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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흘린 원세훈 원장, '면피'가 급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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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첩보' 흘린 원세훈 원장, '면피'가 급했나?

대북 정보력, 정보 취급 방식 모두 '아마추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사망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보력과 정보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김 위원장의 사망을 공식 발표하기 전까지 그 소식에 깜깜했던 고위 당국자들은 면피를 시도하고 있지만, 오히려 수렁으로 빠져드는 모양새다.

비난의 화살은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집중되고 있다. 원 원장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김정일 위원장의 전용열차가 '평양용성 1호역'에서 움직인 적이 없다고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 원장은 "미국의 군사위성 사진을 통해 김정일 전용열차가 그대로 평양에서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고 복수의 정보위원들이 전했다. 17일 오전 8시 30분 달리는 열차에서 사망했다는 북한의 공식 발표가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다.

그러나 <조선일보>는 군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군에서는 16~18일 사이 김정일 전용열차가 움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국정원과 군 당국이 정반대되는 의견을 내놓는 것에 대해 신문은 "두 기관 간의 협의와 정보 공유 시스템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보도가 파장을 일으키자 국방부 관계자는 21일 열차가 안 움직였다는 원세훈 원장의 말이 맞다고 밝혔다. 군과 국정원의 정보 공유에는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조선일보>가 인용한 '군 고위 당국자'가 말을 잘못 했거나 상황을 잘 모르고 했던 말을 국방부가 바로잡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정보위가 끝난 뒤 원세훈 원장에게 전화로 다시 물어본 결과 '북한의 공식 발표와 시점, 장소가 다르다는 뜻이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했다. 원 원장 본인이 한 입으로 두 말을 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열차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원 원장의 발언은 정보위 소속 여야 간사가 공개하기로 합의한 게 아닌데 뒤늦게 한나라당 의원을 통해 전파된 것이었다.

▲ 원세훈 국가정보원장 ⓒ연합뉴스

유출, 말 바꾸기, 혼선…


원 원장은 북한의 공식 발표를 듣고 나서야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알았다고 국회에서 밝힌 바 있다. 최고 정보기관의 대북 정보 수집 능력 부재를 자인한 것이다. 그러나 정보력 부재도 문제지만 정보를 다루는 방식 또한 매우 아마추어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선 국가 안보에 필수적인 대북 전략정보(SI)를 부주의하게 발설한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기에는 원 원장의 발언을 흘린 한나라당 의원들에게도 공동 책임이 있다. 정보기관의 사정에 정통한 A 씨는 "SI 전략정보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라며 "정보위원들에게 제공하더라도 철저한 보안 약속을 먼저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국정감사장에서 '블랙북'(대북첩보보고서)을 흔들며 말했다는 이유로 중징계를 받은 군 고위 당국자가 있을 정도로 SI 정보는 조심해서 취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선원 전 청와대 안보전략비서관은 원 원장의 발언에 의해 한미간의 갈등이 벌어질 수 있음을 지적했다. 박 전 비서관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미국이 제공한 SI 자료에 대해 거론하자는 합의가 한미간에 없었을 것이라며, 미국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는 "미국이 오늘 아침에 거세게 항의했을 것"이라며 "위키리크스를 보면 이명박 정권에서 (미국이 한국의 정보 유출을 항의한)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국정원장이 첩보 수준의 얘기를 국회에서 흘린 것에 대한 지적도 있다. 통일부 장관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첩보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를 말하는 것이고, 정보는 다양한 검증을 통해 확정된 것으로 둘은 완전히 다르다"라며 "열차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건 첩보인데 국정원장은 확정된 정보를 서비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첩보는 혼란만 부추길 뿐"이라고 강조했다.

원 원장이 말한 내용이 첩보에 불과하다는 것은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평양용성 1호역'에 있었다는 그 열차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전용열차는 최대 7대 이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원 원장은 용성역에 있는 열차만 언급했다는 점에서 첩보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국내정치적 고려만 있는 정보 당국

그렇다면 원 원장과 여당 의원들은 왜 이같은 무리수를 뒀을까. 우선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보력 부재에 대한 비판을 피하기 위한 발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A 씨는 "김 위원장의 사망 사실을 TV로 알았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보 실패를 호도하려는 면피성 행태"이라며 "북한 정보를 아는 것처럼 허세를 부리고 있다"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박선원 전 비서관은 "김정일 동향 정보가 전혀 없었던 게 아니냐는 비판을 벗어나기 위해 뭔가 한 마디 한 것이 대형 정보사고가 되었다"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정보 공개는 북한이라는 상대에 대해 우리의 판단을 드러내는 의미가 있다"며 "그러나 정보 당국의 유출 행위는 국내정치적 고려만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박 전 비서관은 "'안보 장사'를 하려는 신문이 판을 흔들어보려는 소재로 악용"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보수언론은 원 원장의 발언을 대서특필하며 김정일 위원장 사망과 관련한 북한의 공식 발표에 의구심을 드러냈다.

국정원장, 보수 정치인, 보수언론의 이같은 '플레이'는 김정일 사망 당시의 진실이 무엇이었냐는데에 국한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정보당국의 수장이 확실치도 않은 첩보를 유출한 파장은 김정일 위원장이 타살됐다는 설, 나아가 북한 정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설 등을 부추겨 김정일 사후 북한 체제에 대한 오판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

DJ·노무현 정부 때문에 망가졌다고?

아울러 전문가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국정원의 대북파트가 소외되면서 휴민트(인간정보)가 붕괴된 결과 정보력이 부실해졌다는 <조선일보>의 이날 기사를 반박했다. 상황을 완전히 거꾸로 진단한 것이라는 것이다.

A 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특히 원세훈 원장 취임 이후 국정원이 정보파트와 정책파트를 통합시켜 대북 정보라인이 뭉개졌다"라며 "정보 분야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사람이 국정원장이 되면서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교수는 "휴민트 정보에서는 남북 정부 당국의 공식 접촉, 인도적 지원과 경제 협력을 통한 민간 왕래 등 공개적인 교류 과정이 가장 중요하다"라며 "그렇게 얻는 정보가 훨씬 더 신빙성 있고 중요한데 이명박 정부 들어 교류가 크게 위축되면서 정보 실패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2008년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이상설이 나왔을 당시 정보 당국은 '김정일이 혼자 양치질을 할 만큼 회복됐다'는 식의 상세한 정보를 흘린 바 있다. 이에 따라 북한 권력 핵심부에 있는 정보원이 발각되어 숙청됐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게 사실이라면 대북 정보력 상실의 주된 이유는 바로 이명박 정부가 제공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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