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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성결혼 합법화' 원동력은?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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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성결혼 합법화' 원동력은? 시위!

[정치경영연구소 유럽르포]<7> 바게트·와인 그리고 시위가 일상인 나라

'정치경영연구소의 유럽르포'는 우리 시민들로 하여금 유럽의 정치사회와 경제사회에 친밀감을 갖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기획된 연재물입니다.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우리 사회는 해방 후 지금까지 지나칠 정도로 미국 편향적인 모델을 지향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고 있는 시점에 즈음하여 우리 시민들도 이제 새로운 모델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건설이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것이 그 증거입니다.

경쟁과 성장 그리고 효율성의 가치만을 강요해온 과거의 프레임에서 벗어나 연대와 분배 그리고 형평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고자 하는 노력들이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치경영연구소는 우리 시민들이 이제 미국이 아닌 유럽사회를 유심히 관찰해보길 원합니다. 특히 유럽의 합의제 민주주의와 조정시장경제가 어떻게 그곳 시민들의 삶을 그토록 느긋하고 여유롭게 만들어주었는지 자세히 살펴보길 바랍니다.

'유럽르포'의 작성자들은 현재 유럽의 여러 대학원에 유학 중인 정치경영연구소의 객원 연구원들입니다. 투철한 문제의식으로 유럽을 배우러 간 한국의 젊은이들이 보고하는 생생한 현지의 일상 생활을 <프레시안>의 글을 통해 경험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유러피언 드림'을 같이 꾸길 염원합니다. 필자 주

"자유-평등-박애"

숨 막히고 어둑어둑한 파리의 겨울이 지났다. 파리의 겨울은 날씨 나쁘기로 유명한 노르망디에 못지않게 으스스하고 심지어 매섭기도 하다. 잔뜩 웅크린 몸을 다시 펼 수 있는 봄이 왔다. 북적북적한 상 제르망거리(Boulevard Saint-Germain)를 빠져나와 센(Seine)강을 건너 북쪽으로 조금 더 걷다 보면 과거 파리 코뮌(Paris Commune)이 본부로 사용하였던 파리 시청의 시원하고 웅장한 모습이 나타난다. 시청 앞면에는, 관광객들이 쉽게 놓칠 수 있는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박애)가 적혀 있다.

사실 나는 이 프랑스 국가 모토에 매료되어 유학을 결심하였다. 어렸을 때 읽었던 홍세화 씨의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책에서 소개하는 프랑스 사회의 '역동적인' 분위기와 '똘레랑스(tolérance)'가 있는 사회가 좋았다. '자유, 평등, 박애'를 외치며 연대와 평등을 위해 사람들이 길거리를 나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미국에 대한 악감정은 전혀 없지만, 주변이 온통 미국식 경제, 사회, 문화에 덮혀 있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고 '혁명의 나라' 프랑스에서 다른 사회, 경제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었다.

▲ 파리 시청. 둥근 시계 아래로 LIBERTÉ EGALITÉ FRATERNITÉ (자유, 평등, 박애) 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김든

프랑스의 일상 - 바게트, 와인, 그리고 '시위'?

며칠 전에도 파리 시내에서 대규모 시위(manifestation)가 있었다. 최근에 가장 큰 이슈인 '동성결혼' 합법화에 대한 시위였다. 이웃 나라 독일, 이탈리아, 영국에 비해 프랑스 노동자들이 길에서 보내는 시간은 월등히 많다. 평소에 소심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볼 때는 상상이 안 되지만, 과거 '혁명'과 '레지스탕스'의 기질이 억압을 받을 때마다 자동적으로 분출 되는 것인지 자신의 이익과 투쟁을 위해서 과감하게 길로 나선다.

대부분의 시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시위와는 조금 다르다. 공공기물을 파손하는 등 과격한 형태의 시위도 있지만, 경찰의 폭력적인 진압으로 옷이 찢기거나 피를 흘리는 사람을 찾기 어렵다. 오히려 '재미있기도' 하다. 최근 언론에서도 보도되었듯 루브르 박물관 직원들은 늘어나는 소매치기의 횡포에 대항해 일하기를 거부하며 '엄청난' 시위를 하기도 했다. 프랑스 사람, 특히 파리지앙/파리지엔(parisien)은 가끔 시위 때문에 가던 길을 돌아오는 일이 있어도, 이런 일은 늘 있었다는 듯이 무표정으로 다시 갈 길을 간다. 오히려 이러한 묵묵함과 시위에 대한 '뻔뻔함'이 귀엽기까지 하다.

한편, 일상화된 시위는 굳이 경제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는다. 각각의 계층과 단체의 다양한 목적으로 프랑스에서는 '시위=노조'라는 공식이 통용되지 않는다. 프랑스 전체 노조가입률이 8퍼센트인 것을 감안하면, 대부분의 시위가 성난 노조원에 의한 시위라고 생각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 지난 1월에 있었던 동성결혼 반대 시위. 내가 아는 뉴질랜드 친구는 "프랑스 사람들이 뭘 생각하는지 알고 싶으면 길거리로 나가야 해"라고 말한다. ⓒ김든

경영 위원회(Comité d'entreprise) -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다

프랑스에서는 50인 이상의 근로자가 있으면 의무적으로 '경영 위원회 (Comité d'entreprise)'를 설치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다. 시위가 심화한 형태의 투쟁으로 노사 간 갈등을 재조정할 수 있는 '대화의 창'을 형성한다면, 경영 위원회는 좀 더 차분하고 조직적인 분위기에서 당면한 노사문제를 의논하고 풀어갈 수 있는 기제로 작용한다.

최근에 인터뷰한 프랑스전력공사(EDF)의 경영 위원회에서 근로자 대표로 근무하고 있는 가이(Guy)는 "오직 프랑스에서만 있는, 프랑스의 독특한 문화"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파리정치대학에도 경영 위원회가 있다.

경영 위원회는 프랑스 사회에서 예전부터 작고 다양한 형태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며 존재했다. 제2차 대전에서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고 친독 비쉬의 체제 아래, 수많은 노동자가 독일과의 전쟁을 위해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독일 패망 이후 프랑스 재건에 참여한 레지스탕스는 '레지스탕스 국민위원회 강령(Programme du Conseil national de la Résistance)'에서 '노동자들의 경제 경영 참여(La participation des travailleurs à la direction de l'économie)'라는 모토를 앞세워 노동자의 존엄성과 모두를 위한 공정한 번영, 그리고 더욱 강력한 사회보장을 주창했다.

이는 1942년부터 독일을 위해 직간접적으로 착취당한 프랑스 노동자 약 470만 명과 처참한 노동환경에 맞서 시위하다 무참히 짓밟힌 탄광 노동자의 한을 뒤늦게나마 풀어주었다. 채택된 강령은 이후 집권한 좌파정권에 의해 1946년 5월 16일 경영 위원회 설립에 관련한 법이 통과되고 구체화되면서 오늘날에 이르렀다.

경영 위원회의 구성을 보면 회사 경영진 혹은 간부, 투표로 선출된 근로자 대표, 각종 노동조합에서 임명된 노동조합 대표가 있다. 위원회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는데, 전반적인 회사의 경영과 재정·노동 조직 혹은 편성·생산 기술 등의 분야에서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근로자의 휴가 조건·삶의 질 개선·웰빙·연대를 향상하기 위한 각종 직업교육 및 스포츠 문화 활동 등을 기획한다. 한편, 회사 측은 연 총 임금액의 최소 0.2퍼센트에 해당하는 금액을 경영 위원회의 예산으로 책정해야 하며 최대한도는 없없다. 프랑스 평균 경영 위원회 책정 자금은 1퍼센트 정도이다.

이러한 경영 위원회 조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근로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각종 장치를 엿볼 수 있다. 경영 위원회에서 일하게 되는 근로자 대표의 임기는 대개 4년으로, 회사의 내규에 따라 2년으로 짧게 임기를 마칠 수도 있다. 경영 위원회 회의는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달에 한 번 정도 열리는데, 여기에서 경영주는 회의 의장 역할을 맡는다. 그러나 안건에 대해 투표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몇몇 노동조합 단체에서 혹은 한 단체에서 대표로 임명된 노조 대표는 자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고용주와 마찬가지로 투표에는 참여할 수 없다. 또한, 고용주는 회의 외에도 경영 위원회 사무국에 경영과 관련한 자문을 구하거나, 회사 경영에 관련된 정보 즉, 근로 시간·내규 수정·집단 해고와 같은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생략하고 독단적으로 행동했을 때 고용주의 결정은 모두 무효로 돌아가며, 근로자에게 해당 내용이 적용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렇게 프랑스 경영 위원회는 고용주의 독단적인 행동과 횡포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해줄 뿐만 아니라, 문화와 스포츠 활동의 기회를 만들어 주어 근로자들이 노동으로부터 쉼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편, 이 많은 혜택을 노동자를 위해 기획하는 경영 위원회는 불투명한 경영과 과도한 지출로 비난을 받기도 한다. 최근 에어 프랑스 중앙 경영 위원회(큰 기업의 경우 중앙 경영 위원회가 있고, 그 아래로 여러 경영 위원회가 있다)는 과도한 지출이 문제가 돼 법원의 재산 관리를 받아야 할 처지가 됐다. 이렇게 규모가 큰 경영 위원회를 중심으로 조직의 불투명성, 과도한 낭비 등에 대해 비난받고 있다. 프랑스전력공사(EDF)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분명 수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는 하지만, 앞서 말한 문제점과 '프랑스 사람들의 성격에 비해' 느리게 진행되는 합의체계가 비난을 조성하고 사람들을 거리로 나가게 하는데 원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기업은 이러한 경영 위원회의 존재가 부담이 되지만, 강력한 법 덕에 유지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에서 법과 의무는 한 치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의무(obligatoire)'의 무서움은 프랑스 내에서 누구나 다 느끼고 있다.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근로자들

프랑스 경영 위원회가 다른 유럽 국가의 비슷한 제도와 차이점이 있다면, 노사갈등해결/중재 기제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의 문화 활동을 책임지고, 기획한다는 점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어려서부터 예술을 접해온 프랑스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한 예로, 프랑스 전역을 통틀어 가장 큰 경영 위원회인 CCAS (Caisse centrale d'action sociale)는 주로 프랑스전력공사와 프랑스가스공사(GDF)에서 종사하는 근로자를 위해 다양한 문화·여가·체육 활동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프랑스 인구의 1퍼센트를 차지하는 약 65만 명의 근로자와 가족, 은퇴자들이 문화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2010년 CCAS는 프랑스 전역에 있는 약 300여 개의 '바캉스 센터'를 통해 약 1700여 개의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이를 위해 100억 원(700만 유로)가량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프랑스 공연예술계에서도 경영 위원회는 큰손이다. 한꺼번에 많은 표를 구매하여 근로자들에게 값싼 가격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이 혜택을 받는 근로자들은 공연관람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 관람객'이다. 반대로,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은 경영 위원회가 기획하는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와 근로자들과 교류할 기회가 제공되는 것이다. 프랑스 노동부(Ministère du Travail)에 의하면 2010년 프랑스 평균 임금은 2082유로 (약 300만 원)가량 된다. 보통 근로자들은 한 달 임금이 1500유로(약 210만 원)가량 되는데, 파리 기준 한 달 월세가 600유로~1000유로라는 것을 고려하고 생활비를 제외하면, 문화활동을 하거나 짧은 휴가를 갔다 올 수 있는 여력이 없는 셈이다. 이러한 점에서 경영 위원회에서 제공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은 근로자들에게 일터 밖의 문화활동의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빵을 위해서만 사는 게 아니다(Ce n'est pas uniquement de pain que l'on vit)"

얼마 전 한 교수가 큐레이터로 활동하며 경영 위원회를 통해 각종 분야에서 일하는 노동자 '일터'에 대한 예술 활동 기획에 참여한 일화를 들려줬다.

어느 프랑스 도시의 미술관, 앞에서 보이지는 않지만 묵묵히 일하는 경비원과 환경미화원 등이 참여하는 영상을 만들었다. 영상은 근로자들이 한 방에 모여 술래잡기, 공놀이를 하는 등 아이들이 할 만한 게임을 하면서 즐거워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완성 후 미술관 전시실에 공개했다. 영상을 본 관람객들은 무관심의 영역에 있던 근로자들의 '예술성'을 보게 되었고, 반대로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예술' 활동에 큰 자부심을 느꼈을 뿐만 아니라, 일터에 대한 자긍심도 갖게 되었다.

파리 사람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빠르다. 지하철역 안에서 길을 가로막기라도 하면 인상을 찡그리며 지나가기 일쑤다. 하지만 이들에게서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축 늘어진 어깨와 일에 지쳐 피곤한 얼굴 등을 찾아볼 수 없다. 재정적으로 여유롭지 않아도 따뜻한 볕을 쬐며 공원에서 놀거나 미술관을 다니는 프랑스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거리에서 자신과 공동의 삶을 위해 투쟁하는 것과 경영 위원회처럼 근로자의 '노동의 질'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적 장치에 대한 생각하게 된다. 물론 프랑스의 모든 근로자가 행복하게 일하며, 예술과 체육활동을 누리며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적어도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고 노동에 억압받지 않는 '쉼'과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기제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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