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도민들에게 강정마을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시작한 작가들의 편지 연재는 처음 조정 시인이 제안하고, '제주 팸플릿 작가들'이 참여하면서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안토니오 그람시가 20년 넘는 형을 받고 파시스트들의 감옥에 있을 때, 유럽의 수많은 지식인들이 구명운동에 나섰습니다. 로맹 롤랑이 지속적으로 만들어 배포한 팸플릿 역시 크게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제주 팸플릿 운동'은 여기에서 연대의 힘을 발견했습니다.
쓰는 일 외에 별로 잘하는 게 없는 시인과 소설가들은 편지를 쓰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언어로 세상을 물들이고 싶습니다.
서귀포 바람, 애월의 파도, 북촌의 눈물, 위미의 수평선, 쇠소깍의 고요를 생각하며, 두려움과 연민이 어룽진 손으로 제주도민들께 편지를 씁니다. <작가, 제주와 연애하다>입니다. 필자 주
자연 파괴는 전쟁보다 무섭고
전쟁은 모든 인간미를 송두리째 앗아가는 것이지요?
먼저 정한의 시가 강으로 바다로 이어지면서
<먼 바다>의, 눈물의 시인 박용래가 생각나요.
지금까지 고스란히 그 아름다움을 가진 시 전문을 실어 보겠어요.
볏가리 하나하나 걷힌
논두렁
남은 발자국에
뒹구는
우렁 껍질
수레바퀴로 끼는 살얼음
바닥에 지는 햇무리의
하관(下棺)
선상(線上)에서 운다
첫 기러기 떼.
-박용래, <하관> 전문
이 땅의 작은 풍경 하나에도 눈물이 흐르고
가슴으로 표현하지 못할 감동의 시가 태어나거늘,
그것이 우렁 껍질이든 기러기 떼이든 시인은 이리도 소중하지요.
바다를 드넓다고 아무렇게 해도 될까요?
삶의 터전이란 온전히 거기 있어야 하는 것,
또 평화를 읽어내는 일이란 전쟁이 오기 전 그것을 무소용하게 하는 일이겠지요?
전쟁 또는 파괴란,
수없는 시간이 소중한 시들을 전부 잃는 거라고 생각해요.
박용래 시인이나 이문구 선생이 계셨으면 많이 우셨을 겁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참혹한 기억, 섬뜩함으로요.
ⓒ프레시안(최형락) |
무례하게도 이 시를 강정 마을의 <하관>이란 시로 바꿔 생각해,
파도 하나하나를 털고 따개비처럼 나온
물 밖
젖은 발자국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죽음의 손길들
바닥으로 지는
마지막 바다
라고 써 두고 중얼거려 봅니다.
토건족들의 4대강 오만과 편견은 또 다른 도전적 전쟁!
용서받지 못할 짓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자연과 사람이 울었던가요?
여주 남한강 바위 늪 구비는 이제 살신성인인지요?
인간의 행위로는 있어서는 안 되는 짓들을 저지르고 난 뒤 우리 모두는
함께 이 땅의 존엄함을 마친 주검의 모습입니다.
그 풍요롭던 노래의 갈대와 물푸레 물버들과,
아름다운 바람의 손짓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있는 그대로 두라는 존귀한 말들을 군홧발로 짓밟고
인기척에 놀란 작은 동물처럼 사방으로 튀는 생명의 경악이 무서워요.
여강의 휑한 모습, 시멘트로 잘 정비된 모습이요.
사라진 여강 길, 이것이 진정 후손에게 빌려 쓰고 있는 모습인가요?
구럼비는 상징적으로,
바다를 동그랗게 품고 있는 어머니라고 생각해요.
또는 하늘을 품고 있거나 하늘의 얘기가 내려와 있는 신성한 곳이라고요.
전운을 가득 안은 바다로는 어떻게든 어울리지 않아요.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경제적 이익을 손해 보고서라도 제주의 관광을 제한해야 할 판인데,
14만 평을 성스러운 곳에,
핵잠수함과 항모군단이 거들먹거리고,
거만한 제국의 군복들이 활보한다고 생각해 봐요.
생명이 절로 춤추는 바다를 죽음의 바다로 바꾸겠다는 자들은,
어머니의 자궁에 깨진 맥주병이나 우산을 꽂은 자들입니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의 투쟁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잡아가고 죽이고 또 죽이며!
구럼비라는 자궁에 거대한 악의 포탄을 퍼붓는 저들이죠.
울지 마세요!
상전벽해!
해군기지가 드넓은 바다임을 분명히 알게 될 겁니다.
자신들의 신선한 무덤이 될 것이란 사실을 후회할 겁니다.
명분도 없고 인간 말살의 전쟁기지 건설에 반대하며,
강정 마을을 지키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도 자원봉사하시는 수많은 분과
밤낮없이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모든 분에게 경의를 표해요.
선상에서 생명이 환한 첫 기러기 떼를 만날 때까지.
박구경 시인. 1996년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 <진료소가 있는 풍경>, <기차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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