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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여름 강타한 반전드라마, 작가의 '시대착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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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여름 강타한 반전드라마, 작가의 '시대착오'

[한반도 브리핑] '북미 정상회담 제안' 전언 주목하라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반전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발리에서 불기 시작한 훈풍이 한국 내에서는 시나브로 냉풍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 7월 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아세안안보포럼(ARF)을 계기로 위성락 한반도 평화교섭본부장과 리용호 북한 외무성 부상이 만났을 때만 해도 남북관계와 북미관계에서 어떤 전기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기대가 높았다.

다음 날 남북 외무장관들의 비공식 접촉은 이러한 기대를 더 높였고, 북한 외무성 김계관 제1부상이 28~29일 미국 뉴욕에서 미국의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이끄는 미 대표단과 북미 고위급 '탐색회담'을 가지면서 이러한 기대는 절정에 올랐다.

이명박 정부 또한 인도적 지원을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등 북과의 관계개선 노력을 보였다. 7월 중순 현인택 통일부 장관과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 비서관 등 대북 강경파의 교체가 검토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었다. 심지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경색된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할 보다 진전된 구상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는 기사도 이어졌다.

'의도' '우연' '돌발' 결합된 7~8월 정세

기대는 한껏 높아졌다. 그러나 오래 가지 못했다. 심상치 않은 기류는 일찌감치 나타났다.

7월 26일 북한이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 당국간 실무회담을 갖자는 정부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보도가 심상치 않았다. 29일에는 통일부 이종주 부대변인이 정례브리핑에서 북측이 "당국간 실무회담을 사실상 거부"했다며 북의 실무회담 거부를 기정사실화 했다.

그렇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북은 실무회담을 거부했다기보다 조건부로 회담을 수용한 것이었다. 즉 금강산에 재산을 가지고 있는 남측 기업들이 기업 및 재산 등록을 할 수 있도록 남측 정부가 허가한다는 전제 하에 실무회담을 고려해보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그 전제조건을 허가할 의지가 없었다. 따라서 실무회담이 무산된 것은 전제조건을 건 북에도 책임이 있지만 기업의 재산권 행사를 허가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롭다고 하기 어렵다.

그러나 통일부는, 그리고 통일부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많은 언론은 북한이 남북 실무회담을 거부했다며 북이 남북대화에 진정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외교통상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위성락 본부장은 29일 외신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은 핵 프로그램 폐기를 전제로 경제지원을 하겠다는 남측의 제안을 냉담하게 거절했다며 "북측이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8월 4일에는 경찰이 가세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북한 해커들이 국내 서버 등을 해킹해 벌어들인 돈을 조직적으로 북한에 송금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사이버테러를 위한 준비를 목적도 있는 것으로 경찰이 파악하고 있다는 보도도 돌았다.

9일에는 <중앙일보>의 '국방장관 암살설'이 한국을 강타했다. <중앙일보>는 "북한 당국의 지시에 따라 김관진 국방장관 암살조가 움직이고 있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정부 고위관계자를 인용했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에 대해 "김정은을 추종하는 젊은 강경파들이 득세하면서 인민무력부장의 통제를 벗어난데 따른 혼란"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10일에는 군이 나섰다. 북한군이 연평도 인근 해상포격을 단행했다는 것이다. 합동참모본부는 8월 10일 오후 1시와 오후 7시 46분쯤 북한군이 각각 3발과 2발의 해안포를 발사, 이중 일부가 북방한계선(NLL) 인근에 떨어져 대응사격을 했다고 발표했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11일자 <동아일보>는 "여권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광복절 경축사에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는 없을 것이고 외교안보 라인의 교체도 없을 것이라고 단정적인 보도를 하기에 이른다. 이 관계자는 "레이건이 소련에 했던 것처럼 국력을 더욱 키워 북한이 스스로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할 것"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레이건 행정부의 역할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는 <동아일보>의 보도대로였다. 이 대통령은 "책임있는 행동과 진정한 자세로 상호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도발을 통해서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며 기존의 원칙적인 입장을 되풀이했다.

16일부터는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이 시작됐다. 17일 북은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자위적 핵 억제력을 질량적으로 더욱 강화"하겠다고 맞섰다.

▲ 대화와 협력의 거대한 흐름을 막아서려는 이명박 정부의 '고지전'은 성공할 것인가. (영화 <고지전>의 한 장면으로 칼럼 내용과 무관함) ⓒ뉴시스

수레를 막아서는 사마귀가 되려는가

대한민국과 같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여러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언론마저도 일사분란하게 시나리오에 맞춰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우연도 있을 것이고, 예기치 않은 일들도 있었을 것이다. 북의 행위도 일조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한 달간의 일들을 총체적으로 볼 때 한국 내에서 분위기 반전은 확실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반전은 정부 내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의 갈등보다는, 커다란 역류현상으로 보인다. 한국 내의 이러한 역류현상은 역설적으로 한반도를 둘러싼 대세의 흐름이 그만큼 만만치 않음을 시사한다.

오바마 정부가 남북 비핵화 회담을 종용하고 남북 비핵화 회담이 끝나자마자 김계관 제1부상을 뉴욕에 초청하는 등 북미대화에 착수하는 것은 그동안 추진해왔던 '전략적 인내'에서 탈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 내에서 정파적 입장을 막론하고 그동안의 전략이 북의 비핵화와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왔음을 부인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정책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몰린 것이다.

2000년 북미 평화프로세스의 입안자 중에 하나였던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을 국무부 정무차관에 내정한 것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미국과 북한은 재미동포 이산가족 서신교환에 합의했고, 양국 적십자사는 이산가족 상봉을 논의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북측에 한국전 전사자 유해 발굴 재개를 위한 회담을 제의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양국은 각양각색의 교환과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북 외무성 대변인의 말대로 "앞으로 보다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상호 신뢰조성에도 도움이 될" 조치들을 착착 밟고 있는 것이다.

그 지향점은 대화의 백미라고 할 정상회담일 것이다. 김계관 제1부상이 굳이 미국에까지 왔을 때는 비핵화와 관계정상화에 대한 확실한 의지를 전달하고 이를 자신보다 높은 급에서 해결하자는 '통 큰' 제안을 가지고 왔을 개연성이 크다. 보즈워스 특별대표와의 회담에서 이러한 제안이 전달되었다는 전언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문정인 연세대 교수 관련 칼럼 보기)

중국도 북과의 대화와 교류를 가속화하고, 러시아도 북한 경유 가스관 건설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대화의 흐름에 끼어들고 있다. 심지어 프랑스조차도 9월이면 평양에 상주대표부를 설치할 예정이다. 미국의 바로 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는 북한 대학교수 6명이 아예 6개월간 장기체류하며 경제 공부를 하고 있다.

하여 한국내 역류현상을 우려한다. 레이건 행정부를 벤치마킹 하려다, 혹여 당랑거철(螳螂拒轍), 수레를 멈추게 하려는 사마귀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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