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달라진 북핵 방정식, "한 가지 '예스'로 세 가지 '노'를"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달라진 북핵 방정식, "한 가지 '예스'로 세 가지 '노'를"

[한반도 브리핑] 핵 능력 키운 북한의 입장 변화

남북은 지난 9월 21~22일 베이징에서 고위급회담을 가졌다. 위성락 외교통상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나온 이 회담은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2년 7개월 만에 처음으로 남북고위급 회담을 재개한 이후 두 번째였다. 6자회담 수석대표인 두 사람은 마라톤 회의를 했다. 회담 후 한국은 외교부 대변인을 통해 생산적이고 유용한 회담이었다는 짤막한 논평만 냈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논의됐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같은 달 30일 외교통상부 출입기자단 강연에서 회담의 의미를 언급했다. 고위 당국자는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미 2차 대화 가능성에 대해 "10월 중 2차 북·미 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는 2차 남북 고위급회담이 3단계 6자회담 재개 방안(남북 수석대표 회동 - 북미 회담 - 6자회담)의 일환이었음을 보여준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러한 회담을 통해 부족한 식량과 에너지를 확보하려는 근시적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을 했다. 그러나 6자회담 재개 방안은 미국과 중국이라는 두 거대한 나라의 이해관계를 바탕으로 합의하고 만들어 놓은 구조 속에서 진행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6자회담 재개 3단계 프로세스는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미국과 중국이 6자회담을 재개시켜야 할 이해관계는 무엇일까?

미국 북핵 정책의 변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 북한 핵문제를 풀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어서는 소위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 또는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 전략으로 방관했다. 방관적 대북정책에는 미국의 과거 행정부와 마찬가지고 북한의 붕괴가 임박했다는 가정이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설'(說)이 아니라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김정일의 건강 이상에 따른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는 북한 정권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언제 붕괴될지 모른다는 설을 더욱 부추겨 북한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지연시켰다.

그러나 스탠포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작년 11월 북한을 방문하고 전한 북한의 농축우라늄에 관한 소식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핵 정책으로 삼은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헤커 박사 일행은 북한을 방문해 영변 부근에서 초현대식 우라늄 농축 발전소를 돌아봤는데, 2000개의 우라늄 원심분리기와 초현대식 제어실을 직접 봤다고 한다.

헤커 박사는 <포린 어페어즈>에 북한이 핵무기 4~8개를 만들 수 있는 고농축우라늄을 가지고 있을 것으로 판단하면서 "한 가지 '예스'(yes)를 대가로 세 가지 '노'(no)를 이뤄내는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 가지 '예스'란 미국이 2000년 북미공동코뮈니케에 따라 북한의 근본적인 불안감을 해소시키는데 진지하고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일 용의를 표명하는 것이다. 세 가지 '노'는 핵무기를 더 이상 제조하지 않고(no more bomb), 핵무기의 성능을 강화하지 않으며(no better bomb), 외부에 판매하지 않는다(no export)는 것이다.

즉, 헤커 박사가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와있어, 부시 전 행정부가 주장했던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 보다는 현실적으로 북한의 핵과 핵기술이 확산되지 않는 비확산(non-proleferation)을 대북 핵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헤커의 방북 이후 미국의 대북 핵 정책에는 괄목할 만한 변화가 있었던 것으로 추론되다.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월 미국을 방문하기에 앞서 중국에 온 로버츠 게이츠 당시 미 국방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이 미국 해안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을 5년 이내에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개발은 미국에 직접적인 위협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장관이 '5년 이내'라고 구체적인 시기를 거론 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었으며, 이는 미국이 지금까지 취해온 '전략적 인내'가 변할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북한 핵에 대한 미국의 이러한 문제의식은 올 1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과 후진타오가 약 1시간 30분 동안 가졌던 개인적 면담(private session)의 주요 내용은 북한 핵문제였다고 전해진다.

중국 입장에서도 북한 핵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2020년까지 전면적 소강사회(小康社會.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을 넘어 어느 정도 여유 있는 생활을 누리는 사회)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중국에 있어 동북 지역 개발은 핵심적 과제이고, 그것은 한반도의 안정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6자회담 재개 3단계 방안을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중국은 원래 '북미 고위급 회담 -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예비회담 - 6자 본회담' 순서를 제안했지만 남북 고위급회담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여 현재의 3단계 안이 나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할 때, 현재 진행되고 있는 3단계 안은 위기를 잠시 벗어나자는 일시적 미봉책이라기보다 미국과 중국의 합의하고 구성한 구조에서 기인된 것이며, 이달 중순 이후 2차 북미 고위급회담이 이루어진다면 6자회담이 재개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6자회담이 재개되면 북한 핵문제는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 작년 11월 해커 박사 방북 설명회 장면 ⓒ연합뉴스

북핵 방정식 무엇이 달라졌나

북한 핵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던 계기는 6자회담 제4차 회의였다. 2005년 9월 열린 이 회의에서 9.19 공동성명이 나왔다. 총 6개 항으로 이루어진 성명에서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하도록 되어 있다. 대신 미국은 한반도에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으며 핵무기 또는 재래식 무기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북미관계·북일관계 정상화, 대북 중유 지원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그러나 북한이 돈세탁을 했다는 혐의를 미국이 제기하면서 소위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이 일어나자 북미관계는 다시 얼어붙으며, 2006년 북한의 핵실험으로 9.19 합의는 무력화 되었다. 다시 6자회담이 재개된다면 2005년 9.19 합의로 돌아가는 것일까?

2005년과 2011년 현재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북한은 9.19 합의가 교착 상태에 빠지자, 꾸준히 핵기술을 개발해 2006년 1차 핵실험에 이어 2009년 성능이 좋아진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자체적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까지 만들고 가동시켰다. 9.19 합의 제1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 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NPT와 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했다"고 되어 있다. 이는 미국이 원하는 'CVID'에 가까운 것이었으나, 6년이 지난 현재 북한이 9.19 합의를 원항 그대로 받아들여 미국과 협상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2010년 3월 아산정책연구소가 주최한 초청 강연에서 "세계에서 주요 몇몇 국가가 핵을 보유하고 있다면 핵 능력을 계산할 수 있지만 핵이 확산되면 이러한 계산이 불가능하고 사용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며 "이에 따라 미국이 대단히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접근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확산 가능성을 경계하는 말이었다. 미국은 키신저의 말처럼 북한의 핵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이 이란, 미얀마 같은 반미국가들로 확산되지 않는 비확산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예상된다.

즉, 북한을 사실상의(de facto)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북핵과 미사일 기술을 '관리'하는 것이 현재 미국의 과제이며, 게이츠 전 국방장관의 발언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미국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2008년 시작된 경제 위기가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심화 확대되고 있는 실정에 있는 미국은 긴축경제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다. 긴축의 폭이 가장 큰 것은 군사 부문이다. 이미 미국은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약 1조 달러에 달하는 군비를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과거 소련에 대해 했던 것처럼 군비경쟁(또는 실질적인 전쟁)을 통해 적국을 붕괴시키는 전략은 미국이 선택할 수 없는 옵션이다.

만약 미국이 6자회담 재개를 위한 3단계 프로세스를 무시하고 다시 대북 압박 정책으로 나온다면 북한은 다시 핵실험을 감행할 것이며, 이란과 미얀마나 다른 반미국가들에 핵과 장거리 미사일 기술을 이전하려고 할 것이다. 핵의 원료인 우라늄이 대량 매장되어 있는 북한은 플루토늄을 수입하지 않고서도 자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통해 핵 원료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의 핵 확산은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오바마에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요컨대, 2005년 9.19 합의는 북한이 핵을 포기함으로써 미국, 일본, 한국에 수혜를 입는 수동적인 입장이었다면 6자회담이 재개되고 협상이 이루어진다면, 북한은 수동적이기 보다 능동적인 입장에서 협상에 응하게 될 것이며 6자회담을 푸는 방정식이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6자회담의 궁극적인 목표인 동북아시아 평화체제(Peace Regime) 확립은 매우 다른 방정식을 갖게 된 것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