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강력한 후보로 꼽히는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는 10일(현지시간) '텃밭' 뉴햄프셔 예비선거에서 38%를 얻어 2위 후보를 10%포인트 이상의 차로 멀찌감치 따돌리며 승리를 확정지었다. 론 폴 의원과 존 헌츠먼 전 유타 주지사가 뒤를 이었다. 롬니는 지난 3일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도 승리한 바 있어 롬니 대세론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선이 미국은 물론 세계 주요 언론의 주목을 끌고 있지만 이들 예비후보들의 자질이 누구라고 할 것 없이 의심스럽다는 비판도 나온다. 경제회복을 이끌 능력 등은 차치하고서라도 '공화주의'의 기본인 인종 간의 평등에 대한 인식조차 의심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 시사주간지 <더 네이션>의 존 니콜스는 10일(현지시간) 칼럼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흑인 등 정치적·경제적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과거의 위대한 공화당 출신 정치인들이 강조했던 '정통 보수'의 이념인데도, 현재의 공화당 예비후보들은 이런 선배들의 뜻을 전혀 살리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바로보기) <편집자>
▲10일(현지시간)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공화당의 예비 대선후보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가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새로운 공화당의 인종주의 정치 : 더 이상 링컨의 당이 아니다
공화당은 전투적 노예해방론자들에 의해 설립됐고, 오랜 역사를 통틀어 인종차별과 흑백 분리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본산이었다. 그러나 공화당은 196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남부 전략'(미국 대선에서 승리의 향방은 남부의 백인 표에 달려 있다는 선거 전술 : 옮긴이) 식의 정치로 퇴보했다.
공화당은 또 1988년 대선에서 조지 W.H. 부시(아버지 부시)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리 애트워터 전 공화당 전국위원회 위원장이 '암호화된 비판'이라고 지칭했던 그런 논법으로 후퇴했다. 즉 강제 버스 통학 정책(인종이나 경제 수준에 따른 학생들의 비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거주지 밖의 학교라 해도 신입생을 강제 배정하는 제도 : 옮긴이), 무료 법률 상담, 복지 쿠폰, 식량 쿠폰 지급 등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2012년 대선 과정은 공화당의 이러한 퇴보를 가속화시켰다. 공화당의 대선 예비 후보들은 인종, 계급, '복지 제도 수급권'(entitlement)에 대해 판에 박힌 고정관념을 보이고 있다.
아이오와 코커스가 열리기 전날 저녁, 샌토럼 전 의원은 지지자들을 앞에 두고 "나는 다른 사람들의 돈을 흑인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흑인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론 폴 의원은 자신의 이름으로 발행된 소식지(뉴스레터)에 실린 내용을 부랴부랴 해명해야 했다. 이 소식지는 "워싱턴 D.C.의 흑인 남성 중 95%가 범죄자이거나 준 범죄자"라는 내용,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은 "백인 혐오의 날"이라는 묘사, 1994년 폭동이 일어났던 LA의 질서가 회복된 것은 복지 쿠폰이 도착하고 나서였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또다른 예비 후보인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은 아동노동 금지법을 철폐해 가난한 집 아이들이 학교 경비 임무를 맡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깅리치는 오바마 대통령을 수 차례나 "미국 역사상 최고의 식량 쿠폰 대통령"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깅리치는 또 "미 유색인종지위향상협회(NAACP)의 초대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나는 그들의 모임에 가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흑인)의 공동체가 왜 식량 쿠폰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수표를 요구하는지 얘기해볼 것"이라는 내용의 성명을 냈다.
이 모든 사태는 섬뜩하리만큼 당황스럽다. NAACP는 깅리치와 샌토럼을 비난했다. 벤자민 토드 질러스 NAACP 대표는 깅리치에 대해 "전 하원의장이란 사람이 이런 부정확하고 분란을 일으키는 성명서가 어떤 방식으로든 국가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니 부끄러운 일"이라면서 "식량 쿠폰을 사용하는 사람 중 다수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아니며, 이들 중 대부분은 직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가장 유력한 후보인 롬니 역시 다른 경쟁자들의 과도함을 비판하지 않고 샌토럼과 깅그리치가 불을 붙인 이 주제를 거론했다. 롬니는 "영원히 늘어나는 재정 지원 사회의 지출"에 대해 불평하고 이는 "미국의 정신이 근본적으로 썩었다"는 뜻이라고 규정했다.
이같은 롬니의 말은 다른 후보들에 비해 훨씬 더 실망스럽다. 그는 다른 후보들보다 현실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 조지 롬니는 1960년대 공화당 내에서 공민권과 반(反)빈곤 프로그램, 도시 재개발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였다. 미시간주 주지사로 선출된 조지 롬니는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함께 행진하기도 했다. 격동의 60년대, 조지는 상당한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선거권을 부여받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유권자들을 공화당을 대표해 환영하고, '남부 전략'의 암호화된 언어들과 분리주의자들을 거부했다.
1964년 미국 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공화당 출신 선출직 공무원이었던 조지는 대선에서 배리 골드워터 후보를 지지하는 걸 거부했다. 조지는 골드워터가 1964년 공민권법에 반대 투표한 의원이며 앨라배마나 미시시피주 등 남부의 불만 가득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선거 전략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골드워터는 "미국과 공화당의 기본 원칙"을 중시하는 사람들과 당원들에게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어떤 공화당원들은 당시 미국 곳곳에서 터져나온 봉기 사태를 민주당 출신 린든 B. 존슨 대통령의 빈곤 퇴치 정책 탓으로 돌렸지만, 조지는 오히려 정부의 정책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조지는 연방정부의 재정을 베트남 전쟁에 낭비할 것이 아니라 미국의 예산 우선순위를 바꾸어 "자국민들의 인간적·사회적·경제적 문제들"에 더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지 롬니의 시각은 이처럼 존경할 만한 공화당의 전통이었다. 이런 전통은 그 이후에도 유지됐다. 1980년대에 마틴 루터 킹 기념일 제정을 공공연히 반대했던 몇몇 공화당원들은 찰스 메이시아스 상원의원(메릴랜드)에게 호된 꾸중을 들어야 했다.
메이시아스는 1960년대 하원 민주당 의원들이 모든 미국인들에게 공민권과 투표권을 주는 입법을 꺼려할 때 주도권을 발휘했던 인물이다. 그는 어떤 공화당원들이 자신들의 당이 이룬 가장 뛰어난 유산을 헛되이 만들려 하는데 전율했다.
또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는 공화당의 잭 켐프 전 하원의원(뉴욕)이 그런 역할을 맡았다. 미 정부의 내각 담당 장관으로 일했고 1996년 부통령 후보로도 지명됐던 켐프는 공화당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과 다른 소수 공동체들에 대해 고정관념을 보이고 있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초반에는 밋 롬니가 켐프의 뒤를 이어 그의 아버지처럼 공화당의 가장 훌륭한 전통을 되살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그렇지 않다.
롬니는 그의 아버지와는 달랐다. 그는 공민권, 사회정책, 빈곤과의 전쟁에 반대하는 1960년대식 '백인의 반격'과 같은 언사를 주워섬기는 반동세력과의 관계를 끊기는커녕 비판조차 하지 않았다. 실제로 미국이 "재정지출 국가"라는 그의 노골적인 불평은 이들의 주장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또 다른 공화당 대선 주자 존 헌츠먼 전 주지사가 더 나쁜 경우다. 헌츠먼은 공화당 내에서 중도주의자라는 위치를 잡으려 하고 있지만 별다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헌츠먼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를 앞두고 다른 후보들과 자신을 뚜렷이 구분짓는 완벽한 개막전을 치렀다. 그의 동료 경쟁자들이 "흑인의 삶을 개선"하는데 반대한다거나 미국의 첫 번째 아프리카계 대통령을 "가장 뛰어난 식량 쿠폰 대통령"이라고 부르는 동안 말이다.
헌츠먼은 미트 롬니가 되지 못한 그런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옳은 일을 할 용기가 없었다. 더 불안한 것은 그가 단지 "미국과 공화당의 기본 원칙"을 주장하는 것이 현재의 공화당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내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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