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호 통합진보당 공동대표가 위원장을 맡아 활동한 진상조사위의 보고서에는 온라인투표와 현장투표를 막론하고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사례가 다수 포함돼 있다.
"온라인투표, 중복IP 투표가 개별IP보다 많아"
전체 유효투표수의 85% 이상을 차지하는 온라인 투표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는 동일 IP에서의 중복투표가 가장 눈에 띈다.
보고서에는 총 3개의 IP 주소에서 투표한 내역이 자료로 첨부됐다. 21명이 투표한 것으로 나타난 한 IP에서는 3시간에 걸쳐 21번 투표한 정황이 발견됐다. 대상자들은 70대 여성 10명, 60대 여성 2명, 50대 여성 5명, 40대 여성 4명 등이었다.
앞서 당 내 일부에서는 '동일한 IP 주소에서 투표한 것이라 해도 부정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었다. 노동자인 조합원들이 하나의 사업장에서 쉬는 시간 등을 이용해 번갈아 투표했을 가능성이나 유·무선공유기를 사용하는 여러 대의 컴퓨터로 투표했을 경우 동일한 IP 주소가 남을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년퇴직 이상 나이의 여성 고령자 10여 명이 포함된 이 사례에 대해서는 그같은 설명조차 불가능하다.
이밖에도 다른 2건의 사례에서는 이틀에 걸쳐 각각 47명과 39명이 동일한 IP에서 투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39명의 투표가 이뤄진 동일 IP의 경우 심지어 투표자들의 지역이 서울, 인천, 대구, 경기, 전북 등으로 조사됐다. '조작'이 아니라면 여러 지역에 사는 선거권자들이 하나의 IP로 옹기종기 모여 투표한 셈이 된다.
진상조사위는 보고서에서 "특정 IP에서의 투표 집중화가 다수 발견됐다"면서 "각각의 투표자 투표시간에서 대리투표 및 공개투표 정황이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조사위는 "(동일IP에서의 투표가) 개별 IP 투표를 압도할 정도로 많다"고 결론내렸다. 전체 3만5000여 명의 온라인 투표자들 중 동일 IP에서 투표된 내역이 개별 IP에서 투표된 것보다 더 많다는 뜻이다.
"한 사람이 현장투표, 온라인투표 모두 했다…유령당원도 나와"
진상조사위는 또 "일부 현장에서 투표시스템에 기표하지 않은 현장투표가 나중 확인됐다"며 "이에 따라 온라인과의 2중 투표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이 현장투표도 하고 온라인 투표도 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진상조사위는 이같은 의심이 가는 대상의 수가 582표로 조사됐다고 덧붙였다. 비례경선 여성 1위인 윤금순 당선자와 2위 오옥만 후보의 표차는 불과 150여 표였다.
심지어 사례를 조사해 보니, 온라인 투표를 한 것으로 나타난 투표자들 중 일부는 당원이 아니거나 투표를 한 적이 없다는 답변을 한 경우도 있었다. 특정 IP에서 온라인 투표를 한 당원에 대한 사례조사결과, 대상 65명 중 7명은 당원이 아니었다. 또 12명은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답했고 '당원이 아니지만 투표했다'고 답한 경우도 1명 있었다. 투표했다고 답한 53명 중에서도 온라인 투표가 아닌 현장투표를 했다고 답한 사람도 11명이나 있었다.
"선관위 아닌 당직자가 선거시스템 수정 요청"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아닌 실무 부서의 당직자들이 선거관리 프로그램을 수정해 달라는 요구를 관리업체에 한 정황도 나타났다. 3월 16일 투표관리 시스템에는 투표 진행 현황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능이 추가됐는데, 이는 선관위의 지휘나 통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조직1실 관계자가 중앙당 실무자에게 요청한 내용이라는 것이다.
일부 시·도당 및 지역위원회에서도 중앙당 실무자를 거쳐 웹페이지 화면에 나타나는 색상 및 줄간격 등을 수정해 달라고 요청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이에 대해 "투표 도중 시스템 수정으로 안정성과 보안 위해(危害)를 야기했다"고 평가했다.
다만 진상조사위는 투표 결과 데이터의 조작이 이뤄졌는지와 관련해서는 프로그램 변경 내역을 기록하는 '형상관리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최초 버전 및 이후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는 체계가 존재하지 않아 과정상의 이상여부 판별이 불가하다"고 밝혔다.
전날 조준호 위원장은 "정말 그 (모니터링 기능 추가 및 색상 수정 등) 일만 했는지, 다른 일도 했는지 확인이 안 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밖에도 온라인 투표와 관련해 기권자의 표가 유효투표로 잘못 집계됐거나 선거관리 시스템의 사전 품질·오류·보안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등 다수의 부실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국회의원 당선 가능성이 높은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는 엄중한 사안임에도 "투표시스템의 중요성을 무시, 간과한 수의계약 진행"으로 "중대한 오류가 내재된, 완전치 못한 투표시스템이 개발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진상조사위는 이를 "납기 기일의 촉박성에 따른 무리한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투표자·관리자 서명 없는 투표에 '필체 흉내내기'도 등장"
현장투표에서도 부정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는 사례들이 적발됐다. 현장투표를 하기 전에는 총선 등 일반 선거와 동일하게 투표자 본인과 투표관리관이 선거인 명부에 서명을 하는 절차를 해야 한다. 그러나 투표자 또는 관리관의 서명이 빠져 있는데도 투표가 이루어졌고 심지어 유효투표로 처리된 사례가 발견된 것.
▲투표관리관의 서명이 없는 경우 |
▲투표자 본인의 서명이 없는 경우 (위3번째 칸) |
또 투표자 수와 투표용지 수가 불일치할 경우 해당 투표함 전체를 무효표로 처리해야 함에도 유효표로 처리한 경우도 있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관리관 서명이 대리로 이뤄졌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선거인 명부 또는 투·개표록에서 발견된 일부 서명을 보면 "관리자 서명을 볼펜으로 했다가 그 위에 덧칠하기 위해 다시 싸인펜으로 서명한 경우"가 나왔다. 관리자 서명의 필체를 모방해 위조하려 한 듯한 모습도 포착됐다.
▲볼펜으로 서명한 위에 싸인펜으로 덧칠한 경우 |
▲투표관리관의 서명(가장 오른쪽 줄)을 모방하려 한 듯한 모습 |
"동일인의 서명이라고 하기에는 그 글씨체가 현격하게 차이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밖에 자신의 이름을 틀리게 서명한 경우도 발견됐다. 조사위는 '최병섭'이라는 이름의 투표인이 '최명신'이라고 서명한 사례 역시 적발해냈다.
▲왼쪽 서류 가운데의 서명과 투표용지 하단 투표담당자란의 서명은 동일인의 것이나 필체 등이 완전히 다르다. |
진상조사위원으로 조사에 참여한 박무 통합진보당 영등포지역위원장은 "동일 IP에서 투표한 사람들을 다 범법자로 볼 수는 없다. 업체가 범법을 했는지도 불분명하다"면서도 "다만 (동일 IP에서의 투표가) 그렇게 집중적으로 이뤄졌다는 것이 조금 정상적이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이날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좋게 해석하면 한 장소에 모여서 계속 투표를 했다고 볼 수도 있다"면서도 "한 IP에서 주기적으로 2~3분 간격으로 이뤄지는 것은 썩…"이라고 말을 흐렸다. 그는 '좋게 해석'을 한다 해도 여러 사람이 한 대의 컴퓨터로 투표를 했다면 "공개 투표" 같은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했다.
박 위원장은 "참담한 마음"이라며 "어떻게 해서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조치를 빠른시일 내 합의해 조기수습해야 한다"고 당에 호소했다. 그는 "계파싸움으로 변질된다거나 하는 순간 공멸이 되고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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