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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에도 민주화 바람 불까?

[김재명의 월드 포커스] 박정희식 개발독재+강대국 이해관계='민주화 무풍지대'?

중동지역에 2011년 봄부터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쳤다. 그 바람의 이름은 '시민혁명'이다. 중동상황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시민의 힘으로 역사가 발전한다"는 말에 새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아직도 지구상엔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나라들이 절반 이상이다. 미국 NGO '프리덤 하우스'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유엔(UN) 회원국 192개국 가운데 민주국가는 89개에 그친다.

이즈음 관심은 중동의 민주화 바람이 비민주국가에 얼마만큼 영향을 끼치느냐이다. 특히 중동 바로 옆의 중앙아시아 지역이 관심거리다. 유라시아 대륙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기에 중앙아시아로 일컬어지는 이 지역엔 옛 소련에 속했던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 5개국이 자리잡고 있다. 1991년 소련이 붕괴하면서 독립국가를 이룬 나라들이다.

카스피해에서 그친 민주화바람

중앙아시아 5개국의 공통점은 중동 못지않은 '오래~된 권위주의적 통치자'와 그 일족들이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틀어막으면서 배를 불려왔다는 점이다. 중앙아시아 독재국가들의 상황을 나라 이름/ 독재자/ 집권기간 별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카자흐스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대통령/20년(1991년~현재)
△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20년(1991년~현재)
△타지키스탄/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 17년(1994년~현재)
△투르크메니스탄/ 사파르무라트 나야조프 전 대통령(사망)/ 16년(1990~2006년)
△키르기스스탄/ 아스카르 아카예프 전 대통령/ 14년(1991~2005년)

중동과 중앙아시아 사이의 카스피해 연안 국가인 아제르바이잔에서는 지난 4월초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었다.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의 퇴진과 민주화 등을 요구하는 수도 바쿠에서의 시위는 분명히 아랍시민혁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알리예프는 지난 2003년 죽은 아버지 헤이다르로부터 대통령직을 이어받았다. 이들 부자가 18년째 철권을 휘둘러왔다).

아제르바이잔 민주화 시위를 보면서 사람들은 중동의 민주화 불길이 카스피해를 넘어 중앙아시아로 옮겨 붙는가를 눈여겨 보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중앙아시아는 적어도 겉으론 조용한 편이다. 중동지역과는 달리 민주화의 산들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독재자 카리모프 두둔하는 강대국들

우즈베키스탄에는 '고려인'이라 불리는 한국계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 1937년 옛 소련 독재자 스탈린이 시베리아에서 열차로 강제이동시켰던 이들의 후손들이다. 몇 년 전에 그곳 수도 타슈켄트에 갔다가 고려인을 만났더니, 다들 정치 얘기를 피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이슬람 카리모프 대통령은 '중앙아시아 지역 안에서 가장 억압적인 정권 지도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국내 비판세력은 씨가 말랐다고 보는 편이 정확하다. 20년째 철권을 휘두르는 1인 권력자 카리모프는 지난 2005년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 강경진압으로 무려 2000명의 시민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로 몰아 마구잡이로 죽인 잔혹한 독재자로 악명이 높다.

그런 카리모프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은 느슨하기 짝이 없다. 2005년 학살이 벌어졌을 때 블라디미르 푸틴 당시 러시아 대통령은 "치안유지를 위한 조치는 정당했다"며 카리모프의 손을 들어주었다. 중국은 "남의 나라 일엔 끼여들지 않는다"며 침묵을 지켰다. 국제사회에서 진상조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자 당시 미 백악관 대변인은 "사태의 원인이 시위대에게 있다"며 카리모프를 두둔했다. 유럽연합(EU)의 비난은 형식에 그쳤다.

그런 미적지근한 국제사회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카리모프는 "비난은 짧고 권력은 영원하다"는 말을 되뇌며 혼자 웃었을 것이다. 카리모프뿐 아니다. 중앙아시아 독재자들은 "강대국 지도자들이 바라는 이권을 보장해준다면, 국내적으로 독재라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들은 시민혁명의 혼란보다는 현상유지를 바란다"는 현실을 꿰고 있는 모습이다.

▲ 20년째 우즈베키스탄의 1인 권력자로 군립해온 이슬람 카리모프. 70년대 박정희식 개발독재처럼 양적 성장을 자랑하지만, 서민들은 민주화를 갈망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변방이지만 에너지 자원 풍부

중앙아시아 지역은 국제사회에서는 '변방'처럼 여겨진다. 미국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주요축인 서유럽이나 한국-중국-일본이 있는 동북아시아에 견주면 쉽게 이해가 간다. 그렇지만 유라시아 대륙의 가운데 자리 잡은 이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미국과 30년 넘게 적대관계를 이어온 이란, 그리고 미국이 전쟁 중인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그 이웃인 파키스탄과 지리적으로 연결돼 있고, 남쪽으로는 페르시아만, 서쪽으로는 중동지역, 북쪽으로는 러시아, 동쪽으로는 중국에 가깝다.

더욱이 이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석유와 가스 등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지녔다. 에너지 안보가 21세기 각국의 정책 우선순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사실도 미국-중국-러시아 등 강대국들은 잘 알고 있다. 중앙아시아 독재자들이 인권탄압으로 악명이 높아도 국제사회로부터 대접 받는 비결은 바로 여기에 있다.

튼튼한 지배구조, 약한 풀뿌리, 강대국 비호

중앙아시아 전문가들의 분석을 모아보면 크게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워낙 독재정권이 강고하고, 둘째는 오랫동안 지배권력이 비판세력의 씨를 말린 탓에 민주주의를 밝히는 촛불 역할을 맡아야 할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힘이 너무나 약하고, 셋째는 주변 강대국들이 독재정권을 묵인하고 있기에 독재정권들이 국제사회로부터의 민주화 압력이라는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중앙아시아에서 민주화의 미풍조차 불지 않는 까닭은 △독재정권의 지배구조는 튼튼한 데 비해 △풀뿌리 민주주의는 너무나 연약한 상황에서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들은 독재자들과 손을 잡고 현상유지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혁명의 가능성은 있다

중앙아시아 독재자들은 풍부한 에너지 자원에 바탕한 양적 경제성장을 내세워 독재를 정당화해왔다. 이는 마치 1970년대 한국의 박정희식 개발독재를 떠올린다. 시민들의 생활형편이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다지만, 치솟는 물가와 높은 실업률, 소수 특권층에 부가 편중되는 데서 비롯된 상대적 박탈감 등으로 분노하고 있다.

따라서 이 글의 결론은 "중동에서 그랬듯이 중앙아시아에서도 언젠가는 시민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민주화로의 정치적 변혁이 일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것은 틀렸다. 정치사회적 욕구불만에 바탕한 분노가 용암처럼 밑에서 끓고 있다가 언젠가는 폭발, 민주화의 폭풍을 일으킬 것이다. 많은 중동전문가들이 지난 연말까지만 해도 내다보지 못했던 아랍시민혁명이 2011년 봄에 터진 것처럼 말이다.

* 참여연대가 발행하는 월간지 <참여사회> 최근호에 실린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 필자 이메일 kimsphot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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