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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나라 노르웨이, 그곳에서 '증오의 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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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의 나라 노르웨이, 그곳에서 '증오의 싹'이…

[오슬로에서 온 편지]<2> 노르웨이 '어두운 진실'에 비춰진 불빛

참혹한 테러를 통해 드러난 노르웨이의 성격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이중성'이다. 북유럽의 작지만 부유한 복지국가, 노벨평화상을 주는 평화의 나라라는 이미지의 노르웨이는 사실 아프가니스탄과 리비아에 군대를 보낸 적극적 참전국이었다. 개방을 부르짖지만 동시에 지극히 폐쇄적이며 이민자들과 타문화에 대한 배타성도 강하다.

테러에 대한 대응 역시 이중적이다.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이 필요하다'는 총리의 추모연설은 감동 그 자체였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대통령과 대비되어 '이것이 바로 미국과 노르웨이의 차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러나 오슬로국립대의 박노자 교수는 집권 노동당이 정체성을 잃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용한 것이 극우파 양산의 배경이 됐다고 비판했다. 총리의 연설에 그저 감동만 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테러 발생 직후인 지난 24일 "노르웨이 테러, '평화의 나라'의 두 얼굴"(☞바로가기)이란 기고를 보내온 오슬로대학의 강사 정의성 씨가 노르웨이의 이중성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심층 분석한 두 번째 글을 보내왔다. 정의성 씨는 노르웨이에 유입된 수많은 이민자들이 사회경제적으로 낮은 계층을 형성하고 있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문화가 강해 사회적 갈등이 수면 아래에서만 끓고 있음을 설명한다.

그러면서도 정 씨는 이번 테러를 계기로 그러한 갈등을 조명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고, 정당 가입도 느는 현상이 있다면서 노르웨이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사회심리학을 전공한 정 씨는 현재 노르웨이에서 한국·일본·북유럽 사회의 이데올로기를 연구하고 있다. <편집자>


▲ 테러가 일어났던 우퇴위야 섬 주변에서 노르웨이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꽃을 실은 배를 타고 있다. ⓒAP=연합뉴스

그간 노르웨이는 한국에 잘 알려진 나라는 아니었다. 그저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평화롭고 조용한 나라, 이것이 우리가 노르웨이에 대해 갖던 이미지였다.

그러나 22일에 발생한 폭탄 테러와 총격 사건으로 우리는 노르웨이에 부쩍 관심을 갖게 됐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새로운 면모를 알기 시작했다. 과연 노르웨이에서 반(反)이슬람, 반이민 정서는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존재해 왔을까? 몇몇 이민자들은 이번 테러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노르웨이는 최근 50년 간 급격한 이민자 증가로 인해 사회 통합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사실이다. 노르웨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이민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1950년에는 전체 인구의 1.4%가 외국 출생자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노동자 유입은 1975년 노르웨이 정부가 노동 이민을 금지시키면서 일단락되었지만, 노르웨이는 계속적으로 전세계 분쟁 지역에서 온 많은 난민들을 수용해오는 전통을 유지했다. 이후 2004년 구(舊)소련 국가들이 유럽연합(EU)에 가입하게 됨으로써, 노르웨이에서의 취업의 문호가 열리게 되었고, 그 후 폴란드와 발틱 국가를 중심으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노르웨이 땅으로 유입되었다.

1990-2009년까지 전체 42만 명의 이민자가 노르웨이 땅을 밟았다. 그 중 26%는 난민 지위, 26%는 노동 이민, 23%는 가족 이민, 11%는 학업 이민으로 노르웨이에 진입했다. 현재 전체 인구의 12,2%(60만 여명)가 이민자(50만의 이민 1세대, 약 10만 명의 이민자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이중 28만 명은 유럽인, 21만 명은 아시아인, 7만4000명은 아프리카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 이민자와 이민 2세대의 증가 현황 ⓒ노르웨이 통계청(www.ssb.no)

출신 국가에 따라 짧은 시간 동안의 급속한 이민자 수의 증가는 여러 사회 갈등을 초래했다. 특히 수도 오슬로의 경우 전체 인구 가운데 25%가 이민자일 정도로 많은 이민자가 거주하고 있고, 이들은 오슬로 동부 지역에 모여 살고 있다. 소득, 선거 결과, 학교 수준에 이르기까지 오슬로 시는 동서로 분리되고 있으며 과연 이민자들이 노르웨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통합되고 있는지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전국 평균에 비해 오슬로 동부에서 아이들이 빈곤 가정에서 자라고 있는 비율이 많게는 4배가 넘으며, 그 중 약 78%의 아이들이 서구 출신(노르웨이 및 미구주 포함)이 아니라는 통계가 있다. 이를 통해 오슬로의 특정 지역에 빈곤한 가정의 아이들, 특히 이민자 가정의 아이들이 모여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오슬로 시의 학교에 다니는 이민자 아이들의 비율을 표시해 보면, 시 서쪽 지역에는 이민자의 자녀가 단 한 명도 없는 학교도 있지만 동쪽 지역 학교에는 최대 97% 학생들이 이민자 배경을 갖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명확하게 지역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노르웨이가 실시하고 있는 전국 학력 평가 결과도 동서로 나뉘어 서쪽에 비해 동쪽 지역 학생들의 성적이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어서, 다문화 사회 또는 사회 통합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오슬로 시는 이민자들의 게토화가 진행되고 있다.

▲ 오슬로에 있는 학교별로 이민자의 언어(노르웨이어가 아닌 외국어)를 사용하는 비율을 나타낸 지도. 푸른색으로 갈수록 이민자 언어 사용 비율이 낮고, 노란색·빨간색으로 갈수록 이민자 언어 사용 비율이 높다. 오슬로 동서 지역의 차이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노르웨이 언론 <아프텐포스텐> 홈페이지 캡쳐
▲ 2009년 실시된 전국 학력 평가에 대한 오슬로 시의 결과. 이민자들이 많이 사는 동쪽 지역이 푸른색으로 나타나면서 성적이 비교적 떨어진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노르웨이 언론 <아프텐포스텐> 홈페이지 캡쳐

개개인의 의견과 사생활을 존중하고 가족 또는 친밀한 소규모의 그룹 위주로만 교제를 하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정서상, 이와 같은 사회적인 갈등은 내재적으로만 존재할 뿐 외부로 표출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특히 2001년에 가나 출신의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를 둔 15세의 벤자민이란 소년이 신(新)나치주의자들에게 무참히 폭행을 당해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난 뒤 노르웨이 사회에서 인종차별은 일종의 금기로 자리잡아왔다. 하지만 늘어나는 이민자, 계속되는 문화적 갈등, 경제 위기와 함께 쌓여있는 사회적 불만은 계속 증가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 노르웨이 정부는 상대적으로 극우 민족주의자들에 대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고 지금까지의 '평화로운 조그마한 나라'라는 이미지 속에 안주하기만 했던 것이 사실이다. 또한 반이슬람 및 반이민주의자들이 그룹을 이루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존재했기에 그들의 실상을 파악하기도,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기 어려웠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반이민, 반다문화에 관련된 논의가 공적인 장에서 이루어 지지 않은 채, 몇몇 극단적인 웹사이트 등을 통해서 교류되며, 테러범 브레이비크가 주로 활동했었던 반이슬람 웹사이트 'document.no'가 극단주의자들의 온실로 기능하게 되었다고 오슬로 칼리지의 라스 굴 철학 교수는 지적하고 있다.

또한 노르웨이 언론연합 사무총장인 페르 에드가는 이와 관련된 논의가 진행될 수 있는 공론의 장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공식적으로 노르웨이 사회에는 반이민, 반이슬람 문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존재하지 않는 지 차마 들여다보지 않았던 곳에서 사회를 위협하는 증오가 움트고 있었다. 이제 노르웨이인들은 그 동안 간과해왔던 어두운 진실에 새로운 조명을 비추려 하고 있다.

은밀하게 존재하던 이민자, 특히 이슬람 문화에 대한 불안과 적개심은 이번 테러 이후 노르웨이의 주요 언론들이 하나같이 테러가 이슬람 근본주의자의 소행일 것이라는 추측성 기사를 싣던 것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한 증거도 없던 상황에서 노르웨이 언론은 노르웨이의 아프가니스탄 참전, 리비아 폭격 등으로 인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다. 이는 노르웨이가 한 손으로 노벨평화상을 나눠주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중동 지역에 총알과 폭탄을 나누어주고 있다는 자백과 다름없었다.

테러 소식이 알려지고 약 10분 뒤부터 주요 이슬람 커뮤니티는 네티즌들의 분노에 찬 공격을 받기 시작했고, 몇몇 무슬림 지도자들은 무슬림 이민자들에게 조심할 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테러에 당황한 노르웨이 사람들이 '테러=이슬람의 소행'이라는 진부한 공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진정 경계해야 할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임을 깨닫고 '우리는 모두 한 가족입니다'라고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정치의식 역시 고조되어 사회 갈등은 결코 폭력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되며, 오직 민주적인 방식으로만 해결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화됐다.

실제로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노르웨이의 모든 정당에 사상 유례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입하고 있다고 하니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모두 아우르는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성숙해 질 노르웨이를 기대해 본다.

근대화된 경제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이민 노동력의 공급은 필수적이다.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수많은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게 되어 있다.

그 중에는 브레이비크처럼 강한 거부감을 가진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필자가 만난 대부분의 노르웨이인들은 "우리는 무슬림을 포함한 그 어떤 이민자들도 미워하지 않는다. 이제 노르웨이는 외국인 노동력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든 열려있다"라고 강조한다. 이것이 건강한 노르웨이 인들이 보편적인 사고방식일 것이다.

큰 아픔은 있었지만 그들은 결국 사회 통합을 이루어 낼 것이라고 믿는다. 보다 큰 관용과 인간애, 민주주의가 노르웨이의 사회 통합의 기초가 될 것이다. 이민자들과 더불어 유입되는 새로운 문화와의 사회적인 통합은 한국의 과제이기도 하다. 고통스럽더라도 갈등을 드러내고 치유할 것인가 아니면 그저 덮어 두고 애써 외면 할 것인가. 우리의 나아갈 길은 자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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