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시위는 이스라엘 최대 도시 텔아비브에 살고 있는 비디오 편집자 다프니 리프(25)가 더 이상 주택 임대료에 시달릴 수 없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텐트 시위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리프와 같은 처지에 놓여 있는 젊은이들, 보육료 걱정에 시달리던 부모, 현실적인 임금과 적절한 휴식을 원하던 의사 등 수천 명이 동조했다.
'사회 정의'를 부르짖는 목소리가 이처럼 빨리 번져나갈 줄은 이스라엘 정치권은 물론이고 시위대 자신들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랍의 안보 위협'이란 말 한 마디로 국내적 불만을 다스려왔던 나라가 바로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엄청나게 높은 물가, 소득의 50%를 쏟아 부어야 하는 주거비, 심화된 양극화, 방대한 국방 예산, 과도한 간접세에 대한 불만 등을 시위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스라엘의 식료품 가격은 2005년 이후 6년 동안 거의 13% 올랐고, 많은 시민들은 임금의 50%를 주거비로 쓰고 있다.
미국 주재 이스라엘 대사였던 샐라이 메리도는 중동 평화 협상 중단, 유대교 초정통파(ultra-Orthodox)들에 대한 지나친 지원, 부의 집중, 나라가 우파적·종교적 가치를 더 중시함에 따라 나타나는 세속 엘리트들의 지위 하락 등을 이유로 분석했다고 <뉴욕타임스>는 5일 전했다.
▲ 지난 6일 텔아비브 거리시위 장면 ⓒAP=연합뉴스 |
"이스라엘의 '사회계약' 본질에 대한 의문"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시위의 보다 깊은 뿌리에 대해 분석했다. 많은 이스라엘인들이 국가의 안보를 위해 자신들이 희생하는 대가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한다고 느끼게 되면서, 이스라엘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계약'의 본질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1980년대 경제 위기를 맞은 이스라엘은 국가 주도의 유사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을 버리고 시장과 민영화가 활개 치는 경제 체제로 탈바꿈했다. 그 후 이스라엘인들의 공동체 의식은 약화됐고, 물가가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부의 편중이 심화됐다.
이에 따라 정부가 일반 시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지 않고 있으며, 이스라엘인들이 공유하던 꿈은 글로벌 자본주의와 극도의 개인주의로 인해 점차 희미해졌다는 생각이 퍼지게 됐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존경받는 작가 중 하나인 아모스 오즈는 지난 주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 1면 기고문에서 "시위는 집값 문제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시민들의 고통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 노동자들과 사회적 연대 파괴에 대한 정부의 이중잣대에 대한 분노가 시위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세속주의·자유주의 성향 중산층들 침묵을 깨다
텔아비브대학의 심리학 교수 카를로 스트렝거는 지난 2일 <가디언> 칼럼에서 정교분리를 선호하는 세속주의 중산층들이 시위를 주도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우파들이 이스라엘 정치를 주무르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자 중산층 자유주의자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우파 리쿠드당 당수로 1990년대 말 총리를 역임한 바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는 2009년 3월 총선을 통해 다시 총리가 됐다. 네타냐후는 우파 연립정부를 구성했고, 극우 정당 '이스라엘 베이테누'의 아비그도르 리베르만 당수를 외무장관에 임명했다. 집권 연정은 리베르만 장관을 앞세워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각종 법을 통과시켰다.
한편에서는 '우파의 기수'를 놓고 경쟁하게 된 네타냐후 총리와 리베르만 장관, 그리고 우파의 '큰형'인 리쿠드당과 도전자 이스라엘 베이테누가 경쟁적으로 우경화 정책을 몰아붙였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이제 자유 민주주의 국가라는 정체성까지 위협받게 됐다. 그 과정에서 자유주의자들의 목소리는 거의 사라졌다.
이스라엘에서는 자유주의자들을 좌파와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팔레스타인 문제와 관련해서 특히 그러했다. 유권자들은 과거 노동당 정부가 팔레스타인과 평화협상을 맺은 후 자살 폭탄 테러가 기승을 부렸고,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하자 그곳이 이스라엘 남부를 향한 로켓포 공격의 진원지가 되면서 '평화는 속임수일 뿐'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자들은 자연스럽게 '순진하다'는 평을 듣게 됐다.
리베르만 장관과 네타나후 총리는 좌파와 자유주의자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이같은 분노에 편승해 '자유주의자=이적행위자'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 토대 위에서 우파 정권이 추진하는 전체주의적 조치들은 브레이크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스트렝거 교수는 이번 시위를 통해 지난 10년간 정치에 무관심했던 세속주의적 중산층들이 봉기해 자유주의적 가치를 주장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물론 엄청난 세금을 내지만 제대로 된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산층들의 불만이 불쏘시개였다. 한 반에 40명이 넘을 정도로 학교는 과밀이고, 많은 여성들은 보육료 때문에 포기하고 직접 아이들을 기르며, 제3세계 국가와 비슷한 대중교통 요금 수준이 중산층 봉기의 원인을 제공했다.
스트렝거 교수는 "이번 시위 사태를 통해 이스라엘의 자유주의자들은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다"며 "시위 지도부가 없고 시위가 벌어지는 거리의 분위기는 우드스탁이 재연된 것 같다. 그들의 요구 사항에 대해 거의 모든 계급·계층의 사람들이 납득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파 정부 "팔레스타인 세력 배후에 있다"
시위대들은 특히 자신들의 행동이 특정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 결과 7월 말 <하레츠>의 여론조사 결과 87%의 응답자들이 시위대의 요구를 지지한다고 답했다. <가디언>의 7일 보도에 따르면, 그 비율은 90%로 늘었다.
<가디언>은 시위를 조직하고 있는 이들이 좌파건 우파건, 세속주의자건 종교색이 짙은 이들이건, 유대인이건 아랍인들이건 상관없이 가급적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팔레스타인 점령에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동원된 시위라는 우파의 공격을 받지 않기 위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 쓰이는 돈 문제, 국방비 문제 등과 현재의 경제 문제를 연결시키지 않는 전략을 쓰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은 도전받고 있다. 네타나후 총리는 시위가 정권 붕괴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진 것이라며 시위의 명분을 깎아내렸다. 리쿠드당 중앙위원회는 이달 초 시위는 극좌파들의 선동일 뿐이고, 언론은 시위대의 규모를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우파 칼럼니스트 마틴 셔만은 지난 5일 <예루살렘포스트> 칼럼에서 팔레스타인 정착촌에 반대하는 이들이 시위의 배후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스라엘의 주거비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웨스트뱅크 정착촌을 확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위대가 '정착촌에 너무 많은 돈을 쏟아 부어 이스라엘 내 주택 건축이 축소됐다'고 말한다면서, 바로 그 주장이 이번 시위의 본질을 말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순수하고 비정치적인 사회적 시위라고? 웃기지 마라"라고 말했다.
스트렝거 교수는 우파들의 이러한 공격이 계속될 경우 결국 시위는 집권 연정과 충돌하면서 정치적인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그는 "시위대들은 점령지에 너무 많은 세금이 쓰이고, 경제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유대교 초정통파들에 대한 지원금이 너무 많으며, 정부와 정착민들의 결탁이 이스라엘을 도덕적·정치적·경제적 쇠락으로 가게 한다고 주장해야 할 것"이라며 "사회 정의에 대한 요구와 자유주의적 가치 회복의 요구는 결과적으로 분리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네타냐후 총리가 시위대의 명분을 약화시키려고 시도할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중산층들은 이스라엘이 극우파의 나라가 되고, 인종차별적 체제가 구축되며, 도덕적·경제적·정치적으로 파산한 국가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할 가능성도 있다"며 '시위의 정치화'에 적극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가디언>은 네타냐후 총리가 오는 9월 팔레스타인이 유엔 총회에서 국가 승인을 받으려는 표결을 시도하는 것을 이용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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