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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총선 '끝내기 홈런'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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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불법사찰, 총선 '끝내기 홈런' 될까?

[이철희 칼럼] 민주당, '선거 승리'의 덫에 빠지지 말라

행운이다. 역전됐던 정당 지지율이 다시 뒤집히고, 정권심판론의 분위기가 달아오르지 않아 속 끓이던 민주통합당이다. 그런 차에 대형 호재가 터져 나왔으니 얼마나 반가우랴. 민간인 불법사찰 건이다. 그럼 이것이 과거 17대 총선에서의 탄핵역풍, 작년 서울시장 재선거에서의 내곡동 사저 건처럼 선거 판세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축구 용어인 크랙(crack)은 '혼자서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선수'를 뜻한다. 이에 빗대면, 성패를 결정짓는 하나의 대형 이슈를 크랙 이슈라 할 수 있다. 과연 불법사찰 건이 크랙 이슈일까?

2004년의 탄핵은 가히 메가톤급 태풍으로 선거에 밀어닥쳤다. 인물이나 정책 대결의 측면은 사라졌다. 오로지 탄핵 찬반, 탄핵세력 응징이라는 단일전선이 형성됐다. 그 덕분에 당시 열린우리당은 152석을 얻어 사상 처음으로 의회권력 교체에 성공했다. 그 이전 2000년 여당의 입장에다 호남과 충청이 힘을 합치는 이른바 DJP연합, 여기에 남북 정상회담 발표까지 최상의 조건에서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당시 새천년민주당은 졌다. 전체 273석 중에서 115석을 얻는데 그쳤다. 연정 파트너였던 자민련은 17석을 얻었다. 두 당의 의석을 합쳐도 132석으로 한나라당에게 1석 뒤지는 결과였다. 이에 비춰보면, 17대 총선에서 탄핵 역풍이 얼마나 강하게 불었는지는 능히 짐작할 수 있다.

2011년 10월 26일에 치러진 서울시장 재선거도 좋은 예다. 야권단일후보인 박원순은 안철수의 도움으로 절대 우세에서 출발했으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자 고전하기 시작했다. 원인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박원순 후보 측이 선거를 인물대결로 가져가 심판론이 희석된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한나라당이 강한 네거티브 공세로 상대의 강점(도덕성)을 흔들었기 때문이다. 지지율 격차가 오차범위 안으로 좁혀졌다. 그 때 마침 내곡동 사저 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반MB 정서에 기름을 붓는 효과를 낳았다. 안성맞춤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게다. 20~30대가 대거 투표장에 나왔고 승부는 이것으로 끝났다. 투표율은 재보궐 역사상 유례없이 48.6%에 달했고, 박원순이 7.2%포인트 차이로 낙승했다.

그런데 이 두 사례에서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 두 선거 모두 한 진영에 대한 '분노'에 기초해 치러졌지만, 다른 진영에 대한 '애정'도 확연했다는 점이다. 17대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새롭게 출발한 열린우리당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있었다. 한국갤럽 조사에 의하면, 2003년 10월 13.9% 대 26.9%로 크게 뒤지던 열린우리당은 2004년 3월 탄핵이 없던 상황에서도 26.7% 대 18.3%로 한나라당을 크게 앞서고 있었다. 그만큼 열린우리당이 새정치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켰다는 얘기다. 작년의 서울시장 재선거에서도 박원순은 안철수와 더불어 기성 정치의 대안으로 부각됐다. 9월 초 얻은 50%대의 지지율은 그가 대중들로부터 새 정치를 이끌 새 인물로 평가받았다는 얘기다.

2012년의 정치권에 대한 여론을 분석해 보면, 메시지는 간명하다. 여권에 대해서는 분노를, 야권에 대해서는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정당이 반응 안 할 수 없었다. 한나라당은 혁신을 택했다. 즉 새누리당으로 변신하면서 박근혜를 전면에 내세웠다. 야권은 통합으로 대응했다. 처음에는 민주통합당의 통합이 효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곧바로 새누리당의 혁신에게 밀렸다. 통합으로 정당 지지율 1위에 오른 민주통합당이 얼마 뒤 새누리당에게 다시 재역전 당한 것이다. 공천에 대한 평가에서도 새누리당이 더 잘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사실 혁신으로 불만정서를 털어낼 수 없다면 분노정서를 효율적으로 추동하는 것이 민주통합당으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불만 해소에도 소홀했고, 분노를 부추기지도 못했다.

이후 야권연대를 성사시켜 어느 정도 하락세를 저지하기는 했다. 하지만 대세를 틀어쥐고 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판에 민간인 불법사찰 건이 적시타로 터진 것이다. MB 대 반MB의 구도는 아무리 짜게 봐도 3:7의 구도다. 박근혜 대 문재인 또는 새누리당 대 야권 연대의 구도는 대체로 5:5의 구도다. 그렇다면 야권으로서는 MB 대 반MB의 구도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때문에 박근혜의 등장과 야권의 실책으로 실종된 반MB 전선을 복원하기 위해 그간 안간힘을 썼지만 여의치 않았다. 이제 민간인 불법사찰 건으로 그것이 가능해졌다.

▲민주통합당 'MB·새누리 심판위원회' 위원장인 박영선 의원(오른쪽 2번째)이 1일 오후 국회 당대표실에서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을 들어 보이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탄핵 역풍-열린우리당, 내곡동 사저 건-박원순의 경우처럼 폭발적인 위력을 발휘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우선 민주통합당이나 야권 연대가 2004년의 열린우리당이나 2011년의 박원순처럼 사랑을 받고 있지 못하다. 게다가 불법사찰 건은 이미 익숙한 사안이라 탄핵 역풍이나 내곡동 사저 건 수준의 감성적 폭발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또 외견상 반MB의 이미지를 가진 박근혜의 존재, 그가 주도하는 새누리당의 대MB 차별화 등의 요인도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크랙 이슈, 끝내기 홈런으로 규정하기엔 역부족이다. 최소한 지금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여론조사에서도 이런 흐름이 잡힌다. 2004년 탄핵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3월 11일 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은 한나라당 17.8%, 열린우리당 27.2%였다. 탄핵 뒤인 3월 26일 조사에서는 19.9% 대 50.1%로 나타났다.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2배가량 뛴 것이다. 민간인 불법사찰 건이 터진 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의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었다. 리얼미터 조사에 따르면, 불법사찰 건이 다시 등장하기 이전 새누리당이 11.9%포인트까지 앞섰던 지지율이 3월 30일 0.4%포인트 차이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탄핵 역풍의 효과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다.

반MB 전선의 내용에 대해서도 아쉬움이 있다. 흔히 보수는 비경제적 차원(non-economic dimension)이나 이슈(issue)를 만들어내려고 하는 반면 진보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계층투표(class voting)를 선호한다. MB 정권의 부자경제, 양극화 등으로 사회경제적 프레임이 작동하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계층적 이해관계에 대한 자각이 생겨나고 있다. 이 대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어떻게 다수의 지기기반, 즉 다수연합(majority coalition)을 구축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비리와 부패 등 정치적 이슈에 집중하면 연합의 폭은 넓어질 수 있으나 지속성은 떨어진다. 반면 경제적 이슈에 집중하면 연합의 폭은 다소 줄어드나 지속성은 높아진다.

총선에 이은 대선, 그 이후의 5년 또는 10년을 생각하면 우리는 현 정권에서 생겨난 계층적 자각을 확장하고, 기본 프레임으로 정착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 복지나 노동 등 사회적 역관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현안들을 성공시킬 수 있다. 따라서 민간인 불법사찰을 활용해 반MB 전선을 굵고 선명하게 긋는 것은 필요하지만, 여기에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권력을 잡는 과정은 권력의 행사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번에 사회경제적 이슈를 통해 계층적 프레임을 작동시켜서 이겨야 한다. 그래야 이 연합을 대선과 그 이후까지 유지시켜 나갈 수 있다. 뉴딜연합 없이 뉴딜정책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그 뉴딜연합은 노동자, 농민, 소수민족, 흑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들을 묶어세운 것이지 인화성이 강하나 포말성이 높은 정치이슈에 기반을 둔 것이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경험적 명제는 또 있다. 서구의 경우, 비경제적 차원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 간 대립이 극심해지면 질수록 저소득층 유권자들이 진보에 대해 지지를 줄이게 된다는 사실이 경험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다만 이는 진보정당과 사회경제적 약자와의 정책적·조직적 연계가 분명해진 이후에나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이 명제를 우리나라에 지금 바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다.

민주통합당은 '좌클릭'해 진보적 정체성을 공언하고 있다. 따라서 그만큼 경제적 차원에서의 대립구도를 선명하게 하는 것이 저소득층 유권자의 동원에 필요조건이라는 교훈은 수용해야 한다. 따라서 민주당은 공언한 대로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부자증세, 복지 등에서 분명한 대립각을 형성하는 전선 운영이 필요하다. 최소한 반값 등록금에서라도 극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 유권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허나 불행하게도 민주통합당이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징후는 찾기 힘들다. 이런 점에서 민주통합당의 전략지능이나 역량은 한심한 수준이다. 이기더라도 대선 등 이후 시기나 과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싶다.

선거 승리는 하나의 동력일 뿐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특히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반사이익에만 기댄 승리는 어느 순간 허망한 추억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민주통합당이 선거 승리의 덫에 빠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좀 더 멀리, 좀 더 깊고 넓게 보면 좋겠다.

* 이번 주부터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의 칼럼이 연재됩니다. 이 소장은 민주당 전략기획위원회 부위원장,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등을 지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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