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럴까?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다. 정보 실패가 아니라, 정책 실패가 본질이다. 정보수집 체계의 문제가 아니라, 정보관리 체계의 문제가 핵심이다.
정보 수집이 아니라, 정보 해석의 무능이 문제
"사실(Facts)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해석되어야 한다." 정보란 그런 것이다. 정보는 타당성이 검증되지 않은 첩보와 다르다. 우리가 정보(Intelligence)라고 말할 때, 그것은 가공된 지식, 즉 타당성이 검증된 지식을 일컫는다. 신호(Signal)와 소음(Noise)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이것이 정보 판단에서 핵심 과제다.
국정원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용열차가 평양에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을 때,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이 제공한 영상정보가 근거일 것이다. 그것은 단편적 사실이다. 해석되어진 정보가 아니다.
정보 판단이란 전용열차가 몇 대인지, 역에 그대로 서 있는 열차 말고, 움직인 열차가 따로 있는지, 혹은 김정일 동선과 관련된 다른 정보가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 분석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 최소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말했어야 한다. '이 정도는 우리도 알고 있다'고 과시하려 했다면, 그것은 결과적으로 정보해석의 무능을 드러낸 사례다.
또한 영상정보가 미국에서 얻은 것이라면, 불필요한 정보 출처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미국의 항의를 받을 수 있다. 국제적인 정보 공유체계에서 특정 사실을 흘리는 것(leak)은 불신을 자초한다. 면피용으로 우방국이 알려준 정보를 흘린다면, 누가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려 하겠는가?
맥락과 관계없이 불쑥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도 적지 않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개념이 없다고 규정한다. 왜 개념이 사라졌을까? 단편적 사실들을 강조하는 경향은 대북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남북관계가 중단되어 있고, 개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북한 정보에 대해 책임감이 떨어지는 것이다.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아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쓸데없는 것을 너무 많이 아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이명박 정부 초기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해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러 갔을 때, 갑자기 대통령이 현재 태국산 쌀 가격이 톤당 얼마인지를 물어서 보고자가 혼났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대부분의 장관들이 본질과 무관한 지엽적인 정보를 숙지하느라, 청와대 보고가 너무 힘들다는 얘기도 있다. 실무자가 알아야 할 정보가 있고, 대통령이 알아야 할 정보가 있다. 태국산 쌀 가격은 실무자가 파악해야 할 정보이고, 장관이나 대통령은 인도적 지원의 정책적 의미와 그것이 정세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종합적인 판단을 해야 한다. 정책 판단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정보는 의미가 없다.
정보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올바른 정책 판단의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첩보들을 분류하고, 해석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정보 수집과 해석, 그리고 정책 판단은 연결되어 있다. 정보 수집보다 해석이 중요하고, 해석보다 판단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정보 수집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기술정보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필요하다. 당연히 정보 해석 능력이 갖추어져야 한다. 기계가 좋으면 뭐하나. 그것을 해석하고 판단할 수 없다면, 그림의 떡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정보 수집 역량의 약화는 국제적인 정보 공유의 위축 때문이기도 하다. 한미 정보 공유 사항을 불쑥 과시하면, 당연히 미국으로부터 중요한 정보를 받는 것이 어렵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중관계 악화다. 정보 공유는 기본적으로 정책 공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한중 양국 사이에 대북정책의 차이가 분명해진 상황에서 정보 공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중관계의 악화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 정보기관원들이 구금되거나 추방당한 사례도 적지 않다. 정책 실패가 결국 정보 수집 역량의 약화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 원세훈 국정원장 ⓒ뉴시스 |
북한 정보에 대한 신뢰 상실이 가져온 결과들
정보 수집과 관련해서 인간정보, 즉 휴민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견도 있다. 예산의 한계로 기술정보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 바로 휴민트다. 보수언론에서 민주 정부 10년 동안 휴민트 역량의 약화를 지적한다. 사실일까? 냉전시대의 공작 개념으로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러나 휴민트는 공작적 접근보다, 정부간 공식 대화나 민간접촉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많다. 냉전시대의 공작과 교류협력시대의 접촉을 비교해 보면, 휴민트의 양과 질은 비교할 수 없다.
민주 정부 10년 동안 한국이 미국에 비해 북한 정보가 많았던 것은 그만큼 접촉이 활발했기 때문이다. 공식 대화 과정에서 보고 듣는 것이 적지 않다. 북한 관계자들의 개인별 특성이나 권력구조, 그리고 기관별 역학관계 등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민간 접촉의 과정도 마찬가지다.
다만 개인적 관찰이나, 단편적인 대화는 얼마든지 주관적일 수 있다. 인간정보는 다른 정보와의 연관성 속에서 파악해야 한다. 하물며 고위층 망명을 비롯한 공작적 접근은 말할 것도 없다. 휴민트의 왜곡 가능성은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 왜곡 사례를 통해 확인된 바 있다. 이라크 망명자들은 자신의 정보 가치를 높이기 위해 대량살상무기의 존재를 허위로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부시 행정부는 전쟁의 명분을 강화하기 위해 확인되지 않은 정보를 그대로 근거로 이용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1994년 7월 탈북자 강명도 씨의 '북한 핵보유 발언'은 당시 북미 관계에 제동을 걸고자 했던 김영삼 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강명도 개인의 공명심이 결합한 결과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 다시 확인되지 않은 북한 정보가 넘쳐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역할이다. 북한 정보는 민간이 확인하기 어렵다. 정부가 대부분의 하드웨어를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사실로 확인할 수 있는 정보와 확인되지 않은 첩보를 구분해 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와 오히려 정부가 첩보를 양산하는 경향이 있다. 늑대 소년의 비극에서 보듯, 정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최소한 정부는 북한 정보에 대해 신뢰를 잃어서는 안 된다. 신뢰를 잃으면 어떻게 되는가?
최근 증시에서 발생한 '영변 경수로 폭발설' 같은 사기 집단의 의도적인 작전이 끼어들 여지를 준다. 증시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이미 시장에 루머가 돌았는데, 정부는 무엇을 했는가? 기술정보, 즉 방사능 수치 등을 확인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시점에서 최소한 루머의 출처가 과연 신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개입이 가능했다. 정부의 무능한 정보 능력이 확인되면서, 사기꾼들이 정부를 갖고 놀았다. 개탄스럽다. 문제는 북한 정보에 대한 정부의 판단과 신뢰가 회복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이런 사건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점이다.
정보의 정치화,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정보 실패는 정보 수집의 단계가 아니라, 정보 판단의 순간에 발생할 때가 더 많다. 20세기 대표적인 정보 실패의 사례로 들고 있는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나, 독일의 소련 침공은 정책결정자가 당시 정세에서 그럴 가능성이 없을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정보기관의 경고를 무시한 사례다. 이라크 전쟁의 빌미가 되었던 대량살상무기의 정보 왜곡 역시 전쟁을 해야겠다는 정책적 판단이 정보 판단의 왜곡을 가져온 사례다.
관료체제에서 정보기관은 정책결정자가 듣고 싶은 정보를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반되는 첩보 중에서 정책결정자가 선호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보 왜곡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정보 실패가 알고 보면, 정책 실패로 해석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보기관이 정보를 왜곡해서 분류하고, 정책결정자는 그것을 '희망적 사고'의 근거로 활용하는 것이 정보의 정치화다.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북한 붕괴론'이 대표적이다. 정책기조가 북한 붕괴론에 기울어져 있으면, 주로 정보 당국은 그것을 강화하는 정보들, 예를 들어 북한 경제의 악화 징후, 북한 주민들의 불만, 그리고 엘리트간의 균열의 증거들을 우선적으로 수집하고 해석한다. 숲을 봐야 하는데, 나뭇가지만 주워서 '희망적 사고'를 강화하는 것이다.
정보의 정치화를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정보 흐름의 장벽을 제거하고, 정보 공유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국정원의 독대 보고를 줄이고, NSC를 통해 부처간 정보공유 체계를 운영한 것은 모범적 사례다. 필자가 정부에 있을 때 몇 번 참여했던 정보평가회의는 각 기관별 장점과 단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종합적인 정보 판단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는 부처간 이견이 일상적이다. 부처간 정보 협력 체제가 붕괴한 결과다. 공유되지 않은 정보는 왜곡을 교정할 수 있는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언제든지 정보 실패로 이어진다. 물론 부처간 정보 공유 체계의 부재는 정책 조정 체계가 존재하지 않은 결과일 뿐이다.
가장 비극적인 것은 국정원의 정치화다. 민주 정부 10년은 정보기관의 국내 정치 개입을 제도적으로 막았다. 과거 독재정권의 손발이 아니라, 국가 정보에 충실하라는 의미로 이름도 국가정보원으로 정했다.
그런데 이 정부 들어와서는 어떻게 되었는가? 민간인 사찰은 말할 것도 없고, 유엔 인권기구 관계자를 미행하다 발각당하는 국제적인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역사의 퇴행이고, 민주주의의 후퇴며, 헌법을 유린하는 있을 수 없는 사태를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이래서야 국가 정보라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할 수 있겠는가? 알아야 할 정보는 모르고, 알지 말아야 할 정보 수집에 열을 올리는 것은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필자와 노무현 정부에서 함께 일했던 국정원 직원들은 대부분 유능하고, 애국심이 강하며, 공무원으로서의 품성을 갖춘 분들로 기억한다. 그랬던 국정원이 어떻게 이토록 무너질 수 있을까? 어떻게 여야 모두로부터 무능한 아마추어로 비판받는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단 말인가? 정보 역량의 강화는 차기 정부가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중의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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