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EU 외교관은 4일(현지시간) 금수 시기와 기간 등에 대해서는 아직 토론의 여지가 있지만 수입 금지에 대한 공감대는 형성됐다고 밝혔다. 이란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그리스와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반대 입장에서 돌아섰다는 것이다.
이 외교관은 "이란산 원유 수입에 대한 원칙적 합의가 이뤄졌다"면서 "현재 논의 중인 것은 어떤 예외를 인정할 것인지와 법률적 검토 등"이라고 설명했다.
공식적 합의는 오는 30일 EU 외무장관 회의를 전후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알렝 쥐페 프랑스 외무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산 석유를 수입하는 국가들에 제시할 대안이 있다"면서 이같이 언급했다.
그러나 금수 조치가 즉각 발효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 외교관은 이같은 조치가 실제 적용되는 것은 미국의 제재안이 발효되는 것과 같은 시기가 될 것이라고 <가디언>에 말했다. 이란 중앙은행과 거래하는 모든 주체에 대해 금융제재를 가하는 미국의 국방수권법안은 향후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친 후 발효된다.
EU의 금수 조치가 현실화되면 이란에는 심대한 타격이 될 전망이다. EU는 중국에 이어 이란산 원유의 제2의 고객이다. 260만 배럴에 이르는 이란의 하루 원유 수출량 중 45만 배럴(17%)이 유럽으로 간다.
그러나 이란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다. 이란석유공사(NIOC)의 SM 캄사리 국제국장은 <알자지라> 방송에 "우리는 이 고객들을 매우 쉽게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이란 고위당국자도 유럽은 타격을 받겠지만 이란은 새 수출처를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알자지라>와 <가디언> 등 외신들은 재고량 등을 고려할 때 새 구매자에게 원유를 팔기 위해서는 할인된 가격으로 팔아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U가 이란산 원유 금수조치에 원칙적 합의를 이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가 급등해 북해산 브렌트유는 4일(현지시간) 장중 한때 114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의 제재조치 발표 이후 이란 리알화(貨) 환율 또한 전달 대비 40% 급등했다. 사진은 한 이란 행상이 플라스틱 양동이에 담은 돈을 세고 있는 모습. ⓒ로이터=뉴시스 |
앞서 이란 정부는 자국 원유에 대한 금수 조치가 중동 지역에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상황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아타올라 살레히 이란군 사령관은 전날 미군 항공모함이 페르시아만에 재진입할 경우 '행동'에 들어설 것이라면서 "우리는 두 번 경고하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서방 국가들은 이란의 위협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호르무즈 봉쇄는 이란 경제를 망치는 자살 행위가 되리라는 것이다. 미 국방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살레히 사령관의 위협을 일축했다. EU도 이란의 위협을 "허세"라고 보고 있다.
경제 제재로 인해 이란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위배되는 핵 프로그램을 재고하게 할 것이라는 것이 유럽의 입장이라고 <가디언>은 해석했다. 미국도 EU의 '원칙적 합의'에 대해 빅토리아 눌런드 국무부 대변인을 통해 환영의 뜻을 표했다.
하지만 EU가 금수조치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유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날 장중 한 때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은 전일 대비 배럴당 2달러 오른 114달러에 육박하기도 했다. 이같은 제재 조처가 당장 발효되는 것은 아니라는 소식이 추가로 나오면서 다소 내리긴 했지만 여전히 111~112달러 선에서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국제 유가가 고공행진을 할 경우 가뜩이나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유로존 국가들, 특히 이란산 원유 의존도가 높은 남유럽 국가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따라 EU는 이란 원유 금수의 여러 예외조항들을 둘 것이며, 이는 결국 금수 조치 자체의 실효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