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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일전 '이유 있는' 참패, 이러다간 '봉'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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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한일전 '이유 있는' 참패, 이러다간 '봉' 된다

[분석] 은퇴와 부상으로 설명 안 되는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

30년 넘게 축구를 봤지만 이번 같이 치욕스런 한일전 참패는 처음 본다. 10일 삿포로(札幌) 한일전은 전술과 기술뿐 아니라 체력과 정신력에서 일본에 모두 밀린 패배 중의 패배였다.

상대가 일본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물론 박지성, 이영표의 은퇴에다 믿었던 이청용, 손흥민의 부상 결장으로 고전이 예상되기는 했다. 그러나 그게 변명이 될 수는 없었다. 이번 한일전 대패는 한국 축구의 복합적인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진 시기에 당한 것이기 때문에 훨씬 더 구조적인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지난 11년 간 일본 원정경기에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 한국이 일본에 37년 만에 3점차로 대패했던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1. 포스트 박지성 시대 리더의 부재

가장 먼저 지적할 것이 바로 대표팀을 은퇴한 박지성의 리더십을 대체할 만한 선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축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11명의 유기적인 팀플레이다. 이번 경기를 보았겠지만 90분 내내 피치에서 선수들을 독려하고 팀을 유기적으로 리드할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주장인 박주영이 당연히 해야 했지만, 그는 이적 문제로 온힘을 쏟을 정신적인 자세가 되지 못했다.

팀의 고참 중의 하나인 김정우나 이정수가 담당하기에는 신뢰가 부족하고 정신적인 강인함이 없다. 경기에서 고전할 때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는 리더가 없다면 일순간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한일전이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박지성-이영표의 국대 은퇴 후 조광래 감독이 관심을 기울였어야 하는 것은 팀을 정신적으로 안정시키고 승리를 위한 의지를 불태울 수 있는 리더와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이었어야 하는데, 그가 얼마나 이 문제에 신경을 썼는지 모르겠다.

독일 마테우스의 은퇴, 프랑스 지단의 은퇴 후 두 나라 대표팀의 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독일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우승 이후 마테우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고 한동안 침체기에 있었고, 프랑스 역시 2006년 독일 월드컵 준우승 이후 지단의 은퇴로 유럽 축구의 동네북이 되기도 했다. 팀의 정신적 리더가 사라진 후 그 미래를 준비하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 대표팀 역시 포스트 박지성의 시대가 바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경우에는 강한 리더십을 가지고 대표팀을 이끌 만한 선수가 당장 보이지 않는게 무엇보다도 안타깝다. 과거 최순호, 홍명보, 박지성과 같은 리더를 찾기에 한국 축구는 앞으로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 10일 한국과 일본 간의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에서 3명의 한국 수비수들 사이로 골을 성공시키는 가가와 신지(푸른색 유니폼) ⓒ로이터=뉴시스

2. K-리그 승부조작 사건과 축구협회 행정 시스템 붕괴

어떤 점에서 이번 한일전 대패의 가장 중요한 원인 중의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경기를 보면서 해외파 선수들도 현저하게 경기력이 떨어졌지만 정성룡, 김정우, 이용래, 이재성, 박원재 등 국내파들의 경기력이 현저하게 퇴화된 느낌이다. 선수들 사이에서 어떤 파이팅이나 열정도 느낄 수 없었다. K-리그는 충격의 승부조작 사건으로 관중들이 반토막 났고 피치에서의 열기도 싸늘해 졌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과거 김동현, 정성국, 홍정호 등 전·현직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연루되어 전체적으로 국가대표팀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한국 축구의 행정을 뒷받침하는 축구협회나 프로연맹의 경우 선수들에게 형식적인 클린 플레이 선서나 시켰지 근본적인 개혁을 위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중후반 리버풀이 연루된 두 번의 대형 축구 참사로 인해 침체에 빠졌던 잉글랜드 축구협회가 새로운 개혁을 위해 프리미어리그를 창설했듯 한국 축구도 이제 승부조작을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개혁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 국내 프로리그의 침체로 나름 좋은 선수들이 돈을 보고 J-리그나 아랍리그에서 뛰게 된 것도 적어도 대표팀 조직력 해체의 간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김영권, 이근호, 김보경, 이정수 등 이번 한일전에 뛴 J-리거들이나 아랍 리거들이 적지 않다. 이들이 과연 J-리그나 아랍리그에서 얼마나 기량을 배울까 생각해보면 K-리그의 침체가 아쉽게 느껴진다.

축구협회의 대표팀 선수 발굴 문제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협회가 대표팀 선수 선발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궁금하다. 그저 해외파들의 경기 점검에만 신경썼지 정작 국내에서 가능성이 있는 선수들을 얼마나 발굴하려고 했는지 모르겠다. 지난번 선수 선발을 놓고 감독과 기술위원회가 보여준 갈등은 현재 표류하고 있는 한국 축구의 행정적 시스템 붕괴의 징후라 할 수 있다.

3. 유럽 이적의 혼란과 해외파들의 실전 감각 부재

이번 경기에 나온 유럽 해외파들은 박주영, 구자철, 기성용, 차두리, 남태희, 박주호 등이다. 이중에서 최근 프리시즌을 포함해 실전 감각을 충분히 끌어올린 선수는 사실상 셀틱의 기성용밖에 없다. 모나코의 박주영은 이적 갈등으로 현재 프랑스 2부 리그가 시작되었지만 제대로 된 연습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셀틱의 차두리 역시 지속적인 경기 출장을 하지 못했고, 볼프스부르크의 구자철, 바젤의 박주호도 마찬가지이다. 발렝시엔의 남태희도 지난 주 리그1 개막전에 결장했다.

특히 실전 감각이 현저하게 떨어진 박주영과 구자철을 투입한 것도 패인 중의 하나다. 평소 같으면 골을 쉽게 넣을 수 있었던 구자철이 두 번의 골 찬스를 날려 먹은 것은 모두 실전 감각이 떨어진 이유 때문이다. 반대로 일본의 유럽 해외파들은 가가와 신지, 혼다, 우치다, 하세베, 오카자키 등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들이 모두 리그 개막전에 출전해서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실전에서 뛴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선수들을 출전시켜 너무 안이하게 경기를 펼친 것이 이번 패배의 주된 요인 중 하나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현재 한국축구가 국가대표급 선수들의 해외 진출 등으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이다. 박지성의 성공으로 현재 대표급 선수들은 모두 유럽 리그의 표적이 되고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이적을 준비하려다가 마음만 뒤숭숭해지고 제대로 내실을 다지는 일들이 최근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럽 이적으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들이 현재 대표 선수들의 경기력 집중에 저해가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무조건 '유럽 진출', 유럽리그로의 이적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과연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에 좋을지 의문이다.

▲ 조광래 감독이 일본에게 0대3으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머리가 아프다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4. 조광래 축구 전술의 한계

마지막으로 '조광래 축구'의 한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970~80년대를 풍미했던 국가대표팀의 핵심 미드필더 출신답게 조광래는 전통적으로 선이 굵은 한국 축구 스타일 대신 패스게임을 통한 '오밀조밀한' 축구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일각에서는 조광래 축구가 현존 최고의 팀인 FC바르셀로나를 벤치마킹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큰 틀의 변화를 제시하는 거시적인 전술 운영 이전에 선수들에 대한 장악과 전술적인 안정감을 갖기에는 조광래 축구는 너무나 불안하다. 이번 같은 경우에도 구자철을 평소 뛰어본 적 없는 오른쪽 윙포워드(측면공격수)로 기용하겠다고 처음부터 발언하고 나섰고, K-리그에서 골 재미를 보고 있는 김정우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올렸다. 선수들 차출이 어려워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전술적 배치이긴 하지만 그의 최근의 선수기용을 보면 안정감 있는 선택과는 거리가 먼 경우가 많았다.

미드필더 라인이 강한 일본과의 경기를 위해서는 양쪽 윙백을 포함해서 중원의 공간을 촘촘하게 묶어줄 활동량이 강한 유기적인 플레이가 필요하다. 따라서 원래 경기 경험대로 구자철을 공격형 미드필더, 기성용, 이용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었을 것이다. 오른쪽 공격수로는 구자철 대신, 본래 보직에 적합한 남태희를 투입했어야 했다. 그리고 아무리 친선전이라고는 하지만, 조광래 감독은 지나치게 선수들의 기용과 전술 포메이션을 언론에 노출시키는 경우가 많다.

조광래는 가끔 경기가 안 풀리는 선수들이 있으면 뛴 지 몇 분 만에 다시 교체해버린다거나 당일 컨디션 고려 없이 명망 위주의 선수들을 자의적으로 조합하는 스타일을 보였다. 선수들에게 패스 플레이를 강조한 만큼 패스를 할 때 유기적인 움직임이 필요한지를 그가 얼마나 많이 시뮬레이션했는지 궁금하다. 일본의 패스플레이가 살아난 것은 패스를 하고 받는 선수들이 빈 공간으로 사전에 빠져나갔기 때문인데, 이에 비해 한국 선수들의 유기적인 공간 활동은 거의 없었다. 그냥 서 있거나 자신의 자리에서 볼을 받기만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축구는 만화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생생한 다큐멘터리다. 말로 상상이 가능한 바르셀로나 축구 스타일 운운하기 이전에 선수들에게 기본적인 전술이해와 움직임, 그리고 강인한 전투정신부터 훈련시켜야 한다.

차기 월드컵 3차 예선을 코앞에 둔 시점이라 이번 경기로 조광래 감독이 사임할 일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 참패가 한국축구의 몰락을 곧바로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선수단 운영 시스템과 경기력이라면,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3차 예선은 정말 한국 축구의 재앙이 될 수 있다.

축구에서 '기'가 한번 꺾이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 있다. 한국 축구가 이번 월드컵 3차 예선에서 아시아 국가들의 '봉'으로 전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조광래 감독은 만화 같은 이야기보다는 선수들의 정신력과 일관성 있는 전술 운용, 냉정한 플레이를 90분 내내 유지할 수 있는 마인드 컨트롤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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