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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다피군이 비아그라 먹고 '전술적 강간'? 증거는?"

[해외 시각] "전쟁의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19일(현지시간) 나토(NATO)의 공습으로 인해 민간인 사망자가 나왔다는 리비아 정부의 주장을 나토가 사실상 시인했다. 이날 나토는 리비아 작전 사령관인 찰스 부처드 캐나다 공군 중장 명의의 성명에서 '무기 체계의 오작동'으로 인해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기체계의 오작동이 이 사건을 유발했을 수 있다고 보인다"고 밝혔다.

이번 일은 나토가 민간인 피해를 인정한 첫 사례다. 리비아 정부는 과거 수 차례 나토의 공습으로 무고한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주장해 왔으나, 나토는 '확인할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민간인 피해 사실이 거의 명확히 밝혀진 이 사건이 이례적이라는 것은, 리비아 전쟁을 놓고 트리폴리의 카다피와 벵가지의 반군들, 나토와 미국 등 관련 각 측이 자신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진실'을 밝히기란 얼마나 어려운가를 드러낸다.

다른 사례도 있다. 지난 8일 미국 뉴욕에서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국제형사재판소(ICC) 수석검사가 언론에 알린 내용은 세계를 경악케 했다. 오캄포 검사는 "카다피가 성폭행을 결정했다는 정보를 얻었다"며 리비아 정부가 비아그라 형태의 약품을 군인들에게 지급하며 성폭행을 지시했다는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도 거의 모든 언론이 이를 대서특필하는 등 관심있게 보도했다. 그러나 약 2주가 지난 지금까지 후속 보도는 세계적으로 전무하다. 한국과 전 세계 사람들의 머리속에 '카다피=강간마'라는 이미지만을 남겨놓았을 뿐이다.

카다피는 최소 한 건의 대량학살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수 차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한 인물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강간 지시'와 같은 근거 없는 주장은 카다피가 실제로 저지른 범죄 행위의 진실성마저 의심하게 한다는 면에서 주의깊게 다뤄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의 중동 특파원 패트릭 콕번은 19일 칼럼을 통해 바로 이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콕번은 "카다피가 군인들에게 비아그라를 먹이고 반군에 가담한 여성들을 강간하라고 지시했다고?"라고 물으며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이번 전쟁에서도 첫 번째 희생자는 '진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쟁 관련 보도로 지난 2005년 마르타 겔혼 언론상(Martha Gellhorn Prize)을 수상한 콕번은 과거 1차대전 당시 연합국에 의해 행해진 반(反) 독일 흑색선전 때문에 나치가 저지른 반인간적 범죄 행위 역시 처음에는 의심받았다고 지적하며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다음은 콕번의 칼럼 주요내용이다. (☞원문 보기) <편집자>

▲ 19일(현지시간)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서 폐허가 된 건물을 조사하고 있는 주민들. 리비아 정부는 이 건물이 나토(NATO)의 공습으로 인해 파괴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이터=뉴시스

전쟁 범죄 보도와 거짓말, 또 거짓말

전쟁에서 일어나는 잔혹행위에 대한 보고는 매우 신중하게(with scepticism) 다뤄져야 한다. 미국 남북전쟁에서 활약한 유명한 장군 스톤월 잭슨은 한때 그가 싸웠던 전장을 조사하던 중 고개를 돌려 부관에게 "전장에서 거짓말쟁이들이 허용될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겠나?"라고 물었다.

잭슨의 말은 사람들이 전쟁에서 공포와 이기주의로 인해, 또는 혼란스럽고 두려운 상황에 대해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해 없는 말을 지어낸다는 의미다.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교전 상황 가운데에서는 이들의 말이 틀렸다는 것을 입증하기란 보통 이상으로 어렵다.

1990~91년의 제1차 걸프전쟁 당시 이라크 정부의 야만성과 기만성을 드러내 [서방에서] 전쟁에 대한 지지를 불러일으켰던 두 건의 선전(propaganda)과 거짓 정보 사례는 악명높다.

첫 번째는 15세 쿠웨이트 소녀의 증언이었다. 이 소녀는 병원에서 간호사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었을 때 이라크 군인들이 인큐베이터에서 아기를 끄집어내 바닥에 내려놓아 죽게 했다고 말했다.

이 보고는 분노를 불러일으켰으나, 이 소녀가 실제로는 미국 워싱턴 주재 쿠웨이트 대사의 딸이며 이라크 침공 기간 내내 미국을 떠난 적이 없다는 것이 후에 밝혀졌다.

두 번째 이야기는 이로부터 몇 달 후, 바그다드가 폭격과 미사일 세례를 받고 있는 가운데 나왔다. <CNN> 방송의 피터 아넷 기자는 미국이 바그다드 서부 외곽의 분유 공장을 파괴했다고 보도했으나, 미 국방부는 그에 분노하며 이 시설이 생화학무기 생산 시설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러나 아넷 기자와 같은 날 폐허가 된 이 시설을 방문한 필자는 파괴된 공장 사무실 책상에서 분유 생산 사업과 관련된 편지들을 찾아냈다. 대부분의 편지에는 공장을 파산으로부터 지키려는 힘겨운 노력이 담겨 있었으며, 이는 이라크 정부가 밤새 [생화학무기 공장을 분유공장으로 둔갑시키려는] 거짓말을 지어냈을 확률은 희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걸프전쟁으로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정부가 더 신뢰할 만하게 변한 것은 아니다. 현재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의 사악한 본성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은 자신에 반기를 든 여성들을 강간하라고 군대에 명령했다는 혐의다. 카다피는 비아그라와 같은 약물을 입수해 군인들에게 나눠주며 이같이 지시했다고 한다.

한동안 떠돌던 이 이야기는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수석검사가 '카다피가 직접 대규모 강간을 지시했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고 말하면서 신빙성을 얻었다. 이번 주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카다피군이 강간 행위를 전쟁 무기로 활용하고 있다는 보도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리비아에서 개별적으로 강간이 일어난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지난 3월 26일 외국 취재진들이 묵고 있는 호텔에 뛰어들어 자신이 카다피측 보안요원들에 의해 강간당했다는 신뢰할만한 주장을 편 아이만 알오베이디가 가장 유명한 경우다.

하지만 ICC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앰네스티인터내셔널(AI)과 휴먼라이츠워치(HRW) 등 인권단체들이 수행한 방대한 조사 작업에서는 리비아 정부의 지시로 대규모 강간이 일어났다는 증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앰네스티의 리비아 전문가 다이애나 엘타하위는 리비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이 단체의 조사원들이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살해될지 모른다는 공포나 수치심 때문에 피해 여성들이 입을 다물어서였을까? 엘타하위는 "우리는 미스라타와 튀니지-리비아 국경 등 리비아 전역에 걸쳐, 주변에 아무도 없을 때 여성들과 대화를 나눴다"며 "이들 중 누구도 강간 피해 사례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의사들과 심리치료사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결과는 같았다"고 말했다.

HRW의 여성인권 분야 책임자인 리젤 게른트홀츠 또한 자신들이 수행한 대규모 강간 혐의에 대한 조사 결과에 대해 "우리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 증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게른트홀츠는 조사는 아직 진행 중이라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 지난 9일 루이스 모레노 오캄포 ICC 수석검사는 카다피군이 조직적으로 수백 명의 여성들을 성폭행했으며, 카다피 정권에서 이들에게 비아그라와 같은 약물을 지급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로이터=뉴시스

대규모 강간 행위에 대한 하나의 실제적 증거는 심적 외상(트라우마)을 입은 아이들을 치료하고 있는 아동 심리치료사 세함 세르게와 박사의 지난달 조사에서 나왔다. 세르게와 박사는 난민 캠프에서 7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해 이중 5만9000명에게 응답을 받았다. 그는 "1만 명의 사람들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4000명의 아이들이 심리적인 문제를 갖고 있었으며, 259명의 여성들이 강간당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말했다.

피해 여성들은 카다피군에게 강간당했으며, 때때로 그들의 가족 앞에서 피해를 당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르게와는 140명의 강간 피해 여성들과 면담을 가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엘타하위는 자신이 세르게와에게 '앰네스티가 피해자들을 만날 수 있느냐'고 묻자 그가 "여성들과 연락이 끊어졌으며 자신만이 피해자들과 직접 접촉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몇몇 생포된 카다피군 인사들은 강간이 공식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TV에 나와 말했다. 하지만 아랍어를 할 줄 아는 조사자들이 당국자들을 대동하지 않고 이들이 수용된 구금 시설을 방문했을 때, 이들은 그같은 주장을 반복하지 않았다고 앰네스티 측은 밝혔다.

이라크에서처럼, 언론은 지나치게 남의 말을 잘 믿고 있으며 서방 정부는 증거가 있거나 말거나 리비아 정부의 잔혹 행위에 대해 떠벌리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리비아 반군들이 널리 믿고 있는 또다른 이야기는 카다피군 전사들 중 많은 수가 아프리카 중‧서부에서 온 용병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엘타하위는 앰네스티가 이에 대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카다피 정권이 저지른 것으로 주장된 대량학살 사례 중 수백 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현재 확실히 입증된 것은 1996년 트리폴리의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1200명의 수감자들이 살해된 사건이 유일하다. 신뢰할 만한 생존자가 이 사건에 대해 증언했다.

전선은 언제나 뜬소문으로 넘친다. 대량학살이나 강간에 대한 소문은 자신이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두려워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급속도로 번져 나간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지만,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가 진짜인지 확인될 때까지 기다리기 원치 않는다.

올해 초 벵가지 남쪽으로 1시간 30분 거리인 최전선 아즈다비야에 갔을 때 필자는 차량 한 대를 가득 채운 공포에 사로잡힌 피난민들을 보았다. 그들은 카다피군이 전선을 돌파해 진격해 오고 있다는 <알자지라> 아랍어 방송의 완전한 오보를 막 들은 참이었다. <알자지라>는 또한 병원이 공격당했고, 혈액보관소가 파괴당했으며, 여성들은 강간당하고 부상자가 처형당했다는 등 확인되지 않은 보도를 쏟아냈다.

사람들은 이 피난민들을 멈추려고 했지만, 이들은 자신들이 들은 얘기가 진실이며 선전이 아니라고 굳게 확신하고 있었다. 이처럼 잔혹행위에 대한 입증은 매우 중요하다. 1차대전 당시 연합국 선전가들이 편 반(反) 독일 선전의 유독한 면 중 하나는, 20년 후 나치가 저지른 대량학살 범죄에 대한 증거 또한 [과거의 선전과 마찬가지로] 회의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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