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통합진보당의 몰락과 민주당이 해야 할 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통합진보당의 몰락과 민주당이 해야 할 일

[이철희 칼럼] 위기의 야권연대, 승리 위해선…

나만 그러진 않으리라. 보는 것도 힘들다. 그냥 덤덤히 보려 해도 화가 치밀고, 애써 이해하려 짜증이 난다. 일부 추태가 벌어져도 한편으론 안쓰럽더니 이젠 그런 마음조차 없다. 통합진보당의 12일 폭력사태는 아케론(비통의 강)을 지나 레테(망각의 강)를 넘어선 듯하다. 5.12 폭력사태는 이 땅의 진보정치사에 가장 치욕스런 날로 기억될 것이다.

왜 이렇게 됐는지에 대해 더 말하는 것은 군담이라 싫다. 말 해봤자 쇠귀에 경 읽기이고, 말 귀에 스치는 바람일 뿐이다. 이 '마이동풍'은 이백의 시에 나오는 말이다. 그의 시구 '동풍마이'에는 이백의 한탄이 들어있다. 아무리 좋은 시를 써도 세상의 속물들이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통합진보당 당권파들의 심정을 이백의 그것에 빗댈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가 마이동풍일까.

아니다. 가당치 않다. 이백이 시에서 슬퍼한 까닭은 단순히 세상이 자신들을 몰라준다는 데에 있지 않다. 그것은 힘 있거나 공을 쌓은 권력자들에 의해 세상이 농락당하는 것을 꼬집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기 때문이다. 이백이 규탄한 것은 당시 지배층의 어줍잖은 꼬락서니였는데, 그걸 지금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재현하고 있다. 이 시의 끝에 이백은 이렇게 말한다. '시인이란 원래 감투를 쓰자고 한 것이 아니니 산을 타고 들판을 거닐자.'

그들에게 권한다. 애당초 권력을 탐하고, 자리에 집착하고자 진보에 투신한 것이 아니지 않나. 지금은 물러나고, 썩는 밀알이 될 때다.

▲12일 통합진보당 중앙위원회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조준호 공동대표가 폭행당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합진보당의 혼란에서 우리가 생각할 것은 진보의 도덕성 운운이 아니다. 핵심은 야권의 재구성이다. 2004년 처음 원내로 진입한 진보정당이 보수독점의 정당체제에 끼친 충격은 적지 않았다. 그동안 가려졌던 노동 아젠다(의제) 등이 의회의 입법목록에 올랐다. 복지담론의 대중화에도 역할을 했고, 민주당이 '좌클릭'하도록 강제하는데도 기여했다.

그런 진보정당이 이번 총선에서 진보의 옷을 벗어던졌다. 대중적 진보정당이란 명분 아래 진보성을 버리는 우경화 노선을 택했다.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들에게 외면받은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 제 발등 찍고 스스로 무너지고 있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정당으로서의 성격과 원내정당으로서의 적실성을 잃은 상황이니 이제 민주당의 부담이 더 커졌다. 진보 쪽으로의 외연을 더 넓히는 한편 진보성향의 유권자들이 정치나 선거를 외면하지 않도록 잘 다독거리고 동원하는 책임은 이제 고스란히 민주당의 몫이다. 민주당으로선 밖으로 드러내긴 뭣하지만 분명 뜻밖에 주어진 기회다. 자칫 노동당에 치여 제3당으로 전락한 영국의 자유당 신세가 될 수도 있었는데, 이제 잘하면 미국 민주당처럼 노동의 지지를 받는 정당으로 발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이 기회를 살리고 못 살리고는 전적으로 민주당 하기에 달려 있다. 중도노선으로 보수독점의 정당체제에 안주하던 민주당으로 되돌아가는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는 것 같아 걱정이다.

야권의 재구성에서 중요한 부분이 야권연대다. 이번 19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간의 '민·진 연대'는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했다. 총선에서 통합진보당이 지역구 의석을 얻은 곳은 수도권과 호남이다. 노동자 밀집지역, 즉 노동 선거구가 아니다. 결국 민주당이 연대를 위해 전통적 텃밭의 일부를 양보한 셈이다. 솔직히 연대를 통해 야권의 의석이 늘어난 것은 거의 없다. 민·진연대가 기대했던 효과를 발휘하려면 노동자 벨트에서 통합진보당이 6~9석을 얻어 연대의 전체 의석이 150석에 근접했었어야 했다. 따라서 각기 다른 지기기반을 가진 정치세력이 힘을 합치는 연대가 아니라 큰 당이 자신의 지분을 양보하는 형태로 연대가 이뤄졌다.

연대 효과를 가늠할 때는 지역구 선거제도란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당선 여부, 의석만 따질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국의 지역구에 산재해 있는 노동자나 사회경제적 하층 등 진보적 유권자들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생기는 이득이 크기 때문이다. 민주당 후보가 야권 연대를 통해 단일후보로 나섬으로써 두 당 후보가 한꺼번에 나섰을 때에 비해 얼마나 많은 표를 더 얻었는지 정확하게 타산하기는 어렵다. 다만 1표라도 빼앗아갈 통합진보당 후보가 없어졌기 때문에 연대의 효과는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효과조차 기대에 못 미쳤다. 새누리당 대 민·진연대 간의 대결로 선거가 치러졌는데, 민·진연대가 지역구 투표에서는 16만여 표 더 얻었지만 정당 투표에서는 84만여 표 이겼다. 단순계산하면 지역구 선거에서는 양당의 지지가 다 더해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민·진연대는 사실상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총선에서의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민주당이 통합진보당과 연대를 한 이유는 대선 때문이다. 총선 득표에서 대선 구도를 유추해 보면, 민주당만으로는 새누리당을 이길 수 없다. 지역구 투표든 정당 투표든 민주당만으론 새누리당에게 110~135만 표 차이로 졌다. 때문에 통합진보당이 얻은 표는 민주당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데 대단히 절실하다. 대선이라는 더 큰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총선에서 많이 양보했는데, 민주당의 그 양보가 통합진보당의 몰락으로 헛수고가 될 지경에 처했다.

리얼미터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통합진보당의 현재 지지율은 5.1%에 불과하다. 4.11 총선에서 얻은 득표율은 10.3%이다. 정당 지지율과 선거 득표율을 단순 비교할 수 없어 반 토막이라고 말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이대로 가면 통합진보당의 대선 지지표는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위원장의 지지율은 오르고 있다. 여기에 이번 총선에서 자유선진당이 얻은 표(약 50~70만)는 대선에서 새누리당 후보에게 더해질 것이다. 따라서 통합진보당의 혼란으로 총선에 의해 구축된 보·혁 균형구도가 보수 우세로 바뀌었다고 하겠다. 민주당으로선 이런 헛장사가 없다. 허탈할 것이다. 그렇다고 통합진보당을 걷어차서는 안 된다.

▲통합진보당 조준호·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왼쪽부터)가 10일 전국운영위원회 회의 중 대화하고 있다. ⓒ프레시안(최형락)

이번의 선거부정 사태가 없었더라도 12월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에게 허용되는 운신의 폭은 대단히 좁을 수밖에 없다.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통합진보당이 진보성향의 유권자에게 신뢰를 많이 잃었다는 점이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자 벨트에서 패배한 것이 말해주는 함의다. 민주당으로선 자신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표를 얻고자 통합진보당과 연대하는 것이다. 통합진보당에게 그걸 기대하기 어렵다면 민주당이 통합진보당의 몫을 크게 인정해 줄 이유가 없다.

다른 하나는 총선과 대선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여야 간에 1:1 대결로 치러지는 양당제 효과는 총선에 비해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크게 나타난다. 지난 대선에서도 보듯, 제3당의 후보가 성패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적다. 대선과 같은 큰 싸움에서는 덩치가 큰 양당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는 성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성은 단순다수제가 어쩔 수 없이 강제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영향력이 줄어드는 대선인데다, 총선 결과에서 보듯 자신의 고유한 지지기반이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고, 최근 부정논란으로 다시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어 통합진보당에게 열릴 대선 공간은 거의 없어 보인다.

엄밀한 의미로 보면 이번 총선에서의 야권 연대는 민·진연대에 불과하다. 사실 야권 전체의 연대가 아니었다. 우선 안철수가 빠져 있었고, 진보신당이나 녹색당 등 진보를 표방한 다른 정당들도 배제됐다.

정치실체로서 안철수는 이미 개인이 아니다. 야권에서 가장 높은 지지율을 누리고 있고, 하나의 정당에 버금가는 확고한 지지기반을 갖고 있다. 따라서 작년 10월의 서울시장 재선거처럼 안철수와 연대해야 야권의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시킬 수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이 야권 연대의 파트너를 통합진보당에서 안철수로 바꾸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연대가 아니라 러닝메이트 방식으로 단일화하는 것도 좁은 프레임이다. 더 넓게 가야 한다. 또 배제가 아니라 포용으로 가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진보 아젠다를 꺼내 선거의 쟁점구도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역효과가 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마저도 민주당이 '본의 아니게' 이슈화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은 진보 아젠다를 제기하는 건 고사하고 이정희·윤원석 사퇴 등에서 보듯 계속 수세적으로 방어하기에 급급했다. 이런 판에 만약 녹색당이나 진보신당의 아젠다를 끌어안는 연대가 이뤄졌다면 총선의 흐름은 많이 달랐을 것이다. 이런 사실들이 말해주는 메시지 역시 분명하다. 민·진연대를 넘어 보다 넓고 광범위한 야권연대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침 '희망2013, 승리2012 원탁회의'가 정당 외 세력으로까지 야권연대의 틀을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적절하다. 야권연대는 민·진연대를 넘어 '반(反) MB·새누리당·박근혜'를 포괄하면서도 복지 등의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국민연대로 한 단계 성장해야 한다. 이것이 통합진보당의 혼란과 그로 인해 야권에게 닥친 위기를 야권이 슬기롭게 이겨내는 방법의 하나다. 이제 통합진보당에 겨눴던 눈총을 거두고, 시선을 돌려 좌우와 앞뒤를 두루 살필 때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