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니 교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상승세를 이어온 뉴욕증시가 1일(현지시간) 2%가 넘게 급락하면서 올해 들어 시가총액 증액분의 4분의 1을 하루아침에 날렸고, 유럽 주요 증시도 1%가 넘는 하락세를 보였다.
다른 모든 악재들은 이미 알려진 것이라는 점에서 이날 폭락을 이끈 최대 요인은 유럽의 재정위기, 특히 그리스와 관련된 소식이 꼽혔다.
▲ 1일(현지시간) 뉴욕증시가 그리스발 악재로 2% 넘게 폭락하자 트레이더들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AP=연합 |
전날만 해도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이 합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소식에 유럽의 재정위기가 수습단계에 들어갔다는 식의 낙관론이 대두됐다.
하지만 유럽의 재정위기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지금까지 모든 논의는 "재정위기 폭탄이 터지는 시점만 뒤로 미루는 것"이라는 비관론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반전'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국제통화기금(IMF)는 그리스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구제금융에 대해 "나중에 못받을 것 같다"면서 5차분(6월말 예정)에 대한 집행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무디스, 그리스에 '사실상 디폴트'급 신용등급 부여
이어 국제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B1'에서 'Caa1'으로 또다시 대폭 하향조정하고 등급 전망도 추가 강등 가능성을 의미하는 '부정적'으로 제시했다.
무디스에 따르면, 이번 등급은 "5년내에 디폴트 가능성이 50%"라는 수준이며 실제로 아르헨티나는 지난 2001년 7월 Caa1 등급을 받은 후 5개월 만에 디폴트를 선언했다.
유럽의 재정위기가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에 의해 악화될 우려가 커지자 "글로벌 경제가 티핑포인트에 처해 있다"는 루비니 교수의 진단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원래 '티핑포인트'는 컵에 물이 가득차 있어서 한 방울만 더해져도 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아주 미세한 변화만 있어도 큰 변화가 일어나는 상태를 의미한다. 글로벌 경제도 현재 조그만 충격만 있어도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순간에 있다는 것이 루비니 교수의 경고다.
루비니 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견한 세계적인 이코노미스트라는 점에서 발언이 나왔을 때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상당수의 시장 전문가들은 "지나친 비관론"이라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루비니 교수는 "지금까지 증시는 기대 이상의 실적 효과에 기댔으나 앞으로는 글로벌 경제성장이 둔화되면서 증시도 큰 조정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루비니 교수가 이런 진단을 내리는 근거는 우선 현재 세계경제의 4대 권역이라고 할 미국과 유럽· 일본·중국이 모두 경기가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루비니 교수에 따르면 최근 미국의 지표는 거의 모든 것이 좋지 않게 나왔고, 유럽은 재정위기로 혼란스럽고, 일본은 대지진과 원전 사태로 마이너스 성장을 면치 못할 상황이다. 또한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 회복을 담당할 주역으로 꼽히는 중국조차 거품 경제에 대한 우려로 긴축에 들어가고 있다.
여기에 미국에서는 돈을 풀어 경기를 떠받치는 정책이 종료되는 등 변화가 겹치면서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투자자들이 위험을 회피하려는 현상이 커지면서 증시에도 큰 조정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고액 투자자들도 "폭락장 언제 오나"에 더 관심
지난달 31일 국내에서 10억 원 이상 자산가 500여 명이 참석한 투자자들을 위한 포럼이 열렸는데,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증시의 상승 시점보다 언제 폭락장이 올 것이냐에 큰 관심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만큼 고액 투자자들은 지금 상황 자체를 위기로 보고 안전자산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세계최대 시장인 미국의 경제가 불안하다는 경고도 자꾸 나오고 있다. 최소한 미국의 주택가격은 더블딥에 빠진 것이 확실해 보인다. 더블딥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듯 하다가 다시 바닥을 치는 현상을 말하는데, 미국 20개 대도시 지역의 주택가격을 나타내는 지수는 8개월째 연속 하락끝에 금융위기 후 기록했던 저점보다 더 낮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전형적인 더블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주택가격 하락으로 촉발됐고, 경제 회복세가 견고한가의 여부가 바로 주택가격이 버텨주느냐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이런 관점이 맞다면, 그동안의 미국 경제회복은 더블딥 속의 일시적 상승기에 불과하다는 얘기가 된다는 점에서 심각하다.
주택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내수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 경제에서 소비할 여력도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반영하듯 미국의 소비자신뢰지수도 시장의 예측보다도 크게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美양적완화 종료, 최소한 '슬로우 쓰나미' 충격
가뜩이나 미국에서는 달러를 시장에 대대적으로 공급해온 이른바 '양적완화' 정책이 곧 끝난다.미국과 세계 주요시장에서 돈줄이 마른다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 변화다.
미국은 금융위기 이후 경색된 자금의 흐름을 풀기 위해 금리를 제로 수준으로 낮추고 그것도 모자라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는 방식으로 달러를 대대적으로 공급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써왔다. 미국의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는 재작년에 8개월 사이에 우리 돈으로 2000조 원을 시중에 공급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의 두 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그래도 큰 효과가 없자 Fed는 지난해말부터 700조 원에 가까운 돈을 추가로 공급하는 '2차 양적완화'를 시행했다. 그런데 2차 양적완화도 6월말이면 종료된다.
그동안 미국에서 풀어댄 달러는 시들한 미국 시장에 머물지 않고 주로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 몰리면서 신흥국 자산시장에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흘러들어갔다.
하지만 양적완화가 종료되면 다시 달러가 귀해지면서 금리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고 이렇게 되면 신흥시장에 있던 자금도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충격을 주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적지 않다.
월가에서도 알아준다는 한국인 이코노미스트 손성원 미국 캘리포이나주립대 석좌교수도 최근 국내 강연에서 '슬라미'라는 조어까지 동원해 "쓰나미처럼은 아니지만, '슬로우 쓰나미처럼 서서히 빠져나갈 것"이라면서 외국인 자금 이탈설에 무게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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