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2001년 아프간과 2011년 리비아, 역사는 반복될까?"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2001년 아프간과 2011년 리비아, 역사는 반복될까?"

英 중동 전문 기자 "아프간전 10년, 최종 승리자는 탈레반 될 것"

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지난 7일로 만10년을 맞았다. 전쟁의 향방은 아직도 알 수 없는 상태다. 미국은 '테러리스트 빈 라덴을 비호했다'며 선제 공습까지 감행했던 아프간 탈레반 세력과의 평화협상을 통해 전쟁에서 발을 빼려 하고 있다. 하지만 탈레반과의 평화협상에 나섰던 부르하누딘 라바니 전 아프간 대통령마저 지난달 탈레반의 폭탄 공격으로 숨졌다.

개전 10년을 맞아 스탠리 매크리스털 전 아프간 주둔 미군 사령관이 내놓은 입장은 미국이 처한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줬다. 매크리스털은 2009~10년 아프간에 대한 미군의 '증파'(surge) 전략을 주도해 10만 명 이상의 병력을 지휘하며 전쟁을 수행한 군사적으로 재능 있는 장군이었지만, 지난해 한 미국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을 공개적으로 비난해 물의를 빚고 결국 사임했다.

매크리스털은 지난 6일(현지시간) 미 외교협회(CFR) 행사에 참석해 미국은 아프간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단순한(frighteningly simplistic) 시각"을 가지고 전쟁을 시작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심지어 10년이 지났음에도 미국과 나토는 "갈 길을 절반밖에 가지 못했다"고 말했다.

매크리스털은
"우리는 (아프간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알지 못했으며, 지금도 알지 못하고 있다"면서 "나를 포함한 미국인 대부분은 아프간 현지 사정과 역사에 대해 매우 피상적인 이해만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아프간의 상황이 도대체 어떻기에 증파만 하면 전쟁을 이길 것 처럼 말했던 매크리스털마저 이렇게 회의적인 시각을 보내는 것일까? 영국 <인디펜던트>의 중동 특파원 패트릭 콕번은 9일자 칼럼을 통해 "탈레반은 2001년 패배했지만 다시 힘을 회복하고 있다"면서 "그 주된 이유는 (미‧영) 연합군의 현지 동맹 세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콕번은 나아가 외세의 공습에 힘입어 대중의 혐오 대상이 됐던 정권이 축출된 것은 2001년 아프간에서나 2010년 리비아에서 똑같이 일어난 일이지만, 쫓겨난 정권을 대체할 서방의 현지 동맹 세력이 무능력하고 분열돼 있는 미심쩍은 자들이라는 점도 두 나라 모두에서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다음은 콕번의 칼럼 주요내용이다. (
☞원문 보기) <편집자>

▲ 아프간 전쟁 10년, 평화는 언제? 아프간 전쟁 개전 만 10년을 맞은 지난 7일(현지시간) 아프간 동부의 한 검문소에서 경찰관이 지역 주민의 몸을 수색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확실히 승리했다고? 역습에 주의하라"

2001년 10월 7일 미국이 아프간에 공습을 시작했을 때 필자는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50마일[약 80km] 정도 떨어진 한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탈레반에 대한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된지 10년이 지났지만,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날 어둠이 내리면 필자는 폐허가 된 공장 근처의 작은 언덕에 올라가 탈레반과의 전선에서 폭탄이 터지면서 노란 불꽃이 피어오르는 것을 지켜봤다. 때때로 크루즈 미사일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큰 폭발이 있었고, 남쪽 밤하늘은 일시적으로 흰 빛으로 훤해졌다. 탈레반의 반격은 힘없이 쏘아올리는 대공포 몇 발이 전부였다.

미국이 (대부분 타지크족으로 이뤄진) 아프간 북부동맹에 항공 지원을 결정했을 당시 탈레반의 패배는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하지만 전쟁은 결코 보이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탈레반은 쉽게, 지금 돌이켜 보면 너무 쉽게 물러났었다. 아프간 사람들이 전쟁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는 것은 마지막 순간 이기는 쪽에 편승하는 능력 때문이라는 냉소적인 말도 나왔다. 미국의 침공 이전에 탈레반이 대부분의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던 것도 전장에서의 승리 때문이 아니었다. 지역 군벌들이 큰 부족들의 결정을 따라 [친미 정권에서 탈레반 정권으로] 진영을 바꿨기 때문이었다.

탈레반의 패퇴는 겉으로 보인 것처럼 조직되지 않은 행보가 아니었다. 카불에 도착한 필자는 한 의대생을 [통역 등 취재에 필요한] 조수로 고용했는데 이 청년은 칸다하르에서 온 파슈툰족으로, 수도가 북부동맹의 손에 떨어질 때 감옥에 갇혀 있었다. 그는 자신이 투옥된 이유에 대해, 삼촌들의 사업 경쟁자가 자신의 가족을 '반(反)탈레반적'이라고 고발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은, 탈레반이 카불을 포기하기 직전에 [탈레반 정권의] 당국자가 감옥으로 와 북부동맹이 승리하면 위험해질 거라면서 칸다하르에서 온 사람들은 누구든 석방해줬다는 것이었다. [남부 칸다하르는 전통적으로 탈레반 세력이 강한 지역이다] 이는 탈레반이 놀라울 정도로 장래를 멀리 내다봤음을 보여준 것이며, 그들의 패배가 일시적인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2001년] 남쪽 칸다하르로 자동차를 몰면서 필자는 전투 한 번 없이 함락된 가즈니, 자불 같은 도시들을 지나쳤다. 탈레반은 증발한 것처럼 보였다. 차를 세우고 현지 주민에게 탈레반과의 전선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우리 등뒤를 가리키며 이미 우리가 그 전선을 통과해 왔다[즉, 필자가 있는 곳은 탈레반 지역이다]고 말했고 필자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탈레반의 퇴각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다. 탈레반은 사라졌지만 그들을 대신하는 아프간인들[카르자이 정권]은 그 빈틈을 메우지 못하고 있다. 하미드 카르자이가 아프간 임시정부를 이끌게 됐을 때, 카불 남부의 한 지역 군벌은 "그게 대체 누군데?"라며 그를 업신여겼다. [미국이 세운] 새 정부는 명백히 정통성을 인정받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당시 탈레반이 곧 돌아올 것처럼 보였음에도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붕괴 당시 탈레반 정권이 대중적으로 인기가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 탈레반이 아편 생산용 양귀비 재배를 금지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통치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레반의 자리를 대신한 군벌들도 별로 나을 게 없었다.

카불에 들어선 새 정권과 미국은 자신들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계속될 것이라는 환상을 지나치게 믿었다. 소수민족인 파슈툰족의 대부분은 자신들이 주변화된다고 느꼈고 과거 탈레반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박해받는다고 느꼈다.

[한편] 파키스탄은 탈레반 지도부가 살아남아 재조직하고 복귀를 계획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했다. 아프간전이 끝났다고 생각한 미국은 이라크에서 고조되는 무력충돌에 눈이 팔려, 탈레반이 재기할 수 없도록 파키스탄에 가했던 압력을 완화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

2003~08년 주로 이라크에 있었던 필자가 2009년 아프간으로 돌아왔을 때, 탈레반은 대부분 현업에 복귀해 있었다. 미군은 탈레반의 봉기를 꺾을(anti-insurgency) 전략에 대한 많은 논의에도 불구하고 기초적이고 필수적인 것들에조차 집중하지 못했다. 도로 확보 같은 것 말이다.

카불 남부에 경찰서가 딱 하나만 있다는 것은 그 지역에 대한 아프간 정부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칸다하르, 심지어 가즈니까지 차를 운전해 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 됐다. 탈레반은 검문소를 운영하면서 여행자들의 휴대전화까지 검사했다. 만약 정부 관리와 접촉이 있었다면 살해되거나 투옥될 위험에 처하게 됐다.

오늘날 카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탈레반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카르자이] 정부에 대한 혐오다. 헬만드주, 칸다하르주의 촌로들뿐 아니라 부동산 개발업자들까지 반정부 성향이라는 것은 흥미롭다. 그들은 현 지배 계층에 대해 물자공급 계약과 치솟는 땅값에서 막대한 이익을 본 성공한 협잡꾼들이라고 비난했다.

미국과 영국도 혐오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미국과 영국[군]이 현지에 주둔함으로 해서 끝없는 불안정이 계속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탈레반과 파키스탄은 미국‧영국군의 철수로 인해 자신들의 힘이 강화될 것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미군이 전력 강화를 통해 얻어낸 점령지마저 효과적인 아프간 측 파트너가 없기 때문에 계속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과 영국이 아직도 아프간에 있는 주된 이유는 그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는데도 실패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매우 난처한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실수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력이다. 이는 문제가 될 것이다.

카다피가 몰락한 후인 지난 8월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주변을 돌아다니는 것은 바로 2001년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을 떠올리게 했다. 두 나라 모두의 경우에 외국군의 공습에 힘입어 인기 없는 정권을 축출하긴 했지만, 현지 세력의 능력은 지나치게 과장됐으며 막상 권력을 잡았을 때 성공적인 통치를 펴기에는 지나치게 약하고 분열돼 있다.

* ( )는 원저자의 표기이며 [ ]는 옮긴이가 추가한 내용임.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