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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가스관 사업, '수도꼭지'를 왜 포기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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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가스관 사업, '수도꼭지'를 왜 포기했을까?"

[인터뷰] 가스공사 노조 부지부장 "한국이 공급체계에 포함돼야"

지난 8월 북한-러시아 정상회담 이후 북한을 경유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한국으로 수입하는 이른바 파이프 천연가스(PNG) 프로젝트가 동북아 정세의 변수로 재등장했다.

이명박 정부도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난 8일 이명박 대통령은 <KBS>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가스관 사업에 대해 "생각보다 빨리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대통령은 북한이 정치적인 이유로 가스관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러시아가 보상해야 한다는 것을 얘기하고 있다"며 "중간에 끊어지면 북한도 손해고 러시아는 일본, 중국, 우리 외에는 팔 데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갑'의 입장이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다.


14일에는 주강수 한국가스공사(KOGAS) 사장이 러시아 국영 가스기업 가즈프롬과의 협의차 러시아를 방문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도 같은 날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고 북한도 크게 반대하고 있지 않은 만큼 빠른 진전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등 프로젝트의 추진이 급진전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급진전'이 가져올 부작용에 대한 다양한 지적도 나온다. 특히 가스공사 노동조합은 현재 이명박 정부의 구상에 따르면 한국은 단지 '소비자'의 입장에서 가스를 돈 내고 사다 쓰는 처지일 뿐이며, 따라서 국내 산업에 미칠 긍정적인 효과가 상당 부분 사라질 것이라고 비판한다.


배경석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한국가스공사지부 부지부장은 19일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우려를 전했다. 과거 개성공단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사업 등 관련 업무에 참여했던 적이 있는 배 부지부장은 이명박 정부의 '서두름'이 오히려 경제에 큰 손해를 끼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배 부지부장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편집자>
▲ 배경석 가스공사노조 부지부장 ⓒ프레시안(곽재훈)

"MB, 돈 내고 가스를 휴전선에서 받기만 하겠다는 것"

프레시안 : 러시아산 가스 수송 구상의 역사를 간략히 돌아본다면.

배경석 : 러시아 천연가스관 사업은 노태우 정부 때부터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구상된 것이다. 본격적으로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96년 가스공사 내부에서도 관련 팀이 꾸려져 업무를 담당했다. 이후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에너지 문제가 북한 비핵화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는 부분이 부각됐다. 이런 효과를 위해 20여년 동안 기다려 왔다고도 할 수 있다.

프레시안 : 지금 진행되는 것은 처음 구상과 비교했을 때 어떤 점이 달라졌나?

배경석 : 이명박 대통령이 한 얘기는 결국 돈 내고 가스를 받기만 하겠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꽃밭에 물을 주려고 하는데 한국은 호스 끝을 잡고 물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고, 수도꼭지는 러시아와 북한이 쥐고 있는 셈이다. 수도꼭지를 통제하는데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왜 버려야 하는지, 왜 한국이 이런 구도에 동의해줬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지금 상황에서 한국은 러시아와 '도입' 계약만을 맺는다고 한다. 가스관 건설은 북한과 러시아가 하고 가스를 휴전선에서 넘겨받기만 한다는 것이다. 이러면서 정부는 "공급은 러시아가 책임지니까 위험부담이 없다"고 하는데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조인트 벤처' 등 한국이 공급체계의 일부로 들어가야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북한이 가스관을 끊어도 러시아가 알아서 배로 수송해 줄 것이니 우리 책임이 아니라는 것은 무책임한 측면이 있다.

프레시안 : 아직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아서 북한과 러시아가 건설 및 운영을 맡고 한국은 받아서 사용하기만 하는 것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배 부위원장이 우려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징후가 있나?

배경석 : 언론 보도를 보면 러시아와 북한은 "가스관 건설을 위한 프로젝트 실현을 위해" 논의를 한 것으로 돼 있다. 배관 건설을 놓고 협상 및 합의를 했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 정부의 언급을 보면 "러시아와의 가스 도입계약"이란 표현을 쓰고 있고 가스공사 측도 러시아 가즈프롬과 "도입방식별 주요 사안에 대해 공동 연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도입'은 가스공사와 가즈프롬이 하고 '건설'은 북한과 러시아가 한다는 우려가 여기서 증명된다. 실제로 가스공사의 합의 내용이나 관련 로드맵도 그런 방향으로 나온 것으로 안다. 실무 차원에서 흘러가는 것을 보면 이미 명백하게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스관 관련주 급등, 그러나 실상 알려지면…"

프레시안 : 돈 내고 쓰기만 하면 오히려 속 편하고 문제가 없다는 생각도 있을 수는 있을 것 같은데?

▲ 배경석 부지부장 ⓒ프레시안(곽재훈)
배경석 :
그렇게 되면 동북아 경제블록을 형성하는데 중요한 아이템인 천연가스 사업에 대해 한국이 참여할 기회가 축소된다. 한국이 자원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국내 기업이 해외사업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넓혀주는 것인데, 건설과 운영에서 주체로 참여하지 않는다면 해외 진출 기회들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다.

공급 안정성 측면도 문제다. 가스관이 북한을 통과하는 것이어서 공급 안정성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북중러가 사실상 하나의 블럭을 형성하고 있고 한국은 상대적으로 미국‧일본과 더 가까운데, 가스 배관의 건설이나 운영은 전부 북‧러에만 맡기고 한국은 받아쓰기만 한다면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한국이 가스공사를 통해 가스관 건설과 운영에도 참여해야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될 수 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말이 안 된다. 지금 강관회사 등 관련 주가가 치솟고 있는데, 한국이 건설에 참가 안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면 다시 다 떨어질 것이다. 또 가격협상이 잘 안 된다면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프레시안 : 가격협상은 아직 구체적인 내용이 밝혀지지 않았는데,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을까?

배경석 : 가격을 낮출 수 있는 가장 실효성 있는 방안은 한국, 중국 등 수요국들이 연합해서 러시아와 협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급하게 계약을 체결한다면 중국과의 공조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데에는 시간적으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다. 만약 내년까지 계약체결을 완료한다는 구상이라면 공조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맞다. 협의가 현실화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하기 때문에 중국과 합의할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프레시안 : 업계 관계자들이 아니면 천연가스가 얼마 정도 돼야 '싼' 것인지도 잘 모른다. 비교 기준을 제시해 준다면?

배경석 : 가격을 비교하는 데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먼저 유럽 등 이미 러시아가 가스를 공급하고 있는 외국 사례와 비교하는 것이다. 러시아가 유럽으로 수출하는 가격은 1MBTU(100만 BTU, 1BTU=0.252Kcal/h) 당 10달러대 초반이다. 그런데 중국은 가스관을 통해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수입하는 천연가스 가격으로 같은 단위당 6달러 정도만을 내고 있고 러시아에도 이 가격에 가스를 대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른 방법으로는 현재 한국에서 배로 실어나르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와 비교하는 것이있다. LNG는 국제유가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1MBTU 당 11~13달러에 가격이 형성돼 있다. 나중에 실제로 어떤 수준에서 가격이 형성되는지를 유심히 살펴야 한다.

"석유공사-한전-가스공사, 국영 기업 '바보 삼총사'?"

프레시안 : 이런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실무협상을 맡은 가스공사나 지경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배경석 : 천연가스 도입 협상 관련 내용은 계속 정치권에서 흘러나왔다. 외교부 라인을 통해 큰 틀이 그려지고 발표도 외교부 쪽에서 한다. 대통령이 직접 연설에서 언급하거나 청와대가 정보를 흘리기도 한다. 이런 것들을 보면 이미 정권과 정치권에서 큰 판을 짜놓고 지경부와 가스공사는 설거지만 하는 것처럼 되고 있다.

물론 계약은 가스공사가 해야 한다. 그러니 가스공사 직원들이 여기서 문제제기를 안 한다면 잘못된 결정을 방조하고 조장하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 석유공사도 이라크 북부 쿠르드 지역까지 가서 탐사비 4억 달러만 날렸고, 한국전력 전력거래소에서도 낙하산 출신 인사가 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초유의 공급중단 사태가 났다. 가스공사도 러시아와 이런 방식으로 계약한다면 국영 에너지 기업 '바보 삼총사' 꼴이 될 것이다.

아직은 로드맵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기회가 있다. 아직 합의 수준인 것이고 곧 양해각서(MOU) 등 구체적인 합의서 형태로 나올 것인데 그 이전에 바로잡아야 한다. 관련해서 가스공사 노조 또한 내부 감시자 역할을 충분히 할 것이고 필요하다면 시민단체나 정치권과도 연대해서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프레시안 :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배경석 : 에너지 문제에 좀 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 국민경제는 물론 평화의 문제와도 깊이 연관된 것이 에너지다. 당장 가스관 사업이 잘못 추진된다면 남북관계도 문제다. 과거 가스공사에서 개성공단 지역에 천연가스를 공급하는 사업을 할 때 북한은 매우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해당 채널을 통해 PNG에 대한 관심을 많이 표시했었다. 그런데 가스관 건설이 북‧러 양자 간의 문제가 된다면 남북 간에 논의할 기회가 축소되고 에너지를 매개로 한 평화체제 문제도 지연되거나 논의 자체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정부에서 통일 방안으로 추진한 경제공동체 구성 측면을 봐도, 한국이 배관을 구축하면서 북한에 남한의 기술과 노하우를 전달해 (북한 산업을) 한국 방식으로 표준화해 나가야 남북 경제통합이 원활하게 될 수 있다. 북한 에너지 산업에 러시아 방식의 표준이 도입되면 통일됐을 때 낭비와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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