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 소속의 존 베이너 하원의장은 20일(현지시간) 리비아 전쟁 비용에 대해 예산 삭감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으름장을 놨다. 과거 닉슨 행정부 당시 미 의회가 베트남전 예산을 삭감해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풍경을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백악관은 곧바로 응수했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을 통해 "카다피와 나토(NATO)에 잘못된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며 "카다피가 큰 압박을 받고 있고, 나토가 상당한 부담을 감수하는 상황에서 그런 움직임이 이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15일 백악관이 '미국의 군사개입은 정당하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의 동의 없이 리비아 군사작전을 계속할 권한이 있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리비아 전쟁의 정당성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악관은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전쟁권한법'(War Power Act)에서 허용된 적법한 권한을 넘어선 작전을 폈다는 의회의 주장에 대해 "리비아에서 미군의 역할은 지원 임무이기 때문에 의회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맞받았다.
이 38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서 백악관은 "미군의 리비아 작전에는 지상군이 개입하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전투를 벌이거나 적대 세력과의 직접적 교전에 참여한 바도 없었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리비아 전쟁에 반대하는 반전 성향의 의원들과 시민사회를 설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매사추세츠 주의회 의원 출신의 반전운동가 톰 갤리거는 20일 진보적 웹사이트 '커먼드림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백악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갤리거 전 의원은 "인명 피해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만 국한된다고 해서 사소한 일로 치부한다면 그 시점부터 미국은 내리막을 걷고 있는 셈"이라며 자국의 피해가 없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정당화된다면 '세계의 경찰' 미국이 테러리스트와 다를 것이 뭐냐고 따져 물었다.
다음은 이 칼럼의 주요 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미국의 리비아 군사 개입이 시작된지 열흘 후인 3월 29일 리비아 작전의 정당성에 대해 역설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존 베이너 미 하원의장(공화)은 이달 19일이면 미국이 리비아 군사 개입을 시작한지 90일이 지나 '전쟁권한법'을 위반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로이터=뉴시스 |
노벨평화상 수상자 오바마, '적의'(Hostilities)를 재정의하다
대통령의 '훌륭한' 주장은 인상깊었다. 적군이 반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전쟁'이 아닐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최근 백악관이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 '미국의 대(對) 리비아 활동'은 나토의 리비아 작전에 미국이 10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
또 이 보고서는 의회의 동의 없이 대통령이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기간은 60일이라는 전쟁권한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의회 승인이 필요 없다고 역설한다. [전쟁권한법은 해외에서 60일 이상 전투를 벌일 경우 의회의 동의가 있어야 하며, 승인을 받지 못한 경우 다시 30일 이내에 철군을 시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백악관은 "무인공격기 '프레데터'를 동원한 [미국의] 공습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면서도 "미군의 작전은 전쟁권한법이 정한 60일의 기한이 상정하고 있는 어떤 '적의'[또는 적대 세력]와도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보고서는 "미국의 인명 피해나 심각한 위협"이 없기 때문에 1973년 제정된 전쟁권한법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무인공격기 시대를 맞아 발표한 '오바마 독트린'인가? 미국인의 인명 피해가 없는 한 어떤 군사작전에도 의회 승인이 필요 없다는 말인가?
분명히 과거의 어떤 시점에서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대선 후보 시절의 오바마는 전쟁권한법에 대해 지금과 매우 다른 말을 했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는 마치 퇴임을 앞둔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의 말처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현실과 책임"을 깨달은 것처럼 보인다.
리비아는 미국에게 기회가 왔을 때 반드시 제거해야 할 정권들의 목록에 들어 있었다. 오바마는 일단 서명했다. 정당화는 그 다음 문제였다.
백악관의 주장은 냉소적인 반응을 얻고 있지만 그 효과는 실제적이다. 외국인의 인명 피해는 미국 국내정치에서는 사실상 아무런 논쟁도 낳지 못하며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이런 면에서 미국 또한 다른 나라들보다 나을 것이 없으며 오히려 더 나쁘다.
하지만 만약 오직 외국인들 사이에서만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고 해서 군사행동이 '적의'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는 '악당'들에게 폭탄을 퍼붓고 만약 빗맞혀 민간인을 공격한다면 이는 가슴아픈 실수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든 것이 '적의'와 무관하다는 말인가?
'클린턴이 거짓말을 늘어놓았을 때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No one died when Clinton lied)라는 자동차 스티커를 기억하는가? 실제로 클린턴은 우리를 잘못 이끌었을 수 있다. 하지만 조지 부시는 우리를 이라크 전쟁으로 끌고 갔다. 이는 전임자의 섹스 스캔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중대한 결과를 낳은 일이다.
'온라인' 섹스 스캔들마저 [최근 벌어진 민주당 앤서니 위너 의원과 지난 2월의 공화당 크리스토퍼 리 하원의원의 사건 등] 정치생명을 끝장낼 수 있는 오늘날, 십억 달러가 넘는 공습 작전을 계속하는 데-미국인이 죽지만 않는다면-의회의 승인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역설적이다.
오바마가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였다. 사람들은 오바마가 실제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당선이 세계에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를 위해 수상자 선정이 이루어졌다고 이해했다.
이런 미래의 가능성을 믿지 않은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파키스탄에서의 비공식적인 전쟁을 확대시킨 인물에게 이같은 상이 주어지는 것에는 아무런 긍정적 효과도 없다고 봤다.
하지만 아직도 다수는 오바마를 믿는다. 말은 그럴 듯하게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만들어낸, 미국 대통령에게 일방적으로 전쟁을 계속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장에서 보이듯 말이다.
정치에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실망시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에 대해 가혹한 비판을 늘어놓았던 사람들마저 실망시켰다면 확실히 무슨 일인가를 저지른 것이다.
미국의 군사행동에 따른 인명 피해가 다른 나라 사람들에만 국한된다고 해서 이에 대한 우려를 사소한 일로 치부한다면 결국 그 시점부터 미국은 이미 내리막을 걷고 있는 셈이다.
9.11 테러를 기획한 자들도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는데 백악관과 같은 논리를 사용했을 수 있다는 가정은 불쾌한 상상이다. 하지만 미국인들도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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