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엉뚱한 용어로 표현된 이 말을 달리 풀이하면, 한국의 정치경제모델을 미국의 그것으로 통일 혹은 통합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즉 한미FTA는 단순한 통상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경제제도에 있어서의 '국가개조론'에 가깝다. 여기에서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한미FTA에 묻어들어 있는 안보전략의 측면이다. 주지하다시피 9·11테러 이후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라는 다자주의 무역체제를 뒤로 돌리고 FTA라는 양자 전략으로 전환한 데는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지정학적 전략의 의미가 대단히 컸다.
한미FTA 찬반 논쟁의 맹점
2000년대 이후 미국과 FTA를 맺는다는 것은 곧 그 나라의 산업구조가 미국과 유기적으로 통합된다는 것, 나아가 투자 및 영리 활동을 둘러싼 제반의 제도적 장치가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통일된다는 것, 곧 미국경제와 형식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한 동아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를 고려하면, 한미FTA를 둘러싼 반대진영의 비판은 초점을 좀 빗나간 면이 있었다. 개별 산업이나 업종에서 한국이 이런저런 피해를 본다는 식의 계산이나 논점은 지배세력이 한미FTA를 추진하고 정당화하는 이러한 논리를 전혀 무력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무현정부 때부터 이런 식의 비판에 대한 대응은,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장보고의 후예들아, 미래로 도약하자'는 식의 파이팅 구호였고, 이는 비판세력을 손쉽게 과거지향적인 낡은 세력으로 만들어버리는 효과를 낳았다.
'지구화'가 하나의 대세가 되어 미래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틀도 거기에 맞게 총체적으로 바꾸어가야 한다는 대단히 거시적인 이야기를 내놓고 있는 판에 자동차산업에서 얼마, 농업에서 얼마 하는 식의 이야기가 힘을 가질 리가 없었다. 이는 한미FTA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나타난바, '각론에서는 반대나 보류, 총론적으로는 찬성'이라는 결과에 잘 드러난다.
2008년 이후 미국식 모델의 파산
그런데 2008년에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는 지구적 경제위기의 조건 앞에서 이러한 한미FTA를 통한 '국가개조론'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지금까지 특히 한국의 지배세력에 '글로벌 스탠다드'로 여겨져온 미국식 정치경제모델이 더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단순히 경기순환의 한 국면이 좀 크게 나타나는 것일 뿐으로 파악하는 관점이라면, 이 위기를 기존 정치경제모델의 파탄이라고까지 진단하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후자처럼 판단하는 것은, 2008년 이후 전개된 일련의 사태 가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모델의 조직원리라는 내적 논리의 차원 그리고 그것이 대중적으로 용인되는 정치적 정당성의 차원 모두에서의 실패를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이다.
먼저, 리먼브러더스에서 시작된 대형 금융기관의 파산은 급기야 최근에는 뱅크오브아메리카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국가재정은 주정부 단위뿐 아니라 연방정부 단위에서도 실로 앞날을 점치기 힘들 정도로 악화된 상태다. 그 과정에서 투자은행은 물론 심지어 대형 보험사까지 파산 위험에 처했다. 그리고 미국 국채의 등급이 떨어졌다.
금융 및 자본 시장의 내부에 완벽한 자기조정기능이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금융을 자유화·탈규제화하고 이를 비단 경제뿐 아니라 전체 사회의 조정 메커니즘으로 삼는다는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조직원리에서 볼 때, 이러한 사태는 일어날 수도 또 일어나서도 안되는 것이다. 요컨대 '자유화·탈규제화된 자본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놓으면 금융 및 경제체제, 나아가 사회 전체가 안정과 지속적인 번영으로 가게 된다'고 하는 미국식 자본주의의 조직원리가 현실적으로 완전히 파산한 것을 나타낸다.
▲ 여야가 한미FTA 처리를 놓고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홍준표 대표최고위원이 야당에게 한미FTA 조속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다. ⓒ뉴시스 |
지구정치경제의 일대 전환기가 온다
또 최근 월스트리트에서 시작되어 전세계로 확산된 '99%'의 시위는 이러한 정치경제모델의 정치적 정당성이 근본적으로 무너져버렸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이 시위에서 잘 언급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시위대의 '인종적' 구성에서 시위의 시작부터 현재까지 백인이 압도적으로 다수를 점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회계급과 인종의 관계로 볼 때, 이번에 문제를 제기한 움직임이 최하층이나 절대적 금융소외계층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중산층에서 시작되었음을 가리킨다. 이는 몇달 전 영국에서 발생한 소요사태와 중요한 대비를 이룬다. 즉 '금융자본주의가 모두를 번영하게 한다'는 약속은 사실상 '1%'의 엄청난 축재(蓄財)로 끝나버렸다는 인식이 전면적으로 확산된 것이다.
공공·민간에 걸쳐 엄청난 부채를 안고 있으며 경상수지와 재정에서 모두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는 데다가 내수도 살아나지 않고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공격적인 무역정책을 펴지 않을 수 없다. 현재의 한미FTA 틀로 볼 때, 과연 이렇게 공격적인 미국자본의 공세를 정당하게 방어할 장치가 우리에게 있는지 크게 걱정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좀더 근본적으로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미국식 모델로 업그레이드 하자'는 국가개조론은 지금도 과연 유효한 것일까?
현재의 경제위기는 1930년대 이래 세계자본주의의 최대 위기라는 점이 갈수록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세계의 정치경제를 지배해온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금융자본주의의 틀이 생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심지어 산업경제 및 금융체제 자체의 안정성 면에서도 더는 유지될 수 없음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의 위기는 단순히 경기순환의 회복을 기다린다고 풀릴 일이 아니라 영리활동·산업·사회·생태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근본적인 일대 전환을 하는 새로운 정치경제모델을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도 널리 확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에서 명백하게 막다른 골목에 봉착한 미국식 모델로 한국의 정치경제체제를 통일시킨다는 애초의 프로젝트는 과연 무슨 합리성이 있는 것일까?
국가 위기와 망국의 역사를 반복하려는가
구한말 이래 한국의 지배세력은 지구정치경제의 상황을 잘못 파악하여 나라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적이 여러번 있었다. 고종은 19세기말 '세계정치'(world politics)가 이미 출현했다는 상황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익힌 '세력균형' 정치를 구사하다가 결국 식민지배를 초래하고 말았다. 1930년대말 조선의 토착 상층계급은 지정학적 균형을 잘못 파악하여 일본 파씨즘에 '올인'하다가 자주적 독립의 기회를 놓치고 애꿎은 국민만 무수히 희생시키고 말았다. 해방이 된 후 좌익과 우익은 '냉전'이라는 새로운 상황 변화를 도외시하고 이념과 자기집단 이익에만 골몰하다가 분단과 전쟁이라는 참극을 가져온 바 있다.
그 정도 규모의 비극을 가져오지는 않겠지만 지금 전세계적으로 전환기에 들어선 미국식 모델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한국의 선택이라는 생각 또한 과연 최근의 세계적 변화의 흐름을 이해하여 나온 것인지 아니면 '우물 안 개구리'같이 10, 20년 전의 통념에 사로잡혀 뒷북을 치고 있는 것인지 심히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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