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산하 제주 해군기지 사업조사소위원회에서 국방부 관계자는 미군의 제주 해군기지 사용과 관련한 야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SOFA(주한미군지위협정)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국방부 관계자의 이런 주장은 거짓이다. 왜 그런지 관련 법규를 살펴보자.
먼저, 미군은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 원칙적으로 한국 어디든 맘대로 주둔할 수 있다. 조약 제4조는 "상호 합의에 의하여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부근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여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고 되어있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원칙적으로 육·해·공군을 한국의 어느 곳에든지 배치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핵 관련 시설의 배치도 가능하며 주한미군의 규모나 수준, 부대이동, 작전 및 훈련도 미국이 원하는 대로 정하거나 시행할 수 있다. 미국에 한국의 시설과 구역에 대한 포괄적이고 무제한적인 사용권을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과 미국이 체결한 일미안보조약이 일본 주둔 미군의 권리를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일미안보조약 6조는 "미국은 그의 육군, 공군 및 해군에 의한 일본 국내의 '시설 및 구역의 사용권'을 허여받는다"고 되어 있다. 또 일미안보조약에 따른 교환각서는 "일본의 안전과 극동의 평화안전 유지를 위해 주둔하는 미합중국 군대의 일본 배치, 장비의 주요 변경, 일본 국내의 시설과 구역의 기지화는 일본 정부와 사전 협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미국에 미군 배치와 관련한 제한없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어서, 미국이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과 맺은 일미안보조약에 비해서도 매우 불평등하다.
▲ 부산항에 입항한 미군 군함 ⓒ연합뉴스 |
국방부는 한미 SOFA 제2조 1. (가)의 "합중국은 상호방위조약 제4조에 따라 대한민국 안의 시설과 구역의 사용을 공여 받는다. 개개의 시설과 구역에 관한 제 협정은 본 협정 제28조 규정된 합동위원회를 통하여 양 정부가 이를 체결해야 한다"는 규정을 내세운다. 한국이 미군 주둔을 통제할 근거가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이 규정은 기본적으로 한국 정부가 미군 배치를 통제하는 규정이 아니라, 시설과 구역 제공을 위한 한국 내의 법적・행정적 절차 의무를 정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미국이 미군 배치에 대한 무제한의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한국민의 소유물을 막무가내로 강탈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다른 근거 규정들은 장황하게 제시하면서도 정작 가능성이 제일 높은 미군 함정의 기착에 관한 SOFA 관련 규정은 제시조차 하지 않았다. 관련 규정은 다음과 같다.
한미 SOFA 제10조 선박과 항공기의 기착 : "1. 합중국에 의하여, 합중국을 위하여 또는 합중국의 관리 하에서 공용을 위하여 운항되는 합중국 및 외국의 선박과 항공기는 대한민국의 어떠한 항구 또는 비행장에도 입항료 또는 착륙료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출입할 수 있다.(하단 생략)
2. 제1항에 규정된 선박과 항공기, 기갑 차량을 포함한 합중국 정부 소유의 차량 및 합중국 군대의 구성원, 군속 및 그들의 가족은 합중국 군대가 사용하고 있는 시설과 구역에 출입하고, 이들 시설과 구역간을 이동하고, 또한 이러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의 항구 또는 비행장 간을 이동할 수 있다. 합중국의 군용 차량의 시설과 구역에의 출입 및 이들 시설과 구역간의 이동에는 도로 사용료 및 기타의 과징금을 과하지 아니한다.
3. 제1항에 규정된 선박이 대한민국 항구에 입항하는 경우 통상적인 상태 하에서는 대한민국의 관계 당국에 대하여 적절한 통고를 하여야 한다.(강조 필자) 이러한 선박은 강제 도선이 면제되나, 도선사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적절한 율의 도선료를 지급하여야 한다.
합의의사록 제10조 3. "제3항에 규정된 "적절한 통고"의 면제는, 이러한 통고가 합중국 군대의 안전을 위하거나 또는 이에 유사한 이유 때문에 요구되는 비정상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강조 필자)
이에 따르면 미군 선박과 항공기의 기착의 경우에는 협정 체결이 필요 없고 미국은 한국 정부에 '통고'만 하면 된다. 관련 비용도 모두 면제된다. 뿐만 아니라 미군의 안전 등을 위해서는 통고조차 면제된다. 미군은 한국에 통고조차 하지 않은 채 선박과 항공기를 기착시킬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1994년 봄 미국은 한국 정부에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 북한 핵문제에 대응한다는 구실 아래 '전투력 증강'(FMP : 미 증원전력의 한 종류) 조치의 하나로 정보 분석 요원, 작전계획 수립 요원, 패트리어트 및 에이타킴스 지대지 미사일 운용요원 등이 포함된 300~400명의 미군요원을 K-55기지(일명 오산공군기지)를 통해 비밀리에 입국시킨 바 있다.
이처럼 미군은 한국 정부에 통고도 하지 않고 한국의 어떤 항구나 공항도 돈 한 푼 내지 않고 맘대로 출입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할 법적 권한이 없다. 이런 점에서 "소파 규정상 미군이 우리 시설을 활용하려면 관련 정부, 외교통상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국방부 관계자의 주장은 터무니없다.
만약 국방부 관계자가 이런 규정을 몰랐다면 그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없는 것이고, 고의적으로 은폐했다면 국민의 대표이자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속인 것이라는 점에서 처벌 대상이다.
더욱이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을 붙박이 군대가 아니라 전세계 어디든 투사할 수 있는 신속기동군으로 변화시키는 이른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했다. 전략적 유연성은 병력 출입의 유연성뿐만 아니라 장비나 기지 사용의 유연성, 사전협의 절차의 유연성까지 포함한다. 한마디로 미군이 제 맘대로 한국 영역을 활용하여 자국의 세계패권을 추구하겠다는 얘기다. 제주 해군기지도 여기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아니 중국 포위를 포함한 서태평양지역의 패권을 유지 강화하는 요충지가 될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가 중국 포위의 전초기지가 되면 해군과 국방부의 주장처럼 안보를 굳건히 하는 것이 아니라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을 높여 오히려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진원지가 된다. 미 항모전단이 제 맘대로 드나드는 제주와 평화의 섬 제주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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