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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럼비가 깨지면 나도 살아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정욱식의 '오, 평화'] 강정 주민들의 피눈물을 외면해선 안되는 까닭

3월 7일 급기야 해군과 삼성 및 대림 등 시공사가 제주 강정마을 구럼비 바위 발파에 돌입했다. 강정마을 주민과 자원 활동가들의 읍소도, 제주도 지사와 도의회 의장, 그리고 여야 도당위원장의 간곡한 호소도, 육지의 수많은 국민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묻지마 폭파'를 강행하고 있다.

국가안보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단다. 국가안보? 그 기본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안보사업이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작년에 이미 71일간 단식을 한 바 있는 영화평론가 양윤모는 또 다시 옥중 단식에 돌입해 30일 가까이 보낸 상태이다. 그는 특히 해군이 구럼비 바위 발파 수순에 돌입하면 물과 소금도 끊겠다고 선언했다. "내 영혼이 피폐해졌을 때, 구럼비는 저에게 새 생명을 주었어요. 그 구럼비가 깨지면 저도 더 이상 살아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얼마 전 필자에게 한 말이다.

'길 위의 신부' 문정현도, 마을회장 강동균도, 많은 주민과 활동가들도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목숨도 걸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범죄 없는 마을'이라던 강정은 300명이 넘는 전과자가 생겼고, 많은 주민들은 벌금 폭탄과 노동 손실로 생계조차 걱정해야 할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감귤을 재배하는 데에도 부족한 일손을 피눈물을 닦는데 보내야 하는 그들 앞에서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마을 경제도 좋아질 것'이라는 말은 또 하나의 국가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국가안보? 대한민국의 영토와 영해와 영공을 지킨다는 의미일 게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아니 세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바위 습지를 대한민국 정부와 군대가 폭파하고 있다. 천혜의 영토를 폭파하면서 이루려는 국가안보란 도대체 뭘까? 이미 공사 과정에서, 그리고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피할 수 없는 영해의 오염을 야기하는 안보 사업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생물권보존구역인 범섬을, 운이 좋으면 고래도 볼 수 있는 강정 앞바다와 하늘을 포연과 흙먼지로 뒤덮으면서 지키려는 국가안보는 누구를 위한 것일까?

혹자는 말한다. 강정마을 상황은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신기루와 같은 '국가안보론'을 앞세워 당장 벌어지고 있는 강정마을의 생명과 재산과 땅과 바다와 하늘의 파괴를 정당화하려는 것도 문제지만, 바로 그 대한민국의 안보를 위해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

흔히 통상국가인 한국에게는 바다가 생명줄이라고 한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건국 이래로 큰 바다로 나아가는 것을 가로막은 군사적 위협이 있었던가?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에 군사적 적대 행위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이들 나라가 우리나라의 해상 교역을 군사적으로 위협할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과연 5년째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그 끝을 알 수 없는 평화의 파괴를 감내할 정도로 타당한 것인가?

ⓒ프레시안(최형락)

제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의 가장 큰 명분은 '이어도 보호'이다. 그런데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수중 암초이고 따라서 중국과 영유권 분쟁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여 생각해보라. 한-중 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 즉 미합의 수역에 한국이 먼저 해군 함정을 보내면 한중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이러한 문제제기를 '중국의 눈치나 보며 살자는 것이냐'는 말로 일축해도 좋은 것인가?

국방부는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SOFA에는 "(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나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쉽게 말해 제주 해군기지를 사용할 것인가의 여부는 한국의 승인 여부가 아니라 미국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사용하면 한중관계는 어떻게 될까? 만약 한국이 미국의 사용을 불허하면 한미관계는 어떻게 될까? 이러한 문제제기조차도 '반대를 위한 반대'로 치부하면 그만일까?

이처럼 제주 해군기지 건설이 강행되어 한국 해군이 이어도 초계 활동에 나서거나, 미국이 제주 해군기지를 사용할 경우 우리의 남방 해역을 포함한 국가안보와 국민경제가 총체적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건설되고 있는 제주 해군기지가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제주 해군기지 사업은 국가안보에도 국민경제에도 도움이 되기는커녕, 강정마을의 작은 안보를 파괴하고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도 위태롭게 할 위험이 대단히 크다. 대한민국의 정부와 국민이 신기루와 같은 국가안보 담론에 사로잡혀 강정마을 주민들의 피눈물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 필자 정욱식 블로그 '뚜벅뚜벅'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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