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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과 곽노현을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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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과 곽노현을 다시 생각한다

[미래연 주간논평] 덮어져선 안 될 진실

날마다 각종 사고와 사건들이 터져 넘치다 보니 대한민국의 언론기관 종사자들로서는 이를 뒤쫓아 가기에만도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한 가지 사고 소식을 다른 사고 소식으로 덮고 넘어가는 풍조가 세상에 아무리 횡행해도, 덮지 말아야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천안함의 침몰 원인과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의 재판이 그렇다.

천안함 침몰은 공식적으로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1번 어뢰" 때문인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어떤 (<동아일보>가 조사했다니까 반드시 신빙할 수는 없는) 여론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52.7%, 중학생 81.4%, 고등학생 91.1%가 정부발표를 완전히 믿지는 못한다고 한다. 나도 완전히 믿지는 못하는 사람 중의 하나로, 그 이유는 주로 다음 세 가지다.

첫째, 이승헌/서재정 교수가 지적하고 양판석 박사와 정기영 교수가 확인했듯이, 소위 "1번 어뢰"라는 명칭으로 알려진 물체와 선체에서 수집한 흡착물질이 산화알루미늄이 아니라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이라는 점이다. 나는 이 분야의 전공자가 아니라 직접 자료를 검사할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이들 외부 연구자들과 국방부 사이의 논쟁 과정을 지켜본 결과 국방부의 변론이 전혀 근거가 없다는 정도는 분별할 능력이 있다 (관련기사 ☞ 「천안함 흡착물은 알루미늄황산염수화물, 폭발재가 아니다」, <한겨레21> 836호, 2010. 11. 19.).

둘째, 우현의 스크류 끝부분이 관성에 의해 휘었다는 설명은 말이 되지 않는다 (관련기사 ☞ 「가시지 않는 천안함 궁금증」). 회전력에 의해서 바닷물을 뒤로 밀어내며 배수량 1200톤짜리 군함을 추진할 때도 휘지 않는 스크류가 어떻게 역방향의 관성력에 의해 휠 수가 있다는 것일까? 스크류가 휜 원인은 틀림없이 다른 곳에 있어야 한다.

셋째, 여러 가지 조작과 은폐의 가능성이다. 합조단의 보고서가 과학적 사실 이외에 모종의 분위기 때문에 각색되었을 가능성은 이미 2010년 6월 23일 존 맥글린에 의해 포착된 바 있었다 (관련기사 ☞ "Politics in Command", Japan Focus). 이번에 이승헌 교수는 합조단 내부에서 데이터를 조작했을 가능성을 말했다. (관련기사 ☞ 「나꼼수, '천안함 모의폭발 데이터 조작 내부 증언'」). 그리고 서재정 교수는 제프리 베이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담당 보좌관의 회고록을 근거로, 이명박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이미 2010년 3월 31일에 전화통에 대고 북한에 의한 폭발을 사고 원인으로 언급했다고 밝혔다 (관련기사 ☞ 「나꼼수, "천안함 직후 MB, 오바마에 통화 '북책임'"」) 3월 31일이라면 함체 인양도 제대로 이뤄지기 전인데, 그때 벌써 북한 책임을 얘기하고 있었다는 것은 조사가 개시되기도 전부터 정치적으로 결론이 나와 있었다는 얘기밖에 안 된다.

다음으로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에 관한 항소심 결심 공판이 4월 3일에 있었다. 검찰은 1심 재판 때의 주장을 되풀이하면서 징역 4년을 구형했다고 한다. 박재영 변호인이 적확하게 짚었듯이(관련기사 ☞ 「후보자 매수? ... 곽노현, "이제 질린다"」) 검찰의 기소는 논리적으로 자체로 자가당착이므로 저절로 기각되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공직선거법 232조 1항은 1호에 사전매수죄, 2호에 사후매수죄를 규정하고 있는데, 검찰은 1호를 적용하지 못하고 2호를 적용해서 곽 교육감을 기소했다.

사전매수 혐의를 걸지 못했다는 사실은 검찰이 스스로 보기에도 사전에 어떤 모의나 묵계가 있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2호의 사후매수는 과연 사전에 모의나 묵계가 없이 범죄가 성립할 수 있는지를 따져보면 전혀 그럴 수가 없다. 박재영 변호인이 명석하게 지적했듯이, 사전에 묵계가 있지 않는 한, 돈이 건네진 2011년 2월-4월의 시기에 박명기 교수는 후보가 아니었기 때문에 "후보자 매수 행위"라는 것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오직 선거 국면에서 두 후보자 사이에 매수, 즉 사전매수가 있었을 때에만 사후매수라는 말이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다시 말해 232조 1항의 2호를 위반한 행위라면 필연적으로 1호도 위반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1호로 기소하지 못한 검찰이 2호로 기소했다는 것은 자가당착이라는 논리적인 귀결이 불가피하다.

천안함 사건과 곽노현 재판은 한국 사회가 정치적으로나 사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에 해당한다. 두 사례는 공히 섬세하지만 가냘퍼 보이는 진실이 조잡하지만 강력해 보이는 권력에 맞서는 형태를 띠고 있다. 섬세한 진실이 가냘퍼 보이는 까닭은 그 진실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이 충분히 많지 못하기 때문이다.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마저도 혹은 선거에서 불리할까봐 혹은 보수 언론이 지어낸 얘기에 속아넘어가서 진실의 편에 서서 확고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어쩌면 이 진실을 알아보는 사람이 실제로는 충분히 많은지도 모른다. 단지 각자 양심과 이성의 눈으로 보면 진실의 편린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으리라고 미리 포기하는 바람에, 결국 다수가 진실을 보면서도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겁을 집어먹고 말을 못하면서,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말을 안 할 거라는 핑계를 서로서로 대는 와중에, 침묵의 나선구조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다만 이런 비겁한 세태에 물들지 않은 청소년들은, 여론조사의 설문에 겁먹지 않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천진난만하게 대답했다고 보면 아귀가 잘 맞는다.

이런 점에서 천안함 사건의 진실과 곽노현 재판의 진실이 후세로 미뤄지지 않고 지금 또는 가까운 장래에 가려지느냐 여부는 한국 사회가 어떤 수준의 공동체인지를 가름하는 중요한 지표가 될 것이다. 이것이 가려지지 못한 채 두루뭉수리로 넘어가 버린다면, 앞으로도 한참 동안이나 한국에서는 권력이 진실을 짓누르는 일들이 개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자주 반복될 것이다. 개인들은 그렇게 당하면서도 남들이 어차피 편을 들어주지는 않으리라고 체념한 끝에, 불의에 굴종하는 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는 개똥철학에 빠져들 것이다.

반면에 이 두 사건의 진실을 우리 사회가 섬세하고도 명료하게 밝혀 낼 수 있다면, 여태까지 진창 속에 방치되고 있던 진실이라는 가치를 우리 공동체가 새삼스럽게 되찾아 귀하게 간직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진실은 본시 작고 가냘프고 연약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 치밀하게 꽉 차있다. 반면에 권력은 크고 거칠고 억세지만, 속은 엉성하게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한민족의 공동체는 여태까지 진실이 권력을 다스리는 구조를 형성해 본 적이 없다. 진실이 권력을 다스릴 수 있을 때에만 공권력이 인간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봉사하는 상태가 조성된다. 천안함과 곽노현의 사례를 우리 사회가 오로지 진실에만 초점을 맞춰 처리함으로써, 한민족 공동체가 인간적 삶의 형태로서 한 단계 높아지기를 바란다.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간논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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