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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개발원조총회로 국가 위상 제고? '원조'의 본말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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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개발원조총회로 국가 위상 제고? '원조'의 본말전도"

[벡스코 리포트]<중> 한국 사례 동영상, '감동' 대신 '한숨'만

제4회 세계개발원조총회가 11월 30일 부산 벡스코에서 개막식을 개최했다. 개발원조 분야의 의제를 다루는 국제 포럼인 이번 총회와 그 결과로 나올 '부산선언'의 내용과 한계, 공적개발원조(ODA)가 나아갈 방향 등에 관해 회의에 참가한 국제개발협력시민사회포럼(KoFID)의 리포트 세 편을 연재한다. 2010년 설립된 KoFID는 해외 원조와 개발협력의 효과성 증진을 위해 출범한 한국 시민사회 단체 네트워크다. <편집자>

한국의 개발 경험, 부산에서도 먹히나?

11월 30일 열린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개회식에서는 사소하지만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었다. 한국의 개발 경험을 소개하는 동영상이 상영됐는데,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과정에 대한 내레이션과 함께 화면에는 앳된 얼굴의 '여공(女工)'들, 노란색 안전모를 쓴 건설현장의 노동자 얼굴이 클로즈업됐다. 그 다음엔 고층 빌딩이 빽빽한 서울의 풍경이 등장했고 이어진 장면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이렇게 연설했다. "우리는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줘야 합니다."

이 영상이 상영된 부산 총회는 29일부터 1일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 정부 공동 주최로 열렸고 전 세계 160여 개국에서 온 참가자들이 모여 '개발효과성'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개발효과성'이라니 무슨 골치 아픈 말인가 싶겠지만 실은 간단하다. 개발이 경제적 성장 뿐 아니라 소외된 이의 삶을 개선하고 인권을 보장하며 양극화와 불평등을 줄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보다 효과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30일 개회식에 연사로 나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라니아 알 압둘라 요르단 왕비 등은 개발의 근본 목표가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도록 하는 것임을 한 목소리로 강조했다.

▲ 세계개발원조총회 행사장인 부산 벡스코 앞에서 벌어진 원조 약속 이행 촉구 퍼포먼스 ⓒ뉴시스

그러나 개회식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개발 경험을 소개하는 동영상에 등장한 노동자들은 과연 개발의 주역으로 인정받고 그 성과를 공유하고 있을까? 한국의 성공적 개발은 이제 장년층이 되었을 그 노동자들의 삶, 청년 실업자일지도 모를 그들 자녀들의 삶이 나아지는 데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한국의 '성공적' 개발 경험과 이의 확산을 말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에 참석하는 동안 깊어졌던 의문들이다.

한국의 개발 경험이 놀랍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전쟁 직후 1인당 국민소득이 67달러에 불과했고 하루하루 연명하기도 힘들었던 최빈국이 불과 반세기만에 '부자들의 클럽'이라 불리는 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선진 공여국이 된 경험은 세계의 주목을 받을 만하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국가 위상 제고'와 '도약'이라고 강조하는 성공적 개발 경험에서는 경제발전의 성공 사례만 부각될 뿐 성장의 이면에 가려졌고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사회적 이슈들이 누락됐다. 한국의 국가 주도형 개발과 소수 재벌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이 심화시킨 산업구조의 불균형, 취약한 내수 기반과 대의 의존성의 심화, 경제적 불평등과 정경유착, 사회적 취약계층과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안전망 미비 등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남아 있지 않은가.

부산 총회에서 만난 참가자들도 한국의 개발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자 '개발이 실질적인 삶의 개선에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먼저 지적했다. 국제구호단체 옥스팜 미국 지부의 원조효과성 담당 디렉터인 그레고리 엘리아스 아담스는 "한국의 개발 경험은 모델이 될 수 있지만 이를 미화하고 경제적 성공만을 강조하기보다 전체 스토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사람의 삶을 희생시켜가면서 진행되는 개발은 옳지 않다. 개발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느냐에 기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기자 마크 트랜도 "한국의 개발 경험은 1960년대 한국보다 앞섰으나 지금은 최빈국으로 전락한 콩고민주공화국에 비교해보면 괄목할만하다"고 인정하면서도 "경제적 성장의 혜택이 고루 분배되지 않을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위험성을 우리는 지금 튀니지나 이집트 아랍에서 벌어지는 시위 물결에서 목격하고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한국 정부의 개발 경험 확산 전략에서 첫 순위는 개발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개발도상국에게 전수할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개발도상국에 정책 컨설팅을 제공하는 지식공유사업(KSP)을 추진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100개 이상의 모듈을 만들어 개발도상국에 전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산에서 만난 이일청 유엔 사회개발연구소(UNRISD) 연구조정관은 이에 대해 "한국의 실제 개발 경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즉, 한국은 경제개발계획과 같은 국가 계획이 프로젝트의 상위에 있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의 모듈화는 한국의 개발 경험과도 맞지 않으며, 개발도상국이 처한 사회적 맥락과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 경험을 수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은 요즘의 개발도상국들과 비교할 수 없는 특수한 개발의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냉전 원조의 최대 수혜자였다. 개발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 두 나라에서 받은 원조는 한국이 받은 전체 원조의 90%에 달한다. 1946~78년 한국이 미국한테 받은 원조 총액은 60억 달러로 아프리카 대륙의 전체 나라들이 받은 원조금 총액에 맞먹는다. 한국 개발 경험의 대표적 사례로 거론되는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는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보상으로 받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건설한 것이다.

반면 현재 개발도상국들에서는 다양한 나라의 부처와 기관, 국제기구, 원조단체들이 산발적으로 제공하는 원조가 서로 유기적인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다. 이러한 맥락의 차이에 대한 고려 없이 말하는 한국 개발 경험의 공유는 공허할 뿐이다.

게다가 개발의 모범이라고 말하기엔 한국 스스로 개발협력의 국제적 규범을 지키지 않는 점도 문제다. 한국의 유상원조 비율은 36%(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평균 3%)가 넘고, 원조를 제공하면서 한국 기업과 계약해야 한다고 조건을 다는 구속성 원조도 64%(개발원조위원회 회원국 평균 13%)가 넘는다. 게다가 한국은 원조의 투명성 지표인 '국제투명성이니셔티브'(IATI)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총리실·외교통상부·기획재정부 등 14개 부처에 난립한 원조의 중복과 분절화가 심각한 실정이다.

부산 총회를 알리는 한국 정부의 홍보책자엔 이런 말들이 적혀 있었다. "부산 총회는 G20 서울 정상회의에 이어 국가의 위상을 제고합니다",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로 대한민국이 또 한 번의 도약을 꿈꿉니다."

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등 부산 총회 주요 참석자들의 연설에서 가장 자주 들은 말 중 하나는 "원조는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함께 잘 사는 미래를 만드는 방법"이라는 말이었다. 이 말이 공허한 수사(修辭)에 그치지 않으려면 주는 쪽의 '국가 위상 제고'와 '도약'보다 받는 쪽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변화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가장 취약한 사람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연대하는 것, 개발의 핵심은 거기에 있다.

* 벡스코 리포트 <상> 부산 세계개발원조총회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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