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열린 네 번째 강좌에서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가 '사라져 가는 아메리칸 드림과 새로운 체제로의 이행의 시각'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안 교수 강연의 주요 내용을 요약‧재구성해 싣는다.
오는 17일 열리는 마지막 강좌는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G2 시대의 세계질서와 한반도'라는 주제로 테러와의 전쟁이 거시적 국제정세에 미친 영향 등을 조망한다. <편집자>
▲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참여연대 |
"9.11 테러, 미국이라는 비행기를 떨어트렸다"
9.11은 미국 역사를 그 전후로 나눌 만큼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 당시 뉴욕에서 직접 목격한 나도 한동안 비행기만 보면 그 앞에 불타는 빌딩이 서 있는 게 보이는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같은 증상에 시달렸다. 특히 9.11은 미국 시민들로서는 전혀 예상할 수 없던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대학에서 정치학 강사로 일할 때였는데, 학생들에게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영화 <비상계엄>을 언급하면서 '이런 일이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다'고 말하면 다들 웃었다. 말이 안 된다는 게 그 당시의 정서였다.
그 시기에 9.11 테러를 보면서 장 폴 사르트르가 적군(赤軍)파 테러리스트들에 대해 했던 평인 '가장 견고한 체제에 대한 가장 무모한 도전'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러시아 혁명을 이끈 레닌도 자신의 형을 비롯한 (나로드니키파) 테러리스트들이 차르 암살을 시도하다가 좌절된 것을 보면서 '그들이 증오한 체제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줬다'고 비판했다. 김재규의 박정희 암살도 민주주의를 가져온 게 아니라 전두환 정권이라는 더 견고한 체제로 이어졌다. 이처럼 테러리즘은 무모한 도전이고 오히려 체제를 더 강화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생각이 들었다. 오사마 빈 라덴이 뭘 의도했든 간에 미국은 견고하지 않은 체제였다는 것이다. 9.11 테러는 미국이라는 비행기를 경착륙시키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특히 9.11 테러 이후 테러와의 전쟁은 좌파적 관점이 아니라 건전한 상식의 관점에서 봐도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미국은 당시 '가장 견고한 체제'처럼 보였지만 이미 건국 당시부터 이같은 추락의 씨앗을 품고 있었다. 물론 미국 체제의 발생은 놀라운 민주주의적 혁명이었고 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미국의 건국은 유럽의 잔혹한 봉건성을 뚫고 자유로운 공동체를 추구한 위대했던 실험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건국을 찬양했던 지성인들이 보지 못했던 것은 미국이 또한 '자기 혼자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시장'이 실현된 최초의 사례였다는 것이다.
한 사람씩 돈을 모아서 합작회사 형태로 모험을 시작한 것이 미국의 초기형태다. 배[메이플라워호 : 편집자]도 그렇게 띄웠고 서부 식민시(市)도 그렇게 세워졌다. 그야말로 투기적 '카지노 자본주의'의 원형으로 세워진 나라다. 그런 면에서 미국의 출범 자체에 시장만능주의의 뿌리가 있다. 사회에 뿌리내린 연대의 정신이 아니라 자수성가, 독립, 자기 노동, 이런 정신이 미국의 정신이다. 심지어 미국에선 노숙자들조차 그냥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은행에서 돈 찾아 나오는 사람들한테 은행 문을 열어주고 손을 내민다. 노동해야 돈을 번다는 관념이 뿌리깊은 거다.
칼 폴라니가 '자기조정적 시장'이라고 표현한 것은 결국 시장이 독립적으로 자기 혼자 살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곧 스스로 괴물이 되어 가고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될 잠재성이 있다. 칼 맑스의 '자본은 스스로를 파괴한다'는 예언이 21세기 들어 다시 조망을 받는 것이나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비관적 전망이 호응을 얻는 것은 그래서다.
"부시 행정부가 신자유주의? 지나치게 후한 평가"
그러나 폴라니에 따르면 사회는 시장이 혼자 이렇게 괴물처럼 움직이도록 놔두지 않고 필연적으로 보호운동을 펼친다. 균형을 잡기 위한 사회의 거대한 시계추가 작동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는 시장만능주의의 힘이 너무 강하다 보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같은 진보성향의 인사들조차 시장의 '자기 조절적' 힘을 너무 믿었다. 또는 믿는 사람들에게 힘으로 밀렸거나. (나라는 다르지만) 노무현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빌 클린턴은 사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 약자에 대한 공감도 있고 존 F. 케네디처럼 '따뜻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막상 집권하자 재정균형을 맞추지 않으면 미국 자본의 건전성이 사라질 것이라는 연방준비제도(Fed) 등의 우려에 부딪혔다. 대통령도 Fed는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많은 담대한 의제들을 다음으로, 다음으로 미루다 보니 한 것이라고는 고작 약간의 증세가 전부였다. 그것도 의회에서 피 흘려 가며 싸워서 한 거다. 나머지는 공화당과 적당히 타협했고 결국 클린턴 지지층은 좌절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금융위기의 대재앙의 씨앗도 클린턴 정부 당시 뿌려졌다. 클린턴은 약자들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Fed 등의 반대로 케인스적인 정책은 할 수 없었다. 그럼 남은 건? 부자증세? 더더욱 안 된다. 그래서 한 게 서브프라임 모기지다. 이는 보수적 자본주의 관점에서 보면 굉장히 위험한 것이지만, 신용등급이 낮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도 대출을 해 줘서 저소득층에 집 살 기회를 주고 경기도 부양하려는 클린턴의 '선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조지 W. 부시도 9.11 이후 침체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계속했다. 그나마 클린턴 때는 눈치라도 봤지만 부시는 그런 것도 없었다. 온갖 규제를 다 풀었다. '정글자본주의'라는 게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부시 행정부를 보면 된다. 부시의 경제정책은 흡사 이명박 정부와도 유사하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부시 행정부 정책을 신자유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너무 우아하고 세련되게 평가하는 것이다. 시장만능주의, 연고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 강압적 패권주의 등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전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괴물이 탄생했다.
원래 미국은 한국과는 달리 (권력자들도) 약간의 눈치는 보는 나라이고 특히 견제와 균형의 시스템은 한국보다 훨씬 많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런데 부시 행정부 때는 이런 원칙이 무너진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들이 세우려고 했던 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9.11로 인한 경기침체를 만회하기 위해 각종 규제를 다 풀고 서브프라임을 확대하는 등 위험한 '폭탄 돌리기'가 시작됐다.
부시의 안보정책도 무모한 맹동주의에 다름 아니었다. 군사력으로 겁을 주면 공포를 느낀 상대방이 알아서 미국에 고개를 숙일 것이라는 식이었다. 이는 불안하고 허약한 마초들의 심리를 보여주는 신경발작이었고 빈 라덴을 파괴하기는커녕 스스로를 망치는 어리석은 짓이 됐다. 원래 마초들의 말로라는 게 그렇다. (웃음)
이런 이유들로 부시는 미국 역사학자들이 선정한 '최악의 대통령' 명단에서 꼴찌 가까운 순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단지 진보적인 사람들만이 부시를 비판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철학적 인물 오바마, '다크 나이트'를 자처하다"
그래서 버락 오바마의 당선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당선될 때부터 오바마는 진보적인 요구만을 반영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스스로 중도주의자라고 주장했던 사람이다. 오바마가 이라크전에 반대한 것은 진보라서가 아니다. 보수라도 이라크전은 말린다. 왜냐? 그렇지 않아도 쇠퇴하던 미국의 국력이 이라크전을 거치며 급전직하했기 때문이다.
안보정책 측면을 보면 오바마는 스스로 전지구적 제국의 질서와 정의를 지키는 수호자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게 얼마나 실현 가능하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그런 오바마의 꿈이 잘 나타난 것이 그의 2009년 노벨평화상 수락 연설이다. 당시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 평화상을 받으러 와서 굉장히 강경한, 전쟁에 대한 연설을 했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평화상 연설에 녹아 있는 테제는 3가지다. 첫째, '악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설득할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절멸시켜야할 대상인 '악'(the evil)은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둘째, 그는 간디의 평화운동은 위대하지만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는 자신에게 간디에게 가졌던 것 같은 기대를 갖지 말라는 뜻이다. 셋째, 이라크전은 '정의롭지 않은' 전쟁이라고 말했지만 아프간전에 대해서는 계속 '필요한 전쟁'이라고 암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악'에 대한 오바마의 대처방식은 (부시 행정부와 마찬가지로) 탈법 또는 비(非)법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제거한다는 것이었다.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배트맨은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악역을 자처한다. 지금 오바마의 입장이 그렇다. 거기에 오바마의 비극과 고뇌가 있다고 본다. 노벨평화상 연설을 좀 거칠게 요약해서 말하자면 '나도 간디처럼 멋있게 살고 싶지만 이 자리는 그럴 수 없는 자리다'는 얘기다.
실제로 오바마는 부시조차 감히 하지 못했던 암살 작전을 대놓고 펴고 있다. 빈 라덴 뿐 아니라 미국 시민권자인 안와르 알올라키도 죽였다. 미국의 아프간 전략도 바뀌고 있다. 미군 인명 피해를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 무인정찰기를 통한 공격을 계속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도 더 제왕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오바마는 파키스탄에 대한 무인정찰기 공격에 대해 '미군 병사가 적의에 노출되지 않았으므로' 이는 '전쟁'이 아니고 따라서 의회의 승인 없이도 이같은 군사행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 편집자]
심지어 오바마는 민권단체들 앞에서 '법리적으로 예방적 구금을 검토해 봐야 하지 않겠나'하고 말해 참석자들을 까무라칠 만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인터넷에서 핵폭탄 설계도도 내려받는 시대인 21세기의 제국 운영은 오바마 같은 철학적 인물조차 '예방적 구금'을 검토하게 만든다.
문제는 이미 미국의 힘은 쇠퇴했다는 것이다. 미국은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건국 정신 때문에 '청년기의 나라'로 묘사되기도 했는데 지금은 청년기에서 노년기로 접어드는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제국의 수장이 된 오바마는 패권을 안정시켜야 하지만 힘은 없다. 그의 고민과 딜레마는 여기서 생긴다.
"오바마가 상징하는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은 깨졌다"
그럼 (부시 행정부 당시) 오바마는 왜 이라크전에 반대했었나? 미국은 제국이긴 하지만 영국과는 달리 식민지가 없는 나라다. 결코 전쟁을 지속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가 이라크전을 반대한 것은 '진보'가 아니라 '상식'이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오바마가 진보주의자라는 착시현상에 빠졌다. 미국의 진보‧중도‧자유주의자들은 오바마를 통해 '아메리칸 드림'을 되살리려 했다. [부시 같은 비상식적 체제를 벗어나 정상국가 미국을 회복하려 했다는 뜻 : 편집자] 문제는 지금은 그게 가능하지 않은 세상이라는데 있다. 오바마를 지지하던 자들은 환상을 본 것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안철수 현상도 부분적으로는 환상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될 때 사람들이 '그래도 잘 했잖아, 그래도 능력은 있잖아' 하는 반응이었지만 그런 기대가 깨지면서 나타난 것이 안철수 현상이고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열풍이다. 안철수 현상은 '건강한 한국을 회복하겠다'는 일종의 '코리언 드림'이 반영된 것이다. 안철수는 '진보'가 아니라 '상식'의 아이콘인 것이다. 전체적으로 오바마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하지만 [역시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잘 될까?
오바마 자신은 억울할 수 있다. 자신은 그런 환상을 심어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누가 심어줬든 간에 미국인들이 가졌던 환상은 깨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타난 것이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다. 이매뉴얼 월러스틴이 말한 것처럼 이 시위는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를 넘어서 새로운 체제로 가는 이행의 시작이다. 오바마를 통해 '건강한 자본주의'를 회복하려고 했지만 그게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인들이 '이행'을 시작한 것이다.
"월스트리트 시위는 '포스트 9.11의 시대'에 종언을 고한다"
그런 면에서 월스트리트 시위는 지속 가능하다. 시위 자체는 끝나더라도 그 의미는 5년, 10년도 더 이어질 것이다. 이는 오바마를 탄생시켰던 '무브온' 등 시민정치와는 궤가 완전히 다르다. 무브온은 아메리칸 드림이 가능하다는 환상에 기반하고 있다. 건강한 진보의 시대를 꿈꿨고 클린턴을 탄핵 위기에서 구해냈다. 그리고 오바마를 통해 건전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려 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 점령은 무브온이 주도한 것이 아니다. 한국으로 치자면 참여연대나 경실련 같은 온건 개혁 시민단체가 주도한 게 아니라 더 좌파적인 세력이 주도한 것이다. 미국에서 좌파들의 운동이 강력하게 힘을 발휘할 정도의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의 김진숙 현상과도 비슷하다. 김진숙은 민주노총의 전투적 활동가다. 옛날 같으면 '희망버스'에 탈 사람들은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온 사람들이 전부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보수를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도 희망버스에 탄다. 김진숙 현상은 수십 년 한국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문제제기와도 연관돼 있다. 그런 면에서 이는 월스트리트 시위와 무관한 사건이 아니다.
월스트리트 시위대가 요구한 것은 정의에 기초한 체제, 정의로운 것이 이윤을 버는 체제, 그러면서도 소련이나 북한 같은 괴물들 말고 자유로운 상상력과 시장 속에서의 가장 자유로운 교환이 존재하는 체제, 그러면서도 가장 약한 자와 가난한 자를 위한 체제다.
이는 오바마를 넘어서는 체제다. 거대한 지구적 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진정 안타까운 지점이 여기다. 예를 들어 지금 Fed를 맡고 있는 벤 버냉키는 원래 경제학자로 대공황 시기 루스벨트 정부의 위기극복 정책에 대한 세계 최고의 전문가다. 그런 사람이니 믿을 만할까? 천만에. 대공황과 지금의 경제위기는 문법이 전혀 다르다. '뉴딜 정책'을 추진했던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미국의 헤게모니 상승기에 대통령직을 맡았다. 지금은 퇴조기다. 루즈벨트를 100년 연구해 봐야 소용없다. 그 시대는 다시 오지 않는다.
어쨌든 이행은 시작됐다. 빈 라덴의 암살로 한 시대가 끝났다. 9.11의 시대다. 이제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 자본주의 시스템의 새로운 진화의 시대가 시작된게 아닌가 한다. 케인스가 언급한 '자유주의적 사회주의'(liberal socialism) 등 새로운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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