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이후의 핵발전 정세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 이후 세계적으로 핵발전을 둘러싼 프레임 전쟁이 시작됐다. 핵발전 경로를 유지·강화하려는 입장에서는 '원자력은 안전하다'는 '원자력 안전성' 프레임으로 현재 국면을 저자세로 방어한다. 반면 핵발전을 반대하는 입장은 후쿠시마 사고를 '역사적 분기점'으로 인식해 녹색 운동의 오랜 숙원인 '핵 없는 세상'을 위해 '탈핵·에너지전환' 프레임으로 핵발전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려 공세적으로 대응한다.
유럽 중심으로 재등장한 탈핵 바람은 최근 몇 년 동안 침체일로를 걸어온 핵발전 산업의 현실을 반영하기도 한다. 국제 핵발전의 역사를 도입기(1954~1965년), 확산기(1966~1985년), 정체기(1986~2006년), 쇠퇴기(2007~현재)로 구분한다면,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이데올로기와 달리 쇠퇴기에 접어든 시기에 후쿠시마 사고가 터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1979년 스리마일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사고는 국제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체르노빌 사고로 적지 않은 국가들에서 핵발전 운영을 중단하거나 축소했다. 1990년대부터 아시아와 비OECD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주요 국가에서 핵발전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2008년에는 핵발전 역사상 처음으로 신규 핵발전소가 없는 해로 기록되었고, 2009년에는 2개, 2010년에는 5개만 새롭게 추가되었다. 2011년 이전에 선진국에서는 '노후 원전 수명 연장'만이 논쟁이 될 정도로, 핵발전 업계는 투자비용을 회수하고 폐쇄비용 지출을 지연해보고자 할 뿐, 다수는 신규 투자를 포기했다. 그 결과 전 세계 전력의 공급량에서 차지하는 핵발전의 비중은 수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했는데, 2009년에 14%였다. 이는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약 2%에 불과한 수준이다.
최근 발생한 후쿠시마 사고는 전 세계 핵발전의 전환국면을 조성한 것으로 보이나, 핵발전의 쇠퇴에 결정적인 구실을 할지 아직까지 낙관하기 이르다. 2011년 9월, IAEA는 2030년까지 전 세계에서 90~300여 기의 핵발전소가 추가 건설될 것으로 예측했다. 비록 기존 예측치보다 하향 조정됐고, IAEA 등 핵발전 국제기구들의 전망이 대부분 근거 없는 희망에 불과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형 사고의 기억만으로 핵발전의 카르텔이 자연스럽게 무너지지 않는다. 핵발전 산업계는 아시아를 포함한 주요 신흥국 국가들의 새로운 시장에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대형 사고 발생 시기에 나타났던 것처럼, '원자력 안전 신화'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핵발전국가들이 각기 처한 조건에서 상이한 경로를 밟아 왔다는 점이 확인되기 때문이다.(아래 표 참조)
이명박 정부의 경로 의존적 핵발전 정책
1) 이명박 정부의 경로 의존적 핵발전 정책
2009년 기준으로,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 한국, 독일, 이렇게 여섯 나라가 전 세계 핵발전의 73.2퍼센트를 생산하고, OECD 국가는 자국의 총 전력 생산에서 평균 약 31%를 핵에너지로 전력을 생산했다. 이중 한국은 '원자력 5대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크게 네 시기를 거치면서 '원자력 레짐'을 발전시켜왔다. ① 핵에너지 시스템의 출현(1955~1964년), ② 핵발전 체제의 형성(1965~1978년), ③ 핵발전 체제의 성장(1980~1997년), ④ 핵발전 체제의 공고화(1998~현재). 이 시기들을 거치면서 핵발전 기술 요소, 방사성 폐기물 처리 기술 등의 기술적 요소들과 더불어 관련 연구소, 행정기구의 정착과 제도 및 법규 마련, 핵발전 중심의 전력 인프라의 발전과 핵에너지에 대한 사회적 수용의 확대 등이 진행되었다.
2008년에 집권한 이명박 보수 정권은 '저탄소 녹색성장'을 국가적 아젠다로 주창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곧바로 대규모 토목공사인 '4대강 사업'과 핵발전 확대 및 수출 정책이 그 실체임이 밝혀지면서 그린 워시(green wash)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렇듯 현 정부는 기존 정부들에서 시종일관 추진된 핵발전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고 나아가 양적 확대에 치중한 모습을 보였다. '민주주의의 후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밀어붙이기 식 정부 행태에 대한 정치사회와 시민사회의 숱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후쿠시마 사고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발전 정책은 정권 말기에도 급속도로 추진되고 있다.
(1) 핵발전 확대 정책
국제적인 에너지 위기와 기후변화 상황에서 핵발전이 대안이라는 허구적 담론인 '원자력 르네상스'를 신봉하는 사회는 성장과 공급 중심의 에너지 시스템으로 유지되는 퇴행적인 사회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현재 21기의 핵발전소가 가동 중이며 전체 발전량의 34% 가량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한국은 핵발전의 의존도가 높다. 그해 반해 신재생에너지는 1.4%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녹색성장 정책으로 2030년까지 약 40기를 추가 건설하여 59%까지 높일 계획을 세웠다. 후쿠시마 사고 직후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단·장기 조치사항을 발표했으나, 사회적으로 수용할만한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법 개정으로 신설된 대통령 직속의 '원자력 안전위원회'는 오히려 각종 사고들(핵발전소 고장 정지, 핵발전소 설비 납품 비리, 아스팔트 방사능 유출 등)에 '문제 없다'는 결과만 발표하면서 정부의 핵발전 정책을 정당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11년 12월에는 추가로 2기의 핵발전소의 상업 운전 허가를 승인해 23기로 늘었으며 2024년까지 발전량 비중을 48.5%로 높일 계획으로 6기의 신규 건설을 위해 후보지 선정에 들어갔다. 최근 정부의 일방적 부지 선정으로 촉발된 두 지역에서 격렬한 반대 시위가 이어지면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그리고 곧 완공될 부산 지역의 신규 원전에서 생산될 전기를 송전하기 위한 고압 송전탑 건설 강행에 반대하가다 70대 노인이 분신 자살한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무리하게 건설 중인 경주 지역의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이 지반 불안정으로 지연되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럼에도 2012년 통과된 핵발전 관련 예산은 2011년에 비해 10% 상승했고, 증액된 예산의 90%가 핵발전 안전이 아닌 진흥 예산으로 편성되었다. 결국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핵발전 카르텔을 공고히 하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2) 핵발전 수출 정책
2009년 12월, 한국 공기업 한국전력을 비롯한 한국 컨소시엄의 UAE 핵발전소(1,400MW급 4기) 수주 성공이 발표됐다. 그러나 UAE 계약은 특전사 파병, 계약 건설비 문제 등 수 많은 의혹들이 아직 풀리지 않고 있다. 핵발전을 수출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는 정부는 2010년 1월에 2030년까지 핵발전소 80기 수출을 목표로 하는 '세계 3대 원전수출강국'을 선언했다. 이러한 수출 정책 역시 경로 의존적이라는 점에서 국내 핵발전소 확대 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1987년에 정부 부처에서 1990년대 핵발전의 기술을 자립하고, 2000년대 수출산업으로 발전시킬 장기계획을 수립했다. 1991년부터 인력과 기술 수출이 시작된 이후, 1997년에는 설비 수출, 2008년 설계 수출에 이르기까지 국내 핵발전 정책과 산업이 성장하고 공고화되면서 핵수출도 추진됐다.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은 26개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하여 핵발전 수출을 위한 기틀을 마련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된 노력의 결실로 인해 일괄 수주에 처음으로 성공한 셈이다. 이로써 한국은 6번째로 '원전 수출국'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다음 대상으로 터키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거론되고 있다.
후쿠시마 이후에 한국 정부 내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원자력 안전' 강화 담론과 정책이다. 기존의 '원자력법'이 핵발전 진흥과 안전이 일원화된 체계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후쿠시마 사태 이후 법 개정을 통해 진흥과 안전이 분리됐다. 이에 대해 정부는 후쿠시마 사태의 영향으로 핵발전 안전성을 강화하는 조처로 홍보했으나, 그 이면에는 핵발전 수출을 촉진하기 위한 의도가 숨어 있었다.
UAE 핵발전 수출로 프랑스와 경쟁하고 있을 당시 프랑스가 한국의 안전 규제 시스템과 독립성의 문제를 줄곧 제기하여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경험을 했다. 따라서 정부는 외형적으로는 '원자력 안전' 시스템을 개선한다는 이유로, 그러나 실제로는 한국 핵발전 수출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한 목적으로 '원자력안전법'를 분리·신설했다. 그 결과 신설된 '원자력 안전위원회'의 수장에 핵발전소 건설과 수출에 힘써온 인물이 선임돼 버렸다.
2) 핵 마피아에 결박당한 에너지 시스템
현재 한국인이 지불하는 전기요금의 3.7%로 조성되는 '전력산업기반기금' 중 연간 100억원 이상이 원자력문화재단의 핵발전 홍보비로 사용된다. 이중 일부가 핵시설 견학과 교육에 사용되는데, 참여 학생 수만 연간 10만 명에 이른다. 이렇게 익숙해진 자발적인 동원 체계 속에서 핵발전 체제가 재생산된다. 무엇보다도 전문가주의와 비밀주의는 정책결정 과정을 일부 정치인, 관료, 업계, 학계로 구성된 '핵 마피아'에 국한시켜 위험사회 극복에 필수적인 사회적 공론화를 방해한다. 핵에너지의 안전기준과 위험계산은 불확실성 속에서 이 집단의 자의적이고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 , 스위스 등이 걷고 있는 탈핵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생태적·사회적·윤리적 대안 프레임을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우리는 괜찮다'는 식의 주술을 되뇌게 한다. 핵발전과 화력발전 같은 경성에너지시스템(hard energy system)이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단지 안전 시스템만 점검하겠다는 태도는 '에너지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핵발전의 '생명 연장의 꿈'이다.
핵 마피아는 안전에 대한 기술주의와 관리주의라는 확고한 신념에 더해 '원자력'은 '그린 에너지'라는 공식을 새롭게 쓰고 있다. 공교롭게도 2010년 12월에 법률로 규정된 '녹색기업'에 한국수력원자력이 슬그머니 포함되었다. 이런 터무니없는 허위 사실 유포는 '원자력 르네상스'라는 유령 때문에 작동한다. 프랑스와 함께 한국은 핵에 대해 각별한 '물신주의'를 나타낸다. 5대 '원자력 강국' 한국은 핵발전의 위험성은 차지하고서라도, 온실가스 저감효과와 경제성이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과장되었거나 잘못 측정되었다고 판명됐음에도, 또한 핵에너지는 특성상 한번 가동하면 소비를 증가시키는 철저히 공급 중심의 에너지원임에도, 결코 단계적 폐쇄를 포함한 탈핵 시나리오를 상상조차 못한다.
한국에서 탈핵은 가능한가?
(1) 핵발전의 경로전환 분석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필리핀은 각기 다른 경로를 따라 핵발전의 경로전환에 성공한 사례이다. 세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핵발전의 고착화가 낮은 수준이었는데, 이탈리아만 4기의 원자로를 운영하고 있는 정도였다. (아래 표 참조)
반면 스웨덴,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 독일, 스위스, 미국 새크라멘토는 탈핵이행국으로 묶을 수 있는데, 대체로 핵발전의 고착화 수준이 중간 이상으로 높은 편에 속한다. 주로 국민투표와 정치적 결정(집권 정부의 선택과 법안 통과 포함)이라는 전환수단이 효과적이었고, 독일의 경우 정치사회적 합의가 특징적이다.(아래 표 참조)
앞서 살펴본 국가들은 석유위기(1970년대)와 핵발전 사고(1979년, 1986년, 2011년)라는 국내외적 위기 상황이라는 역사적 국면에서 사회운동과 정치조직, 대안(재생에너지, 대안 에너지 시나리오) 그리고 에너지 거버넌스와 이해관계라는 투쟁의 장에서 탈핵·에너지 전환의 헤게모니를 전취해 제도화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탈핵·에너지 전환의 정치사회적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즉 역사적 국면에 조응하는 정치사회적 대응에 따라 경로전환의 성패가 갈리는 것이다.
(2) 한국에서 탈핵은 가능한가?
한국의 롤 모델이었던 일본이 후쿠시마 이후 핵발전 정책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음에도, 왜 한국은 핵발전의 경론 의존성에서 탈피하지 못하는가? 무엇보다 우리에게 '에너지 정치'와 '생명의 정치'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어떤 수식어가 붙었던 간에 역대 모든 정권은 핵발전 경로에 의존적이었다. 민주주의는 핵 앞에서 멈췄다. 핵 밀집도는 세계 1위이고, 핵발전소 반경 30㎞ 기준으로 40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국내에도 지난 30여 년 동안 400회 이상 고장 정지 사고가 났으며,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뻔한 사고도 뒤늦게 공개되기도 했다.
사람들은 통제 불가능한 위협에 대해 현실과 의식의 부조화를 없애고자 그 위협을 무시하거나 아예 적응하려는 심리가 있다. 이런 방어 기제는 후쿠시마와 같은 외부 계기를 통해 변화해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표출될 수 있는데, 이제 비로소 한국의 에너지 시스템의 변화 가능성이 조금씩 싹트고 있다. 어느 때 보다 핵발전소 주변 지역에서 그리고 건설·계획 중인 곳에서 반대여론이 거세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다뤄졌던 핵과 에너지 문제가 이제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NGO와 야당들은 앞다퉈 탈핵을 주장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2030 탈핵 시나리오'라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탈핵에 대한 정치적 의제설정 단계에 진입하지 못한 한국의 상황에서 어느 날 갑자기 '탈핵 군주'가 출현하길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경로전환을 위한 다층적인 전략을 취할 필요가 있다. 한편 국민투표라는 전환 수단이 사용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스웨덴처럼, 후쿠시마 이후 프랑스(녹색당)와 대만(민진당)에서도 국민투표 주장에 제기되고 있다. 또한 벨기에와 스위스처럼 국내에서도 '탈핵 및 에너지전환 기본법'(녹색당 창당 준비위원회)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이슈와 균열이 정치사회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때에는 현 제도의 절차적 활용과 함께 그것의 정치사회적 조건을 형성하는 전환요소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 에너지 시스템에 대한 '다양성·역동성·복합성 속에서의 공론화, '에너지 거버넌스', '에너지 커먼스(energy commons)' 패러다임과 같은 다양한 접근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탈핵 주체 형성과 아래로부터의 탈핵 전략을 추구하는 정치세력이야말로 한국사회의 탈핵 동맹의 정치적 진지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끝으로 동북아로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다. 핵무기가 단기간 즉각적인 살상을 목표로 폭발하는 데 비해, 핵발전은 '우발적 필연성'에 의해 파괴되는 차이점을 제외하면, 모든 핵 사고의 영향력은 시·공간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난다. 그런 점에서 한국, 중국, 일본에 현재 약 90기 가량이 몰려 있고, 현 추세대로라면 이 지역에 핵발전소가 300기로 늘어날 정도로 핵 밀집도가 높아 새로운 화약고가 될 우려가 높다. 따라서 이제 한국을 넘어서 '핵 운명 공동체' 동북아의 탈핵 연대의 기반을 모색해야 할 때다.
* 원제 : 한국에서 탈핵은 가능한가- 핵발전 확대 및 수출 정책에 대한 평가와 전망
* 코리아연구원(연구기획위원장: 이정철)은 네트워크형 싱크탱크로 정치·외교, 경제·통상, 사회통합분야의 정책대안을 제시합니다.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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