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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문재인, '비호감 민주당'으론 못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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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매는 문재인, '비호감 민주당'으론 못 이긴다

[이철희 칼럼] '이해찬-박지원 합의' 논란과 '통합의 리더십'

문재인이 헤매고 있다. 19대 총선에서 문재인은 누가 뭐래도 야권의 대표선수였다. 대권주자 지지율에서 보더라도 그는 군계일학의 스타였다. 정치는 흐름과 구도인데, 이 점에서도 그는 명실상부한 리더였다.

17대 대선과 18대 총선을 통해 보수가 득세하던 흐름이 형성됐다. 그런 흐름이 반전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사실 문재인이란 이름 석 자가 정치적 실체로 유통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명박 대 노무현의 대립구도가 조성되면서 친노 세력이 야권의 주류로 등장했고, 그 역시 대권주자로 급부상했다.

지난 1월 15일의 대표 선출대회에서 친노세력은 당을 사실상 장악했다. 통합을 주도한 손학규는 '잊혀진 존재'로 전락했고 호남세를 비롯하 여타의 세력은 총선을 거치면서 눈에 띄게 약화됐다. 이런 상황 전개의 중심에 문재인이 있었다. 그는 통합을 추동해냈고 친노 세력의 부활도 주도했다. 그룹정서로도 노무현의 분신으로 대접받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지지율까지 높으니 야권의 실질적 리더는 분명 문재인이었다. 그가 자각했든 못했든 상관없이 문재인은 이와 같은 객관적 위상을 가지고 총선에 임했다.

그런 그가 총선 과정에서 보여준 리더십은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부산, 아니 사상이라는 지역구에 갇혀 야권의 실질적 리더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메시지도 약했고 의미 있는 쟁점 하나 만들지 못했다. 게다가 섣불리 '박근혜 대 문재인'의 프레임을 만들어 총선을 대선 전초전으로 위치지었다. 대선에서 박근혜를 지지하더라도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찍지 않겠다는 유권자층이 15~20% 정도 있었다. 그들이 새누리당이 아니라 야권으로 움직이도록 하려면 이번 총선의 성격을 심판선거로 만들었어야 했다. 그 심판의 성격도 민주 대 반민주가 아니라 부자 대 서민 프레임으로 설정했어야 했다.

문재인은 구도관리나 전선운영에서 유효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아직 정치에 뛰어든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너무 과도한 기대를 건 것부터가 부당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를 얼마 동안 했든 역할이 주어졌는데 그걸 감당해 내지 못했다면 그에 대한 비판을 피할 도리는 없다. 오롯이 감수해야 한다. 문재인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문재인이 경쟁력 있는 대선후보로 가기 위해 가장 확실한 길이다.

친노와 비노의 대립구도는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견 타당하다. 그럼 묻는다. 과연 친노는 실체가 없나? 친노가 실체를 갖고 있다면, 그 울타리 안에 있지 않는 사람이나 세력을 비노로 보는 건 당연하다. '친노'는 노무현과 가까웠던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칭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을 뜻한다. 더 따지면, 친노가 뜻하는 현재의 정치적 의미는 문재인이나 이해찬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당연히 하나의 정파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재인이 이해찬-박지원 연대에 대해 담합이 아니라 단합이라고 한다. 후보 간에 연대하고 힘을 모으는 것은 통상의 정치전략이다. 얼마든지 허용된다. 그러나 그 연대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규정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누구에게는 단합이 될 수도 있고 누구에겐 담합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문재인이 단합이라고 하는 건 틀린 것도,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이런 점은 지적하고 싶다. 단합을 거론하려면 그 전제로 먼저 갈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갈등이 있다면 갈등의 당사자가 있을 것이고, 그 당사자가 양보를 통해 이뤄내는 것이 무릇 단합이다. 친노가 당무나 공천에서 과도한 권한을 행사해 갈등이 불거진 것이라면 일단 뒤로 물러나는 양보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화합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모름지기 단합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물며 갈등이 당내에 국한되지 않고 당과 유권자 사이에도 있다면 더더욱 양보는 필수다.

설사 성격이 단합이라고 해도 그것이 내용 상 경쟁을 저해하는 것이라면 옳지 않다. 입찰이든 가격인상이든 주요 행위자들끼리 짜서 실질적 경쟁을 제한하는 것을 담합이라고 한다. 당대표 선거에 나가겠다던 사람이 당권 경쟁자의 제안을 받고 1년도 채 되기 전에 맡았던 원내대표를 다시 하겠다고 출마했다. 딱 나눠 먹기다. 나눠 먹기가 바로 담함 아니던가. 원내대표 선거가 초반에 다행스럽게도 친노 대 비노의 경쟁구도로 전개되지 않았는데 '이-박 합의'로 일거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친노에 대한 줄 세우기, 찬반구도로 바뀌었다. 친노 프레임을 애써 피해야 할 당사자들이 도리어 조장한다면 그 책임을 면할 길은 없어 보인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프레시안 자료사진

민주통합당이 왜 졌나? 힘 없고, 돈 없고, 기댈만한 작은 '백'조차 없는 사람들에게 투표할 동기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투표장에 나오게 했다면 박근혜가 10명 나왔더라도 민주통합당은 대승했을 것이다. 투표 동기를 주지 못한 것은 새누리당·박근혜와 차별되는 사회경제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대안을 제시했다고 강변한다면 보통사람들이 그걸 알 수 있게 손에 잡히도록 제시하는 데 실패했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제시했는데 유권자가 몰랐다면 결국 문제는 리더십이다. 좋은 리더십이 있어야 어떤 어젠다(의제)를 쟁점화하고 이를 능수능란하게 밀고갈 수 있다. 좋은 정책이 신뢰할만하게 보이게 하는 것도 리더십에 달려 있다. 좋은 리더십은 자질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선출되는지도 중요하다. 민주통합당은 일체의 계파나 그룹 차원의 개입 없는 자유롭고 치열한 경쟁을 통해 리더십이 창출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리더십이 만들어지고, 강한 리더십이 형성된다.

이-박 합의로 인해 이처럼 리더십 선출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합의한 대로 이기든 아니면 좌절하든 이미 리더십 경쟁이 왜곡돼 버렸다. 문재인은 당을 살릴 정말 좋은 기회를 차버린 셈이다. 그래서 다소 과하게 '헤매다'라는 표현까지 쓰는 것이다.

민주통합당만으로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통합진보당 후보뿐만 아니라 더 크게는 정당 밖에 있는 안철수와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 통합진보당 후보, 안철수가 야권의 틀 안에서 상생의 경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키는 민주통합당이 쥐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는 민주당 대표에게 있다. 대표는 정파의 관점이 아니라 정권교체의 관점에서 일체의 연고와 사감을 버리고 폭 넓게 관리해야 한다. 대선주자가 있는 정파에서 당대표가 나오는 것이 적절치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야 보수로 기울어 있는 대선구도를 바꿀 수 있다.

안철수의 존재는 이중적 효과를 갖는다. 하나는 민주통합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상승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박근혜의 지지율 상승을 제어하는 것이다. 안철수를 지지하는 그룹에는 만약 그가 없다면 박근헤를 지지할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안철수가 없어져버리면 그 과실은 박근혜가 따먹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민주통합당으로서도 안철수가 계속 버티고 있는 것이 나쁘지 않다.

물론 안철수의 존재 때문에 야권의 정당소속 후보들의 지지율이 보이지 않는 벽(glass ceiling)에 막히는 것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가 당장 없어지더라도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고스란히 야권으로 옮겨오지 않는다. 때문에 부득불 야권의 정당 후보들은 안철수와 파트너십을 갖고 동반경쟁을 할 수밖에 없다. 정당의 무능 때문에 안철수 현상이 빚어졌다는 점에서 안철수와의 경쟁을 통해 정당이나 정당 후보들이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다. 따라서 부담이 아니라 기회로 삼아야 한다.

이러한 통합의 리더십이 민주통합당의 차기 당대표에게 요구되는 것이다.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성, 새누리당과의 차별화를 더욱 선명하게 추진할 수 있는 능력도 역시 중요하다. 다만 야권의 대선국면 관리를 위해서는 통합적 리더십이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점만큼은 거듭 강조하고 싶다. 민주통합당이 작은 기득권에 집착해 성벽을 쌓다가 2002년의 고건 케이스처럼 제3의 후보를 맥없이 주저앉게 만드는 것은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 칭기즈칸의 말대로, 성을 쌓기보다는 길을 내야 승리할 수 있다.

선거 직후 실시한 한국리서치의 여론조사에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투표할 때 투표한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마음이 더 컸는지 아니면 다른 후보나 정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큰지를 물었다. '투표한 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마음이 컸다'는 응답이 70.5%, '다른 후보나 정당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마음이 더 컸다'는 29.5%로 나타났다. 대체로 지지심리가 저지심리보다 크게 작동한 선거였다는 것을 뜻한다.

이 조사가 말해주는 것은 분명하다. 식상한 인물 컨셉트(개념)나 구태의연한 반대정치만으로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말이다. 민주통합당이 눈높이와 정서를 보통사람에게 맞추는 선택을 할 때, 그 때 비로소 행운의 여신이 그나마 메마른 미소라도 지을 것이다. '비호감 민주당'으로는 단결해도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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