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회담의 본질은 남북의 억지춘향식 만남이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위해 내키지 않지만 남쪽을 만나준 것이었고 한국 역시 미국의 최후 통첩성 경고에 떠밀려 싫지만 북쪽과 마주앉은 것이었다.
따라서 발리회담 이후 한반도 정세가 여전히 교착국면을 지속하고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지도 모른다. 북미 협상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원칙있는 대화'를 강조했고 북한은 남북 비핵화회담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발리 회담 직후 통일부가 제의한 금강산 실무 회담을 사실상 거부하고 나섰다.
그동안의 입장을 바꿔 이명박 정부가 관광 재개까지도 논의할 수 있는 당국간 실무회담을 제의한 것은 분명 전향적인 태도였고 때문에 북한이 이를 거부한 것은 의외로 해석되었다. 발리 회담의 정세 호전을 배경으로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해 나름 유연한 접근을 보이고 있는 맥락에서 북측이 더욱 단호하게 금강산 실무회담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간의 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다. 금강산 관광 회담에 관한 한, 북한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트라우마가 있기 때문이다.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간 회담에서 번번이 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욕과 절망과 배신감을 남쪽에게 당했다는 입장이다.
특히 2010년 2.8 금강산 실무회담은 북에게 최악의 심리적 외상을 안겨 주었다. 관광 실무회담이라는 말만 들어도 치가 떨리고 정신적으로 불안정해지는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금강산 관광과 관련해 씻어 낼 수 없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북한이기에 이번 이명박 정부의 관광 실무회담 제안은 희망이 아니라 또다시 과거의 쓰라린 상처를 되살리는 정신적 고통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북한이 금강산 관광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다. 그러나 명명백백한 사실은 이른바 '3대조건'이라는 것을 걸어 이명박 정부가 절대로 금강산관광 재개를 허용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다.
▲ 4일 금강산에서 열린 고(故)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의 추모제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했던 장경작 현대아산 사장이 이날 오후 5시 25분 강원 고성군 동해선출입관리사무소를 통해 돌아오면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
잘 알려진 대로 금강산 관광은 현대아산의 성공적인 사업이자 남북 화해와 한반도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2008년 7.11일 관광객 박왕자씨가 통제선을 넘어 출임금지 구역을 들어갔다가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명박 정부는 즉각 관광을 중단시켰다. 이후 북한은 일관되게 관광재개를 요구했고 이에 대해 이명박 정부는 '진상규명, 신변보장, 재발방지'라는 3대 조건을 내세워 지금까지 관광재개를 거부했다. 3년째 관광재개가 불가능해지자 북한은 드디어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이라는 새로운 입법조치를 단행했고 이 법의 시행을 통해 현대아산의 독점권을 취소하고 아예 해외 국제관광사업으로 대체할 결심을 하고 있다.
최근 북이 현대아산 등 남측에 대해 재산권 정리안을 제출하라는 요구는 그런 맥락에서 진행되는 것이다. 물론 북의 최근 조치가 관광재개를 얻어내기 위한 압박 카드일 수도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남측과의 사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자포자기의 심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밑바닥에는 이명박 정부하에서 관광 재개의 희망은 없다는 판단이 자리잡고 있다.
북한이 그토록 절실하게 매달리고 요구했던 금강산 관광재개를 희망이 없는 것으로 포기한 데는 바로 지난 해 2.8 회담의 쓰라린 기억 때문이다. 북은 2.8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온갖 굴욕을 무릅쓰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했다.
멀리는 2009년 하반기부터 현정은 회장 방북과 김정일 위원장 면담을 통해 관광재개를 위한 신변보장 등을 직접 확약하기도 했다. 곧이어 북한은 개성공단 직원 석방과 억류 선박 송환을 조건없이 단행했고 이산가족 상봉을 먼저 제안해서 성사시키기도 했다. 북이 일방적으로 선포했던 군사분계선 통행제한조치 즉 12.1 조치도 북이 스스로 해제발표했다. 잇따른 북의 유화조치는 이명박 정부의 본심을 떠보고 남측에게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를 기대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바로미터는 금강산관광 재개였다.
2.8 회담이 열리기까지에도 북한은 남측의 회담 지연이라는 우여곡절을 참고 견뎌내야만 했다. 2009년 8월 김정일 위원장의 담보하에 관광재개를 위한 합의문이(8.17) 채택되었지만 이명박 정부는 '민간사업자간 합의이므로 당국간 합의가 필요하다'며 수용을 유보했다. 관광재개를 환영하는 게 아니라 당국간 합의라는 또 하나의 요구를 제시한 것이다. 다시 북은 2009년 11.18일 아태 리종혁 부위원장을 통해 현정은 회장에게 '당국대화를 공식 제의'하면서 통일부에 전달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통일부는 또 다시 '당국채널 제의가 아니므로 공식 대화제의가 아니다'며 거절했다.
급기야 북은 2010년 1.14일 판문점 채널을 통해 통일부 앞으로 실무회담을 제의했고 이에 대해서도 통일부는 아태가 공식 기관이 아니라면서 떨떠름한 입장을 견지하다가 통전부 앞으로 회담 일자를 수정제의하고서야 2.8 실무회담이 성사될 수 있었다.
온갖 요구를 일일이 다 들어주고 양보에 양보를 다해 2.8 회담에 북이 나선 것은 오로지 관광재개라는 남측의 결단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정작 회담이 열렸지만 이명박 정부는 예의 3대조건만 기계적으로 되풀이했고 북의 주장과 요구에 대한 대안은 없는 채로 관광재개가 불가하다는 입장만을 반복했다. 관광재개를 위한 남북회담이 결국 관광불가 입장을 북에 통보하는 장소가 되고 만 셈이다.
당시 실무회담에서 북은 단장이 직접 사망에 대한 유감표명을 다시 하고 현장조사 허용방침을 밝히고 신변안전과 재발방지가 해결되었음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남측은 구체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로 3대 선결조건만을 반복해서 주장했다. 더욱 기막힌 것은 북이 후속회담 일정이라도 합의하자고 제의했음에도 남측은 일정합의마저 거부했다. 관광재개를 위한 회담 자체를 내켜하지 않는 입장이 분명했다.
결국 북한은 그렇게 공을 들인 금강산관광 실무회담장에서 이명박 정부의 실체와 본질을 똑똑히 알게 되었고 다시는 관광재개를 위한 당국간 실무회담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결심하고 또 결심했을 법하다. 2.8 회담의 잊지 못할 트라우마로 인해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또다시 관광 실무회담을 제안한다 해도 결코 회담에 응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했을 만하다.
발리 훈풍의 여파 속에서 이명박 정부가 금강산 실무회담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회담이 개최되기만 할뿐 남측이 관광불가라는 입장만을 반복할 것이라고 의심할 만도 하다. 회담 개최가 관광재개 불가를 통보하는 장소로 활용되는 것을 더 이상 북은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발리 훈풍을 진정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전기로 마련하고자 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단순히 관광 실무회담을 제안하는 데 그치지 말고 명백하게 관광재개 결단을 먼저 발표하고 이를 위한 당국간 회담을 제안해야 한다. 그것만이 트라우마에 빠져 있는 북한을 회담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여전히 관광재개할 생각은 하지 않고 또다시 적당히 회담이나 열어보겠다는 심산이라면 아예 금강산 실무회담을 제안하지 않는게 솔직한 모습이다. 북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최고치의 목표만을 시종일관 반복해 요구하기만 하는 만남이라면 그것은 협상이나 회담이 아니라 혼잣말에 불과하다. 그래서는 남북관계 개선과 남북대화 재개는 불가능하다.
* 원제 : 금강산 관광 회담과 북한의 트라우마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주간논평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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