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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학과 쓸쓸한 퇴조, '미래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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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학과 쓸쓸한 퇴조, '미래에 대한 탐구'를 포기하려는가

[한반도 브리핑] 남북관계 단절과 신자유주의가 만날 때

그저 심기가 불편한 일일 뿐이다. 북한학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최근 몇 년간 몇몇 대학의 북한학과가 없어지고 있는 일은 불편함을 넘어 위기감까지 준다. 쉽게 말해 시장이 없어지고 있지 않은가? 시장이 없는데 어디에서 물건을 팔며, 수익을 올리겠는가? 그저 막막할 뿐이다. 대학이 이익을 기준으로 학문을 평가하고 있는 현실의 한 단면을 드러내는 것 같아 아쉬울 뿐이다.

최근 동국대 북한학과를 둘러싼 논란이 일단은 존치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나, 그 과정에서의 문제가 마치 남북관계의 오늘을 보여주는 것 같아 더 더욱 아쉽다. 만약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남북간에 할 일이 많이 있었다면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한국에서 북한학은 필수적으로 요청되는 지역 연구이자 동시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영역이다. 북한에 대한 이해 없이 올바른 통일정책을 세울 수 없는 것처럼, 북한의 미래와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탐구 없이 어떻게 통일 한국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겠는가?

▲ 대학 학과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동국대생들의 퍼포먼스 ⓒ연합뉴스

북한학은 분단과 동시에 탄생했고, 통일이 되어도 지속되어야 할 학문이다. 남북관계의 부침에 따라 등락을 거듭할 수는 있지만 - 이는 다른 학과도 마찬가지이다 - 아예 소멸되어야 할 학문 분야는 아니다. 당장에 '돈'이 되는 학문이 아니라고 하지만 민족의 문제를 고민하고, 분단의 문제에 해법을 찾는 학문은 '돈'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북한학은 지역학으로서, 그리고 미래학으로서의 위상이 강화되어야 할 학문이다. 또한 여타의 학문 분야에서도 적극적으로 사고하고 탐구해야 할 학문이다. 자연과학이나 공학, 예술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북한'과의 교류·협력을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분야이고, 북한학은 이 모든 것을 가로지르는 학문이어야 한다.

과거 동·서독의 경험을 반추해보자. 당장 통일이 되었지만 행정 전문가만 무성할 뿐, 정작 동독 전문가는 부재했던 상황으로 사회 통합에도 실패하고,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에서 온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물론 우리와 독일은 다르고 또 통일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지 지금으로서는 예견하기 힘들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북한 문제의 전문가를 양성해내지 못한 채 맞이할 통일은 통일 이후를 준비하고 대처하는 데에서 지금 당장의 돈 몇 푼과는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부담을 안겨주게 될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먼 미래의 이익을 희생하는 꼴과 다름이 없다.

한국에서 북한학은 애초 정부 관련 기관이나 대학의 연구소, 언론 부설 기관으로 출발했다. 최초의 관련 연구소는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1957년 설립)로 알려져 있다. 대학에 정식학과로 설치된 것은 1994년 동국대 북한학과가 최초이며, 이후 95년 명지대, 96년 관동대, 97년 고려대, 98년 선문대학교에 학부 과정의 학과가 설치되었다. 대학원으로는 90년 서강대 공공정책대학원, 95년 경기대의 통일안보대학원, 연세대 통일학협동과정, 97년 경남대 북한대학원, 2000년 이화여대 북한학협동과정이 설치되었다. 이들 중 학과에 북한학과를 유지하고 있는 대학은 현재 동국대와 고려대 둘 뿐이다. 앞서 말한 여타의 대학은 학과가 통폐합되어 없어지거나, 명칭을 바꾸어서 지금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제 동국대 북한학과가 통폐합되어 없어진다면 고려대 북한학과만이 명맥을 이어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보면 북한학과를 굳이 학과로 유지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학부에서는 여러 가지 다양한 학문의 이론적·방법론적 훈련을 쌓고 대학원 과정에서 충실하게 북한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학과를 폐지하라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더구나 학과를 폐지한 이후 대학원 교육이 충실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대책도 없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가? 지금까지 학과를 잘 유지하고, 충실하게 교육해 왔다면 더 충실한 대학원 교육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사실 북한학과의 폐과는 오늘의 남북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물론 오늘의 남북관계보다 대학이 맞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힘이 더 클 것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당면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파탄과 어려움이 분명 북한학과의 운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남북관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북한학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남북한 교류와 협력이 위축된 가운데 그에 따른 인력의 요구가 줄어들고 있다. 아주 단순히 말하자면,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 육성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만약 남북간의 교류와 협력이 활성화되고, 더 많은 북한학 전공자가 요구되는 현실이라면 북한학과의 운명이 지금과 같았을까? 여타의 학문분야도 다를 바 없다. 그런 점에서 북한학에 특혜를 요구하지는 말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학이 앞서 말한 것처럼 지역학이자 동시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진지한 탐구라고 한다면 이는 유행처럼 쉽게 입고 벗는 그런 학문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역시 여타의 학문도 그래야 한다는 의미이다. 더구나 대학이라는 최고의 학문 전당에서는 더더욱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남북관계의 부침이 곧 북한학과의 부침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는 남북 상호간의 정치적·경제적·군사적 등등의 다툼으로 얼마든지 부침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는 곧 남북 상호간 발전을 위한 고통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북한학에서는 이러한 부침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학문하는 과정은 하나하나의 오랜 기간의 축적을 통해서만 발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몇 년간 각 대학에서 북한학과의 운명을 보고 있자니, 북한학의 발전은 학문의 발전을 고민하기 전에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먼저 걸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 길 위에 서있다. 북한학과의 운명을 통해서 남북관계의 명운도 같이 생각나게 하는 사건이자 역사이다.

며칠 전, 이제는 은퇴한 한 원로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가 망했지만 그에 대한 연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북한은 60년 이상을 한반도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앞으로 설령 북한이 망한다 하더라도 북한 연구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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