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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미얀마처럼? 그들에게 '출구'를 보여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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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도 미얀마처럼? 그들에게 '출구'를 보여줘라"

[기고] 반세기만에 이뤄진 미 국무장관의 방문을 보며

반세기가 넘어 처음으로 미국의 국무장관이 동남아의 전략요충인 미얀마를 방문했다. 미국은 그간 유럽연합(EU) 국가들과 함께 미얀마 군사독재 체제에 대한 국제제재를 주도해왔다. 그간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국가들이 역내 안정과 평화를 위해 '건설적 관여'를 줄기차게 주장해 왔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해왔었다는 점에서 금번 방문은 동아시아 정세변화를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필자가 이러한 변화에 주목하는 것은 미얀마가 자원부국이어서, 또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그리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치 여사의 나라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북한과 미얀마간의 핵·미사일 협력이 의심스러워서만도 아니다. 그보다는 이 사건이 미·중관계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동아시아와 세계정세 판도에서 한반도와 동북아에 갖는 함의 때문이다.

배경은 다르지만 1962년 쿠데타로 군부독재가 시작된 이후 미얀마가 걸어온 길은 북한과 비슷한 데가 많다. 스스로 택한 고립·폐쇄정책과 서방의 제재·압박정책이 빈곤과 인권탄압, 그리고 우민화(愚民化)로 상징되는 오늘날 미얀마의 상황을 악화시켜왔다. 그 결과 인도양으로 출구를 확보하면서 사천성과 운남성 등 서남부 지역을 발전시키고 미얀마의 방대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중국의 전략과 맞아떨어져 지난 20여년간 중국의 자장권(磁場圈)에 깊이 흡입되어 갔다.

클린턴 장관의 금번 방문은 두 가지 흐름의 접합점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금년 3월 취임한 떼인 세인(Thein Sein) 정부가 비록 겉모양이지만 정치, 언론, 노동문제에서 다소나마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미얀마를 통한 중국의 인도양 진출과 세력 확장이 미국의 세계전략에 심대한 영향을 가져온다는 점을 우려한 결과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금 다가오는 '태평양 세기'에서 아·태세력으로 건재할 것임을 애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의 대중무역이 대미무역의 두 배에 달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적으로는 향후 10년간 매년 평균 1000억불 규모의 군사비를 삭감해야 하는 것이 미국이 처한 현실이다. 미국은 아·태지역에서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경제적 활로를 찾기 위해, 경직되고 군사화된 외교정책이 아니라 현실세계를 직시하는 유연한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적절한 선회라고 본다.

▲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우리에게 큰 문제는 한반도, 즉 북한이다. 만약 분단되지 않았다면, 한반도는 미국에게 당연히 미얀마 경우 이상으로 전략적인 사고전환이 필요한 곳이다. 한반도 전체가 중국의 영향권에 들어간다면, 일본의 안보를 바로 위협하게 되고, 이는 미국이 악몽으로 생각하는 일본의 핵무장화와 동아시아 군비경쟁을 촉발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아시아·태평양 전역에 걸쳐 미국의 영향력을 결정적으로 잠식하고 세계 판도를 바꾸는 - 미얀마·중국 밀착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는 - 엄중한 사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 분단이 역설적으로 미국의 이런 전략적 사고 전환을 절실하지 않게 만들고 있다. 이 분단이 우리에게는 불행의 근원이지만, 미국은 다른 시각에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강력한 한·미군사동맹이 대중견제의 견고한 지주가 되고 있기에 미국은 거칠고, 속이고, 도망치는 북한을 상대로 외교모험을 담보로 한 정책전환의 필요를 절실히 느끼지 못할 것이다. 미국은 클린턴과 부시 행정부 말기에 각각 우리 정부의 이니셔티브에 힘입어 대북정책의 변화를 시도했지만, 북한의 근본적인 변화 거부와 미국정책의 일관성 결여로 인해 끝까지 파들어가보지도 못하고 좌절되곤 했다. 결과적으로 미국은 한·미동맹의 기초 위에 한국이 전면에서 버텨주고 있는 한, 충분히 현상을 유지하면서 떠오르는 중국에 어떻게 대처할지 시간을 두고 선택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근래 필자가 미 의회와 행정부 책임자들에게 왜 북한 핵문제가 더 악화되도록 내버려 두는지, 왜 중국에 흡입되는 것을 방치하는지, 왜 북한에 공세적으로 관여해서 변화시키려 하지 않는지 물어보면 돌아오는 답은 정해져 있다. "미국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동맹으로서의 도리라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그런 시각은 기본적으로 온당하다. 동맹의 핵심이익에 관한 정책을 존중하는 것이 맞다. 문제는 그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이 '그냥 압박하면서 기다리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사실상 '정책부재'가 '정책'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한국과 미국 모두가 대북정책에서 손을 놓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이 우리 대한민국에게는 과연 적절한 것인가. 필자가 얼마 전 만난 매케인(McCain) 미국 상원의원은 중국이 협조하지 않는 한 북핵 협상은 그 의미도, 필요도 없다고 하면서 '문제는 중국'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북한과 중국에 대한 미국 조야의 평균적 시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미국은 한반도 문제를 미·중관계의 틀에서 보면서, 핵문제를 비롯한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그 때 그 때 필요에 따라 수시로 선반 위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고 있다.

지금 6자회담 재개문제를 두고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진정성'이란 단어는 북한과 상대 진영간 과거부터 쌓여온 불신에서 기인하고 있다. 북한은 상대의 약속이 공수표라고 생각하고, 반대측도 북한은 결국 거짓말쟁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약속위반은 말할 나위 없지만, 당장 우리만 보더라도 정권교체에 따라 대북정책이 바뀌어 왔지 않았던가.

결국 미·중·북간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불신의 벽을 녹여내려 건설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일은 우리 대한민국이 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떤 방안이 있을까.

첫째, 대한민국이 북한의 '미얀마형(型)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미얀마의 정세전환에는 ASEAN의 오랜 집단적 노력이 일정부분 기여했다고 본다. ASEAN은 한편으로 서방의 '건설적 개입'을 요구하면서, 미얀마 군부에게는 서방의 민주화, 인권 개선 요구에 귀를 기울일 것을 촉구해왔다. 동북아에서 북한문제에는 그런 집단적 노력의 주체가 없다. 6자회담은 주로 당사자들로 구성되어 있어 그러한 역할을 하기 어렵다. 그래도 대한민국이 그 안에서 조정의 힘을 규합해야 한다. 우리가 중심이 되는 '건설적 개입'을 통해 북한의 '미얀마형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그렇게 했을 때, 미·중관계의 틀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면서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실마리를 찾게 될 것이다.

둘째, 북한에게 출구를 보여주어야 한다.

금번 미국과 미얀마간 해빙의 배경에는 미국의 전략적 고려도 있지만 과도하게 중국에 흡입되어가는 것을 우려한 미얀마 군부의 각성이 작용했다고 본다. 미국과 미얀마는 서로 좋아하진 않지만 '정략적 관계'를 모색 중인 것이다.

대중흡입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 것은 북한정권도 다를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지금 미얀마와는 달리 출구가 없을 뿐이다. 유감스럽게도 그 출구를 우리 대한민국이 막고 있다. 혹자는 출구를 계속 막고 있으면 지금의 대북압박정책이 효과를 볼 날이 올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국이라는 뒷마당이 있는 한 지금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고립·압박 정책은 효과는커녕, 북한의 대중밀착을 심화시키고 한반도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기만 할 뿐이다.

셋째, 접촉과 교류를 통해 북한 주민의 의식전환을 촉진해야 한다.

금번 클린턴의 미얀마 방문을 수치 여사가 적극 환영했다고 한다. 미얀마내 민주화 세력은 미얀마가 - 그것이 군부독재세력이건, 핍박받는 주민들이건 - 국제적으로 고립되거나 제재 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민주화세력이, 그리고 무고한 주민들이 더 개방을 원하고 있다.

북한은 미얀마보다 훨씬 황폐되어 있다. 그래서 수치 여사 같은 민주주의의 씨앗이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당장 표면에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북한주민도 우리와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우리 민족은 옳지 않은 것에 저항하고, 주변강국들과는 다른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해왔다. 북한에서 언제까지나 강압통치와 중국흡입 현상이 계속될 수는 없다. 북한이 1950년대부터 한자 없이 한글전용을 고집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마지막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한정권이 미얀마의 경우를 보면서 핵과 미사일로 정권을 유지하려는 '무기개발 중독'에서 벗어나, 점진적으로나마 인권을 개선하면서 주민을 먹여살리는 길을 찾아야 한다. 아마도 그것이 정권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안일 것이다. 통일의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남북한 주민이 모두 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나갈 수밖에 없다.

한반도와 동북아 정세는 미얀마를 둘러싼 미·중간 역학관계보다 훨씬 복잡하다. 그러나 타산지석(他山之石)의 지혜를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임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북한이 그 지혜를 배우기 바라고, 대한민국은 그 환경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 국회 송민순 의원(민주당)이 7일 홈페이지를 통해 발표한 글을 필자의 동의하에 전제합니다. 원제는 '북한의 미얀마형(型)변화를 위하여'입니다. 원문을 존중해 '미얀마'라는 국호를 그대로 실었습니다. (☞송민순 의원 홈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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