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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명월', 이러다간 베이징에 파견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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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 명월', 이러다간 베이징에 파견될라

[한반도 브리핑] '北한류' '범죄사례집' 현상보다 추세를 보라

지난해부터 북한에도 한류(韓流) 바람이 불고 있다는 보도가 심심찮게 나왔다. 올해 들어서는 북한의 한류를 다룬 책까지 나왔다.

이번 주부터는 북한에 불고 있다는 한류 열풍을 소재로 월화 드라마 '스파이 명월'까지 <KBS>에서 방송되기 시작했다. 북한의 한류단속반원인 명월(한예슬)이 '남한 최고의 한류스타 강우(에릭)와 결혼해 북으로 데려오라'는 임무를 수행하면서 벌어지는 좌충우돌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다. 지난 11일 방영된 1회분에선 북한의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남쪽의 드라마를 몰래 시청하다 한류단속반에 걸리는 장면이 등장했다.

▲ 드라마 '스파이명월' 한장면 ⓒ뉴시스

이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북한에도 진짜 한류 열풍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갖게 될 것 같다. 일부 언론들은 탈북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한국 드라마가 북한에서 높은 인기를 얻으면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남한에 대한 환상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말 북한에도 한류 열풍이 있긴 한 것일까?

4년 전인 2007년 초 취재차차 평양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둘째 날 아침 북측 안내원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기 전에 〈주몽>을 몇 편까지 봤소? 나는 55회까지 봤는데, 그 이후 전개가 어떻게 됩니까?"

"북에서도 〈주몽>이 인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남쪽이 사극 하나는 참 재미있게 잘 만드는 것 같소."


그때는 북한의 일부 사람들이 '특정 목적'을 위해 남쪽의 영화나 드라마까지 보고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논의하기 위해 방북한 임동원 특사에게 남측의 영화를 거론한 바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일반 주민들까지 한류 바람이 불고 있다는 최근의 보도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한류라는 말을 쓰진 않았지만 북한에서 남쪽의 노래가 불리고, 드라마나 영화가 은밀하게 유통된다는 이야기는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나왔다. 실제로 중국을 통해 '연변 가요'라는 이름으로 최진희, 주현미 등 남쪽 가수의 노래가 북쪽에 많이 들어가 불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산 화장품 등이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다는 증언도 이미 과거에 나온 것이다.

그후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 교류가 활성화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시장에서 유통되는 한국 제품의 양이 늘었을 것이다. 김연자, 이미자, 윤도현, 조용필 등 남쪽의 가수들이 평양에서 공연을 가졌던 것을 고려하면 대중문화도 더 확산됐을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시작된 MP3, CD 플레이어, DVD 플레이어 등의 보급은 이러한 경향을 더 부채질했다. 외국에 파견 나갔다가 평양으로 돌아가는 북한의 노동자들이 디카나 DVD플레이어를 사가는 가는 모습을 중국 베이징 공항에서조차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 해외에 파견됐다 돌아가는 북한 노동자가 중국 베이징공항에서 디카로 동료 사진을 찍어주고 있다. ⓒ정창현

그러나 북한의 대도시 젊은이들 가운데는 한국 드라마,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라는 평가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북한이 철저한 조직(통제) 사회라는 점을 망각한 분석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 이른바 북한의 한류 바람이 언론의 관심을 끈 시기는 북한붕괴론이 주기적으로 등장한 시점과 일치한다. 북한 경제의 어려움→북한 사회의 조직적 이완→한류의 확산→북한 체제의 위기라는 연결적 사고가 깔려 있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을 특정한 정치적 결론에 입각해 과도하게 일반화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언론 보도에 따르면 MP3의 가격은 1기가 메모리 내장 상태에서 북한 돈 6만원, 중고 노트북은 북한 돈 200만원이며 2~3개 영화가 들어 있는 메모리칩의 가격은 원본이 1개당 북한 돈 1만원, 복사본이 5000원, 대여비가 2000원 정도라고 한다. 북한 내각 장관의 명목 월급이 공식적으로 북한 돈 6000원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연 북한 주민 중 몇 명이나 이만한 거금을 들여 남쪽 드라마를 볼 수 있을까 의심스럽다.

더 중요한 대목은 북한 당국의 정책적 변화와 주민의 의식 변화가 맞물려 북한 사회의 변화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휴대전화의 보급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약 55만대의 휴대전화가 보급된 것으로 전해진다. 초기 예상을 벗어난 폭발적 증가가 아닐 수 없다.

컴퓨터의 보급도 빠르게 늘고 있다. 북한 도시의 젊은층 사이에서는 채팅과 게임이 일상화되고 있다. 디지털 기기의 보급이 가져온 평양의 신풍속도인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여전히 북한 당국의 정책적 범위와 통제 아래 진행되고 있다.

또한 북한의 일부 계층과 일부 지역의 주민들이 남쪽의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남한에 대한 환상과 동경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도 어렵다. 물론 남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데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한류 현상에 대해 한편으로 단속을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신세대에 맞는 콘텐츠 개발에 나서고 있다. 남쪽의 대중가수를 초청해 남쪽의 대중문화에 대한 '면역력'도 높여왔다.

물론 북한이 개발해 보급할 수 있는 콘텐츠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남쪽의 드라마나 영화와 비교했을 때 빠른 시일 내에 경쟁력을 갖기도 어렵다. 그런 점에서 북쪽에서 일부 나타나나고 있는 한류를 완전히 통제하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한류(韓流)가 한류(漢流)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남북교류가 단절되고, 더 나아가 대결적 관계가 되면서 북한 내에서 한류의 유통은 더 위험해지고 위축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난해부터 북중관계가 밀착되면서 중국의 대중문화가 북한 주민들 사이에 친숙하게 다가설 것으로 보인다. 북한 TV에서 편수를 늘려가고 있는 중국 영화가 장기적으로 북한의 안방을 합법적으로 차지할 수도 있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북한에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는 시각은 북한 사회의 변화 흐름을 이해하는데 또 다른 편향으로 작용할 수 있는 셈이다.

▲ 이집트의 오라스콤과 북한 체신성아 합작해 설립한 휴대전화 판매회사인 고려링크의 홍보사진. 북한에서의 휴대전화 보급대수가 55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전해진다. ⓒ정창현

지난 6월 국내 언론이 북한 인민보안성출판사가 2009년 발간한 <법투쟁부문 일군들을 위한 참고서>를 입수해 분석한 기사도 비슷한 유형의 편향에 속한다. 791쪽의 방대한 분량인 이 '비밀' 참고서는 북한에서 있었던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 북한 사회를 그대로 들여다보는데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국내 일부 언론들은 북한사회의 형법과 민법, 형사소송법 등 3개 법에 관련된 총 721개 사건 사례 중 위폐·마약 사건, 경제난으로 인한 사건 등만을 집중 보도함으로써 북한 사회의 어두운 면만을 부각시켰다.

이 참고서에 따르면 상점에서 상품을 훔친 다음 범죄 흔적을 없애버리기 위해 상점에 불을 지르고 도주하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중학교 학생이 어머니의 불륜을 보고 우발적으로 저지른 살인 사건도 있다. 불륜 때문에 일어난 사건은 이외에도 여러 건이 소개되어 있다. 아버지를 밀쳤는데 문턱에 이마를 부딪쳐 사망하자 가족들이 짜고 아버지가 부주의로 넘어진 것처럼 거짓 진술을 한 사건도 있다.

도적패인 '똥개패'에 들어가 개인집 물건을 훔치는데 가담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된 사례, 범죄자 두 명이 공모해 군인으로 가장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 컬러 TV를 훔쳐 나오는데 집주인 여자를 만나자 한 명은 물건을 들고뛰고 다른 한 명은 집주인이 반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경우도 있다. 정부 통신선을 절단해 판 사례도 여러 건 소개되어 있다. 경제난으로 파생된 사건들이다.

시력을 핑계로 군사복무 동원을 기피한 사례도 흥미롭다. 군 탈영자를 숨겨준 사건, 차단근무중인 인민군 병사에게 트집을 잡아 뭇매질하고 달아난 사건, 군량미를 유용한 사건, 인민보안원 군복을 입고 보안원으로 위장해 저지른 범죄 등도 사례로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중위 복장을 하고 12명의 처녀들과 약혼식을 하고 금품을 갈취한 경우까지 예시돼 있다.

사실 이러한 사례들은 여러 탈북자들이 이미 유사한 경우를 증언해 익히 알려진 사실들이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사회인만큼 어쩌면 당연히 있을 법한 일들이다. 특히 90년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경제 범죄가 빈발했을 것이다. 또 남쪽의 경찰조직에 해당하는 인민보안성(현재 인민보안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범죄 사례와 법 적용을 모아 놓은 참고서이기 때문에 사회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범죄 현상들이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늘어났는가, 줄어들었는가 하는 추세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래야 북한 사회의 변화 모습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 일부 존재하는, 또는 늘고 있는 한류와 <참고서>에 소개된 범죄들은 그 현상 자체도 중요하지만 흐름을 파악하고, 북한 당국의 정책적 대응과 동시에 분석돼야 한다. 그것이 한 측면만을 과장해 북한붕괴론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디지털 기기의 확산으로 변화되고 있는 북한 사회와 주민의식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또한 민간차원의 남북교류와 경협은 한류(韓流)가 한류(漢流)로 대체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하루속히 재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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