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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신자유주의, '대세'가 된 보수적 안보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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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레마에 빠진 신자유주의, '대세'가 된 보수적 안보정책

[한반도 브리핑] 美 공화당 예비선거가 보여주는 기회와 위기

미국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선두주자가 엎치락뒤치락을 되풀이하며 보는 재미를 높여주고 있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대세일 것 같더니 막상 예비선거가 시작되자 릭 샌토럼 전 상원의원과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에게 예기치 않은 타격을 입고 선두를 놓치며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롬니 후보 진영은 사우스캐롤라이나 예비선거 이후 흐트러진 전열을 정비한 후, 강력한 적수로 등장한 깅리치 후보에 반격을 강화하며 플로리다 주에서 다시 선두를 되찾은 듯하다. 예기치 않았던 반전과 반전을 되풀이 하는 공화당 예선은 시나브로 언론과 국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흥행대박'의 조짐을 보이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이 흥행대박의 뒤에는 해소하기 어려운 '집안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는데 미 공화당의 근심이 있다. 이 집안싸움이 후보 간의 단순 경쟁을 넘어서서, 공화당 주류와 쇄신파 사이의 갈등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이러한 갈등은 신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한계의 표출이라는 점에서 공화당의 우려는 보다 깊어진다. 신자유주의의 한계를 회피하기 위한 선거 전술로 '보수적 가치'를 내세우고 있기는 하지만 이러한 구호만으로 '표심'을 뜨겁게 달구지 못하고 있다는 것도 딜레마다.

신자유주의의 딜레마가 공화당 내부의 정치적 갈등으로까지 비화되고 있고, 공화당이 결국 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앉을 수도 있다는 현실은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려는 한국의 제 세력에 희망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반면 공화당 후보들이 내세우는 외교안보 정책이 상당부분 이미 오바마 행정부의 정책이고 공약이라는 현실은 2012년 이후 한반도 정세가 낙관적이지만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13년 체제'를 운위하는 지금, 미국 공화당 예비선거가 보여주는 기회와 위기의 양면을 보는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집토끼'를 둔 집안싸움?

한국에서 '박근혜 대세론'이 안철수 신드롬에 의해 금이 가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면, 미국에서 롬니 대세론은 샌토럼과 깅리치의 원투 펀치를 맞으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과 함께 한나라당 내부 계파 경쟁과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과 같이 미 공화당도 '집안싸움'으로 어수선하다.

예비선거에 들어가면서 부동의 선두주자인 것으로 보이던 밋 롬니 전 주지사가 흔들린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롬니는 예선 뚜껑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선거자금이나 조직력에서 타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있었다.

선거자금에 있어서 2011년 3/4분기 말(현재 연방선거관리위원회에 보고된 최종 시기)까지 롬니 측이 모금한 자금은 3200만 달러로서, 1700만 달러를 모금해 2위를 차지한 릭 페리 후보보다 거의 2배를 앞서 가고 있었고, 깅리치 후보의 300만 달러, 샌토럼 후보의 100만 달러와는 비교할 수도 없다. 연방 선거법의 자금 규제 제한을 받지 않는 슈퍼팩(슈퍼 정치행동위원회)에서도 지난 한 주 플로리다에서 롬니 측이 쓴 광고비용이 600만 달러인데 비해 깅리치 측은 200만 달러와 불과했다.

조직력에 있어서도 롬니가 전국에 선거 캠프를 꾸리고 예비선거에 임했다면 다른 후보들은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지 못해 중요하지 않거나 경쟁력이 없는 선거구는 아예 포기하고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렇게 압도적인 자금력과 조직력에 힘입어 확실할 것 같던 롬니가 흔들린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일차적으로는 후보들이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주면서 선거판을 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샌토럼은 기성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감을 파고드는데 탁월함을 보였고, 깅리치는 선거캠프 내부 불화로 자멸하는 듯 하다가 텔레비전 토론 등에서 발군의 개인기를 발휘하며 불길을 다시 살려놓는데 성공했다. 선두 주자로서 방심하고 있던 롬니는 불의의 타격을 받은 후 전열을 재정비해서 텔레비전 토론과 광고에서 상대 후보에 대한 반격을 강화했다. 화려한 개인기를 발휘하며 '집토끼'를 쫓는 개인전이 불꽃 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개인기의 뒷면에는 공화당의 깊은 분열이 자리 잡고 있다. 우선은 종교를 둔 분열이 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롬니는 잘 알려진 것과 같이 모르몬교도이고 한때는 교단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기까지도 했다. 그런데 모르몬교는 삼위일체론이나 예수관 등 교리적인 면에서 개신교와 다른 점들이 있기 때문에 기독교 일각에서 배척받고 있다. 특히 공화당을 받치고 있는 중요 세력의 하나인 복음주의적 기독교 측에서는 모르몬교를 이단시하고 있으며 모르몬교도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아이오와 예비선거 이후 복음주의적 기독교 지도자들이 모여 샌토럼을 공식적으로 지지하고 나선 데에는 종교적 이유가 깊게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적 차이는 롬니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이 된 이후에도 그의 발목을 잡는 주요한 요인으로 남아 있을 것으로 보인다.

▲ 플로리다주 잭슨빌에서 26일 열린 공화당 후보 TV 토론회에서 뉴트 깅리치(왼쪽) 전 하원의장과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격론을 벌이고 있다. 깅리치는 공화당 '쇄신파'의 지지를 받고 있고 롬니는 공화당 주류가 밀어주고 있다. ⓒAP=연합뉴스

두 번째 분열의 축은 공화당 주류와 '쇄신파' 사이의 분열이다.

공화당이 2008년 백악관을 민주당에 내주고 나서 '보수적 가치'를 더 강화해야 한다는 보수파는 2010년 '쇄신'을 내세우며 티파티로 결집했다. 이들에게 롬니는 보수적 가치를 배반한 자유주의자이다. 복지, 낙태, 인종 등의 이슈에서 민주당과 너무 가까운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롬니가 매사추세츠 주지사 시절 실시했던 건강보험제도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실시한 정책보다도 진보적이라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롬니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은 공화당이 백악관을 탈환하기 위해서는 보수적 가치를 더욱 강화해 '집토끼'를 확실히 단속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선을 포기한 미셸 바크먼 후보나 허먼 케인 후보를 지지하던 보수주의 당원과 활동가들은 샌토럼 후보와 깅리치 후보에게 힘을 모아주고 있다.

2010년 당시 유권자 사이에 강하게 유포되어 있던 기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을 '쇄신'이라는 프레임으로 수렴하려던 보수주의자들의 시도는 티파티의 성공에 힘입어 하원을 민주당에게서 탈환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이들의 본색이 강경 보수라는 것이 드러나고, 이들 스스로가 내세운 '쇄신'에 무색하게 본인들이 기성 정치인 못지않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급격히 힘이 빠졌다. '쇄신'을 부르짖는 이들이 하원 윤리위원회의 제재를 받았을 정도로 부패한 기성 정치인인 깅리치를 지지해야 한다는 아이러니도 이들의 힘을 빼고 있다.

반면, 공화당의 전통적 주류와 현 지도부는 롬니 후보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 '집토끼' 만으로는 부족하므로 중도적 유권자를 끌어안아야 한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상당수는 중도적 부동층으로 남아 있어 '보수적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 경우 오히려 이들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공화당 지도부에서는 아직도 깅리치가 하원의장 시절 당 내외에서 일으켰던 말썽들을 불편해 하고 있다. 밥 돌 전 상원의원이 깅리치를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나, 심지어 네오콘인 엘리옷 에이브람스조차 깅리치를 반대하는 것은 이러한 저류의 반영이다. 공화당 지도부 일각에서 이제는 롬니에게 힘을 몰아줘서 예비선거의 난맥을 정리해줘야 되지 않겠냐는 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반영한다.

그러나 공화당 지도부가 나설 경우 오히려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데 이들의 고민이 있다. 티파티로 대변되는 공화당 풀뿌리 조직과 활동가들은 기성 정치인에 대해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어, 지도부가 나설 경우 오히려 이들의 역풍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딜레마

사실 이 역풍보다 더 심각한 것은 공화당의 분열이 보수주의의 딜레마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레이건 대통령이 신자유주의의 프레임으로 이룩해 놓은 보수의 대통합이 그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국내적으로는 '작은 정부'를 내세우며 기업에 대한 규제 철폐와 감세, 공기업 민영화, 복지의 시장화를 추진하는 한편 국외적으로는 '강한 국가'를 내세우며 국방비를 늘리고 군사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이러한 정책은 두 개의 심각한 문제, 즉 사회 양극화와 재정적자를 야기할 수 있지만 이 문제는 시장의 '낙수효과'로 해결이 될 것이라는 해법이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제시되었다. 즉 시장화 정책으로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면 이것이 자연적으로 밑으로 흘러내리며 국민 모두의 생활이 향상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정부의 세수입도 따라서 증대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0년 시행된 신자유주의 실험은 1%와 99%의 격차만 확대하고 정부의 재정적자도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증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하고 있다. 미국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중인 유럽의 금융위기 역시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불어난 정부의 재정적자에 기인하고 있다. '작은 정부'와 '강한 국가'를 가능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었던 '낙수효과' 이론이 현실에서 처참히 파탄난 것이다.

이 상황에서 강경 보수 세력은 '작은 정부'와 '강한 국가'를 유지하되 '쇄신'이라는 프레임을 내세우거나, 낙태나 이민자 등 민감한 문제들에서 '보수적 가치'를 내세우며 선거를 돌파하려 하고 있다. 반면 공화당 주류는 의료보험과 사회보장 등 국가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하면서 과도한 신자유주의가 남긴 상처에 응급조치를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도 '낙수효과' 이론을 대체할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데 공화당의 근본적인 딜레마가 있다. 공화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세력을 통합할 이론적 근거 자체가 허물어졌지만 새로운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채 두 가지 다른 미봉책만을 붙들고 있다. 롬니와 깅리치의 분열은 신자유주의 붕괴의 정치적 표현에 다름 아니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6일 콜로라도주 버클리 공군 기지에서 연설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에 대한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공화당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지고 있다. ⓒAP=연합뉴스

보수적 안보정책의 주류화와 민주당의 한계

그러면 공화당의 분열은 민주당의 기회를 의미하는가? 그렇다.

공화당 내분만 민주당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1년 3/4분기 말까지 선거자금 8600만 달러를 모금했다. 공화당의 선두주자 롬니의 3200만 달러보다 2배 이상 많은 액수이다. 더구나 롬니는 예비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거자금을 계속 지출하고 있는 반면(예를 들어 3/4분기에만 롬니는 1400만 달러를 모금했지만 1700만 달러를 지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실탄'을 축적한 채 공화당 후보가 결정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은 하원에서 소수당임에도 불구하고 의원 선거자금으로 작년 6100만 달러를 모금, 5400만 달러를 모금한 공화당을 앞서기도 했다. 민주당은 백악관을 지키는 것뿐만 아니라 하원을 되찾겠다고 큰 소리 치고 있다.

물론 현역 대통령에게는 경제 사정과 실업률이 큰 부담으로 남아 있다. 작년 경제성장률은 1.8%에 불과했고, 실감 경제는 여전히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10년 계속 곤두박질치던 경제성장률이 2011년에는 회복세를 보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유럽의 재정위기, 전후 최초의 무역적자를 기록한 일본의 침체, 중국의 경기둔화 조짐 등은 불안 요소로 남아 있다. 오바마로 대표되는 민주당에서도 신자유주의의 몰락을 대체할 뚜렷한 방도는 찾지 못하고 있다. 단지 전임 부시 대통령 시기 말, 마치 김영삼 정권 말기의 한국 경제와 같이 추락하는 경제를 그나마 되돌려 놓았다는데 자족하고 있다. 의료보험 개혁도 미진하고, 경기부양책도 확실히 내놓지 못하고 있다. 민주당도 '작은 정부'의 덫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비해 오바마 대통령이 기댈 수 있는 것은 '강한 국가'일 수도 있다. 임기 중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고, 리비아의 카다피를 제거했다. 이라크에서도 철군했고, 아프가니스탄에서도 '전승국'으로 철군할 준비를 하고 있다. 북한과 이란에는 유엔 결의안으로 국제적 제재를 가하고 있고, 이란에는 유엔 결의안을 넘어서는 강력한 독자적 금융 봉쇄를 밀어붙이고 있다. '안보는 보수'라는 등식을 깨뜨림으로서 공화당이 반격할 빌미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오바마 대통령의 안보정책이 깅리치나 롬니의 안보정책 자문들의 정책과 상당히 접근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깅리치의 국가안보자문팀 일원이 일란 버만은 대 이란 정책의 근본적인 문제가 이란의 '핵개발 시계'가 '정권교체 시계' 보다 빨리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따라서 해결책은 다양하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이란의 핵개발은 지연시키고 정권교체는 촉진시키라는 것이라고 제시하고 있다.

롬니 진영에는 이보다 더 강경한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핵확산방지구상(PSI)을 기안한 것으로 알려진 로버트 조세프는 북한과 같은 국가와 대화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입장에서 2007년에는 북과의 협상에 반발해 사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오바마 정부의 대 이란 정책, 대북 정책에서 오바마의 색깔보다는 버만이나 조세프의 그림자가 비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하여 공화당 예비선거는 신자유주의의 딜레마와 보수적 안보정책의 주류화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물론 한국이 미국의 선거에 영향을 줄 수는 없지만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예리하게 보고 있어야 할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 둔 한국이 국내 정치에만 매몰되지 않고 이러한 흐름을 꿰뚫고 있을 때 2012년 격동하는 정세를 평화와 번영으로 유인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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