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는 이념적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세대 간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같은 세대 안에서도 이념적 편차가 크다. 특히 북핵문제, 대북지원문제, 북한의 장래 문제, 국군포로와 납북자 문제처럼 북한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는 경우 그에 대한 입장과 시각 차이는 극과 극을 달린다. 보통 탈북자로 통하는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그들이 북한에서 왔다는 이유로 그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입장이나 태도도 이념적 성향만큼이나 다양하다.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북한의 식량문제가 심각해진1995년부터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지원을 요청한 이후 유엔 산하 세계식량기구(WFP)가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 창구가 되어, 인도적 차원의 대북식량 지원을 주도했다. WFP와는 별개로, 남한에서 1995년에 쌀 15만 톤을 북한으로 보내 주었고 일본도 같은 해 50만 톤의 쌀을 북한에 지원했다. 그런데 이후 대북 식량지원이 계속되는데도 불구하고 북한주민의 '탈북' 행렬은 이어졌다. 그전에도 휴전선을 넘어 남쪽으로 오는 '귀순자'들이 있었다. 그때는 대개 단신이었지만, 1995년부터는 식량난에 시달리던 북한주민들이 복수로 그리고 연달아서 남한으로 계속 들어왔다. 언론 등에서는 그들을 '귀순자'와 차별화할 필요 때문에 '탈북자'라 불렀다.
처음에 북한이탈주민들은 조금은 환영을 받고 대접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언론에도 크게 보도되고 국민들의 온정도 쏠렸다. 김일성 사망 1년 후부터 그런 일이 일어났기 때문에 북한이 망할 징조라고 해석하면서 '그 날'을 기다리는 사회 분위기도 있었다. 통일을 대비해 북한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대처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대학 학부나 대학원에 북한학과가 생기기도 했다. 필자가 만학으로 북한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도 그 당시 그런 사회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고 생각한다. 정부 차원에서는 제도적으로 그들을 보호하고 우리사회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그 법에 근거해서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탈북자 숫자가 늘어나고 우리 사회의 내부문제가 되면서부터는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님비(NIMBY: Never In My Back-Yard)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탈북자 정착지원시설을 자기네 동네에다 짓지 말라는 민원이 제기된 적도 있고, 자기네 아파트 단지에 탈북자들이 입주하는 것을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었다. 심지어 탈북자의 자녀들을 자기네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같은 반에 배정하지 말라는 요구까지 나오기도 했다. 탈북자들의 인권 침해라고 할 수 있는 차별이 일어난 셈이다.
▲ 신의주 부두에서 본 북한의 연인. ⓒ황재옥 |
처음에는 식량난 때문에 시작된 북한주민들의 탈북은 북한경제가 다소 좋아졌고 식량난도 많이 해소되었다고 알려진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아마도 최근에는 다소 위험하고 도중에 고생이 좀 되더라도 남한으로 일단 오기만 하면 잘 살 수 있다는 소문이 퍼졌는지 탈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작년 여름 필자는 압록강 서쪽 끝에서 두만강 동쪽 끝까지 1,300여km 가까이 되는 북·중 접경지역을 가능한 한 북한 쪽 가까이 강을 따라 종주하면서 북한의 국경마을을 건너다보았다. 특히 탈북자들이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지점을 유심히 살펴보고 왔다. 한마디로, 삼엄한 경비에도 불구하고 각오만 단단히 하면 북한주민들이 중국으로 넘어오는 것은 별로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업은 통일대비 차원에서 추진해야
그런 탓인지 2012년 12월 말까지 남한으로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은 2만5000명 선이라고 한다. 이중 68%가 여성이다. 탈북에도 우먼파워가 작용하는 것 같다. 탈북인구 2만5000명이라는 숫자는 북한 전체 인구의 1000분의 1에 해당하는 숫자다. 북한인구의 1000분의 1이 남한으로 넘어 와 살고 있고, 앞으로 그 숫자가 1000분의 1에서 500분의 1로, 400분의 1로 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탈주민 문제는 이제 통일준비 차원에서 대비해야 할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면 천신만고 끝에 남한으로 들어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어떤가? 우선 정부 차원에서는 1997년 1월 13일에 시행된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탈북자들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해왔다. 2005년부터는 '보호와 지원' 중심에서 '자립 유도' 쪽으로 방침을 바꿨다. 요컨대 정부는 탈북자들이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하고 자활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제도적으로 정착지원을 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민간 차원에서는 '북한이탈주민' 문제가 또 하나의 남남갈등의 씨앗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 중에 북한이탈주민을 주체사상과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는 사람들, 북한에서 일 저지르고 도망 나온 사람들이라는 부정적인 딱지를 붙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우리와 완전히 다른 사람들, 북쪽에서 왔다는 이유로 남쪽에서 거저먹고 살려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일반 국민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이런 인식과 편견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해 나가는 것보다 훨씬 힘든 것일 수 있다. 새로운 체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어려움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클 것이다. 필자가 관계하고 있는 탈북청소년지원단체에서 들은 얘기지만, 상당수 탈북청소년들이 친구를 사귈 때 처음에는 가능한 한 북에서 왔다는 사실을 숨긴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었을 때 가슴이 '멍' 해졌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콤플렉스만큼 사람을 비참하게 만드는 것은 없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들에 대한 사회 일반의 인식이나 태도도 맘에 걸리지만, 북한이탈주민 정착지원 사업의 일선에서 일하는 분들 중에도 북한이탈주민들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한 것 같다. 정부 기관에서 주관하는 북한인권 관련 포럼에 참석했다가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지원을 돕고 있는 관계자들끼리 북한이탈주민을 우리의 체제에 '동화'시키느냐 아니면 그들과 '공존'하느냐의 문제를 놓고 입장이 갈리는 것을 목격했다. 북한이탈주민에게 '특별' 또는 '예외적인' 대우를 해줄 것인가, 아니면 이제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었으니 다른 국민들과의 형평성을 고려해 그들을 지원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렸다.
물론 지원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이나 대행기관의 관계자들도 일반 국민들과 어울리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분들이 모든 것을 다 알아서 정책적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름'과 '같음' 사이에서 그들이 빨리 새로운 체제에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임은 정부에 있다. 정부는 이런 문제에 대한 기본 입장과 방향부터 정립해서 관계자들이 공유하도록 했어야 한다. 말하자면 정부도 기본을 갖추지 않고 정착지원 사업을 시작했다는 말이다. 필자는 '공존'과 '동화'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라고 본다. 그런 만큼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그들과 '공존'부터 해나가면서 장차 '동화'할 수 있도록 우리 스스로부터 훈련시키는 일이 시급하다.
너무나도 이질적인 두 체제를 경험하고 있는 그들이 남한의 문화와 스타일에 적응하는 것은 절대 쉽지 않다. 개인마다 원하는 정도의 차이도 있겠지만, '장밋빛 희망'을 안고 남한으로 들어온 그들이 빠른 시간 안에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적응하고 개방사회의 일원으로서 우리와 하나가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이 일단 남북의 체제가 많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부터 이해시켜야 할 것이다. 앞으로 그들이 살아가야 할 사회도 갈등과 빈부의 차이가 있고, 개인의 여건 차이와 노력 여하에 따라 각각 개인의 삶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달라질 수 있다는 남한 사회의 '불편한 진실'도 가감 없이 알려 주어야 한다. 그들이 우리사회에 대해서 갖고 있는 '신기루' 속에는 사실 사회악과 병폐도 포함되어 있음을 알려 줄 필요가 있다. 이런 솔직한 태도가 그들의 우리사회 적응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정책적 지원에는 교육, 취업, 사회보장, 그리고 거주지 확보 등이 포함된다. 그런데 정착지원 제도에도 약간의 문제가 있다. 예컨대 북한이탈주민들이 새로운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 중에 '불편함'과 '비효율성'이 노출되고 있다. 거주지와 취업지의 불일치, 직업훈련이 취업으로 연계되지 못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이탈주민의 취업지와 거주지의 불일치는 정착지원 정책과 제도상의 가장 큰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직업 훈련은 정착지 배정 이후에 시행되고 있는데, 북한이탈주민들의 임대주택 교환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거주지 이동이 사실상 곤란하다. 이 때문에 직업훈련이 적기에 제대로 실시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들이 직업과 노동을 통해 생활의 안정을 찾고 우리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상의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정착금은 정착지원금 외에 개개인의 자립과 자활 노력에 따라 정착장려금과 정착가산금으로 구분해서 지급하고 있다. 금액은 1인 가족의 경우 최하 700만 원, 주거지원금 1,300만 원을 포함할 경우 2,000만 원에 달한다. 사실 한국에서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정도의 금액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남한 내 생활보호대상자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생활보호대상자들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탈주민들이 받는 돈은 '특별'지원인 셈이다. 특히 북한이탈주민들이 배정받는 거주지의 이웃에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많다는 점에서,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예외적'이고 '특별'한 지원이 그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일일 수도 있다. 이 사안에 대해서 특별생활보호대상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작업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탈북한 북한주민들이 다시 입북하는 것을 뼈아프게 생각해야
가끔 탈북자의 강제 북송 관련 뉴스나 제3국을 떠도는 탈북자들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면 언론과 시민단체들의 '전원 한국 입국' 요구가 빗발친다. 그러나 대부분 그걸로 끝이다. 그들이 막상 남한으로 들어온 뒤 언론이나 시민단체들이 탈북자를 보살피고 계속해서 후원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것 같다. 국내 유입을 주장하지만 무관심한 상태로 방치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그들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부터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이탈주민의 '탈남입북(脫南入北)'소식이 보도된 적이 있다. 그전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죽음을 무릅쓰고 탈북해서 남한에 들어왔던 사람이 남한 사회에서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무서운 형벌을 받을 것이 '불 보듯 뻔한' 북한 땅으로 다시 들어가겠는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서쪽으로 밀려왔던 동독 사람들이 약 300만 정도 되었다. 그중에 10%에 해당하는 30만 정도가 서독에서 적응을 못 한 나머지 다시 동독 지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에는 동쪽으로 다시 돌아간다 하더라도 처벌받을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탈북자들의 '탈남'과는 성격이 다르다. 탈북했던 북한주민이 다시 '탈남입북'하는 문제는 우리가 뼈아프게 생각하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북한이탈주민 정책과 제도를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것은 먼 훗날 우리가 이루어 낼 통일의 사전(事前) 경험적 의미를 갖고 있다. 통일 이전 남·북 간 사회적 통합을 경험해 보는 중요한 의미와 함께 통일한국의 주민들간 소통과 통합을 원만하게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예행연습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북한이탈주민 대책은 정착지원에 그칠 것이 아니라 통일까지 대비하는 차원에서 새로운 틀을 짤 필요가 있다.
이미 15년 남짓 시행해온 정책과 제도의 문제점들을 보완해가면서, 탈북자들이 더 늘어날 경우와 통일까지 대비하는 차원에서 정책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우선 정부 차원에서 지역형·맞춤형으로 지원방식을 바꾸고, 그러기 위해서는 민간과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을 높이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가치가 있다. 북한이탈주민들의 고민을 상담해주고 불편을 덜어줄 수 있는 '도우미 친구'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일이다. 그 역할을 종교단체에 위임할 수도 있고, 지역사회 이웃들이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외롭고 힘든 우리 이웃인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통일의 초석을 다지는 일이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