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최대주의 전략'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에 관하여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최대주의 전략'의 어리석음과 무책임에 관하여

[미래연 주간논평]

한미 FTA 비준안의 국회통과를 저지하겠다고 했었다. 하지만 통과되었다. 그러자 "날치기"를 성토하면서, 대통령의 서명을 막겠다고 했었다. "백만 명이 모이면 서명을 막을 수 있다"는 소리도 나왔다. 백만 명이 모이지도 않았고 서명을 막지도 못했다. 이제는 뭘 막자고 나서야 할까?

날치기가 있기 전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혼할 수 없는 결혼"과 같기 때문에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었다. 국회 비준과 대통령 서명이 이뤄진 지금은 정권을 바꿔서 파기하자고 한다. 불과 한 달 전에는 파기불가능이라서 맺으면 안 되었던 협정이 어떻게 그 사이에 파기할 수 있는 협정으로 둔갑을 했을까?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이것은 한 쪽에서 일방적인 의사표현만으로 파기가 가능한 협정이다. 그러니까 앞으로 언제든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파기할 수 있다. 한국 쪽에서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고, 미국 쪽에서도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 있다.

이 협정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우려 중에는 타당한 것도 없지 않다. 나아가 설사 과장 또는 오도의 결과로 분출되는 우려라고 할지라도 시민적 주권의 표현으로서 정치체제로부터 당연히 존중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충분한 논의를 거치지 않고 표결을 강행한 집권세력에 대한 비난과 성토는 당연하다. 실업률 통계를 조작하고 물가지수도 수학적으로 마사지하는 정부, 급기야 투표율까지 조작해보려고 더러운 짓을 벌인 집단에 대해 분노하고, 그 분노를 표출하는 것도 당연하다.

일반 시민들이 정부와 집권당의 처사에 항의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건강한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라면, 특히 세상을 조금이라도 낫게 만들겠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정치인이라면, "무엇"만이 아니라 "어떻게"에도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맘에 안 드는 일이라고 해서 그냥 없애버리면 된다는 생각은 자신의 전지전능을 믿는 유치한 착각 아니면 전제자가 되겠다는 불순한 무의식의 반영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심사에 젖은 사람들은 반대파로서 전투의 선봉에는 잘 나설지 몰라도, 책임감 있는 정책의 입안이나 시행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까마득한 소수 의석을 가지고 국회통과를 저지하겠다는 발상, 대통령의 손을 떨게 만들어 서명을 막겠다는 발상, 집권만 하면 당장 파기해버리겠다는 발상, 등은 모두 어리석고 무책임한 최대주의 전략에 해당한다. 맘에 안 드는 일이 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시의적으로 최선인지를 묻기 전에, 그것을 없애버리는 길 말고 다른 길은 모두 막아버리는 전략이다. 북받친 시민들의 감정의 불에 기름을 끼얹는 선동적 효과는 있겠지만, 뒷감당을 어찌할지 애당초 복안 자체가 없기 때문에 오래 갈 수가 없다.

한미 FTA의 결과로 한국 전체의 국민경제가 어찌될지를 예측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더라도 논쟁의 주제다. 어느 쪽의 얘기가 맞을지는 두고 봐야 안다는 얘기다. 단, 예컨대 이로 인한 변화가 한국 농촌의 고령자들에게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 뻔하다. 따라서 처음부터 이 사안과 관련해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이 두 가지였다 - 국민경제 (및 사회구조) 전반에 걸쳐서 어떤 효과가 초래될 것인지를 최대한 정확하게 확인해서 정책판단의 기초로 삼아야 하고, 이로 인해 직접 이익을 보는 분야와 직접 손해를 보는 분야 사이에 편익과 비용을 공정하게 배분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의제가 핵심이라는 사실은 지금도 앞으로도 변함이 없다. 반면에 최대주의 전략을 취하는 사람들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우려만을 근거로 협정을 절대악이라 치부하면서,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키는 데 전력을 다한다. 그러나 이것은 스스로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다는 징표에 지나지 않는다. 장차 상황이 전개됨에 따라 시의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다고 절망해야 할 까닭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나 자신도 여러 번 얘기했고, 다른 사람들도 숱하게 지적한 바지만, 자기들이 집권했을 때를 가상해 봐도 최대주의 전략은 어리석다는 게 금방 드러난다. 정권이 바뀌어 협정을 파기하고자 할 때, 소수파가 육탄으로 저항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너희도 했으니 우리도 날치기한다"고 할 것인가, "너희가 하면 날치기지만 우리가 하면 다수결"이라고 할 것인가? 어버이 연합이 촛불을 들고 나서면 경찰력으로 진압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책임감을 가진 정치인이라면 시민들의 분노를 부추겨 폭발시키기 보다는 문제의 핵심을 짚어서 정치적 해법을 찾아 제시해야 한다. 시민들이 분노할 때마다 감정이 폭발하는 사회는 절대로 건강할 수가 없다. 분노의 폭발은 적절한 경로를 따라 조직되고 절제되어야 사회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효과를 낳는다. 되지도 않을 무모한 목표로 선동을 계속하다가는 건강한 시민의식에게는 무력감만을 안기고, 오히려 이명박 식의 독주를 정당화해주고 말 것이다.

☞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간논평 바로가기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