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4월 대구 달성군의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어 처음으로 국회에 등원한 박근혜 의원은 첫 본회의 대정부 질의에서 거의 모든 시간을 농업, 농촌문제에 할애하였다. IMF 환란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농촌경제와 농민들의 참상을 조목조목 지적하였다. 환란 와중에 갓 출범한 '국민의 정부'의 농정책임자로서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필자는 국무위원석에 앉아 애꿎은 속앓이를 해야만 했다. 한편으로는 억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문제에 대한 박 의원의 관심에 고개 숙였다. 20여년 전 고 박정희 대통령의 환영(幻影)을 보는 듯한 착잡한 심정이었다.
지방시찰 여행 중에 간혹 농부들이 논두렁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는 장면을 목격하면 예고없이 끼어들어 농민들과 술참을 나누면서 그들의 애로사항을 직접 청취하거나, 또는 한적한 농촌마을의 아무 집이나 들어가 "안녕하십니까. 나, 박정희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민생을 확인하던 독재자 박정희 대통령의 농촌ㆍ농민 챙기기는 각별하였다. 그것이 쇼맨십이라해도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익사 직전의 농업 농촌 농민들에겐 나름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리고 귀경하면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담아 두었던 바를 정책에 반영하곤 했다. 예를 들어 1979년 초가을 농촌의 민정시찰에서 돌아온 박정희 전 대통령은 당시 경제기획원 고위간부들에게 농민들에게서 직접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니들이 뭐를 안다고, 쇠고기 수입시장을 개방하겠다는 흰소리를 흘렸느냐'고 노발대발했다는 신문기사가 기억된다. 그리고 그는 그해 말 비명에 유명을 달리하였다. 공(功)과 과(過)가 얽힌 독재자 박정희의 역정에 대해 상당수 농업 농촌 농민들은 그래도 희망을 걸었었다.
독재자 박정희의 농정철학: 자립 자조 협동에 의한 농민도 잘 살아보세
박정희 대통령이 그리던 농정구도는 '자조 자립 협동'으로 농민들도 잘 살아보자는 지역사회공동체 건설 이었다. 오늘날 MB와 박근혜 정부의 '효율과 경쟁력'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농업산업화=대기업농화' 정책과는 전혀 다른 방향이었다. 애시당초 시장경제 만능주의와 가격경쟁력 향상 및 효율성 위주의 정책이란 그때나 지금이나 반만년 배달겨레의 소규모 가족농 구조하에서는 가당치 않은 개념이다.
설사 소수 대자본에 의한 기업농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치더라도, 우리나라의 특수한 경제적 사회적 여건으로서는 정부투자를 선택적으로 집중해 지원하는 바로 그것이 또 하나의 새로운 특혜와 보호에 불과했다. 기존의 소농민들을 농촌사회에서 쫓아내는 정책일 뿐이기 때문이다. 소농 가족농 그리고 농촌 지역사회의 주민들에 의한 협동화와 전문화로 공동체적 지속가능한 농업 농촌을 가꾸어 내는 길 외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 국민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고 모두가 고루 잘사는 이른바 스위스형 강소농(强小農) 모델이다. 자연환경생태계와 지역사회공동체가 서로 조화를 이루어 도ㆍ농이 함께 상생하는 지속가능한 사회(sustainable society)를 건설하기 위해 자조 자립 정신에 기반한 다양한 협동을 강화하는 대안이 사람과 지역사회와 환경생태계를 공히 살리는 길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사람 중심, 농민 중심'의 농정철학이 적어도 박정희 시절에는 국정의 기본이었으나 박근혜 정부에선 그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공산품 분야에서 경쟁력을 잃은 미국 등 농산물 과잉생산 강대국들이 자국의 식량과 농산물들을 공산품에 대신할 국제 교역상품으로 데뷔시키기 위해 다국적 초국경 기업들의 조종을 받아 강압적으로 약소 식량수입국가들을 자유무역 시장개방체제에 강제로 편입시킨 것이 바로 1995년의 우루과이 라운드 (농업)협정체제, 즉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이었다. 그와 동시에 만성적인 식량수입국이었던 우리나라 국정경영에 화려하게 등장하기 시작한 개념이 '효율과 경쟁력'이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표적인 전술이 상수화되었다. 이는 미국을 비롯한 서구 신자유주의적인 경제체제에 편입 또는 동조화(同調化)를 합리화하는 키워드이다.
그 지표와 개념대로 정책을 펴면 국내적으로는 몇몇 대기업 재벌들만 살아남아 소규모 가족농들이 밀려 나거나 하층 노동자로 전락하게 된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계 초국경기업에게 우리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식량과 식품의 공급을 책임지게 하는 체제이다.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인 경제통합 시대가 시나브로 전개 된 것이다. 그 종착점에 농민은 없고 농업노동자와 소비자만 남게 된다. 식량주권의 소멸과 국가주권의 실종이라는 종말이 가까이 다가올 뿐이다. 노골적으로 어느 전경련 회장은 반도체를 팔아 부족한 쌀을 수입해 오는 것이 국가와 국민에게 더 유리하다고 공언하기에 이르른다. 그리고 현실은 그 예언이 적중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철학이 없는 박근혜 정부의 농정
최근에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농정방향을 보면, 추상적인 말잔치(修辭)만 있지, 현재와 미래의 심각한 농업현안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으로서의 농민을 살릴 철학과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들 '희망찬 농업, 활기찬 농촌, 행복한 국민'을 말로야 천만번 외치치 못할까. 직시하기에 고통스러운 핵심적인 농업문제들이 박정부의 5대 국정과제에서 비켜나 있다. 이 지구상에 명색이 국가다운 국가 가운데 홍콩, 싱가폴 등 도시국가를 제외하고 국민 식량(곡물)의 자급율이 20%대를 겨우 넘을까 말까 한 나라가 우리나라 말고 또 어디에 있던가. 해마다 식량공급이 부족하여 수백만의 국민을 영양실조와 기아에 허덕이게 하는 북한의 식량자급율도 70%대를 넘나든다. 지구촌은 바야흐로 기후변화와 태양계의 이상으로 식량 총생산량의 증가추세가 멈춰섰고 2-3년 단위의 Agflation(농산물 가격 주도의 물가상승) 현상으로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그 가운데 유독 대한민국만은 농업 및 식량생산 실적이 뒷걸음을 쳐 이제 그 자급율이 세계 최하위권 국가에 랭크 인 되었다. 가용 농경지 면적과 산지가 줄어들고 농가 평균소득 역시 해마다 쪼글어 들어 7년째 제자리 걸음이다. 그런데도 '희망찬 농업'을 외칠 것인가.
박근혜 정권의 농정에는 날로 기승을 부리는 부동산 투기꾼들에 의한 농지와 임야의 비농업 용도로의 잠식현상에 대한 고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정부 당국 입으로 2020년까지 최소 곡물자급율 32%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75만㏊의 농경지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그동안 각종 상공업 및 도시 용도로 우량농지들이 해마다 빠져나가 2011년 현재 전국의 농지 면적은 겨우 169만 헥타에 불과하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이 추세대로 농지제도가 방치될 경우 10년 후에는 157만 헥타의 농경지가 남아 있을까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보다도 더 우려되는 현상은 놀라운 속도로 우량농지와 산지가 부동산 재테크 투기대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재지주 또는 비농민들의 수중으로 농경지가 불법 탈법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것을 경기도 같은 경우는 도지사가 앞장 서 부추기고 있다.
언제부터서인지 농림축산식품부의 통계자료집에는 아예 임차 농경지(농림부는 헌법에서 금지하는 '소작농'이라는 용어를 피해 '임차농'이라고 표현한다.) 면적의 현황에 관한 통계마저 빼버렸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보편화된 농경지의 투기화 현상을 모두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인가. 아무튼 대충 잡아 대도시 근교의 농경지는 8-9할이 비농민에 의해 투기적 또는 재산증식의 수단으로 보유되고 있으며, 농촌지역 농경지의 4-6할이 부재지주 또는 비농민에 의해 소유되고 있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굳이 MB 정권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박근혜 정권의 초대 내각 각료들의 청문회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이른바 우리 사회에서 잘 나간다는 각 분야의 엘리트들 치고 전국 각지에 상당 면적의 논과 밭, 임지를 불법 비법적으로 투기해오지 않은 사람이 없다 할 정도이다.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농지제도의 획기적인 개혁이 없이 장차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식량농업정책의 활로와 농가소득 안정화의 방도를 찾는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 찾기나 다름없다. 도시 투기꾼들에 의해 선진국의 10-20배나 비싼 논, 밭에서 값싸고 질이 좋은 농산물이 풍부하게 공급될 것이라고 기대하지 못한다. 설사 재벌기업농이 농사를 독과점한다 해도 정부의 특혜지원이 없이는 수지타산을 맞출 분야가 그리 많지 않다.
연목구어(緣木求魚) 격인 농정의 좌표
또 우리나라에서 농정의 절반이라 말하여 과언이 아닐 대한민국 최대 금융ㆍ경제 단체인 농협중앙회와 그 지주회사들을 보라. 이명박 정권이 외국계 컨설팅회사의 용역자문을 받아 지난해 의욕적으로 단행한 농협개혁이란 것이 기껏 협동조합적인 성분을 쫙 빼버리고 주식회사 기업적인 지주회사체제로 그 이름마저 세계화한 NH이다. 농민조합원과의 거리를 더욱 멀게 만든 비협동조합적인 회사조직이 바로 NH 농협개혁의 소산이다. 임직원은 조합원 농가소득보다 몇배나 더 많은 월급을 받고 회장님은 수십배나 더 받아 호의호식하는 것쯤이야 대다수 농민 조합원들의 경제와 살림살이가 좋아진다면 하등 잘못된 게 아니다. 그러나 조합원 농민들의 살림은 날로 쫄아들고 궁핍해지는데 임직원들만 호의호식하는 지주회사 체제가 되어서는 아무래도 무언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개혁조건으로 얻어 낸 5-6조 원의 정부 추가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게 될 전망이다.
지난 수십년간 새 정권이 들어 설 때마다 유통구조 개혁으로 농민은 제 값 받고 소비자는 값싸게 안전한 농산식품을 사게 하겠다는 구호가 아니나 다를까 이 정권에서도 다시 등장하였다. 데쟈뷰(旣視感)라 할까. 현행 농협지주회사의 고임금 비효율 체제를 가지고 감당할 일이던가. 소나기가 지나고 나면 다시 농협은 추가적인 정부 지원이 있어야 유통개혁이 가능하다고 예전에 했던 요구를 다시 할 것이 뻔하다. 이는 마치 농협이 언제부터 인도주의 단체가 되었는지,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수입농산물을 수입하여 판매할 수밖에 없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배경과 일맥상통한다. 농협의 유통시설과 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오랜 기간 그만큼 국가에 의한 투자 및 세제지원을 받았으면 통합 농협 발족 50년이 지난 지금쯤은 농민조합원과 소비자들이 공감하는 가시적인 유통개혁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니던가. 적어도 박근혜 정부의 5대 농정과제인 '유통구조개선'에는 이같은 기왕에 했던 지원계획이 되풀이 돼서는 아니될 것이다.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마찬가지일 것이기 때문이다.
참치와 라면, 커피 등 수출해 놓고 농업수출실적을 자랑하다니
농림당국은 한 수 더 떠서, 지난해 농수산식품 수출액이 80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자랑하고 있다. 정부의 물류비 지원을 받고 수출된 1억 달러가 넘는 주요 품목을 보면 낯이 뜨겁다. 권련(담배), 참치, 커피조제품, 자당, 라면, 소주, 비스켓, 음료 등등 이것들이 농가소득 증대 또는 농업생산과 무슨 상관이 있나. 우리나라 농업 농민과는 거리가 한참이나 먼 품목들이 대부분이다. 초코파이 등 원료의 대부분이 외국서 수입한 상품들이다. 또 식품산업 육성과 생산 및 유통현대화 촉진을 위해 정부자금을 쏟아 부었던 대상에는 수입농산물을 주 원료로 사용하는 대기업 가공식품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정부지원 없이도 잘 나가는 대형 재벌 마트들에게도 농림예산이 지원되었었다. 심지어 퇴직 관료들의 취업자리를 제공해준 모재벌회사에 소농 가족농에게 돌아갈 거액의 FTA 대책자금이 지원되었다. 국민의 혈세를 죽어라 쏟아부은 새만금 등 간척지를 농민이 아닌 대기업들에게 우선하여 특혜 분양하였다. 이렇듯 언제부터 농업자금지원 대상에 재벌기업, 대형 유통 및 가공업체들이 포함되어 그리 않아도 줄어들고 모자라는 농림축산 예산이 줄줄이 새나가고 있다. 적어도 MB 정부 때 그러했다. 그것이 이 정부들어 5대 국정과제로 등장한 '농식품산업 창조경제'의 현주소가 안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다른 한편, 농업용수의 생명줄인 전국의 1만7000여개 저수지들은 그 67%가 축조된 지 50년이 지났다. 그중 한 곳이 엊그제 둑이 무너져 20여만 톤의 물을 삽시간에 저지대로 덮쳐 흘렸다. 미국 잉여농산물로 급조했던 1960년대를 전후한 이른바 '밀가루 저수지'들이 방재청과 농어촌공사에 의해 대부분 D급으로 아주 위험하다고 진단되었음에도 예산타령으로 방치해 왔던 결과이다. 그런데 새 정부의 '활기찬 농촌' 계획과 19조 원에 달하는 추경예산에는 아직 농업기반개선사업 및 노후 저수지 현대화 항목이 보이지 않는다. 경주 산대저수지와 같은 사태가 일파만파로 확대되어야 깨달을까. 전체 국가 예산 중 농림축수산 예산이 2013년 현재 역대 최저수준인 4.5%라는 구도하에서 기반조성사업이 홀대 받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일찍이 선인(先人)들이 말하기를 "조선(한국) 놈들은 이마빡이 터져 피가 나봐야, 정신 차린다." 라고 했는데 차마 그에 해당하는 사례가 아니길 바란다.
이웃나라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만큼 눈부신 상공업 수출산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올해도 여전히 중국정부 및 공산당의 제1호 중앙문건(2013. 1.31)이 10년째 농업문제로 채워져 제시되었다. '농업생산량이 결코 줄어들지 않게 하기위해 현대농업의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물질적 기술적으로 농업발전을 지원 강화할 것이며, 농경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한편, 곡물생산의 안정적인 증산에 매진하기 위해 농업기반 인프라 확충과 농경지 보호에 한층 엄격한 규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피가 나봐야 관심을 가질 제1호 문건이다.
당(딴)나라의 황당한 농정시책들
다른 한편,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농업농촌 현대화사업을 보자. 멀쩡한 논과 밭, 땅과 흙을 놔두고 공짜의 햇볕과 저수지 물도 그대로 놔둔 채, 콘크리트 철근으로 고층 빌딩을 지어 LED로 인조 볕을 비추고 배지에 양액을 공급하여 평지 보통농사의 10여배의 비용으로 농산물을 생산해내는 이른바 '공장식 빌딩농업'을 지금 정부 농업기관이 앞장서 미래형 농업으로 시범을 보이며 홍보하고 있다. 그 결과 일부 지자체 단체장들이 덩달아 국민의 혈세로 빌딩을 지어 수직 농사를 뽐내고 있다. 그곳엔 농민이 없다. IT, BT 전문가뿐이다. 심지어 이를 도시농업이라고 명명하는 바람에 정작 환경생태계 보전과 유기농 보급 및 귀농귀촌 교육 차원에서 도시농업에 실제로 땀을 흘리던 전국의 도시농업인들이 발끈 화를 냈다. 니들이 생명농업의 참 의미를 '알랑가 몰라'라며 싸이의 '젠틀맨' 노래를 흉내내 비꼬고 있다. 농민이 없는 고비용 빌딩농사를 흉내내는 장난같은 일이 국민의 세금으로 공기관들에 의해 농업현대화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다. 한술 더 떠서 이같은 화학 기계식 빌딩농업을 미래농업의 대안이라고 우기기까지 한다. 혈세를 낭비하고 농업농촌 농민을 우롱하는 당나라식 농정이 대명천지 백주노상에서 전개되고 있다. 차라리 무농민 '빌딩농업진흥청'이라는 간판을 새로 달아야 할 것 같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소비자와 정부의 묵시적인 양해하에 외국의 통상압력에 대비해 단지 연구시험용으로 10여년 전부터 개발연구해 오던 GMO 볍씨 등 각종 종자개발을 지난해 정부는 이름도 거창한 Golden Seed(황금의 종자) 프로젝트로 명명하며 야심차게 수출보급하겠다고 발표하였다. 그 역풍을 미처 생각치 못하고 박근혜 정부는 이를 계승하여 창조경제의 대표주자감으로 내세우는데 신이 나 있다. 그 다음 순서는 모르긴 해도 국내 농업 농민에게도 유익하다고 견강부회 우기면서 슬그머니 국내에 보급할지 모른다. GMO의 종주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그렇다치더라도, EU등 세계의 대다수 국가들에서 GMO의 인체 생명에 대한 심각한 위해성과 환경생태계 피해에 대한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러시아도 중국도 긴장하고 있다. 범세계적으로 모두들 전전긍긍하며 표시제를 강화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수출이라는 명분에 편승하여 슬그머니 GMO 보따리를 풀어 놓으려 한다. 그 저의가 과연 무엇인지, 박근혜 정부의 5대 농정과제인 '안전한 농식품의 안정한 공급'이 이를 용인하고 있는지 심히 궁금하다. 그것도 불량식품 근절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며 국가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앞장서 독려하고 있는 국민식생활 안전문제가 농림부의 GMO라는 괴물씨앗 수출 보급계획에 가려 있는 것을 보며, MB 정권 초기의 광우병 의심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조치로 촉발된 3개월여의 범국민적 촛불시위 사태를 떠오르게 한다.
닮을 것은 안 닮고, 돈 되는 일에만 혈안
지금 대한민국의 농업 농촌 농민들의 경제형편은 말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5년간 농림관료들을 품목마다 물가관리 담당자로 지명하여 무조건 무관세 할당관세로 수입을 촉진한 결과, 이같은 MB식 물가정책으로 국내 농산물시장 가격체계는 뒤죽박죽이 되어 전망을 잃고 있다. 그 흔한 배추농사가 절단나고 돼지농가가 허덕이며 중소농가들이 기사직전에 몰려있다. 농민이야 죽던 말던 무관세로 잔뜩 과잉도입한 대재벌 식품업체들은 탈세하다가 덜미가 잡혔다. 소비자들의 건강이야 금이 가건 말건, 한 건 히트 칠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관료학자들의 입신양명주의가 너무나 안타깝다.
이럴 때 외신(2013. 2.7)은 청량한 소식을 전해왔다. 미셀 오바마 여사가 백악관 뒤뜰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배추로 손수 담은 김치 병조림들이 대대적으로 소개되었다. 미셀 여사가 평소에도 건강식인 김치를 사랑한다는 백악관 요리 블로그 '오바마 푸도라마(Obama Foodorama)'에는 "채식주의자라면 양념 중 액젖은 빼도 되고요. 다만 재료는 꼭 손으로 버무려 담그세요."라는 미셀 여사의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고 있다. 지난해 9월 필자가 참가하여 주도하였던 워싱턴 D.C. 한인회 주최 KORUS Festival의 광주세계김치축제에도 그의 보좌관 티나 첸을 보내 김치 버무리기 시범행사에 참가케 한 적이 있다. 보좌관은 인사말에서 미셀 오바마 여사의 텃밭 유기농사에 대한 열정과 김치 사랑이야기를 자랑스럽게 소개하였다. 그런데 우리나라 지도층과 재벌녀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고 물러서긴 했지만 한참동안 앞장 서 빵가게를 열고 커피집을 직접 경영하거나 땅투기 부동산 놀이 등 돈 되는 일에 열공한다. 이런 모습이 우리 농정에도 전혀 남의 일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닮을 것은 아니 닮고 돈되는 일에만 수단방법 안 가리고 열을 올리려는 어리석음이 또다시 우리 농정에 되풀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이젠 제발 '(가격)경쟁력 타령'은 그만하라
우리나라 농축업 총생산액이 43조 원 내외인데 비하여 농축산물 총수입액은 그를 육박하는데도 대한민국 농정의 중심축은 여전히 '효율성과 가격경쟁력' 패러다임이 주도하고 있다. MB는 '돈버는 농업'을 정부 정책구호로 내걸었을 정도이다. 땅값이 외국의 10-20배나 높고 호당 경지면적이 100분의 1 수준인 열악한 조건하에서 우리나라 소규모 가족농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의 거센 역풍을 맞아 환경생태적으로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농업이 점차 그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농촌지역사회 공동체도 붕괴 직전이다. 거기에 세계 농업의 공통 현상인 고령화 추세 또한 더욱 가속화 한다. 한 때 정부가 추진했던 가족농업의 협동화와 전문화 정책이 시들해진 자리를 대신하여 기업농식 사고가 부쩍 파고들었다.
사람도 살리고 농촌공동체도 살리며 환경생태계도 함께 살리는 조화로운 지속가능의 농업에 대한 육성방침이 이미 오래전부터 분명히 정립되어 왔는데도 박근혜 정부의 5대 농정과제엔 생산력 주체이며 공동체의 주역인 농민의 존재가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일부 관료들은 뱁새가 황새 걸음을 흉내 내듯 가격 경쟁력 지상주의에 별별 요사스러운 대책들을 내놓고 있다. 어디 농산식품이 가격경쟁력만 있으면 만사 OK 인가. 품질과 안전성이 더 중요하며 환경생태계와 지역사회 공동체 유지 기능 또한 중요하쟎은가. 산 및 유통ㆍ가공 판매의 협동화로 농가소득을 높이고 농촌지역 경제공동체를 살리어 도시소비자의 건강과 생명도 함께 돌보면서 환경생태계 등 비가격적 공익기능을 키우는 지속가능한 농정철학이 박근혜 농정엔 빠져 있는 것 같다. 그 길을 정부가 농민(가족농)과 함께 찾아가는 것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길이 아니던가. 가격경쟁력에만 혈안이 되어 땅이 넓고 생산비가 낮은 큰 나라의 농정만 흉내 내려다가는 GMO건, 방부제와 농약 방사선 투성이의 식품이건, 값만 싸면 마구잡이로
자본 효율성 위주로 농정을 펼치겠다는 뜻이 아니길 제발 바란다.
끝으로 박근혜 정부의 농정과제에는 우리나라 농업 농촌 농민의 현재와 미래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것은 무관세 완전시장개방 압력이다. 이미 50여개국과 체결했거나 현재 추진하고 있는 FTA(자유무역협정)의 후폭풍에 대한 대책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FTA 등 엄청난 파괴적 효과에 대한 사전 대비책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농업문제를 제외한 FTA 협상이 불가능할 경우 차라리 중국과의 협상은 하지 않는 것이 길게 보아 득이 더 많다고 본다.
"농촌 농민은 실험대상이 아닌 섬김과 돌봄의 대상"
농촌 농민은 국정의 실험대상이 아니라 섬김과 돌봄의 대상이다. 이 땅에 생명을 낳고 생명과 환경 생태계와 문화전통을 지키고 가꾸는 다원적 공익기능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미 고 박정희 대통령이 애써 지키고 가꾸려던 자조 자립 협동의 상생정신에 담겨 있는 개념이다. 농업이 가지고 있는 환경, 생태, 문화 전통, 지역사회 공동체, 도농상생 등 다양한 공익적 기능을 감안하여 박근혜 정부의 농정은 시야를 보다 넓게 길게 바라보아야 한다. 그리고 미국, 브라질만 쳐다보지 말고, 우리나라와 농업조건이 유사한 독일,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국가들을 더 공부하고 참고하여 농정을 본래의 자리인 "국민농업"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농업 농민이 없으면 농촌도 없고 국민도 나라도 없다는 진실을 외면해서는 아니된다. 농림축산식품부는 그 고유한 영역과 사명이 이처럼 하늘로부터, 그리고 국가와 국민들로부터 주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기획재정부나 산업통산자원부의 시녀부서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민과 농촌지역공동체와 환경생태계를 돌보지 않으면 누가 이들을 감싸 안을 것인가. 구중궁궐에서 자랐던 박근혜 대통령이 꼭 직접 나서서 챙겨야 농정이 제대로 풀릴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건 참으로 오산이다. 농림축산업의 생명적 가치와 농촌 농민의 공동체적 가치를 지켜내지 못하겠거든 차라리 그 자리를 떠나라. 혹시라도 머지않은 어느 날, 농민들이 들고 일어나 '차라리 농림축산식품부를 없애라'는 주장을 농촌에서 터져 나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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