵화 순서로 우선순위를 거듭 확인했다.
중국의 국력 신장이 지정학적 손실 상쇄?
북한의 3차 핵실험이 초읽기에 들어간 2013년 2월 6일. 중국 관영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 영문판이 주목할 만한 사설을 내보냈다. "중국은 북한과의 다툼을 두려워 말라"는 심상치 않은 제목을 달고는 "북한이 기어코 3차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야 한다"며, "중국 정부는 대북지원이 줄어들게 될 것임을 분명히 해야 하고, 미리 북한 정부가 어떠한 환상도 갖지 못하도록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 지난 2월 12일 북한은 조선중앙TV를 통해 3차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사진은 평양역 앞에 설치된 전광판을 통해 성공 소식을 보고 있는 평양 시민들 모습 ⓒAP=연합뉴스 |
특히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으로 "과거 중소 분쟁과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올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이러한 우려는 중국의 국력에 대한 자신감이 결여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설령 북한이 무너지고 한국 주도의 통일이 이뤄져 "한반도 전체가 미국과 더 가까워지더라도, 강해지는 중국 국력을 고려할 때 한반도가 중국을 적대적으로 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도 했다.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상실되는 지정학적 손실을 입더라도 중국의 국력 신장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다는 취지를 담고 있었다.
중국이 지정학적 고려로 인해 북한의 핵무장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미국에서도 오래전부터 나왔었다. 미국 정부에서 30여 년간 군축 및 군비통제 전문가로 일했던 윌리엄 토베이(William Tobey)의 글은 이러한 시각을 잘 보여준다. 그는 3월 13일 자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 기고문을 통해 "북중관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로 간주하는 것은 냉전 시대의 유물"이라며, "공군력이 중시되고 중국-한국 무역이 대규모로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북한을 '완충 국가'로 여기는 개념은 낡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국의 기존 대북정책은 △한-미-일 3각 관계의 밀착 △미국 주도의 미사일방어체제(MD) 강화 △미국의 핵우산 강화 △주한미군의 전력 증강 △남북한 간의 국지전 충돌 및 정전협정 백지화 등의 결과를 낳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결과들은 중국의 안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북한의 3차 핵실험은 중국에 이러한 과거와 결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대북 제재에 나서는 듯했다. 중국 내 북한 은행에 대한 불법 거래 여부와 북한 식당에서의 불법 상품 유통 단속에 나서는가 하면 북중 국경 지역에서 세관 검열도 강화했다. 그러자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은 중국의 대북정책이 변하고 있다며, 중국의 대북 압박과 제재가 강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북한의 '중국 결박하기'
그러나 북한은 호락호락 당하지 않으려고 작심한 듯하다. 필자의 추측이지만, 북한이 2월 들어 정전협정 백지화 선언, 전시 태세 선언, 제1호 전투근무태세 발령 등을 통해 급격히 전쟁 위기를 고조시킨 데에는 중국을 겨냥한 노림수도 있었다. 전쟁 위기 고조를 통해 중국이 가장 우려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일종의 '결박론'인 셈이다.
이러한 추측의 근거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북한이 중국의 우선순위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반도 정책은 "전쟁도, 불안정도 안 되고, 핵무기도 없는"(不战、不乱、无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골자이다. 이 가운데 단연 우선순위는 전쟁 방지이다. 그다음이 바로 북한의 안정 유지이며, 비핵화는 마지막이다. 이와 관련해 베이징 소재 국제위기감시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 동북아 프로젝트 소장을 맡고 있는 스테파니 알브란트(Stephanie Kleine-Ahlbrandt)는 "중국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 수량이 적고 동북아 군비경쟁이나 미국의 군비 증강을 야기하지 않는다면 핵보유국 북한과 더불어 살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발 전쟁 위기는 바로 이 점을 겨냥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즉, 언제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질 수 있다는 것을 중국에게 보여줌으로써 중국이 미국 주도의 대북 제재와 압박에 동참하는 것을 견제하고 북한의 핵무장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한반도 전쟁 위기가 급격히 고조되자 북한에 대한 비난과 압박의 수위를 낮추면서 상황 관리와 대화 재개 분위기 조성에 주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한국전쟁 당시에는 경제발전을 희생하면서까지 북한의 남침을 지지하고 38선이 뚫리자 북한 구원에 나섰지만,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최우선시 하는 오늘날에는 한반도 전쟁 발발 자체가 중국 경제성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다.
또 한 가지는 북한이 마오쩌둥(毛澤東)이 1950~60년대 미-소간의 냉전을 이용해 중국의 입지를 다지려고 했던 것을 염두에 두고 전쟁 위기를 고조시켰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은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며 대만 해협 위기를 조장했다. 당연히 중국의 동맹국이었던 소련은 미-중 전쟁에 휘말릴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소련은 중국의 핵개발을 도와 중국 자체적으로 핵 억제력을 갖게 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중국 핵무장 지원을 통해 미중 전쟁에 소련이 결박당하는 신세를 벗어나 보겠다는 계산이었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중국과 미국 사이의 경쟁 관계를 이용하려고 한다. 전쟁 위기 고조는 그 유력한 방법이다. 이를 통해 적대국이지만 한반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 미국은 물론이고 동맹국인 중국도 압박하는 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간주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미국-이스라엘 관계를 보면 북중관계가 보인다?
미국은 북핵 문제 해결의 열쇠를 중국이 쥐고 있다고 여기는 경향이 여전히 강하다. 그래서 줄곧 중국에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구하고 압박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중국의 보다 강력한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CSIS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협력의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한편 협력 거부 시 비용을 증대시킬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중국의 계산을 바꿔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미국이 중국의 안정을 해치거나 중국의 부상을 봉쇄하지 않는다는 점을 중국에 주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북한이 붕괴되어 한국 주도로 통일되더라고 북한에는 주한미군을 주둔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확실히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의 전략적 우려를 씻어내기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중국 전문가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윤순(Yun Sun) 연구위원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에 해군력을 증강하는 등 중국에 대한 봉쇄 수위를 높이고 있는 것에 대해 중국이 우려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미국을 돕고자 하는 동기가 더욱 위축되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북한 다음 타깃은 자신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에,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을 돕지 않을 것이고 중국에 비우호적인 해법도 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대다수 중국인들은 미국과 한국이 군사동맹의 유지와 강화를 위해 북한의 위협을 이용하고 있다고 본다"면서 한미동맹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지역화", "지구화"되어왔는데 "이는 미래의 한미동맹이 중국을 겨냥하지 않거나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명확한 암시를 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이 왜 자신의 안보 이익에 반하게 미국과 한국의 대북정책을 지원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의문이 중국 내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중국의 대북정책을 변화시키는 방법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이러한 방향으로 개선될 가능성도, 중국이 이를 믿고 대북정책을 변화시킬 가능성도 희박하다는 것이 윤순의 주장이다. "중국은 한미동맹과 공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고", 한미동맹이 중국과 무관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에서 "중국 정부가 대북정책을 바꿔야 할 어떠한 이유도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스타플레톤 로이(Stapleton Roy) 역시 "중국 정부는 북한의 모든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다"면서도 "중국은 북한에 영향력을 유지해 다른 강대국들이 우월한 위치를 점하지 못하도록 하는 데에 압도적인 안보 이익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 제국주의가 중국을 침략하는데 한반도를 발판으로 삼은 것이나 미국의 대중국 전초기지 확보를 저지하기 위해 한국전쟁 참전을 감행한 것에 대해 로이는 "중국인들은 이러한 역사를 잘 알고 있는데 미국인들 99.9퍼센트는 모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북중관계의 현실을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과 비교해보면, 중국의 대북정책은 결코 비논리적이지도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을 비롯한 많은 정책에 불만을 품고 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와 지원은 변함이 없다. 중국의 대북정책 역시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이 제대로 역할을 하려면
정리하자면, 미국은 미사일방어체제(MD)를 카드화해서 중국을 대북 제재에 동참시키려고 하고, 북한은 전쟁 위기 고조를 통해 중국을 결박시키려고 한다. 시진핑 시대의 키워드인 신형대국관계의 핵심 상대국인 미국도, 미우나 고우나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는 북한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중국으로서는 둘 사이에서 동적인 균형을 취하려고 한다. 유엔 안보리를 통한 대북 대응과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오가고 있는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는 중국 역할론이 품고 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자 근본적인 한계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중국 역할론도 재구성해야 한다. 기실 중국의 역할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상황은 대북 제재와 압박 모드가 아니다. 대화와 협상 모드에서 중국은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리고 이는 한국과의 공조체계를 이룰 때 더욱 효과적이었다. 그런데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손잡았던 두 나라는 이명박 정부 시기에는 서로 삿대질하는 사이로 돌변한 바 있다. 박근혜 정부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해야 한다. 중국과 손을 잡고 북한과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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