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뉴욕에서 열린 안보리 회의에서 참가국들은 시리아 사태 해결책을 논의했으나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아랍연맹(AL)이 제안한 안보리 결의안은 바사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부통령에게 권력을 넘기고 퇴진한다는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내용을 담았다. 또 시리아로의 무기 수출 중단을 제안하고, 알아사드 정권과 반정부 세력 모두 폭력 사용을 즉각 중단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아랍연맹 결의안을 지지하고 있지만 러시아와 중국은 결의안은 정권 교체를 목적으로 하고 있고 외부 무력 개입의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리비아의 경우에도 아랍연맹이 제안한 안보리 결의안이 채택된 후 이를 근거로 서방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고 무력 개입을 시작한 전례가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러시아의 외교정책이 누구를 물러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서 "민간인에 대한 정부군의 무력 사용을 강력히 비난하지만 극단주의 무장집단이 정부 측을 공격한 것 역시 강력 비난한다"고 말했다. 리바오동(李保東) 유엔 주재 중국 대사도 "중국은 정권 교체를 강요하는 압력을 단호히 반대한다"면서 "이는 유엔 헌장과 국제관계의 기본 규범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그러나 합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라면서 "다음 며칠 간 안보리에서 합의에 도달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탈리 추르킨 유엔 주재 러시아 대사도 이번 결의안 초안은 러시아가 앞서 제안했던 내용과 유사점이 있다며 부분적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클린턴 장관은 특히 시리아에 대한 무력 개입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그는 "몇몇 회원국들이 안보리가 '또다른 리비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우려를 갖고 있음을 안다"면서 "그건 잘못된 비교"라고 말했다. 아랍연맹과 영국, 프랑스도 결의안의 목적은 군사 개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31일(현지시간)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회의를 앞두고 힐러리 클리턴 미 국무장관(가운데)이 윌리엄 헤이그 영국 외무장관(왼쪽), 알랭 주페 프랑스 외무장관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미국·서방은 왜?
이같은 국제사회의 대응은 리비아 사태 때와는 180도 다른 양상이다. 리비아 사태 당시에는 영국, 프랑스, 미국이 '민간인 보호 책임'(R2P)를 내세워 전투기와 미사일을 동원해 적극 개입했으며 러시아와 중국도 기권표를 던지는 방식으로 사실상 묵인했다.
특히 리비아 사태 때는 안보리 결의안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거나 유엔의 결정을 기다리지도 않고 '인도주의적 개입'을 밀어붙였던 서방이 왜 시리아 사태에 대해서는 안보리를 통한 해결 절차를 '모범적'으로 따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일까.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시리아의 경우에는 리비아와 다르게 작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적 변수가 있다"면서 미국이 시리아에서의 정권 교체 등을 밀어붙이지 않는 것은 "상황 관리에 대한 자신감이 옛날보다 떨어진 것"이라고 풀이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란 상황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시리아에서까지 정치변동이 일어나 '판이 흐트러지는' 상황을 감당하기 벅차다는 것이다. 인남식 교수는 "그렇다고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행정부처럼 '중동에 민주주의를 이식하겠다'는 비전이 있는 상태도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인 교수는 미국이 '아랍의 봄'으로 정권 교체가 일어난 나라들에서 일종의 '학습 효과'를 얻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최근 이집트와 튀니지 총선에서 이슬람 정당이 압승을 거두는 등 이슬람주의가 부상하는 상황은 이슬람에 대한 우려를 접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결코 반길 만한 상황이 아니며, 같은 일이 알아사드 이후의 시리아에서도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다.
인 교수는 알아사드 정권의 기반인 이슬람 알라위파에 대항하는 세력이 이슬람 수니파라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은 시리아 수니파 안에 어떤 세력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카다피를 몰아낸 리비아 반군들 중에는 과거 미국에 맞서 싸웠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정파가 포함돼 있기도 했다.(☞관련기사 보기) 그는 "그런 우려 때문에 이스라엘마저 시리아에 대해서는 원론적 얘기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좀 더 직접적인 이해관계에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하미드 다바시 미 콜롬비아대 교수는 30일 미국 <리얼뉴스네트워크>와의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 우리의 가치가 우리의 이익에 부합할 때만 개입한다고 말했다"면서 "나아가 그 '가치' 또한 이익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우디나 미국, 유럽연합(EU) 같은 세력들이 마치 자비로운 천사로서 사람들을 돕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시각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이익'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서는 이미 수 차례 지적이 나왔다. 김재명 성공회대 겸임교수는 "나토는 리비아인들의 인권을 지켜준다는 명분으로 공습을 가했지만, 시리아는 나 몰라라 하고 못본 체 하고 있다"면서 "석유라는 변수를 빼면 설명이 안 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관련기사 보기)
중국·러시아는 왜?
그렇다면 석유도 없는 시리아의 정권에 대해 왜 러시아와 중국은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하며 결의안을 저지하려 하느냐는 물음이 나온다. 이에 대해 인남식 교수는 이 또한 '아랍의 봄'의 학습 효과가 작용한 측면이 있다고 풀이했다.
물론 이들이 배운 것은 미국이 얻은 교훈과 전혀 다르다. 인 교수는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중국·러시아와 우호적인 관계였는데 새로 들어선 과도정부는 이들과 일정 부분 거리를 두는 상황"이라며 "과거 리비아 개입 때 유엔 안보리 표결에서 기권한 것에 대한 후회가 있고, 이를 시리아에서 반복할 수 없다는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특히 시리아에 대한 지정학적 이해관계가 깊다. 러시아 정부는 30일 시리아 정권과 반정부 세력 간의 대화를 중재하겠다고 제안하며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알아사드 정권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 반면 반정부 단체들의 지도부 격인 시리아 국가위원회(SNC)는 알아사드가 퇴진하지 않는 한 어떤 협상도 없을 것이라며 거부했다.
인 교수는 러시아가 이같이 적극성을 보이는 이유 중 하나로 러시아 해군에 시리아 항구에 기항할 수 있도록 한 약속이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에도 계속 지켜질까 하는 불안감을 들었다. 그는 러시아의 전략에 대해 "냉전 시대처럼 봉쇄에만 갇혀 있을 수는 없다고 보고 따뜻한 남쪽 바다로 나가려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시리아의 타르투스항(港)에 자국 함정이 정박할 수 있도록 시리아와 비밀 약속을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시리아는 러시아산 무기의 중요한 구매자다. 이 때문에 서방에서는 러시아가 무기 시장을 잃지 않기 위해 시리아 제재에 미온적 입장을 보이고 있다는 의혹의 시선이 나온다. 러시아는 시위대에 대한 유혈 진압이 게속되는 와중에도 무기 수출을 강행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러시아의 적극성과 달리 중국은 시리아 내부 문제에 대한 외부의 개입은 적절치 않다는 원칙을 내세우는 가운데 비교적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인 교수는 "중국이 시리아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얻을 수는 없다고 본다"면서 그보다는 "중국과 러시아가 미국의 중동정책에 경합을 벌이는 관계가 되면서 일종의 '진영 싸움'이 되는 것 같다"고 보았다.
그는 "이란-시리아-이라크로 이어지는 '시아파 초승달 지대'가 중국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럽지 않다"면서 반대로 서방의 개입을 통해 시리아가 급격히 친(親)서방화하는 것은 중국에 부담스런 상황이며 중동 내 중국의 영향력에 플러스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을 중국이 하고 있으리라고 예측했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시리아 북부도시 홈스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장면. ⓒAP=연합뉴스 |
중동 지역 내에서도 시리아 사태에 대한 입장은 갈리고 있다. 시아파의 맹주인 이란은 동맹인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당연히 반대한다. 인 교수는 "시리아 사태의 또 하나의 변수가 이란"이라며 "시아파 연대의 중요한 축인 시리아에 수니파 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이란은 불편해하고 있고 그런 면에서 알아사드는 이란의 강한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수니파가 다수인) 터키는 정반대의 셈을 하고 있다"면서 "시리아 정권이 빨리 바뀌어야 자국의 영향력이 더 확대된다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등 수니파 국가들이 주축인 AL 또한 터키와 비슷한 입장이다.
지도부를 시리아 국내에 두고 있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등은 속내가 더 복잡하다. 팔레스타인 활동가이자 작가인 나세르 이브라힘은 "하마스는 혼란스러워하고 있다"면서 "시리아의 주요 야권 세력 중 하나가 (하마스와 친근한) 무슬림형제단이라는 것을 알지만 과거 시리아 정권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브라힘은 팔레스타인 내에서는 "한편으로는 민주주의와 자유를 지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의 헤게모니에 반대하는 국가로서 시리아의 역할이 손상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분위기가 있다고 전했다.
시리아 사태의 앞날은?
시리아 사태의 전망에 대해 인남식 교수는 당분간 "이런 지루한 사태가 계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제재에 동참할 가능성이 없고 서방이 군사 개입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알아사드는 "버틸 수 있다"는 것이다.
인 교수는 "시리아 정권은 지난 1988년에도 하마에서 2만 명을 학살하고도 살아남았다는(☞관련기사 보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알아사드가 정권을 내놓을 동기는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전망의 근거로 다시 한 번 '아랍의 봄'에 대한 학습효과를 들었다. 그는 "앞서 정권을 내놓았던 이집트의 무바라크나 튀집트의 벤 알리 모두 감옥에 가고 처발 받을 상황"이라면서 "알아사드는 망명할 데도 마땅치 않고, '버티면 다른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리아 내부 상황을 과거의 리비아와 비교하며 그는 "리비아는 국가과도위원회(NTC)가 조직되고 왕정 시대의 3색기를 내거는 등 저항 세력의 정체성이 있었지만 시리아는 그럴 조짐만 있을 뿐 리비아처럼은 못하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리비아나 튀니지처럼 모든 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도 아니며 알아사드를 지지하는 정파도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시리아는 리비아와 이집트의 중간 정도 상황인 것 같다"면서 그러나 비밀경찰과 보위대가 시위를 추적하고 있고 희생자가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수도 다마스쿠스와 알레포 등 친정권 정서가 강한 지역에서마저 시위가 나타나는 정황 등으로 봐서 사태가 더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가장 바람직한 상황은 알아사드 정권이 권위주의적 태도를 바꾸고 정치체제를 완전히 개혁해서 알라위파가 권력을 독점하는 상황을 수니파와 분점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라면서도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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