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페퍼 소장은 9일 FPIP 홈페이지에 올린 '서울 구원'(Seoul Salvation)이란 글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의 승리가 보여준 잠재력이 2012년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이야기하고 있다"고 전했다.(☞원문 바로가기)
평화운동가이기도 한 페퍼 소장은 지난 2일 참여연대 등이 주최한 '아시아 태평양 지역 평화군축을 위한 국제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했었다. 다음은 칼럼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서울 구원
지난 주 서울에 가서 보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지명도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진보 세력을 조직화했던 감시견이었던 그는 지난 달 말 새로운 서울시장이 됐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라. 박원순은 아마도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의 정신]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승리한 첫 번째 정치인일 것이다.
참여연대를 만든 박원순은 한국의 활기 있는 시민사회의 핵심 지도자였다. 20여년간 정치적으로 '성가신 사람'(gadfly)이었던 그는 이제 상당한 권한을 가진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에 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복지 이슈에 집중하는 무당파 후보였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의 승리가 보여준 잠재력이 2012년 한국 정치를 변화시킬(transform)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국과 북한의 관계,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 미국과의 관계에서 그 의미는 실로 엄청나다.
나는 10년도 더 전에 그를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참여연대가 아닌 다른 것에 관해 막 생각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한국의 시민사회 활동가들은 쉼 없이 일하고 네트워크를 만들고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한다. 그러다 보니 과로로 병원 신세를 질 때에나 쉴 수 있다는 농담을 가끔 한다. 게다가 박원순의 매우 침착한 태도는 나를 언제나 놀라게 했다.
참여연대를 나온 후 그가 만든 조직은 기부 문화를 조성하는 아름다운 재단,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였다. 그러한 단체의 이름은 그의 낙관주의적 기질, 그리고 한국의 정치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전반적인 사고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그의 열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는 또한 사람들을 설득해내는데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한국 최고의 철강회사 포스코를 설득해 시민사회 활동가들이 미국에 가서 공부하는 프로그램에 돈을 대도록 하기도 했다. 미국의 자동차 기업 크라이슬러와 시민운동 네트워크 무브온이 그와 유사한 관계를 맺었다고 상상해 보라.
과거 감시견 역할을 했던 그는 이제 인구 1000만이 넘는 도시를 경영하게 됐다. 서울은 도쿄나 멕시코시티, 미국의 다른 어떤 도시들보다 크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에서 서울은 거의 50%를 차지한다. (뉴욕은 미국 GDP의 8%, 베이징은 중국 GDP의 3%를 차지한다) 외교 및 국방 정책을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만 빼면 박원순은 중간급 크기의 국가 하나를 책임지게 된 셈이다. 한국에서 서울이 차지하는 불균형적인 비중으로 볼 때 서울시장은 정치적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자리다. 서울시장을 했던 이명박이 현재 이 나라의 보수적인 대통령이 된 것을 보라.
그러나 박원순은 정치권 경력이 전무하다. 그는 공공서비스, 특히 불리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the less advantage)에 대한 서비스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당선 후 그는 "서울 하늘 아래서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있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출근 첫날 박원순은 모든 초등학생들에 대한 무상급식을 시행하도록 했다. 계급과 상관없는 보편적 복지의 실현이라는 핵심 공약 사항이었다. 서울시립대 등록금 인하는 그의 선거 운동을 도왔던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커다란 기쁨(thank-you)을 주었다. 그는 수많은 전시성(high-profile) 시설 공사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봤고, 대신 공공주택을 더 많이 짓는 것을 선호했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사회복지 지출을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불평등 심화는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가 커지고 전세계로 확산되도록 한 이유로, 한국에서도 엄청난 문제가 되어왔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국민소득과 교육 수준, 평균 수명, 유아 사망률 등을 종합 평가해 매년 내놓는 인간개발지수(HDI) 순위에서 한국은 올해 세계 15위를 차지했지만, 소득 불평등 지수를 적용한 순위는 32위이다. 두 순위의 격차가 한국보다 큰 나라는 미국과 콜롬비아밖에 없다. 박원순은 이러한 불평등을 비판하고, 상대 후보는 상위 1%에 속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면서 당선됐다. 그는 월스트리트 시위 시대에 권력을 쥐게 된 첫 번째 정치인일 것이다. 그러나 박원순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박원순의 당선은 일반적인 예상을 뒤집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아웃사이더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집권 한나라당의 나경원 후보를 격파했다. 나경원에게는 힘 있는 지지자들이 있었다. 과거 권위주의 대통령이었던 박정희의 딸 박근혜도 그를 도왔다. 그러한 나경원이 큰 차이로 패한 것은 지지율 약 32%인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이 반영된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대통령을 조롱하는 팟캐스트 방송이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국에서는 내년에 총선과 대선이 있다. 야당 민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를 밀어붙이며 내년을 벼르고 있다. 그러나 박원순의 승리가 곧 민주당의 승리로 해석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야권 단일후보가 되기 전 무소속으로 선거에 뛰어들었다. 안철수의 지지는 5%에 불과하던 박원순 지지율을 50% 가까이 끌어 올렸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정당들의 뻔한 정책을 거부하고 있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박원순은 국가 차원의 정책에 대해서는 그리 많은 말을 하지 않았고 대신 서울의 문제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는 한미 FTA에 대한 우려를 표해왔고, 현 정부의 대결적 대북정책을 비판해왔다. 또한 '평화를 바라는 시장 모임'(Mayors for Peace)에 이름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였다. 실제로 그렇게 된다면 다른 정치인들도 그를 따를 것이다. 그것은 이명박의 대외정책을 거부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다 독립적인 정책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2일 오전 관악구 서원동에서 환경미화원들과 함께 쓰레기 청소를 하고 있다. ⓒ서울시 |
사회적 위계질서가 깊게 뿌리박혀 있고 사회적 지위에 따라 다른 언어를 쓰는 나라에서 박원순의 가장 급진적인 정책은 바로 그 직접 실천하고 밑에서 위로 접근하는 방식일 것이다. 그는 시청 직원들에게도 존대를 하고, 하급 직원들의 방에 들어갈 때도 일어서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아침 6시에 환경미화원들과 똑같은 옷을 입고 청소를 하러 나가기도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한 게 아니었다. 그는 '모든' 서울시민들의 관심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시민운동가 중에서 선거에서 당선된 사람이 박원순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개혁적 기반과 사회적 가치에 있어서의 혁명을 결합하는 첫 번째 정치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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